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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shuaLee]마르크스, 공산주의를 비판하다?

  • 등록일
    2012/08/15 18:43
  • 수정일
    2013/02/25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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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요즘 <경제학철학 초고>를 읽고 있다. 그리고 제3 초고 제2 장 사유재산과 공산주의를 펼쳤을 때 나는 '드디어 마르크스가 이상사회를 언급하겠구나'라는 기대를 하였다. 그런데 이게 왠일인가? 마르크스는 이 장에서 공산주의를 비판하고 있었다. 어리둥절해 끝까지 이 장을 읽은 나는 마르크스가 왜 공산주의를 비판했고 마르크스가 진정으로 원하는 역사의 운동이 무엇인지 알게되었다. 마르크스가 어떻게 공산주의를 비판했고 마르크스가 원하는 역사의 운동이 무엇인지 살펴보자.

 

 공산주의는 그 최초의 형태에서는 사유재산의 보편화와 그 완성에 지나지 않고, 그러기 때문에 이중의 형태로 나타난다. 우선, 물적 소유의 지배가 너무 크게 공산주의에 맞서 있기 때문에, 공산주의는 사유재산으로서 만인에 점유될 수 없는 모든 것을 부정하려고 한다.  공산주의는 폭력적 방법으로 재능 등을 무시하려고 하고, 육체적이고 직접적인 소유를 생활과 생존의 유일한 목적으로 여긴다. 노동자라는 규정은 지양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만인에게 확장된다.  (칼 마르크스 <경제학철학 초고>) 

 

 여기서 마르크스는 공산주의의 최초의 형태에서 사유재산이 공평하게 나누어지는 보편화가 일어나도 아직은 소유의 관념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최초의 공산주의는 모든 사람들에게 없는 것, 즉 개인적으로 소유할 수 밖에 없는 재능, 개성 등을 부정하고 이러한 것들을 폭력적인 방법으로 억누르려고 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 마르크스의 예언은 실제로도 역사의 과정을 무시하고 성급하게 공산주의체제를 수립한 소련, 동유럽, 이북 등의 구 공산권 국가에서 그대로 나타났다.

 

 

 또한 마르크스는 성적인 예시까지 들어가며 공산주의를 조롱했다.

 

 

 사유재산을 보편적인 사유재산으로 대치하려고 하는 이 운동은 마침내는 결혼을 여성의 공유로 대치하여 이에 따라 여성을 공동체의 공유재산으로 하는 동물적인 형태로 나타나기까지 한다. 여성공유라고 하는 이 사상이야말로, 극히 조야하고 몰사상적인 이 공산주의의 공공연한 비밀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여성이 결혼으로부터 벗어나 보편적인 매춘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부의 전체 세계, 즉 인간의 대상적 본질의 세계 전체가 사적 소유자와의 배타적인 결혼 관계에서 벗어나, 공동체와의 보편적인 매춘 관계로 들어간다. (중략)힘으로서 조직된 이런 보편적인 질투는 소유욕을 만들어 내는 숨은 형태 바로 그것이다, 다만 거기에서는 소유욕이 다른 방법으로 채워질 뿐이다.(중략)조야한 공산주의자란 최소한의 이런 상상된 질투와 평균화의 완성 밖에 되지 않는다.(칼 마르크스 <경제학철학 초고>) 

 

 

  앞에서 말했듯이 마르크스는 성적인 비유를 들며 공산주의를 조롱하고 있다. 마르크스의 예시에 의하면 공산주의자들은 결혼을 여성 공유로 대치하여 여자들을 공동체의 매춘부로 만들려고 하는 동물적인 생각을 하고 있다고 조롱하고 있다. 이처럼 마르크스는 공산주의자들은 남들이 무엇인가를 소유하고 있다는 질투, 욕심에서 나온 욕구를 사회적으로 해소하려는 것 뿐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마르크스가 원하는 역사운동은 무엇일까?

 

 

 분명히 공산주의는, 부정의 부정으로서의 긍정이며, 따라서 바로 가까이에 다가온 역사적 발전에 필연적인 인간의 해방과 회복의 현실적인 계기이다. 공산주의는 바로 가가이에 다가온 미래의 필연적인 형태이며, 활동적인 원리이기는 하다. 그러나 공산주의 그 자체는 인간적 발전의 목표는 아니다.(칼 마르크스 <경제학철학 초고>) 

 

 

 바로 그것이다. 마르크스에 있어서 공산주의는 자연스러운 역사적 발전운동의 한 과정일 뿐 인간적 발전의 목표의 최종점이 아니다. 흔히 우리는 마르크스를 이상가로 알고 있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이상가가 아니다. 그는 역사의 운동과 인류의 전진을 통찰한 예리한 학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