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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레이야 비켜라! T-레이가 나간다!! [제 755 호/2008-05-05]

X-레이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 있을까?
X-레이는 병원에서 골절 여부를 알아내는 촬영뿐만 아니라 공업용으로 재료나 제품의 비파괴검사를 할 때도 쓰인다. 고미술품이나 그림의 진품 여부를 감정하기도 하고, X-레이의 강한 에너지를 이용해 인체 내부에 있는 염증이나 종양 등을 치료하기도 한다. 특히 공항 보안 검색대에서 X-레이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인데 그 이유는 마약이나 총기류 등 불법 소지물을 감시하는데 쉽고 빠르게 조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X-레이는 현재 우리네 삶속에서 빼 놓을 수 없는 기술이 되었다.

1895년 독일의 물리학자 뢴트겐이 처음 발견한 이래, X-레이는 우리 생활 속으로 깊숙이 들어왔다. 보통 진공 방전관 내에서 높은 전압으로 가속한 전자를 타깃(target: 표적)이라는 금속판에 충돌시키면 0.01nm~10nm 사이의 전자기파(X-레이)가 발생한다. 이렇게 발생된 X-레이는 투과력이 높아서 다양한 용도로 활용되지만 과다하게 사용할 경우 위험할 수 있다.

X-레이의 주파수는 100만조(10의 18승) Hz 안팎. 에너지가 워낙 커 X-레이 피폭량이 어느 한계를 넘으면 생체 세포에 변화가 생겨 피부암을 초래하거나 유전적 기형을 유발하기도 한다. 이런 특성은 푸른곰팡이의 품질개량에 이용되는 장점도 있지만, 사람에게는 치명적인 위험이 된다는 단점도 있다. 공항 검색대에서 승객의 소지품에 X-레이을 쫴는 반면, 승객에게는 X-레이를 직접 조사하지 않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렇다면 보다 안전하면서도 X-레이를 대체할만한 것은 없을까?

X-레이의 대안으로 강력하게 떠오르는 것이 테라헤르츠 카메라(Tera Hertz camera)다.
줄여서 T-레이(T-ray)라고도 부르기도 하는데, 일반적으로 T-레이는 적외선과 전자기 스펙트럼의 극초단파 사이에 있는 0.5-4.0 테라헤르츠(THz: 10의 12 승 Hz)의 전자기파를 사용한다. 여기서 ‘테라’는 1조를 뜻하는 그리스어이고, 테라헤르츠파의 주파수는 1,000억∼10조 헤르츠(Hz)다. 즉 1초에 적어도 1,000억 번 이상 진동한다는 의미다.

T-레이는 종이, 나무, 플라스틱, 심지어 시멘트까지 웬만한 물체들은 대부분 투과하지만 물과 금속은 통과하지 못하는 독특한 성질이 있다. 무엇보다 T-레이 에너지는 X-레이의 100만분의 1정도에 불과해서 옷 속에 숨긴 흉기나 폭발물을 찾기 위해 승객에게 쪼여도 부작용이 거의 없다. 최근 영국 런던을 위시한 주요 도시의 공항 등에서 불법 소지물을 감시하는 T-레이 카메라가 등장한 것도 안전성이 높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물질이 테라헤르츠파의 주파수 내에서 특정 영역을 흡수하기 때문에 T-레이는 X-레이로 판별해 내기 어려운 가루 형태의 폭발물이나 마약, 플라스틱 흉기 등도 분별해 낸다. 뿐만 아니라 조직이 치밀하지 않은 암세포에는 쉽게 침투하고 정상 조직에는 잘 침투하지 못하는 T-레이의 특성을 이용해 피부암이나 유방암처럼 주로 피부 바로 아래에 생기는 암을 손쉽게 진단할 수 있다. T-레이 연구의 권위자인 이탈리아 로마 토르 베르가타 대학(Tor Vergata Universita)의 알도 디 카를로(Aldo D Carlo) 교수는 T-레이가 X-레이 영역의 상당부분을 대체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실제로 우주연구와 생물학, 현미경 등에도 T-레이 활용이 진행되고 있다.

선명한 영상을 얻기 위해서는 광원을 안정적으로 확보해야 하는데, X-레이에 비하면 기술의 수준이 걸음마 단계에 있다. 물론 지금까지 자유전자레이저(Free Electron Laser) 또는 방사광가속기(synchrotron radiation)의 전자빔을 이용하는 기술을 비롯해 극초단 레이저나 비선형물질을 이용하는 기술 등이 개발된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이 기술들은 실험단계에 머문 상태라서 상용화하기에는 아직 부족한 점이 많다.

현재 T-레이의 잠재력에 주목한 미국, EU 그리고 일본 등의 과학자들은 T-레이의 공급원을 확대하기 위한 ‘진공 테라헤르츠 증폭기(VTA)’ 개발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여기에는 일본 쓰쿠바 대학(the University of Tsukuba)에서 만든 고온 초전도체 기술, 마이크로머쉬닝 및 나노테크놀러지와 같은 신기술들이 활용되고 있다.
일리노이주 아르곤 국립 연구소(Argonne National Laboratory)에서는 배터리로 작동하는 소형 장치를 통해 T-레이를 만드는 데 성공했고, 영국에서는 이미 소형 T-레이 카메라가 시판되고 있다.

인체에 해가 없는 T-레이 기술이 진보되는 만큼 X-레이가 없는 세상이 생각보다 일찍 올지도 모를 일이다.
(글 : 유상연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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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에 새겨진 사랑은 움직일까? [제 753 호/2008-05-02]

  • 분류
  • 등록일
    2008/05/03 00:14
  • 수정일
    2008/05/03 00:14
  • 글쓴이
    강 아래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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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나전 씨는 소중 씨와의 만남 1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특별한 이벤트를 준비했다. 두 사람이 처음 데이트를 즐겼던 약속 장소에 두 사람의 사랑을 증거로 남기고 싶었던 것이다. 이를 위해 나전 씨는 두 사람이 앉아 담소를 나눴던 공원에 미리 나와서 커다란 나무줄기에 ‘나전♡소중’이란 글자를 써놓았다. 이때 소중 씨가 도착했다.

“나전 씨, 매번 늦어서 미안해요.”
“괜찮아요. 오늘 같은 날에 소중 씨를 미워해선 안 되죠.”
“아~. 1년 전에 우리가 이 자리에서 처음 만났죠?”
“맞아요. 그래서 제가 깜짝 이벤트를 준비했어요.”
“뭘까 무척 궁금해요!”

나전 씨는 그녀의 등 뒤로 돌아가서 두 눈을 가렸다. 그리고 벤치에서 일으켜 나무 옆에 다가섰다. 소중 씨가 놀라 기뻐할 모습이 눈에 선했다. 드디어 나전 씨의 두 손이 떼어지면서 나무에 선명하게 새겨진 하트와 두 사람의 이름이 보였다.

“어머? 이게 뭐람. 유치하게…”
“마음속으로는 좋으면서… 내숭떨지 마세요.”
“흠. 나무는 해마다 쑥쑥 자라니까 하트에 담긴 우리의 사랑도 움직이겠죠?”
“우리의 사랑이 움직일까봐 걱정하는 거예요?”
“네.”

“다행히도 우리의 사랑은 절대 움직이지 않아요. 다만 하트의 면적이 넓어진답니다. 우리 사랑의 크기만큼. 헤헤”
“정말요?”
“나무가 자라는 원리를 알면 이해가 쉬워요. 껍질 바로 안쪽에 형성층이란 곳이 있는데, 이곳에서 세포분열이 일어나야 나무가 커질 수 있어요.”
“그러면 나이테는 어떻게 생기는 거죠?”
“나무는 봄과 여름에만 자라고 늦여름부터는 겨울을 대비해 성장을 멈춰요. 그런데 봄에 만드는 세포는 성장이 왕성해서 크기가 크고 세포벽에 양분이 쌓이지 않아 밝게 보이죠. 반면 여름에 자라는 세포는 나무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데 양분을 분배하기 때문에 세포의 크기가 작고 세포벽 내부에 다양한 화합물이 축적되죠. 그래서 어둡게 보인답니다. 이렇게 밝은 부분과 어두운 부분이 겹겹이 쌓이면 그게 나이테죠.”
“그렇군요, 나이테는 봄·여름과 가을·겨울에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봄과 여름에 만들어지는 거였네요. 그래도 나무에 ‘새겨진 사랑’이 움직이지 않는 이유는 아직 이해 못 했어요.”

나무의 세포는 크게 원형이나 다각형으로 생긴 세포와 이쑤시개처럼 기다란 세포, 두 가지가 있어요. 원형이나 다각형 모양으로 생긴 세포는 옆으로 크는 세포에요.”
“나전 씨의 튀어나온 배처럼요?”
“크크. 맞아요. 원의 지름이 커질수록 둘레 길이는 2파이(π)배만 커지는 데, 형성층 안쪽과 바깥쪽에 똑같은 개수로 세포가 생겨나면 빈 구멍이 생겨나겠죠? 그래서 보통의 나무는 형성층 안쪽에 4개의 세포를 만들면 바깥쪽에는 2개 정도의 세포를 만들어요. 나무마다 형성층 안쪽과 바깥쪽에 만드는 세포의 비율이 다르기 때문에 나무껍질의 모양도 다르죠.”
“그럼 형성층 안쪽은 세포가 꽉 들어차도 바깥쪽은 빈 곳이 생겨나니까 임신한 엄마의 튼 뱃살처럼 갈라질 수 있겠네요?”
“오! 놀라운 추리력이에요. 목재를 건조할 때 가장 잘 갈라지는 곳이 지름방향인 것도 이 때문이죠. 차력사들이 제아무리 힘이 좋다고 해도 모두 나무 기둥에 평행하게 내리치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입니다.”

“그럼 이쑤시개 같은 세포는요?”
“이쑤시개처럼 기다란 세포는 나무가 위로 자라게 만드는 세포에요. 일종의 빨대처럼 위로 쭉쭉 자라나게 만드는 세포인데 위로 뾰족한 부분을 맞대면서 자라나죠. 그러니까 1층부터 집을 지어서 위로 층을 쌓아 올려 가듯이 자라난다고 이해하면 쉬울 거에요.”

“그럼 한번 새겨진 우리의 사랑은 전혀 변하지 않는 거예요?”
“아까 나무도 배가 나온다고 했잖아요? 그럼 당연히 옆으로 기다랗게 변하겠죠? 그래서 하트의 면적이 넓어지는 겁니다.”
“역시 나전 씨는 저의 사랑을 받을 만해요, 쪽~.”

소중 씨에서 달콤한 키스를 받았으니 이번 이벤트는 성공한 듯하다. 하지만 소중 씨는 “사랑도 좋지만 나무를 흉하게 해놓으면 안 되지 않느냐?”라고 반문했다. 나전 씨가 나무에 대해서는 많이 알았지만 나무를 사랑하는 마음은 소중 씨가 더 컸다.

“걱정하지 마요. 나무껍질은 대부분 떨어져 없어지기 때문에 칼집을 내지 않는 한 나무에 해가 되는 것은 아니에요.”
“참 다행이에요.”

나전 씨는 나무에 사랑을 새기는 것보다 사람의 마음에 사랑을 새기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글 : 서금영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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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세종 때 장영실보다 뛰어난 과학자 있었다?! [제 752 호/2008-04-30]

최근 주말 저녁에 드라마 ‘대왕 세종’이 방영 중이다. 흔히 세종대왕을 한글을 창제한 왕 정도로 생각하는데, 그는 우리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왕으로 평가받고 있다. 학계에서는 세종 시대 조선의 과학을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할 정도다. 이런 평가가 가능한 이유는 당시 장영실과 같은 우수한 과학기술자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과학사학자들은 조선 세종 때 장영실보다 뛰어났던 과학기술자가 있다고 한다. 누굴까?

과학사학자들에 따르면 장영실이 노비출신 등 극적인 개인사 때문에 일반인에게 최고 인기 과학자가 됐다고 한다. 하지만, 문중양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는 세종 시대 최고 과학자로 ‘이순지, 이천, 정인지’를, 김근배 전북대 과학학과 교수는 ‘이순지와 이천’을 꼽았다. 이 중 이천은 ‘동에 번쩍 서에 번쩍’이란 말이 어울릴 정도로 여러 분야에서 능력을 발휘한 과학기술자다.

특이하게도 이천은 원래 학자가 아닌 ‘무인’ 출신이다. 그는 고려말 1376년에 태어나 조선을 건국한 태조 시절에 무과 급제해 10대 후반에 무인의 길에 들어섰다. 무인이던 그가 태종, 정종 때까지 어떤 일을 했는지, 어떻게 과학기술자로 나서게 됐는지는 자세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알 수가 없다.

하지만, 그가 천재적인 재능을 발휘하기 시작한 세종 때의 기록은 잘 남아 있다. 1418년 세종이 왕위에 등극하던 해에 이천은 공조 참판으로 재직하면서 왕실 제사에 사용되는 제기를 만들었다. 당시 왕실에서 사용하던 제사 그릇인 제기는 쇠로 만들었는데, 이천이 만든 제기는 이전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정교했다. 이 제기를 눈여겨본 세종은 곧바로 이천을 불렀다.

세종은 이천이 쇠를 다루는 천재적인 기술을 가진 것을 알아보고 기존의 활자를 개량하는 일을 맡겼다. ‘쇠를 떡 주무르듯’ 다루는 이천이었지만 활자 제작 기술은 처음이었고, 전혀 알지 못했다. 이에 이천은 김돈, 김빈, 장영실, 이세형, 정척, 이순지 등 당시 과학 기술자들을 동원하여 공역을 관장하며 새 활자 개발을 위해 온갖 연구를 거듭했다.

금속활자 인쇄기술은 조선시대에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조선 태종 때 주자소를 세우고 청동으로 만든 금속활자 ‘계미자’(癸未字)를 제작했다. 하지만, 모양이 크고, 가지런하지 못하며, 주조가 거친 기술적 문제가 있었다. 특히 활자를 고정하는 밀랍이 녹으면서 글자가 쏠리고 비뚤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가 활자 개량에 나선지 2년 만인 1420년 새로운 활자 ‘경자자’(庚子字)가 만들어졌다. 이천은 밀랍 대신 녹지 않는 대나무를 끼워 넣는 획기적인 신기술을 개발해 인쇄할 때 활자가 밀리지 않도록 했다. 그는 이를 개량하고 발전시켜 더 완벽해진 ‘갑인자’(甲寅字)를 만들어냈다.

당시 하루에 인쇄할 수 있는 최대 장수가 4장이던 활자 기술을 갑인자는 하루에 40장을 찍어낼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나게 발전시켰다. 갑인자는 경자자보다 모양이 좀 크고, 글자체가 바르고 깨끗한 필서체로 능률이 경자자보다 2배나 높아졌다. 현재 ‘갑인자’로 찍어 낸 ‘대학연의’와 같은 책은 15세기에 전 세계에서 제작된 인쇄물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적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당시 세종은 책을 통해 높은 수준의 학문을 백성에게 전파하고자 금속활자에 관심을 뒀다.

15세기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한 천문의기 제작의 총책임을 맡았던 과학기술자도 바로 이천이다. 그는 장영실과 함께 혼천의와 간의를 비롯한 일성정시의 등의 해시계를 제작했다. 간의와 앙부일구 등의 기기를 정인지와 정초가 설계하면 이를 최종적으로 만드는 일을 이천이 담당해 훌륭한 결과물로 만들어낸 것이다. 세종이 궁에 설치한 천문대인 간의대는 당시 세계 최고의 천문대로 학계에서 평가받는데, 이 간의대를 건축한 이도 이천이다. 천문 관측 기기 제작에 대한 이천의 업적은 금속활자 업적보다 더 높게 평가되기도 한다.

세종 시대 과학기술의 밑바탕이 된 도량형의 표준화도 그가 이룩한 중요 성과다. 그는 저울을 개량해 전국 관청에 나눠줬다. 이 저울은 전국 관청에서 세금을 부과할 때 등 다양하게 사용돼 저울 문제로 발생할 수 있는 논란을 줄였다.

이천은 도성을 쌓는 건축술, 군선이나 화포 개량 같은 군사 분야, 하물며 악기 제조에까지 그의 기술력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었다. 그는 대마도를 정벌할 때에 사용하고자 선체가 크면서도 빨리 달릴 수 있는 쾌속선을, 물에 잠기는 부분이 썩지 않도록 판자와 판자를 이중으로 붙이는 방법인 갑조법을 개발했다. 평안도 절제사로 지내면서는 조선식 대형포인 조립식 총통완구를 독창적으로 개발했다. 또한, 박연과 더불어 금, 솔, 대쟁, 아쟁, 생, 우회 등 많은 악기를 만들고, 무희와 악공들의 관복을 제도화하는데도 앞장섰다.

이렇게 이천은 수많은 발명품 뒤에서 뛰어난 기술로 공을 세웠다. 그는 문종 1년인 1451년 7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무인이면서 놀라운 기술력을 지녔던 천재적인 과학기술자 이천, 그는 ‘갑옷 입은 과학기술자’였다.
(글 : 박응서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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