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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선택의 합리성

대선이 끝났다. 꿈쩍도 하지 않았던 지지율 분포는 어떤 개인에 대한 호오를 넘어 이 시대에 대한 절망을 불러 일으킨다. 도대체 이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그러나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은 이 현상은 성찰의 기회이기도 하다.

 

아니나 다를까. 언론의 해석은 노무현 정권에 대한, 혹은 개혁 정부에 대한 응징투표라는 것이 대세이다. 그럴지 모른다. 그러나 과연 무엇을 응징하는 것인가. 실체는 명확하지 않다.  

 

무지막지해 보이는 즉자적인 대중의 선택이 보기에 따라서는 혹 가장 합리적이 아닐까?  사실 이런 일이 처음은 아니다. 유신헌법의 찬성률은 100%에 가까왔고 독재정권에 대한 평가는 절망적으로 후했다. 선거에서는 지연, 학연, 혈연과 같은 일차적인 연고가 강하게 작용했다는 평가도 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그러나 이런 현상들을 모두 몽매한 대중의 오도된 인식의 결과라고 치부하기에는 미심쩍다. 달리 선택의 다른 기준이 없는 이런 선택이 '합리적'인 것은 아닐까. 나에게 이득이 될 가능성(!)이 더 많다는 점에서 말이다.

 

도무지 아무 선택의 기준, 즉 우열을 가릴 수단이 없는 경우에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선택의 방법은? 애당초 이념, 정책, 실천력, 도덕성 그 무엇도 내 힘으로 판단할 수 없을 때, 아니 아예 그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별 관심이 없을 때 무엇이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가. 심지어 판단기준이 있는 경우라도 실제 그것을 적용해 검증할 기회가 없다면?

 

어줍잖지만, 이것을 주류 경제학 식으로 한번 생각해 보자. 선거를 시장에서의 거래라고 생각하고 후보를 선택하는 것이 물건(예를 들어 중고차)을 사는 것과 같은 행위라고 보잔 말이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후보에 대해 아는 것은 사려는 중고차에 대해 아는 것보다 많지 않다. 정보가 부족한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거의 유일한 방법은 선택 대상이 보내오는 신호(signal)를 판단의 근거로 삼는 방법이다. 예를 들어 물건인 경우 가격이나 브랜드가 신호가 될 수 있다. 비싸면 좋다고 생각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삼성 컴퓨터가 고장이 잘 안날 것이라고 기대하는 식이다. 중고차를 고를 때 현대 소나타, 기아 프라이드 하듯이 현대건설의 CEO, 서울시장 같은 브랜드를 보고 고르는 것을 비합리적 행위라고 할 수 있을까. 모든 정보를 수집하고 판단하기 위해서는 비용(시간, 노력 등)이 들기 때문에, 이런 방식의 판단이 비용을 줄이기 위한 가장 합리적, 효율적인 방법이 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축적된 사회적, 정치적 신뢰는 선거에서 아주 중요한 신호가 될 수 있다. OO당에 있는 사람들은 그래도 괜찮아. 그동안 해온 꼴로 보면 그래도 OO당이 좀 낫겠지. 본래 그 놈들이 그렇지 뭐, 그래도 이런 공약은 믿음이 가....이런 종류들이다.

 

우리는, 그리고 그들은, 그동안 무슨 신호를 보내고 있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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