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고시원 옆 건물 PC방에서 A와 게임을 하고 있었다. 모니터 앞 재떨이엔 감지 않은 머리에서 비듬이 떨어지듯 회색가루들이 쉬지않고 떨어져 내렸다. 아! 저 새끼 물파리 쏴대는 것 좀봐. 좆밥아 넌 좀 닥치고 게임해. 아, 어떤년이 자꾸 물파리 쏴대는거야. 그래도 씨발, 물파리 속에 들어가면 나올 수라도 있지. A가 말했다. 



 씨발, 물파리 속에 들어가면 나올 수라도 있지. 
 씨발, 미사일 맞으면 한방 구르고 말지. 
 씨발, 우주선 속에선 느려도 움직일 수는 있지. 


  
 씨발을 연발해대는 A의 목소리엔 울림이 있었다.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 구덩이 속에서 지르는 비명의 울림. 구덩이속 A에게 손을 내밀기엔 내 팔은 너무 짧았다. 그저 눈에 보이지 않는 A의 처절한 울림을 가만히 듣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우리는 컵라면을 먹고 PC방을 나섰다. 그러고선 한평짜리 A의 둥지에서 서로의 제일 보드라운 부분을 맞대었다. 시뻘건 네온사인의 강렬함, 쓰레기, 알콜, 니코틴의 어지러움을 잠시 피해갈 수 있는 A의 둥지. 우리는 먼지낀 숨을 내쉬었다. 헉, 헉, 헉, 헉. 




 넌 좋냐? 
 자긴 싫어? 
 좋아 존나게 좋아. 근데 또 존나게 싫어. 
 뭐가 그렇게 싫은건데. 
 고시원, 피씨방, 컵라면, 담배, 노래방, 술. 다 싫어 다. 
 자기는 자기 너가 제일 가까이 하는 것들을 다 싫어하는구나. 
 응. 너 말고, 다, 다. 근데 나랑 같이 게임하고 담배피고 술마시는 너를 생각하면 또 싫어져. 
 뭐라는거야 정말. 






 A의 말을 알 것 같으면서도, 난 하나도 모른다는 듯 A의 뻣뻣한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땀을 많이 흘린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당장이라도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겹친 살결을 떼고 우리는 선처럼 가만히 누워 서로의 숨소릴 들었다. 




 서울에선 숨 쉬는 것도 돈이 든다던데 십원... 이십원.. 삼십원. 
 미친년 
 사십원.. 오십원.. 아 우리 벌써 이천원어치 숨은 쉰 것 같다, 그치? 
 이번 달에 월급받으면 스타벅스에서 커피마시자 
 그것만? 
 씨발 너 그 말 그려진 요상한 가방도 하나 사준다. 내가. 
 사랑해. 
 나쁜년. 




 A의 소리가 제법 컸다. 옆방 에서 퍽!하고 벽을 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중학교 때 무릎반사라는 것을 배운 적이 있다. 종종 이렇게 옆방 여자가 벽을 칠 때마다 과학실에서 고무로 친구 무릎을 때리던 장면이 머릿속에 스쳐 비실비실 웃음이 나왔다. 나는 비실비실 웃었고 A는 무거운 숨을 내뱉었다. 







 빠져 나갈 수 있을까. 
  






 전보다 더 깊은 울림이 느껴지는 A의 목소리에 난 하나의 선이 되어 A를 감싸안았다. 손을 뻗을 수 없다면 그냥 네 곁으로 떨어질게. 우리가 하나가 아닌 우리가 되어 선처럼 가만히 누워 서로의 숨소릴 느낄 수 있다면 그걸로, 그걸로 말이야… 우리는 선처럼 가만히 누워 우릴 쏘아대는 새빨간 불빛과 곰팡이 슨 음식물의 냄새와 어지러운 알콜의 냄새와 쾌쾌한 니코틴의 냄새를 받아주자, 


  우리는, 선처럼, 가만히, 누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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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06 03:58 2012/02/06 03: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