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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청과 해킹이 불가능한 암호를 알려줄까? [제 751 호/2008-04-28]

최근 국내 인터넷 전자상거래 매출 상위 업체인 옥션에서 해킹 사건으로 1000만 명 이상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등 개인정보가 유출된 것으로 밝혀졌다. 인터넷 사이트는 정보보호를 위해 다양한 보안장치와 암호 기술을 적용하고 있다. 그런데도 정보 유출은 끊이지 않고 있다. 이런 대규모 정보 유출 말고도 개인적인 암호 노출, 도청 등의 사건도 계속 발생하고 있다. 도청과 해킹이 난무하는 상황에서 정보를 안전하게 지킬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은 없을까.

사실 사용에 여러 가지 제약이 있긴 하지만 절대 안전한 암호방식은 이미 20세기 초에 만들어졌다. 바로 일회용 난수표다. 보내고자 하는 메시지를 수열로 바꾼 후, 여기에 아무런 규칙이 없는 난수로 된 수열을 더하면 그 결과도 아무런 규칙이 없는 수열이 된다. 이렇게 만든 암호문은 똑같은 난수열을 가진 사람만이 해독할 수 있다. 난수표를 두 번 이상 사용하면 이것 자체가 새 규칙이 돼, 이 규칙으로 암호를 풀 수 있어 한 번만 사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그러다 보니 계속 통신하려면 일회용 난수표를 끊임없이 새로 만들어 통신당사자끼리 나눠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유출될 위험이 매우 커 한계가 있다.

1970년대 이런 번거로움을 덜 수 있는 공개키 암호방식을 수학자들이 개발했다. 비밀메시지를 받기 원하는 사람은 자신의 공개키를 누구나 볼 수 있게 공개하고 나서, 메시지를 암호로 전환한다. 이 암호는 비밀키를 가진 사람만이 풀 수 있다. 자물쇠와 열쇠의 관계에 있는 공개키와 비밀키의 필수조건은 공개키로부터 비밀키를 알아내기가 매우 어려워야 한다는 것이다. 이 필수조건을 이상적으로 만족하는 소인수분해 문제를 이용해 만든 RSA라는 공개키 암호 방식은 현재 인터넷을 비롯해 가장 널리 쓰인다. 1과 그 자신 이외에는 다른 약수가 없는 소수 두 개를 곱하기는 매우 쉽지만, 그 곱을 원래의 소수로 분해하는 것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251 곱하기 479는 금방 계산할 수 있지만 120,229가 어떤 수의 곱인지는 알려면 시간이 꽤 걸린다. 소수의 자릿수를 100자리 이상으로 늘리면 현재의 슈퍼컴퓨터로도 수백 년 이상이 걸려야 어떤 수의 곱인지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방법은 새로운 알고리듬이나 컴퓨터가 등장하면 통하지 않을 수 있는 한계가 있다. 그런데 이런 우려가 현실로 나타났다. 1990년대 중반 양자컴퓨터로 소인수분해 문제를 순식간에 풀릴 수 있다는 것이 알려진 것이다.

그러나 이보다 앞선 1984년 IBM의 베넷과 몬트리올대의 브라사드가 양자물리학을 이용해 해킹과 도청으로부터 안전한 양자암호체계를 발명했다. 아직 실용화까지는 멀었지만, 국내에서도 고등과학원과 한국전자통신연구원이 공동연구로 2005년 양자암호시스템을 시연했다.

양자암호는 앞서 소개한 절대 보안의 일회용 난수표 방식이 가진 단점을 양자물리학으로 완벽하게 보완한 것이다. 일회용 난수표는 아무런 규칙이 없는 수열이므로 양자컴퓨터뿐만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도 풀 수 없지만, 통신당사자들이 나눠 가지는 과정이 문제였다. 일회용 난수표를 ‘양자물리학의 원리로’ 안전하게 나눠 가질 수 있도록 한 것이 양자암호다.

디지털 정보가 0과 1의 비트로 된 수열로 표현되는 데에 비해, 양자정보는 0과 1뿐만 아니라 0과 1이 중첩된 양자비트 또는 큐비트로 나타낸다. 빛은 진행방향에 수직한 평면에서 전기장이 진동하는데 이를 편광이라고 한다. 편광은 평면 내의 두 방향으로 진동할 수 있어 이를 이용해 0과 1을 나타낼 수 있다. ‘ㄱ’자의 첫획처럼 수평방향을 0, 둘째 획처럼 수직방향을 1이라 할 수도 있고, ‘ㅅ’자의 첫획처럼 45도 방향을 0, 둘째 획처럼 135도 방향을 1이라 할 수도 있다.

철수가 기역방식으로 1을 보내려면 수직편광을 보내면 되는데, 영희가 받을 때에 같은 기역방식으로 받으면 100% 1로 읽히지만, 다른 방식인 시옷방식으로 받으면 수직편광이 45도 또는 135도로 읽혀 0인지 1인지 애매해진다. 즉 보낸 편광방식과 받는 방식이 같으면 보내고 받은 비트정보가 일치하지만, 편광방식이 다르면 비트정보가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 통신당사자인 철수와 영희가 보내고 받는 편광방식을 기역 또는 시옷 두 가지 방식으로 바꿔가면서 0과 1을 보내고 받고서, 0인지 1인지는 서로 밝히지 않고 보내고 받은 편광방식만 비교한다. 같은 방식이면 당연히 같은 비트를 보내고 받은 셈이니 이것들만 모아서 난수표를 만들면 철수는 영희만 알 수 있는 암호를 계속 보낼 수 있다.

그럼 양자암호는 어떻게 해서 도청이 되지 않을까. 보통 광통신에서는 한 비트를 보내려면 광자(빛 알갱이)를 적어도 20개 이상에서 최대 수천수만 개씩 보낸다. 그러나 이렇게 많은 광자를 보내면 도청자가 그중에서 몇 개를 가져가 읽음으로써 도청이 가능해진다. 따라서 양자암호에서는 도청 여부가 발각될 수 있도록 광자의 개수를 조절한다. 예를 들어 광자 하나에 양자비트를 실어 보내면 도청자가 이 광자 하나를 가져가 버리면 수신자에게 전달될 광자가 아예 없어지므로 도청이 쓸모없어지거나 도청 여부를 들키게 된다.

또 다른 방법으로 도청자가 통신채널로 지나가는 양자비트를 복사하는 도청이 가능할까. 디지털정보와는 달리 임의의 양자정보를 복사하는 것은 불가능함이 증명됐다. 간단하게 말하면 양자정보를 복사할 수 있다면 빛보다 빠른 통신이 가능하게 돼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과 모순되고, 양자상태를 정확히 알 수 있어 양자물리학 자체에도 큰 모순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럼 지나가는 양자정보를 꺼내 읽어보고 다시 통신채널로 보내면 되지 않을까. 양자상태는 한번 읽으면 그 상태가 변할 수 있다. 수평편광을 기역방식으로 읽으면 0으로 읽히고 여전히 수평편광으로 남아있지만, 시옷방식으로 읽으면 0으로 읽히고 45도 편광으로 변하든지 1로 읽히고 135도 편광으로 변한다. 이처럼 정상적인 통신당사자는 통신채널에서 편광방식이 바뀌는지를 살펴봄으로써 도청 여부를 알 수 있다.

20세기의 디지털정보가 하드웨어로는 양자물리학, 소프트웨어나 운영체제로는 고전적인 정보이론을 사용한 반면, 21세기의 양자정보는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운영체제 모두 양자물리학을 바탕으로 할 것이다.
(글 : 김재완 고등과학원 계산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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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10,000 BC의 오류를 알려주마 [제 750 호/2008-04-25]

때는 기원전 1만 년의 어느 날, 북아메리카의 어느 평원에 매머드 한 마리가 육중한 몸을 이끌고 느릿느릿 걷고 있다. 매머드는 현재의 코끼리와 여러 면에서 비슷한 동물로 나뭇잎을 뜯어먹거나 식물의 연한 어린 가지를 뜯어 먹는다. 하지만, 키가 3미터가량으로 코끼리보다 크며, 코끼리 상아와 다르게 고리모양으로 휘는 상아를 갖고 있으며, 온몸이 두터운 털로 덮여 있다.

빙하기가 막 끝난 무렵이라 몸을 덮은 털을 거추장스럽게 여기며 걷던 매머드가 주변을 살피기 시작한다. 호기심이 넘치는 매머드가 울긋불긋한 꽃 몇 송이를 발견하고는 다가가 파릇한 이파리들을 왕창 뜯어 입에 넣는다.

이때 수풀 너머에서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매머드는 몸을 움찔한다. 스밀로돈이 분명하다. 키는 자신의 절반도 안되지만 스밀로돈은 높이 솟아올랐다가 상대의 목에 20cm가량 길게 튀어나온 송곳니를 꽂아넣는 위협적인 공격력을 갖고 있다. 오늘날 ‘검치호'라고 불리는 동물이다. 하지만, 무리와 함께 있을 때는 별 위협이 되지 않는다. 아무리 스밀로돈이라도 땅을 울리는 매머드 무리를 만나면 일단 피하기 때문이다.

혼자인데도 이 매머드는 스밀로돈의 소리가 왠지 이상하다는 생각에 호기심을 뿌리치지 못하고 수풀을 헤치며 나간다. 그리고 발을 멈춘다. 눈앞에 놓인 커다란 구덩이에 스밀로돈 한 마리가 빙글빙글 돌고 있다. 스밀로돈은 그림자를 보더니 걸음을 멈추고 말을 건다.

“누구냐? 나 좀 꺼내줘~!”
매머드는 아직도 입 안에 잔뜩 남은 꽃잎을 질겅질겅 씹으며 긴 코를 말아 올려 콧잔등을 긁는다. 그리고 웃으며 말을 건다.

“어쩌다가 그렇게 된 거야?”
“고깃덩어리가 있기에 웬 떡이냐 싶어 달려들었는데 갑자기 땅이 꺼지더라고. 너무 높아서 기어오를 수도 없어. 이봐, 매머드. 나 좀 도와주지? 만약 꺼내주면 앞으로 넌 내가 보호해줄게.”
매머드가 순진하게도 뒷일을 생각지 않고 어떻게 구해줄 수 있을지 주변을 살핀다. ‘나무기둥을 넣어주면 타고 올라올 수 있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한 매머드는 쓰러져 있는 나무기둥 근처로 간다.

이때 누가 불쑥 나타난다. 길게 튀어나온 부리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부리의 주인은 포루스라코스다. ‘공포새’라고 불리는 녀석이다. 가장 큰 포루스라코스는 키가 3미터 정도로 매머드와 맞먹을 정도다. 비록 날지는 못하지만, 새처럼 날개가 있다. 언뜻 보면 타조랑 비슷하지만, 훨씬 크고 빠르다. 특히 무척 긴 다리로 시속 60km 이상의 속력으로 사냥한다. 육식을 하는 이 새는 사람도 잡아먹어 식인새로도 불린다. 이 지역에 사는 대부분의 초식동물에 스밀로돈과 포루스라코스는 공포의 대상이다. 포루스라코스는 교활한 눈으로 곤경에 처한 스밀로돈을 비웃더니 매머드에게 말한다.

“절대 구해주지 마. 저기서 나오자마자 널 잡아먹을걸?”
스밀로돈은 아무 대꾸도 하지 않으며 눈길을 피한다.

“사람이 만든 함정에 걸린 거야. 털도 없고, 달리기도 느리고, 힘도 약한 사람. 하지만, 그 녀석들은 머리가 좋아. ‘함정'이라고 들어봤어? 사람이 구덩이를 파고 그 위에 나뭇가지를 덮은 다음 미끼를 놓은 거야. 저 스밀로돈은 바보같이 거기에 달려든 거고. 아마 조금만 더 있으면 사람들이……”
매머드와 포루스라코스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몸을 쭉 펴며 고개를 높이 든다. 사람들의 기척이 들린다. 사람들이 저 멀리서 몸에 짐승의 가죽을 걸치고, 손에 무기를 들고 이쪽으로 오고 있다. 일부는 말을 타고 오고 있다.

“……창으로 널 찌르고, 손발을 묶어서 데려갈 거야. 난 멀리서 본 적이 있어. 저녁이 되면 불을 피우고 낮에 잡아온 동물들을 구워먹고, 너희를 가축으로 길러 피라미드를 만들 거야. 돛단배로 바다 동물도 잡아먹더라고. 큰 이빨도 없고 날카로운 부리도 없고 덩치도 작지만, 어쩌면 사람이 제일 무서운 존재일지도 몰라.
포루스라코스는 말을 끝내더니 장난기 어린 눈을 하며 멍하니 있던 매머드를 한쪽 발로 툭 찬다.

“뭐해? 여기 있다가, 너도 저 아래 있는 바보 스밀로돈이랑 똑같은 꼴이 될 거야, 얼른 도망쳐!”
매머드는 포루스라코스의 말이 옳다고 생각하며 허둥지둥 몸을 돌린다. 포루스라코스는 긴 다리로 성큼성큼 뛰며 달아나다가 땅 위에서 잽싸게 움직이던 쥐 모양의 작은 동물 하나를 부리로 물고는 바람에 날리는 안개처럼 사라진다. 매머드는 얼마 전 사람에게 잡혀갔던 친구 하나를 떠올리며 전속력으로 달리기 시작한다. 다행히 사람들은 달리는 매머드보다 이미 사로잡힌 스밀로돈에 더 관심이 많다.

*****

앞에 제시한 내용은 최근 개봉한 ‘10,000 BC’ 영화에 등장하는 동물을 중심으로 영화 내용을 조금씩 넣어 재구성한 것이다. 동물이 말을 한다는 점은 잠시 제쳐놓더라도 앞 내용, 즉 영화에는 몇 가지 사실과 다른 오류가 있다.

영화에서 사람이 매머드로 돌을 나르게 하는 등 가축처럼 이용하는데 사실이 아니다. 사람은 기원전 1만 년에 비로소 정착하며 개와 같은 동물을 기르기 시작했는데, 매머드는 덩치가 너무 커 사람이 가축으로 기르기 불가능했을 것이다. 말 역시 5000~6000년 전에야 가축이 된 것이라서 이때 말을 타는 장면이 나오는 것도 사실과 다르다. 더욱이 피라미드와 돛단배가 나오는데, 피라미드는 약 5000년 전에야 세워졌고, 돛단배는 약 4000년 전에 만들어졌다. 이들 장면은 사실과 다르지만, 영화감독이 영웅의 이미지를 강하게 심어주려고 넣었다고 한다.

또한, 과학자들은 영화에서 식인새로 묘사된 포루스라코스가 실제 사람을 잡아먹지는 못했고, 오히려 사람의 공격을 받았을 것으로 예상한다. 특히 매머드와 포루스라코스를 같은 지역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 이들과 스밀로돈의 생존 시기는 겹치지만, 화석과 다른 증거를 볼 때 거주지역에 차이가 있다. 매머드는 유럽, 아시아, 북아메리카에 걸쳐 있었지만, 남아메리카에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포루스라코스는 남아메리카에만 존재했기 때문에 이 둘이 마주쳤을 확률은 거의 없다.

기원전 1만 년에 매머드 외에도 다양한 초식 동물이 있었다. 사슴과 비슷하게 생겼지만, 뿔의 길이가 3m에 달했던 초식동물 메갈로케로스, 아르마딜로와 비슷하게 생긴 도에디쿠루스는 꼬리에 여러 개의 뿔이 삐죽삐죽 달려 이를 무기로 사용했다. 또 나무늘보와 친척 관계이지만 몸무게가 4톤이 넘는 메가테리움도 있었다.

기원전 1만 년에 먹이 사슬의 최우위를 점하던 각종 육식동물과 반대 위치에서 살았던 초식동물을 왜 지금은 볼 수 없는지, 이들이 어떻게 멸종됐는지는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았다. 사람의 사냥 때문에 멸종했다는 설도 있지만, 신빙성이 약하다. 아마도 기후의 변화와 이에 따른 생태 환경의 이동 때문에 멸종했을 것이다. 반면 사람은 다양한 환경 변화에 적응하며 살아남았고, 도구를 사용해 오늘날 생태 피라미드의 가장 높은 곳을 차지하고 있다.
(글 : 김창규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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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도 제대로 세야 잠 온다 [제 749 호/2008-04-23]

사람의 뇌에는 일종의 전기신호인 뇌파가 나온다. 뇌에 있는 수백억 개의 신경세포들은 주변의 다른 신경세포와 상호작용하며 정보를 전달하는데, 이 때 전기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두피에 전극을 꽂고 전기 변화를 측정하면 전기의 변화가 파동처럼 표시되는데 이것이 뇌파다.

1924년 독일 정신과의사인 베르거가 자신의 아들을 대상으로 처음 인간의 뇌파를 기록한 뒤 뇌파 연구는 다양하게 발전돼왔다. 뇌의 활동 정도에 따라 뇌파의 모양도 다르게 나타났다. 뇌가 활발하게 활동할수록 뇌파의 진동수는 높아지고, 편할수록 진동수는 낮아진다.

30~50Hz로 가장 높은 진동수를 가진 감마파는 극도로 긴장한 상태이거나 매우 복잡한 정신 기능을 수행할 때 나타난다. 베타파는 깨어있으면서 약간의 스트레스를 받으며 일상적인 사고를 할 때 나타나는 뇌파로 15~30Hz의 진동수를 가진다. 8~12Hz의 진동수를 가지는 알파파는 주로 명상을 할 때 나타나는 뇌파다. 의식과 잠재의식을 연결하는 다리와 같은 역할을 한다고 알려져 있다.

최근에는 베타파와 알파파 사이에 SMR파라는 새로운 형태의 파가 발견됐다. 이는 문제를 간단히 해결할 때 나타나는 뇌파다. 베타파만큼 긴장과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면서도 일을 실수없이 처리할 때 나타난다. 예를 들어 전혀 생소한 일을 처음 시작할 때는 감마파가 나타나지만, 조금 익숙해지면 베타파가 나타나고, 완전히 익숙해지면 SMR파로 바뀌는 것이다.

알파파보다 더 진동수가 낮은 뇌파는 수면과 관계 있다. 4~8Hz의 세타파는 얕은 수면 상태에서 나타난다. 졸음이 쏟아지거나 잠이 막 들려고 할 때다. 또 세타파는 즐거운 때나 감정이 풍부하게 나타날 때에도 나타난다. 깊은 수면으로 들어가면 뇌파는 더욱 느려져 0.5~4Hz의 델타파가 나타난다. 뇌 부위 중에서 생명과 직접 관계된 연수, 중뇌에서 주로 발생한다. 델타파는 뇌파 중에서 진폭이 가장 크고 침투력이 강해 뇌 전체를 지배한다.

뇌파에 대해 이해한 과학자들은 이를 치료에 도입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예가 ‘뉴로피드백’이다. 뉴로피드백이란 뇌파를 적절히 조절하도록 훈련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상황에서 지나치게 흥분하거나 충동적인 사람의 경우 뇌파를 보면서 본인 스스로 정상적인 뇌파가 되도록 반복 훈련하는 것이다. 뇌파를 뇌의 컨디션을 보여주는 지표로 인식해 뇌파를 보면서 흥분을 가라앉히는 식으로 훈련하는 것이다.

이를 이용해 불면증 환자를 치료하기도 한다. 불면증 환자는 빠른 뇌파인 베타파의 비율이 높고, 느린 뇌파인 세타파의 비율이 낮다. 환자에게 자신의 뇌파를 보여주면서 스스로 베타파가 늘어나는 요령을 알려주고 반복하게 하면 환자가 잠을 잘 수 있다. 그런데 베타파를 늘어나게 하는 요령이 뭘까? 바로 반복해서 특정 이미지를 떠올리는 것이다. 베타파를 늘리는 요령에 따르면 ‘잠이 오지 않을 때 양을 세라’는 옛말이 나름 적절했던 셈이다.

하지만 양의 숫자를 ‘하나, 둘, 셋…’ 식으로 세며 숫자에 집중하는 것은 오히려 수면에 방해가 된다고 한다. 숫자가 아니라 양의 이미지에 집중해야 한다. 최근에는 잠자고 있는 사람의 뇌를 자극해 델타파의 비율을 높이는 방법으로 깊은 잠을 유도하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뉴로피드백과는 반대로 뇌파를 명령 수단으로 이용하는 연구도 있다. 미국 이모티브사가 개발한 헤드셋 ‘에폭’(Epoc)은 뇌파를 인식해 게임 속 캐릭터를 움직인다. 에폭에는 16개의 센서가 달려 뇌에서 나오는 다양한 뇌파를 읽고 게임 속 명령으로 바꾼다. 헤드셋을 착용한 사용자가 손을 들면 게임 속 캐릭터도 손을 든다. 더구나 웃거나 화내면 게임 속 캐릭터도 웃고 화낸다. 현재 약 30가지의 감정을 읽어 표현할 수 있다고 한다. 네덜란드의 한 신경학자도 최근 뇌파로 즐기는 탁구게임을 개발했다. 손이나 발과 같은 몸을 거의 쓰지 않고 생각만으로 즐길 수 있는 ‘감성 지능형’ 게임의 세계를 연 셈이다.

이런 장비는 단순한 게임에 그치지 않는다. 사지를 움직일 수 없는 중증 장애인들에게 뇌파만으로 컴퓨터를 조작할 수 있다는 사실은 커다란 희망이다. 생각하기만 하면 마우스를 움직이거나 자판을 입력해 의사를 표현하고 감정을 나타낼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이것이 더 발달하면 생각을 그대로 저장하고 기록할 수 있어 우리의 생활도 훨씬 편해질 수 있을 것이다. 뇌파에 대해 많이 알면 알수록 그 혜택은 더 많은 사람에게 돌아가는 셈이다. (글 : 김정훈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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