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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 게바라의 편지

  • 등록일
    2012/11/24 13:51
  • 수정일
    2013/02/25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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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하는 어머니,

 

 마침내 이곳에 와서야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다는 걸 느낍니다...... 하지만 일단 지난 여정을 말씀드려야겠지요. 가르시아와 함께 머물렀던 산호세[1]를 떠나 우리는 길의 닿는 곳까지 굴러 왔습니다. 이 표현을 쓸 수밖에 없는 것이 가르시아와 저는 족히 50킬로미터는 걸어와서 니카라과 국경 부근에서 작별을 고했거든요. 저의 발 뒤축은 엉망이 되었어요. 우리를 태워주었던 트럭이 강 바닥에서 뒤집히는 바람에 발을 다쳤거든요. 그리고 이곳에서 저는 베베라기-아옌데 형제를 알게 되었는데 그들은 자기들이 골수 페론 반대자들이라고 하더군요. 그들이 우리를 태워준 덕분에 우리는 다시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보스턴 대학이라는 커다란 마크만 본다면 그들을 미국인들로 착각할 거예요! 아무튼 우리는 아르헨티나 영사가 기다리고 있는 마나과[2]에 도착해 부모님들로부터 온 전보를 받았어요. 영사는 자기가 늘 이런 식의 선도자 역할을 하지 않을 수 없다고 믿고 있는 것 같더군요.(영사는 부모님한테 돈을 부탁하라고 제안했습니다.) 사실 그 영사는 제가 완전히 녹초가 되어도 부모님께는 한 푼도 요구하지 않으리라는 걸 알았어야 해요. 어쨌든 부모님께서 전보에 썼듯 제 건강을 위해서 건배나 하세요. 그 편이 훨씬 더 유익하니까........

 

 어쨌든 만사가 잘 해결될 거예요. 이곳에는 의사들이 부족하거든요. 혹시 더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면 이 도시를 떠나 고대문명 연구에 좀더 몰두해 볼 생각도 있구요. 바이아블랑카[3] 못지 않게 평온한 곳이면서도 적잖은 외국인들과 더불어 민주주의에 대한 강한 연대감이 감돌고 있습니다.

 

 온두라스에서 날아온 것이 분명한, 해적 같은 비행기 한 대가 수도 위를 선회하고 가는 일이 며칠 동안(6월 15일까지) 계속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부터 돈으로 고용된 용병들이 포격을 개시했습니다. 그 와중에 두 살 먹은 여자아이가 희생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국민과 군대를 하나로 단결시키기 위해서 이 사건을 철저히 파헤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우리에게 작별인사를 하기 위해 환자들이 악단을 조직했습니다. 아코디언을 켜던 사람은 오른손의 손가락을 모조리 잃은 사람이었는데 손목에 막대기를 고정시켜 손가락을 대신했답니다. 또 노래를 부르던 사람은 앞을 볼 수 없는 장님이었고, 거의 모든 사람들이 제나름의 장애를 몸에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 모든 사람들이 희미하고 음침한 랜턴 불빛 아래에 모여 있는 모습을 상상해 보세요. 마치 공포영화의 한 장면 같을지도 모르겠지만 이 장면이 저에게는 이제까지 보았던 가장 아름다운 장면들 중의 하나로 남게 될 것입니다. 게다가 알베르토의 환송사는 얼마나 멋졌는지 듣는 사람을 거의 까무러치게 만들 정도였죠. 페론의 완벽한 후계자가 여기 있는 줄은 미처 몰랐다니까요!

- 산파블로[4]의 나환자촌에서 어머니에게

 


 

 저는 예수와 전혀 다른 길을 걷고 있습니다. 저는 힘이 닿는 한 모든 무기를 동원하여 싸울 겁니다. 저들이 나를 십자가에 매달아두게도 하지 않을 것이며 어머니가 바라시는 방식대로도 하지 않을 겁니다.

 

 쿠바의 젊은 혁명가로부터 그들의 혁명운동에 참여해 달라는 권유를 받은 지는 꽤나 오래 전 일입니다. 물론 저는 그 제의를 받아들였구요. 이제 저의 미래는 쿠바혁명과 떼려야 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것과 함께 승리하든가, 아니면 그것과 함께 죽는 길밖에는요. 저로서는 당장 이 감옥에서 나가는 일이 급선무입니다. 일다는 페루에 들어선 새 정부로부터 특별사면을 받아 조국으로 돌아가게 될 것 같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앞으로 연락을 자주 못 드릴 것 같군요. 멕시코 경찰이 남의 편지를 몰래 읽는데 재미를 붙이고 있는 것 같으니 아주 일상적인 얘기 외에는 쓰지 마세요. .......이 글을 작별 인사쯤으로 여겨주세요. 지나친 과장일지 모르지만 어쨌든 제 솔직한 심정입니다. 돌이켜보면 이제까지는 진정 제가 원하는 게 뭔지 모르고 엉뚱한 길만 걸어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도중에 저를 영원케 하는 한 여자와 함께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습니다. 이제부터는 제가 죽더라도 슬퍼하지 마세요. 나치 히크멧의 시구처럼 말이지요.

"나는 끝나지 않는 노래를 부르며 슬픔을 무덤까지 가져가리."

여러분 모두를 사랑합니다.

 


 

티아, 티아, 티아(베아트리스 이모의 애칭), 유나이티드 프루트(그는 북아메리카의 체제를 한마디로 이렇게 불렀다)의 영토를 여행하는 동안, 저는 그들의 위력이 얼마나 막강한지를 새삼 획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문어발 같은 자본가들이 전멸되는 날까지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 맹세하였습니다. 저는 진짜 혁명가가 되겠다는 뜻을 실현시키기 위해 과테말라로 갈 것입니다.

 

 종종 의료업무를 수행하기는 하지만 제가 수입을 얻는 곳은 신문 등에 투고하는 글로부터입니다. 아울러 대륙 발견 이전 시대의 문화에 대해 강연도 종종 하고 있구요.......

 

 이모에게 키스를 보냅니다. 이모를 사랑해요. 배가 고프지만 쇠처럼 건강하며, 동시에 깨어 있는 미래의 사회주의자인 조카로부터.

 

 루스벨트가 씌워준 '선한' 얼굴의 가면을 쓴 양키들이 마침내 그 가면을 벗었습니다. 공군력과 현대장비로 무장된 그들의 군대와 재래의 방식으로라도 싸워야 한다면 우리는 그럴 것입니다. 지금 과테말라에서는 민중 정신과 진정한 투쟁의 열기가 하늘을 찌르고 있습니다. 저도 이미 의사 자격으로 긴급구호대에 지원했습니다만, 아무래도 군사훈련이 필요할 것 같아 청년 여단에도 역시 지원했습니다. ...... 들리는 바에 따르면 미국이 파견한 군사 고문단이 아르벤즈 대통령을 만나 만일 하야하지 않으면 이 나라가 쑥밭이 될 때까지 폭격해 버리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고 합니다. 설상가상으로 미국에 동조하는 온두라스와 니카라과의 선전포고까지 가세하였구요. 이 소식을 전해 들은 과테말라 군부는 결국 대통령에게 사임 압력을 가했구요. 저는 이제 멕시코로 떠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저는 머지않아 발발할 무장혁명에 뛰어들 것입니다.

 


 

  우리를 보고타까지 실어다 줄 군용비행기는 2주일 후에나 도착한다는데 이 위기에서 구해 준 것은(그때 우리의 수중에는 한푼도 없었거든요) 우리가 축구 코치였다는 거짓말이었어요. 처음에는 직접 경기에 나서라고 할까 봐 은근히 불안했는데 그래도 운동장 밖에서 기술이나 가르치기만 하면 되려니 여겼죠. 그런데 막상 시합을 직접 시켜보니 선수들의 실력이 얼마나 형편없던지 결국 우리가 직접 뛰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답니다. 헌데 가장 약체라고 알려진 우리 팀이 예상 밖의 선전을 거듭하여 결승에까지 진출한 거예요. 비록 페널티킥으로 지기는 했지만요. 알베르토는 정말 신들린 사람처럼 잘 뛰었어요. 페데르네라 처럼 공을 몰고 가서 자로 잰 듯한 패스를 줘서 팀 내의 기둥으로 떠올랐죠. 그리고 저로 말할 것 같으면, 제가 기록한 골이 레티시아 시청 연감에 두고두고 남게 되겠지요.

-레티시아에서 가족들에게

 


 

 모님께

 

 사랑하는 두 분,

 다시 한 번 나의 로시난테[5]에 박차를 가해야 할 때가 온 것을 느낍니다. 방패를 챙겨들고 저는 다시 길을 떠납니다.

 부모님께 작별의 편지를 썼던 것이 어느덧 십 년이 지났군요. 혹시 기억하고 계시다면 제가 훌륭한 군인이자 좋은 의사가 되지 못한 것을 아쉬워했었다는 것을 아시겠지요. 저는 썩 형편 없는 군인은 아니기 때문이죠.

 본질적으로 변한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저의 마르크스주의가 더욱 깊어졌고 정제되었다는 점을 전보다 더욱 자각하고 있다는 점만을 제외하곤 말입니다. 저는 해방되고자 하는 민중들의 유일한 해결책은 바로 무장투쟁밖에 없다고 믿으며 이 신념을 일관되게 따를 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저를 무모한 모험가로 여기고 있다는 걸 압니다. 물론 저는 그렇습니다. 하지만 다른 형태의 모험가지요. 바로 자신의 진실을 지키기 위해서는 목숨까지도 내던질 수 있는 그런 모험가 말입니다.

 어쩌면 이번이 마지막일 수도 있을 겁니다. 그렇지 않길 기대하지만 논리적으로 따져볼 때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저는 두 분에게 마지막으로 포옹을 보내는 셈이지요.

 생각해 보면 두 분을 너무너무 사랑하면서도 저는 그 마음을 제대로 표현하질 못했습니다. 저는 제 행동에 있어 지나치게 완강했고 더러는 그런 저를 이해하지 못하셨을 겁니다. 사실 저를 이해하시기란 쉽지 않으셨을 겁니다. 하지만 지금만은 절 믿어 주십시오.

 이제 예술가의 희열로서 연마한 제 의지가 무뎌진 다리와 지친 폐를 지탱해 줄 것으로 믿습니다. 그리고 저는 마지막까지 나아가겠습니다.

 가끔은 이 20세기의 난폭한 모험가인 이 못난 아들을 기억해 주시겠지요. 셀리아와 로베르토, 후안 마르틴과 파토틴, 그리고 베아트리스 이모에게 키스를 보냅니다. 모두를 사랑합니다.

 

 방자하고 고집 센 아들, 에르네스토

 


 

 아바나 농업 재건의 해를 기념하며

 

 델,

 

 이 순간 나에게는 많은 생각이 떠오릅니다. 마리아 안토니아의 집에서의 첫 대면, 당신과 함께 오자는 제의, 그리고 혁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수반되는 그 모든 긴장들, 언제인가 누군가 우리에게 이렇게 물었지요. 죽어야 할 순간이 오지 않겠냐고, 죽어야 할 순간이 현실적으로 우리에게도 일어날 수 있으리라는 가능성이 우리를 사로잡았었지요. 그리고 우리는 그것이 사실이었고 (어차피 그래야 한다면) 혁명 속에서는 이기는 자도 있으며 죽는 자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승리로 오는 길목에서 많은 동지들이 그렇게 쓰러져 갔습니다.

 

 지금은 모든 것이 그때만큼 극적이지는 않습니다. 그만큼 우리가 더 원숙해졌다는 것이겠지요. 하지만 현실은 반복되는 법입니다. 나는 쿠바혁명에서 내가 할 바의 몫을 수행했다고 여기며 어느덧 내 자신의 일부가 되어버린 당신과 동지들, 그리고 쿠바 국민들에게 작별을 고합니다.

 

 나는 당에서의 내 직책과 장관으로서의 직위, 대장이라는 계급, 그리고 쿠바 시민권을 공식적으로 내놓습니다. 쿠바와 나를 묶어놓을 어떠한 법적 구속력도 없어지는 것입니다. 유일한 끈이 있다면 또 다른 속성의 것, 즉 공식적인 문서로는 파기될 수 없는 것이겠지요.

 

 지나간 내 삶을 돌이켜보건대, 나는 혁명의 승리를 공고히 하기 위해 자부심을 갖고 일해 왔다고 믿습니다. 내가 저지른 유일한 큰 실수는 시에라마에스트라에서 투쟁하던 그 초기 시절보다 당신을 더 신뢰하지 못했다는 것과 지도자의 혁명가로서 당신의 역량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나는 찬란한 날들을 살아왔습니다. 당신의 곁에 머물면서 카리브 해의 위기가 야기한 슬프고도 저 빛나는 시간들을 우리의 민중과 더불어 함께 했다는 사실에 긍지를 느낍니다. 그날들보다도 더욱 빛나는 시간을 가진 정치가는 없을 겁니다. 아울러 망설임 없이 당신을 따랐고, 당신의 사고방식에 내 자신이 기꺼이 따랐다는 점 역시 자랑스럽습니다.

 

 이 세계의 다른 땅에서 미약하나마 나의 헌신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나는 당신이 쿠바의 수반으로서 지고 있는 책임 때문에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가 작별하여야 할 시간이 온 것입니다.

 

 당신과 헤어질 생각을 하니 희열과 고통이 어지럽게 내 마음을 휘젓는군요. 여기에 나는 건설자로서 나의 가장 순수한 희망을 두고 갑니다. 그것은 내가 사랑하는 것들 중에 가장 소중히 여겼던 것이지요. 그리고 나를 친자식처럼 따뜻이 맞아주었던  쿠바의 민중을 두고 떠납니다. 이 모든 것이 나의 희망의 일부로서 계속 남아 있을 겁니다. 제국주의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막론하고 새로운 전장에서 나는 당신이 나에게 심어주었던 신념, 민중의 혁명정신, 가장 성스런 의무를 수행한다는 감정을 늘 지니고 있을 겁니다. 이것들이 있다면 아무리 깊은 상처라도 위로받고 치료될 수 있을 것입니다.

 

 거듭 얘기하건대 나는 쿠바혁명이 주었던 모범만은 제외하고 모든 책임으로부터 쿠바를 자유롭게 해주렵니다. 혹시 또 다른 하늘 아래서 최후의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면 나는 마지막으로 바로 쿠바 국민, 특히 당신에게 향할 것입니다. 당신의 가르침과 모범에 대해 감사하며 내 행동의 결과에 늘 확신을 갖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나는 혁명의 외부정책과 늘 일치해 왔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내가 어디 있건 간에 나는 쿠바 혁명가로서의 책임감을 숙지하고 그에 걸맞는 행동을 할 것입니다. 나는 아내와 자녀들에게 물질적으로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떠나지만 그것을 안타깝게 생각하진 않습니다. 그러는 것이 오히려 기쁠 따름입니다. 나는 그들을 위하여 아무런 요구도 하지 않을 작정입니다. 국가가 그들의 생활과 교육을 충분히 책임져 주리라 믿기 때문입니다.

 

 이외에도 당신과 우리 국민에게 할 얘기가 산더미같이 있습니다만 한편으론 말이 필요치 않을 거라 느낍니다. 말로써 내 바람을 다 표현할 수도 없는 일이며 그런 말장난이 굳이 필요치 않다고 여기는 까닭입니다.

 

 승리를 쟁취하는 날까지, 영원히 전진! 조국 아니면 죽음을!

 나의 모든 혁명적 열정을 다하여 당신을 포옹합니다.

 체게바라

 


 

 녀들에게 보내는 편지

 

 사랑하는 일디타, 알레이디타, 카밀로, 셀리아 그리고 에르네스토에게,

 너희들이 이 편지를 읽게 될 즈음엔 나는 더 이상 너희들과 함께 있지 못할 게다.

 너희들은 더 이상 나를 기억하지 못할 거고 어린 꼬마들은 이내 나를 잊어버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너희들의 아빠는 자신의 생각대로 행동했으며 자신의 신념에 충실했던 사람이었단다.

 

 아빠는 너희들이 훌륭한 혁명가들로 자라기를 바란단다.

 자연을 정복하기 위해, 꼭 필요한 기술을 정복하기 위해 많이 공부하여라. 그리고 혁명이 왜 중요한지, 그리고 우리 각자가 외따로 받아들이는 것은 아무런 가치도 없다는 점을 늘 기억하여 주기 바란다.

 

 특히 이 세계 어디선가 누군가에게 행해질 모든 불의를 깨달을 수 있는 능력을 키웠으면 좋겠구나. 누구보다 너희들 자신에 대해 가장 깊이. 그것이야말로 혁명가가 가져야 할 가장 아름다운 자질이란다.

 

 늘 너희들을 다시 보길 바라고 있으며, 아주 커다랗고 힘찬 키스를 보낸다.

 

 아빠가

 


 

1966년 2월 15일 브라자빌에서

 

 

 랑하는 일디타에게

 

 오늘 너에게 편지를 쓰지만 너는 아주 나중에야 편지를 받아 보게 되겠구나. 어쨌던 나는 너를 한 번도 잊은 적이 없다는 사실을 네가 알아주었으면 한다. 그리고 네 생일, 즐겁게 보내기 바란다. 너도 어느덧 숙녀가 다 되었구나. 그러니 어린아이에게 하듯 우스갯소리나 하고 거짓말이나 하는 편지는 쓸 수 없겠지. 아빠가 아주 멀리 있고, 앞으로도 아주 오랫동안 네 곁에서 떨어져 있을 거라는 사실을, 앞으로도 내 모든 힘을 바쳐서 적들과 싸울 거라는 사실을 너도 이젠 알아야 한단다. 이곳에서 내가 아주아주 하찮은 일을 맡았다고 해도 그건 아주 소중한 거야. 네가 항상 아빠를 자랑스러워할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내가 너를 자랑스러워하듯이 말이야.

 

 우리 앞에선 끝없는 투쟁이 있음을 기억하거라. 네가 어른이 되었을 때 너 역시 투쟁의 대열에 끼어야 할 것이다. 어른이 될 때까지 가장 혁명적인 사람이 되도록 준비하여라. 이 말은 네 나이에는 많이 배워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단다. 가능하다면 정의를 지지할 수 있도록 준비하거라. 나는 네 나이에 그러지를 못했단다. 그 시대에는 인간의 적이 인간이었다. 하지만 지금 네게는 다른 시대를 살 권리가 있다. 그러니 시대에 걸맞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동생들이 바르게 자라고 있는지 잘 살펴보는 것을 잊지 말고 그 아이들이 열심히 공부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라. 엄마를 꼭 안아주렴. 그러면 엄마도 너를 더 꼭 끌어안고 키스를 해줄 거다. 엄마의 키스가 우리가 서로 만나지 못하는 시간들을 채워줄 거야.

 

아빠가

 

출처-/blog.daum.net/shim808/7819393

 

체 게바라의 편지들입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말이거나 중요한 부분이다라고 여기는 곳에 밑줄을 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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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1]코스타리카의 수도

[2]니콰라과의 수도

[3]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주(州)에 있는 도시

[4]페루의 나병촌

[5]'돈키호테'가 타고 다니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