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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피에타를 보고나서 2012/09/27

피에타를 보고나서

from 분류없음 2012/09/27 19:38

올 해 겨울, 나는 잠시 집을 떠나 서울에서 한 달의 시간을 보냈었다. 내가 잠시동안 둥지를 튼 곳은 영등포의 한 고시원이었다. 고등학교 때에도 몇 달을 서울에서 지내기도 하고, 친구들을 보러 자주 놀러도 다녔지만 '모태촌년'인 나에게 서울은 그다지 친숙한 공간은 아니었다. 그런 내가 서울의 진면모를 다 알리도 없었다. 내게 있어 서울은 그냥 사람이 많고, 높은 건물이 많고, 여러가지 문화 생활을 누릴 수 있지만 돈이 더럽게 많이 드는 곳. 딱 그 정도 의미였다. 
  
강신주가 자본주의를 '욕망의 집어등'이라 표현했던가. 오징어잡이들은 불빛들로 오징어를 유혹한다. 오징어는 불빛에 환장하는 생명체다. 그 불빛이 결국 자신을 죽일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오징어떼들은 불빛을 탐하려 몸을 던진다. 그렇다. 우리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의 노예가 되어 우리가 지닌 그릇된 욕망이 결국 우리를 파괴할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너무나, 너무나도 매혹적인 자본주의 시스템에 기꺼이 몸을 던진다. 그렇기에 팔자에도 없는 사치품에 매달리고 남들과 자신을 끊임없이 비교하며 돈에 살고 돈에 죽기도 하는 것일게다. 


피에타는 자본주의 시스템 속 약자들을 날 것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영화다. 돈 때문에 스스로 장애인이 되기도 하고 돈 때문에 사람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하기도 하며 돈 때문에 죽음에 이르기도 한다. 돈은 조민수의 말대로 희망, 욕심, 분노... 모든 것의 시작과 끝이 된다. 

돈은 정말 중요하다. 막말로 돈 한 푼 없으면 제대로 된 사람 구실을 할 수가 없는 세상이다. 공부를 하려고 해도 돈이 필요하고, 부모노릇을 하려고 해도 돈이 필요하고, 친구 관계를 유지하는데에도 전부는 아니지만 돈은 꼭 필요한 요소다. 하지만 도대체 돈이 무엇이길래.... 그 돈이란게 무엇이길래 사람을 이토록 비참의 끝으로 끌어내리는 것일까. 


피에타 속 청계천의 모습은 내가 한달여간 마주한 서울의 모습과 너무 닮아 있었다. 여타 감독들의 영화가 잘 구워진 스테이크라면 김기덕 감독의 영화는 날고기 그대로를 던져주는 것이라던 친구의 말이 이해가 갔다. 너무 낡고 더러워서 자칫 공포감을 일으키는 청계천의 모습. 그 속에서 초라한 행색으로 고된일을 하지만 자신이 노력한만큼의 돈을 제대로 쥘 수 없는 금속노동자들. 이러한 모습들이 나온 장면들이 올 해 겨울 영등포에서 지냈을 때의 잔상들과 겹쳐 자꾸자꾸만 곱씹게된다. 반짝이는 모텔들, 버려진 사창가, 구걸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 것들 사이로 우뚝 선 거대한 타임스퀘어.. 

서울은 내가 예전에 생각했던 것 처럼 그저 화려하고 비싸기만한 도시가 아니었다. 십자가가 높이 선 대형 교회와 대기업이 지은 높고 높은 건물들 사이에는 낡고 더러운 건물들과, 열악한 환경에서 버티고 있는 노동자들과, 온갖 약자들이 가려져 있었다. 

물론 피에타의 나온 모습이 이 세상의 전부는 아니다. 모든 사람이 그렇게 살아가지는 않는다. 나조차 그렇다. 피에타를 보고 나와서 나는 저런 삶을 살고 있지 않다는게 다행인지도 몰라- 라는 생각을 했을 정도니까 말이다. 하지만 분명히 알아야 할 사실은 내가 살고 있는 세상에 저런 모습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그러한 모습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외면하거나 다른 좋은 모습들로 포장해버리려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에세이스트 김현진이 그랬다. 밥만 먹으면 된다고. 예쁜 옷을 사면 그에 걸맞는 구두가 갖고 싶고, 구두를 사면 구두와 옷에 어울리는 머리를 하고 싶고, 머리를 하면 또 그에 걸맞는 화장품을 사고 싶어진다고... 그러니 밥만 먹자고. 굶지 않으면 된다고. 나 역시 그렇다. 일상생활에 전혀 지장없을 정도로 옷과 물건들을 많이 가지고 있지만 멈추지 못하고 끊임없이 또 다른 무언가를 사들인다. 나는 스님도 아니고, 신부님도 아니라서 나의 그런 욕망들을 완벽하게 참아내거나 그에서 벗어날 자신이 없다. 김현진처럼 밥만 먹자고 굶지만 말자고 스스로 다짐할 생각도 없다. 

그러나 스스로 약속 하나를 마음에 지니고 살기로 했다. 절대 노예가 되지는 말자고. 내가 돈을 쓸지언정 돈에 먹히지는 말자고. 돈에 의해서 괴물이 되진 말자고. 

스스로 손을 자르던 젊은 남자의 비명이 당분간은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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