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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밤은 노래한다

- 책제목 : 밤은 노래한다

- 저자 : 김연수 (달로 간 코미디, 나는 유령작가입니다..)

- 출판사 : 문학과 지성사

 

민중의 기 붉은 기는 전사의 시체를 싼다.

시체가 식어 굳어 전에 혈조는 깃발을 물들인다

높이 들어라, 붉은 깃발을

그 밑에서 굳게 맹세해

비겁한자여, 갈라면 가라

우리들은 붉은 기를 지키리라

원수와의 혈전에서 붉은 기를 버린 놈이 누구냐.

 

민생단,, 이 참담한 민생단 사건을 통해 희생된 항일혁명가가 최소 500여 명, 일제의 자료조차 토벌에 의해 희생된

 

숫자보다 혁명조직 내에서 서로가 서로를 의심해서 죽고 죽인 숫자가 더 많았다고 인정하고 있다.

 

이 참담한 민생단 사건을 통하지 않고서는, 우리는 김일성 등 이북의 지도부가 된 항일유격대 출신들의 사고방식을

 

이해할 수 없다. 또한 중국 당국이 혁명에 승리한 직후, 왜 연변조선족자치주를 만들었는지를 이해할 수 없다.

 

우리가 오늘날 연변이라고 부르는 곳은 간로라고 불렸다.

 

연길,화룡,왕청,훈춘등 조선과 인접한 4개 현을 지칭한다.

 

1930년대초 이곳의 전선은 매우 복잡했다.

이곳은 조선공산주의 운동, 중국공산주의 운동, 국제공산주의운동이 아주 복잡하게 얽히면서 '일국일당'원칙이 강력히 시행된 곳이었다.

조선인 공산주의자들이 중국공산당에 입당할때, 중국공산당은 조선인 당원들이 '조선혁명'과 '중국혁명' 모두를 수행할 수 있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1931년 일본 제국주의가 만주를 군사적으로 침략하자, 중국공산당은 매우 조급해졌다. 중국공산당은 만주성위 당원의 절대다수를 점하는 조선인들이 중국혁명보다 조선혁명에 주력할 경우, 중국혁명을 위한 역량이 분산될 것을 우려했다. 당은 점차 조선인 당원들이 '조선혁명' '조선독립'을 말하는것을 금하기 시작했다.

 

민생단- 빛, 어둠, 그림자

 

일본이 만주를 점령하자, 일부 일본 제국주이 자들과 간도의 친일조선인들은 간도를 만주로부터 떼어 내어 식민지 조선에 병합하자는 움직임을 물밑에서 벌였다.

이런 흐름은 중국인 공산주의자들을 당연히 자극했다.

1932년 2월, 간도에서 일군의 친일조선인들은 한때 일본제국주의에 반대했던 민족주의자나 전향 공산주의자들을 포함하여 민생단이라는 정치조직을 결성했다.

이 민생단은 조선인의 간도 자치를 표방했는데 일제는 조선인의 간도 자치나 간도의 조선에의 병합이 중국인들 강력한 반발을 가져올것이라 우려하여 금방 민생단을 해산해버렸다. 그러나 중국공산당은 일제가 민생단원을 훈련시켜 중국공산당내에 스파이로 잠입시키고 있다는 의심을 품게 되었다.

많은 나라의 혁명운동은 스파이의 활동보다 스파이 존재차체에 대한 공포가 더 파괴적이었음을 보여주었다.

당원의 민족구성등이 복잡하게 얽혔던 1930년대 초반의 간도에서 조선인 스파이에 대한 공포는 가히 치명적이었다.

 

러시아혁명이후 '공산당'은 피억압 인민들의 유토피아로 인도해줄 메시아적 존재로 다가왔다.

당은 절대로 오류를 범하지 않는다는 '무오류성의 신화'는 당이 영도하는 무장대의 출현으로 더욱 강화되었다.

그러나  변한 무장을 갖추지못한 유격근거지의 주민들은 일제의 토벌대가 쳐들어오면, 산으로 도망치기에 바빴다.

당은 이런 현실을 당과 유격대내에 민생단 스파이가 침투한 결과로 돌렸다.

 

 

일제의 토벌대에 포위된 유격근거지는 민생단숙청이라는 붉은 마녀 사냥의 광풍에 휩싸여 버렸다.

 

민생단이라는 어마어마한 감투를 쓰고 처형된 항일혁명가들의 혐의는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것이었다.

그래도 초기에 처형된 사람들은 '조선혁명' '조선독립'을 주장한다는 정치적인 이유로 숙청되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일제에 체포되었다가 구사일생 탈출하거나 처형장에서 중상을 입고 살아돌아오면 가차없이 민생단으로 처형되었다. 일을 열심히 하면 정체를 감추려 한다고 민생단으로 몰렸고, 일을 게을리 하면 민생단의 지령으로 태업을 한다고 처형되었다.

고향이 그립다고 말하면 민족주의적 향수를 조장한다고 민생단, 동지의 죽음앞에 눈물을 흘려도 패배주의를 조장한다고 민생단, 가족중에 민생단 혐의자가 나와도 민생단이 되는 등 간첩의 꼬리표는 끝이 없었다.

 

김일성을 비롯한 항일무장 투쟁출신 이북의 지도자들 역시 민생단 사건의 격랑을 피해갈 수 없었다.

이 사건이 남긴 트라우마는 주체사상 '어버이수령'과 인민들간의 독특한 혈연적 유대관계, 자주노선, 정치적 생명론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세상을 바꿔보려던 꿈을 지녔던 젊은 이들이 서로 죽이고 배신하고 변절하고 미치광이가 되는 그런운명을 맞으려 혁명의 길에 뛰어든 것은 아니었는데....

 

동지가 동지를 죽이던 간도의 밤은 참 길었다. 그 밤이 부를 노래는 한 편만이 아니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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