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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8/04/27
    이명박 정부의 무능력을 걱정함
    Justica
  2. 2008/04/24
    이 정부가 걱정이다
    Justica
  3. 2008/04/16
    정말 하고 싶은 것이 있는가
    Justica
  4. 2008/01/21
    상업화된 종교
    Justica
  5. 2008/01/15
    실용주의가 숨기고 있는 것
    Justica
  6. 2008/01/10
    권력욕보다 무서운 것
    Justica
  7. 2008/01/01
    새해에는 정권을 잡았다는 생각으로...
    Justica
  8. 2007/12/21
    나는 '진보'인가
    Justica
  9. 2007/12/17
    공부가 필요하다(2)
    Justica
  10. 2007/12/16
    공부가 필요하다
    Justica

이명박 정부의 무능력을 걱정함

예상보다 더 무능력하다. 회사, 그것도 건설회사 하듯이 나라를 운영하려고 하니 당연히 이런 결과가 나온다. 내가 그럴 줄 알았다는 '후견지명'의 소리에다, 무식하고 이기적인 국민들이 자초한 일이라는 소리까지 차고 넘친다. 조금 더 나가 다시 진보 혹은 개혁(?) 세력에 기회가 있을 것이라는 '흥분'도 있다.

 

그런데 그게 문제다. 진지하게 새로운 비젼을 구상하고 나누는 움직임은 너무 미약한 대신, 쉽게 과거로 되돌아가는 기미가 역력하다. 대안이 아니라, 조각조각 비판과 지적으로 반응하는 방식 말이다. 때로는 우울도 필요하건만, 쉽게 잊고 벌써 너무 발랄하다. 그러니 평가와 반성을 찾기 어렵고, 새로운 전망도 만들어질 틈이 없다. 

 

새로운 프레임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만들어진 프레임에 갇히면 미래는 없다. 나아가 대중이 수용할 수 있는 대안세력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한, 비주류적 취향을 가진 동호인 이상이 되기 어렵다. 다시 말하지만, 이명박의 실패가 곧 진보의 가능성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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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부가 걱정이다

이 정부가 하는 일이 갈수록 걱정스럽다. '규제 완화'와 '시장에 맡긴다' 이외에는 무엇을 하려는지 알 수가 없다. 그리고 나머지는 전형적인 공사판 스타일이다. 이게 터지면 이걸 막고 저게 문제면 저것을 지적하는 방식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것도 큰 그림을 봐 가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지엽말단을 붙들고 우왕좌앙이 다반사다.

 

'보수'라는 것이 본래 이렇다면 할 말은 없다. 그러나 결국 험한 꼴은 힘없는 사람들 차지다.  

 

문제의 핵심은 이명박에게 있다. 대통령제 하에서 이 책임은 불가피하다(이는 어떤 조직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장차관 이하 모든 관료가 대통령의 관심과 흥미를 따라갈 수밖에 없다. 그래서 대통령은 함부로 말해서 안되며 눈길 한번 주는 것에도 주의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현재 이명박은 본인이 전체 그림이 없는 데다가 배울 의지와 능력이 전혀 없는 것처럼 보인다("내가 너무 많이 알고 있어서 공무원들이 피곤할 것이다"라는 발언이 그 증거다).

 

게다가 개인적인 관심사와 흥미를 즉흥적으로 내뱉는 치명적인 결함을 갖고 있다. 전봇대, 톨게이트, 영어, 남북관계 등 모든 것이 그렇다. 관료들이 이 관심사를 쫓아 갈 수밖에 없는 한, 제대로 된 정책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사실, 해결책이 무엇인지는 막막하다. 기껏 행운을 빌고 있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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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하고 싶은 것이 있는가

요즘 생각을 지배하고 있는 물음이다. 정말 무엇을 하고 싶은가. 그리고 왜?

 

지식으로는 안다. 대부분의 희망과 의지가 결국 허무하다는 것을. 인생 전체를 관통하는 그 무엇이라도 결국은 죽음으로 귀결되지 않는가.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 정의, 역사 발전, 이웃에 대한 사랑... 이 모든 것들이 죽음을 맞으면 무로 돌아간다. 그렇다. 이 것이 삶의 유한함이다.   

 

그런데도 왜 사람은 움직이는가. 관성인가 아니면 본능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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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업화된 종교

민망하다. 그러나 어디 절뿐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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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용주의가 숨기고 있는 것

정파를 막론하고 실용이 대유행이다. 중국의 흑묘백묘론에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속담까지 참고문(?)도 많다.

 

그러나 실용의 가치는 명백한 범위 안에서만 존재한다. 이념과 방향이 먼저 있고, 이것을 이루는 데 실용이 쓰일 뿐이다. 하위개념이란 이야기다.

 

그레서 실용을 마치 가장 위에 있는 가치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은 무엇인가를 숨기고 있는 것이다. 무얼 숨겼냐고? 너무 뻔해서 답할 가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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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욕보다 무서운 것

흔히 권력욕, 명예욕, 재물욕이 무섭다고 한다. 종교에서는 오래 전부터 식욕, 수면욕, 성욕 같은 것이 극복(?)의 대상이었으나, 이건 본능에 가깝다는 점에서 논외로 하기로 하고... 그런데 권력, 명예, 재물에 대한 욕심을 뜯어보면 의외로 '인정'에 대한 욕구인 것을 발견할 수 있다. 한 마디로 "나를 인정해 달라"는 것이다. 나의 무엇을? 능력있다, 똑똑하다, 열심이다. 헌신적이다, 사람이 됐다... 등등 여러 가지이다. 예를 들어 무슨 일을 했는데 3만원을 받은 것과 10만원을 받은 것 사이에는 차이가 많다. 당장 그 돈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말할 것도 없지만, 꼭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도 이런 차이는 중요하다. 왜? 3만원과 10만원은 나를 어떻게 "인정"하느냐의 차이를 반영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10만원은 3만원에 비하여 남이 나를 더 인정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이 능력이든 재주든 헌신성이든 말이다. 상대성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이러한 인정은 의미이자 보람일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인정에 대한 욕구는 무섭다. 아예 노골적으로 권력이나 재물을 탐하는 것에 비하여 더 교묘하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인정에 대한 욕구가 칭찬의 대상이 될 만한 행동으로 나타나는 경우에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이거, 이제 내려 놓아야 한다. 훌훌... 지나치면 모든 것을 파괴한다. 스스로와 다른 사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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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에는 정권을 잡았다는 생각으로...

새해가 되었다. 그러나 새로운 결심을 하기에는 아직도 추스려야 할 것이 많다. 시간이 한참 걸릴지도 모르겠다. 무엇보다, 제대로 된 평가와 반성이 사회적으로 공유되는 데에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새해에는 정권을 잡았다는 생각으로 살아야 되겠다는 결심을 한다. 정권을 잡는다는 것은 곧 국가를 운영한다는 것을 뜻한다. 국가 운영의 핵심은 "매일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장기적인 비전이나 철학, 이념적 입장이 기초가 되지만, 국가 운영을 다른 어떤 행위에서 명확하게 구별 짓는 것은 매일 벌어지는 대중의 일상과 생활의 문제를 해결하고 관리한다는 데에 있다.

 

따라서 매일의 문제에 대한 파악, 해결책, 나아가 대안이 없으면 그건 부족하다. 국가 운영을 담당해 봐야, 시장에, 신자유주의에, 기존의 질서에 붙들릴 뿐이다. 그래서 새해에는 바로, 지금, 국가 운영을 담당한다는 생각으로 공부하고 궁리해 볼 작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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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진보'인가

진보란 무릇 무엇인가. 학술적 정의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진보인지, 다른 사람이 진보인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가 질문이다.

 

진보적인 가치가 옳다고 믿는다?

의견이나 말이 진보적이다?

친하거나 호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주로 진보적이라고 분류되는 사람이다?

읽는 신문이나 자주 드나드는 인터넷 사이트가 진보적이다?

투표를 통해 누구 혹은 어떤 집단(정당 포함)를 지지한다?

생활 속에서 진보적인 가치를 실천하려고 노력한다?

진보적인 단체나 조직에서 활동한다?

 

스스로 '진보적'이라고 믿고 있는 것 이외에, 오늘 내가 진보적이라는 다른 증거가 과연 있기는 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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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가 필요하다(2)

노무현 정권이 신자유주의에 투항했다고 하는 사람이 많다. 두말할 것도 없이 이를 대표하는 사건은 한미 FTA를 꼽을 수 있다. 왼쪽 깜박이로 우회전한다는 이야기도 비슷하다. 이런 평가에 대해 약간의 논란이야 있겠지만 동감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아주 객관적으로 보더라도 그리 틀린 소리는 아니리라. 

 

그러나 이게 끝이 아니라 보태서 물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왜?'라는 질문이다. 이런 질문에 본래 그가 그랬다든가, 참모들이 어땠다는가, 관료들에게 포섭되었다든가 하는 식으로 답하면 지나치게 안이하다. 어울리지 않게 개인 차원에서 사회변화를 해석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면 왜일까. 좀 더 탐구가 필요하지만, 나는 사회적으로 축적된 '공부'가 없었던 것이 이유라고 생각한다. 사회 또는 세력 차원에서 새로운 대안을 제시할 역량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의미이다. 기존의 패러다임(이 경우 신자유주의)을 넘지 못하면 거기에 굴복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여기에서 기존 패러다임을 극복한다는 것이 개인 차원에서 논하는 것이 아님은 물론이다. 그리고 총론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확실하다. 사회적으로, 집단적으로, 하나의 세력으로, 새로운 패러다임과 구체적 대안을 제시하고 이것이 받아들여져야 한다.

 

그래서 참으로 어려운 공부가 더 많이 필요하다. 그 공부가 성과를 내지 못하면, 어떤 정권에서도 새로운 사회를 여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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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가 필요하다

최근 10년을 무엇이라고 정의하든, 그 전 정권과 다른 것은 확실하다. 이제 또 다른 정권이 들어설 것으로 보인다. 역시 지난 10년과는 성격을 달리할 것이다. 그래서 냉정하게 지난 10년을 평가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 중에 우선 생각나는 중요한 것 하나... (이것은 새로운 앞날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지난 10년을 현실에서 볼라치면, 의도에 관계없이 새로운 사회에 대한 실천적 구상과 프로그램, 그리고 그것을 만들어 나갈 능력이 턱없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총론은 물론이고, 각론도 부실하긴 마찬가지다. 그 결과는 아이디어, 프로그램, 전략을 막론하고 기존 패러다임에 굴복하는 것 이외에는 없다. 이건 이념과 철학이 문제였다는 식의 판정과는 전혀 다른 문제이다.   

 

특히 기억해야 할 것. 이러한 능력은 개인의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축적된다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사회 전체의 많은 공부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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