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시장 경쟁이 좋은 점

시장에서의 무한 경쟁이 일세를 풍미하고 있다. 일찍이 이건희의 "메기와 미꾸라지" 논리부터 최근의 입시제도에 이르기까지, 때로는 생활 가까이에서 때로는 거창한 이념으로 경쟁 논리는 숭배와 찬양의 대상이 된지 오래다.

 

흥미로운 것은 이런 경쟁 논리가 대단히 정서적이고 선동적이라는 점이다. 경쟁을 찬양하는 목소리는 압도적이지만, 왜 경쟁이 좋은지, 과연 더 나은 결과(그것이 어떤 결과든)를 낳는지에 대한 근거는 거의 없다. 어떤 분야든 경쟁이 무엇을 만들었다는 식의 일화와 예화, 성공담은 차고 넘친다. 예를 들어 국내에서의 치열한 경쟁이 양궁이나 쇼트트랙 강국을 만들었다는 식이다. 휴대폰과 반도체의 성공신화에도 이런 논리가 동원된다.

 

하지만 전체를 두고 보면 일반화의 근거는 박약하다. 국내의 치열한 경쟁으로 치면 쇼트트랙이나 양궁 못지 않게 축구, 야구, 테니스가 더 할텐데 이건 왜 국제 수준이 못되는지 답하지 못한다. 산업으로 쳐도 식당이나 옷가게의 경쟁이 얼마나 치열한가. 그러나 이런 분야가 경쟁 때문에 무엇을 이루었다는 소리는 듣지 못했다.  유감스럽게도 경쟁이 치열하다고 성공이 보장되는 것은 아닌 듯 싶다. 경쟁이 곧 성공이자 성취라는 논리는 필요하면 동원되는 제 논에 물대기식 주장일 뿐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근거가 확고하지 않은데도 경쟁 논리가 득세하는 이유는 사실 다른 곳에 있다. 다름 아니라 경쟁 논리가 자본주의 사회를 안정화시키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한다는 것이 경쟁이 찬양되는 진정한 이유이다. 경쟁은 필연적으로 패배자를 낳는다. 그러나 다른 패배(예를 들어 전쟁에서 패한 국가)와 달리 시장에서의 패배는 철저하게 개인의 책임이자 개인 능력의 결과로 해석된다. 

 

개인에게는 고통을 안기고 사회적으로는 불안의 원천이 될 수 있는 패배가 개인 하나하나의 책임으로 자리가 매겨지는 것이다. 시장경쟁에서의 패배는 개인의 책임과 무능력, 불성실로 해석되고 당사자에게는 내면화된다. 외부의 시각에다 그것을 내면화한 당사자가 문제제기를 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게다가 제 탓을 해야 하는 개인들은 다 흩어져 있다. 비유하자면, 전사자는 많이 생겼는데 곳곳에 흩어져서 서로 보이지도 않는다. 문제가 심각하고 경쟁이 격렬하더라도 누구도 문제제기를 하거나 판을 바꾸자거나 룰을 고치자고 하기 어렵다.  어떤 사회적 불안요인도 생기지 않고, 그래서 자본주의 질서는 흔들림이 없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