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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박한 기부문화를 탓하지 말라. 회원의식이 없다거나 진성...가 없다고 말할 것도 아니다. 더더구나 이기적인 소시민 문화 때문에 무엇이 안된다고 비난하지 말아야 한다.
기부(넓은 의미에서)를 못하는 이유는 돈이 아까와서가 아니다. 그 돈이 어떻게 쓰일지 모르기 때문이다. 많고 적고를 떠나, 그게 제대로 쓰인다는 확신만 있다면 전혀 고민하지 않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당선이 유력한 대통령 후보가 도덕적 결함을 가지고 있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본인이 시인한 것만 하더라도 여러 가지이다. 다른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이분이 당선되면 도대체 자라는 애들에게, 삶을 배우는 학생들에게, 그리고 공직자가 되려는 사람에게 무엇을 요구할 수 있을까. 교육을 위한다면 위장전입도, 평범한 건물주인이 모두 다 한다는 절세(?)도, 실정법만 어기지 않으면 무엇이라고 할 것인가. "대통령도 그랬는데요 뭘"이라고 하면, "그래도 너는 달라야지"라고 할 수 있을까.
두렵다. 이제 정의와 사회윤리가 어떻게 될까. 어차피 돈과 성공만이 유일한 시대정신이고 그것을 후보가 대변하고 있다면 더 할 말이 없다.
토요일 한 자리에서 아주 유명한 명사(?) 한사람을 만났다. 두세시간 이야기를 듣고 난 후 결론은 아주 실망스럽다는 것이다. 인격적으로 성숙하지 못하다는 점이 첫째다. 아무 말을 하지 않아도 저절도 드러날 법 한 사람이 무엇이 급해 제 자랑에 침이 마를까. 두번째는 놀랍게도 생각의 깊이가 매우 얕다는 것. 사상과 철학을 한다는 이가.... 놀랍다. 이렇게 생각 깊은 이가 없는가. 내공이 깊은 사람을 보기가 어찌 이리 어렵단 말인가.
여러 가지 눈이 있을 수 있지만, 순수, 아름다움, ....등의 말보다는 장애의 아픔이 눈에 띈다. '삶의 의미'식으로 로 보는 것은 너무 상투적이고 안이하지 않을까...
다운증후군을 가진 사람이 다운증후군을 가진 사람을 연기한다는 역설... 연기를 할 수 있는 사람(사회적 기능이 문제가 없다는 이야기겠다!)이 그리는 환자의 모습은 누나가 힘들어 돌볼 수 없는 정도로 기능이 떨어져 있는 사람이다.
기억나는 대사...........
마지막 장면
"일곱째 날은 하느님이 쉬기 위하여 구름을 만들었고,
여덟째 날은 빠진 것이 없나 생각하다가 조지를 만들었더니 보기에 좋았더라."
또,
비행기는 타지 않으면 나는 것이 보인다. 매일 비행기를 타던 아리의 삶이 달라진 것을 표현한 것
* 참고
제목 : | 제8요일 (Le Huitieme Jour / The Eighth Day, 1996) |
감독 : | Jaco Van Dormael |
출연 : | 다니엘 오떼유, Pascal Duquenne, 미우-미우 ![]() |
기타 : | 1996-10-26 개봉 / 118분 |
줄거리 : |
|
무얼 기준으로 '지식인'을 정의하는지 모르지만, 주위에 이른바 '지식인'이라는 자들은 자기 밥벌이용 지식을 조금 더 가진 것 이외에 어떤 다른 특징도 찾을 수 없다.
지식을 전수하는 것을 업으로 하는 자들의 천박함은 더하다. 최소한의 의무도 다 하지 않으면서 권리를 찾고 섬김을 받으려는 태도는 극악하다. 밥벌이의 기본이 되는 지식도 보잘 것 없는 상태에서 군림하고 누리려는 자세는 실로 참기 어렵다.
최근 황교수 사건을 두고 언론에 대한 말들이 새삼 많다. 어느 한 두 사람의 잘못이라고 보지는 않지만, 얼른 생각해도 우리 나라 언론이 의제를 만드는 방식은 문제가 적지 않다.
시각을 중시하는 언론 매체는 "그림이 되어야 한다"는 말을 많이 한다. 텔레비젼이 대표적이다. 아무리 중요한 의제라도 화면에 비출 것이 없으면 뉴스 시간에 올라올 가능성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부정적인 내용 투성이지만 대규모 길거리 시위가 그나마 가끔 화면에 나타나는 것은 그 시각적 효과 떄문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여기에 영합하자는 유혹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이른바 "화면 만들기"용 운동이 대표적이다. 고상한(?) 말로는 퍼포먼스라고도 하는데, 알록달록한 행사를 한다든지 동상에 올라간다든지 하는 것이 그것이다. 9시 뉴스에 보도되어야 한다는 심정은 이해가 가지만, 볼 때마다 입맛이 쓰다.
한국 언론이 움직이는 또 다른 기초는 보도자료이다. 이야 잘 알려져 있기 때문에 새삼 말할 것도 없다. 여기서 말하고픈 것은 개인이 내는 보도자료 혹은 '자가발전'이다. 이런 자가발전을 식별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도저히 기자가 알 수 없을 것 같은 내용이 보도되는 때이다. 어디 '세계적' 인명사전에 실렸다든지, 무슨 학술지에 논문이 게재되었다든지, 정체불명의 상을 받았다는 것 등이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문제는 이런 것들이 개인 동정 난이 아니라 기사 모양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황교수는 이런 한국 언론의 속성을 적절히 활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언론을 이런 식으로 활용하는 것은 그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다. 결국 언론이 나아지는 것이 바른 길이나. 이런 현상들은 한국 언론의 구조적 문제점 - 전문성, 인력 부족, 이념적 편향 - 으로 볼 때 당분간 사라질 것 같지 않다. 그때마다 답답해 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그러나 한국 언론의 이런 상황에 타협 혹은 야합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다. 사람과 활동이 언론에 맞추고, 그 결과로 사람과 활동이 달라지는 일만큼은 없기 바란다.
얼마 전에 좌파라는 정당이 이상한 짓을 하기는 했지만, 일부 자칭 '좌파'들의 애국심(혹은 주의)은 좌파가 본래 지향하는 바와는 서로 어울리기 힘들다. 식민지배에 대한 '저항적 민족주의' 를 편드는 사람도 있으나, 이것도 사실 민족에 강조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식민지배의 부정의와 야만성을 반대하는 것이 본래의 내용일 것이다. 민족은 식민지배의 부정의와 야만이 구현되는 질료로서의 성격을 가지는 것으로 이해하여야 할 터.
황교수 사건에 대한 대중과 언론의 반응은 명맥히 애국심 혹은 애국주의와 연결되어 있다. 온 국민이 월드컵이나 올림픽의 성과에 열광하고, 외국에라도 나갈 짝 치면 삼성이나 현대자동차 또는 한류 '열풍'에 친근함과 익숙함을 넘어 '자랑스러워' 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정부나 언론도 어차피 이런 대중적 정서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으리라. 그러고 보면 문제를 개별화하는 것은 잘못 짚은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좌파'의 태도는 다른 생각거리이다. 양적으로 확인할 수는 없지만, 일부 자칭 '좌파' 혹은 '진보'가 보수와 같은 목소리를 내는 것은 틀림없어 보인다. 과연 이를 기묘한 동거상태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한국 일부 '좌파'의 민족주의적 성향 때문? 그도 아니면 혹자의 주장처럼 새로운 이념지형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인가.
그러나 나는 비교적 간단하게 생각한다. 애국심과 좌파 혹은 진보는 양립할 수 없다. 좌파를 넓게 정의할 수 있다고 이야기할 필요는 없다. 어떤 의미로 정의하더라도 좌파는 진보여야 하고, 그 진보는 어렵더라도 바람직한 방향으로 현재를 지양하려는 것이다. 여기에 애국이 낄 자리는 그리 넓어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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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저도저도! 특히 유명한 자타공인 지식인들 너무 챙피해요. 자기가 자기보고 지식인이래 우웩-_-부가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