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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우리가 만나서 3

 

 

이 때는 정말 거리에서 징징 울고 다녔습니다.

아차 하면 한명이 죽고 또 아차 하면 한명이 죽고 무려 13명의 열사가 나온 시기였습니다.

제 학원에서도 학생 하나가 제 얼굴을 보고는 무슨 일 있냐고 묻길래 그냥 그 놈을 얼싸안고 울어버린 기억이 있습니다.

당시 김지하씨는 "죽음의 굿판을 때려치워라"라는 망발을 하면서 운동권 후배들한테 호된 질책을 받았고 그 이름도 유명한 "박홍" 서강대총장은 투쟁하는 우리를 빨갱이로 몰면서 주가를 올렸었지요.

현재의 전여옥이나 조갑제를 생각하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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