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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OO만 있으면 당신도 소물리에~ [제 748 호/2008-04-21]

고도로 예민한 후각을 훈련받은 조향사들은 자연 향 2백~3백 종, 인공 향 5백 여종을 분별해 낸다. 소물리에 역시 맛과 향기만으로 와인에 쓰인 포도 품종과 재배지를 정확히 알아맞힐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아무리 훈련된 조향사나 소물리에라고 하더라도 동물들의 후각을 따라 가지는 못한다. 바닷속의 난폭자 상어는 올림픽 규격의 수영장에 피 한 숟가락이 섞여도 이를 알아챌 수 있고, 개들은 바람 없고 습한 날씨라면 이틀이 지난 냄새의 흔적을 맡을 수 있다. 공항 수색대에서 가끔 볼 수 있는 견공들은 아주 작은 분량의 마약도 냄새로 식별해 내고, 경찰견들은 범인현장에 남은 범죄자들의 자취를 추적하기도 한다. 건물이 붕괴된 현장이나 조난사고를 당한 사람을 찾아내는데도 견공들의 후각은 혁혁한 공을 세운다.

하지만, 모든 분야에서 견공들을 활용하기에는 아무래도 한계가 있다. 그래서 관심을 끄는 것이 ‘전자코’와 ‘전자혀’다. 기체 상태의 성분을 분석하면 ‘전자코’ 액체 상태 물질을 파악하면 ‘전자혀’라고 부르지만, 두 가지 모두 사람이 냄새를 인식하는 원리를 활용한 기술이다.

전자코는 크게 사람 코의 후각 세포에 해당하는 초정밀 센서와 사람 뇌의 후각 피질에 해당하는 컴퓨터로 구성돼 있다. 냄새가 난다는 것은 냄새를 일으키는 휘발성 분자가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이러한 분자와 반응하는 물질을 센서로 이용하는 것이다. 대부분은 전류가 흐르는 센서에 공기 중에 떠다니는 냄새 분자가 닿을 때 전기저항이 변화하는 성질을 이용한다. 간혹 냄새 분자와 결합하면 색이 변하는 물질을 센서로 이용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매사추세츠대 빈센트 로텔로 박사팀이 만든 전자코는 6가지 나노 금(金) 입자로 구성돼 있다. 각각의 금 입자는 형광물질과 결합해 있는데, 여기에 단백질이 달라붙으면 원래 있던 형광물질이 떨어져 나가면서 빛을 낸다. 단백질마다 금 입자와 결합하는 정도가 달라 각각의 센서에서 빛의 세기가 다르게 나타난다. 컴퓨터는 이러한 빛의 분포를 분석해 단백질의 종류를 파악해 낸다.

지금까지 개발된 전자코나 전자혀 들은 통상 6~24개로 구성된 센서를 이용해 서로 다른 냄새들을 찾아낸다. 예컨대 센서가 6개 달려 있는 전자코는 냄새를 탐지해 6개 그룹으로 분류하며 24개 센서를 가진 전자코는 24개의 냄새 군(群)으로 나누어 보여주는 식이다. 예컨대 센서들은 각각 탄화수소, 알코올, 암모니아 등에 다른 화학성분에 반응한다. pH 센서는 수소이온(H+) 농도에 따라 전위가 달라지는 전극으로 산성도를 측정한다. 이런 센서가 맡은 냄새를 종합하면 식품별로 일정한 형태의 그래프가 나타나는데, 이 그래프는 특정 식품의 냄새 지문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다.

어떤 냄새인지 정확하게 알아내려면 컴퓨터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세상의 모든 물질은 처한 환경이나 상태에 따라 고유한 냄새를 갖고 있다. 성분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제조된 지 하루 지난 두부를 5℃와 15℃에서 보관하고서 전자코로 냄새를 분석해 그 결과를 컴퓨터에 입력한다. 냄새는 두부에서 발생하는 탄화수소, 알코올, 암모니아 등의 함량에 따라 다르다. 이를 측정하고자 각각의 포함 정도에 따라 전기저항이 변하는 센서가 사용된다. 6개 센서에서 얻어지는 저항비율 값은 고유한 형태를 보이게 된다.

같은 방법으로 이틀 지난 두부의 데이터도 컴퓨터에 기억시킨다. 계속해서 제조 뒤 경과 일수와 보관 온도 등 두부의 상태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변수들을 포함시켜 실험해 얻은 자료들을 컴퓨터에 저장한다. 이렇게 데이터가 쌓이면 어떤 두부든지 전자코에 갖다 대는 순간 섭씨 몇 도의 온도에서 어느 정도 보관됐는지 금방 알 수 있게 된다.

물론 센서를 개선하고 데이터베이스를 확장하면 할수록 판별능력은 더 커진다. 최근 러시아 상트 페테르부르크 주립대의 안드레이 레긴(Legin) 교수가 브랜디의 숙성 연도를 알아낼 수 있는 전자혀를 개발한 것도 이 덕택이다. 레긴 교수의 숙성 정도에 따라 떫은맛을 내는 타닌(tannin)의 양이 다르다는 것에 주목, 전자혀를 만들었다. 일본에서 등장한 53종의 와인을 식별해 내는 전자코 역시, 와인에 함유된 성분의 차이를 데이터베이스화한 덕택이다.

사실 전자코의 응용범위는 상당히 넓다. 농산물이 외국산인지, 국내산인지도 금방 밝혀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재배지까지 추정할 수 있다. 자라는 곳의 토양과 기후, 온도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도 이미 3~4년 전부터 국산 인삼과 중국산 인삼을 가려내는데 전자코를 이용하고 있다. 국산과 중국산 인삼은 향이 조금 다른데 이 차이를 센서가 찾아내 그래프로 표시해 주면, 이를 근거로 국산 여부를 알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전자코를 단 로봇을 만들 경우 인간에게 더욱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핵 발전소, 가스 저장시설 그리고 폭발사고 현장 등 위험해서 인간이 접근하지 못하는 곳에 로봇을 투입하면 그곳 상황을 즉각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전자코 기술은 의료분야에까지 확대될 수 있다. 실제로 로마 대학 나탈레 박사팀이 사람이 내쉬는 숨 냄새로 폐암 여부를 간단히 진단할 수 있는 이른바 '전자코'를 발표하기도 했다. 폐암 환자들이 내쉬는 숨에는 알칸과 벤젠 계열의 화학 물질이 들어 있는데 전자코가 이 같은 화학물질을 탐지해 내는 것이다. 센서기술이 더 발전한다면 전화기에 전자코를 부착해 통화하는 사람의 몸 상태가 어떤지 점검할 수 있는 시스템도 개발될 것이다.

물론 아직 전자코의 분별력은 제한돼 있다. 용도에 따라 다른 센서를 사용해야 하고, 구축된 냄새 데이터베이스가 종합적인 판단을 하는 인간이나 동물의 후각 세포나 뇌를 따라오지 못하는 탓이다. 그럼에도, 전자코는 여러 장점을 갖고 있다. 사람처럼 냄새에 적응해 연속적으로 다른 냄새를 맡지 못하는 일도 없고, 인간이 하지 못하는 지루하고 힘든 일을 불평 없이 해낼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인체에 해로운 냄새도 기꺼이 맡을 수 있다. 때문에 미세한 크기로 센서를 만드는 나노기술과, 각각의 센서의 미세한 반응의 차이를 데이터베이스화하는 IT 기술이 결합할수록 전자코의 쓰임새는 더 넓어질 것이다.
(글 : 유상연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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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류
    그림
  • 등록일
    2008/04/19 11:43
  • 수정일
    2008/04/19 11:43
  • 글쓴이
    강 아래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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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장술의 달인을 찾아라 [제 747 호/2008-04-18]

장구애비는 적에게 발견되면 몸을 뒤집어 죽은 체한다. 그러다 적이 사라지면 재빨리 일어나 도망친다. 사냥을 하는 동물들이 죽은 고기를 먹지 않는 특성을 이용한 것이다. 이처럼 먹고 먹히는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동물들은 나름대로 자신만의 생존 비법을 갖고 있다.

적과 마주쳤을 때 동물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방법은 삼십육계 줄행랑이다. 그러나 도망이 쉬운 게 아니다. 모든 동물이 잽싼 것도 아니고, 꼬물꼬물 기어다니는 애벌레는 사용하기 어렵다. 그래서 작고 약한 동물들이 살아남으려고 선택한 최상의 방법은 적의 눈에 띄지 않는 것. 자신의 모습이 적의 눈에 띄지 않도록 몸 색깔이나 무늬를 주위와 비슷하게 바꾸는 위장술, 바로 보호색이다.

보호색 위장술의 대가는 카멜레온이다. 카멜레온은 사는 장소에 따라 몸의 색깔을 그때그때 바꾼다. 숲이 우거진 곳에서는 녹색을 띠며 나뭇가지에 천연덕스럽게 매달려 있다. 천적인 새들도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나뭇잎과 똑같은 색으로 변신한다. 사막 같은 곳에서는 갈색을 띤다. 모래 배경과 서로 어울리는 변장이다.

카멜레온이 이렇듯 색깔 위장을 잘할 수 있는 것은 피부 안에 있는 특별한 색소 세포 때문이다. 이 색소 세포를 넓히거나 오므리며 세포의 크기를 변화시키면 색깔 위장이 가능해진다. 색소 세포가 작은 구슬 모양의 크기로 한쪽에 모이면 전체는 밝은 색이 되고, 나뭇가지 모양으로 넓어지면 전체가 어두운 색으로 바뀐다. 세포의 크기는 빛의 강약, 온도, 공포나 승리감 같은 감정의 변화에 따라 달라진다.

먹을 수 없는 나뭇가지나 새똥처럼 보이게 변하는 동물들의 ‘의태’ 위장술도 훌륭한 피신법이다. 자연계에는 기상천외할 정도의 의태를 하는 동물이 많다. 가짜 눈을 이용하는 의태 동물도 있다. 동물 대부분은 먹잇감을 잡을 때 머리 쪽을 공격한다. 정면에서 공격하면 먹잇감이 도망가기 어려울 뿐더러, 단번에 공격해서 숨통을 끊어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피하고자 곤충 중에는 큰 눈동자 모양을 몸 뒷부분에 만들어 꼬리를 머리처럼 보이게 한다. 공격을 당해 꼬리가 좀 뜯겨나가더라도 목숨은 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곤충이 올빼미나비다. 나무줄기에 앉아 있을 때, 올빼미나비의 날개의 무늬는 꼭 올빼미의 눈과 닮았다. 뒷부분의 날개를 눈처럼 보이게 한 것이다. 올빼미 눈과 얼마나 똑같은지 가짜 눈을 본 천적의 새들이 올빼미로 알고 그냥 지나친다. 눈은 동물의 몸 가운데에서도 가장 잘 띄는 부분이므로 날개의 눈을 감추면 유리하겠지만, 날개의 눈으로 오히려 적을 속일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 방법인가.

호랑나비의 위장술도 만만찮다. 호랑나비는 성장 단계에서 두 가지 위장술을 사용한다. 초기 단계의 애벌레는 교묘하게도 새똥인 척 위장함으로써 새의 눈을 피한다. 애벌레일 때나 다 자라서나 곤충들의 가장 큰 적은 새이다. 흰색과 검은색이 섞인, 마치 돌기가 난 것처럼 오톨도톨한 애벌레가 나뭇잎에 붙어 있는 모양은 영락없이 새똥이다. 아무리 배고파도 자기 똥을 먹는 새는 없을 테니 나름대로 현명한 방법이다. 애벌레를 탈피하여 번데기가 될 때까지는 매달려 있는 나뭇가지의 색에 따라 색을 바꾼다. 나뭇잎 위에 있을 때에는 초록색을 띠지만, 낙엽이나 갈색의 나뭇가지 위에 있을 때는 갈색이 된다.

호랑나비가 나이에 따라 다른 위장술은 펼칠 수 있는 것은 호르몬이 변하기 때문이다. 가량 나이가 2령 3령 4령이 되면 검은색을 조절하던 호르몬이 초록색을 조절하는 호르몬으로 바뀌거나, 돌기 구조를 촉진하던 호르몬이 다른 형태를 조절하는 호르몬으로 바뀌는 등 분비 호르몬이 변한다.

바다 생명체의 위장술도 육지 못지않다. 이 중 문어는 보호색과 의태를 모두 활용할 줄 아는 위장술의 달인이다. 문어는 바다의 카멜레온으로도 통한다. 바위에 붙으면 바위 색으로 변하고, 산호 옆에 있으면 산호처럼 보일 정도로 변화무쌍하다. 껍질의 색소 세포가 주변 환경에 예민하게 반응하면서 수시로 몸 색깔을 바꾼다.

인도네시아의 술라웨시 해안에 서식하는 ‘인도네시아 문어’(Octopus marginatus)는 바닥을 기어다니는 평상시 모습과 달리, 천적이 나타나면 바다 밑에 널려 있는 야자나무 열매인 코코넛처럼 위장해 걸어다닌다. 온몸이 흐물흐물한 무척추동물이 두 다리로 밑바닥을 걸으면서 여섯 개의 다리로는 공처럼 몸을 말아 마치 코코넛처럼 보이게 한다. 흐느적거리며 움직이지만, 도망치는 속도가 다리를 모두 사용하여 이동할 때보다 훨씬 빠르다. 문어의 ‘두 다리로 걷기’ 위장은 ‘무척추동물은 두 다리로 걸을 수 없다’는 상식을 깬 셈이다.

눈에 띄지 않으려는 기본 법칙과 달리 오히려 화려하거나 선명한 색을 과시하며 튀는 전략을 취하는 동물이 있다. 동물 대부분은 적의 눈에 띄지 않으려고 몸 색깔이 선명하지 않다. 반면 건드리면 아주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광대노린재처럼 녹색 바탕에 빨간 줄무늬로 화려한 색을 띠는 동물이 있다. 이처럼 화려한 색의 동물들은 대부분 지독한 냄새를 풍기거나 독을 뿜는 종류여서 맛이 고약하다. 한번이라도 이런 동물을 먹어 본 적들은 다시는 이들을 건드리지 않는다. 화려한 색은 곧 독을 가졌음을 알리는 경고색인 것이다.

동물의 세계에는 우리가 짐작하는 것 이상으로 많은 위장술이 판치고 있는지 모른다. 살아남으려는 동물들의 위장술의 지혜가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글 : 김형자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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