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글 목록
-
- 오늘 재보선결과가 나왔다.
- 큰붓
- 2015
-
- 그리스인민의 승리를 축하합니다.
- 큰붓
- 2015
-
- 아래그림에 펜선을 먹여봤습니다.(1)
- 큰붓
- 2014
-
- 용감한 선생님의 용감한 제자입니다.
- 큰붓
- 2013
-
- 오랜만에 동영상하나 올렸습니다.
- 큰붓
- 2013
|
주장] '기독교정당' 추진하는 대형교회 목사들, 부끄러운 줄 아시라
<img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1/0823/IE001340804_STD.jpg">
▲ 김홍도 목사는 8월 21일 주일 '한국이 위기에서 벗어나려면'이라는 제목설교에서 "반공사상, 국가관이 투철하고 용기있는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 금란교회 김홍도 목사
최근 언론 보도에 의하면,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조용기 여의도순복음교회 원로목사와 금란교회 김홍도 목사 등 한국의 보수대형교회 목사들을 내세운 우파 성향의 기독교 정당 결성이 추진되고 있다고 한다.
이들은 반공·친미를 표방하고 있으며, 기독교 정당 결성을 위한 준비단계로 포럼을 주도한 청교도영성훈련원장 전광훈 목사의 발언을 보면 그 단체의 성격이 명확하게 드러난다.
"종북좌파들과 반기독교 세력들에 의해 위기에 빠진 나라를 구하기 위해 조용기 목사와 김홍도 목사 등 원로들이 기독교를 표방해 정당을 준비하려는 이들에 대해 사전 정지작업을 해주면 내가 나서기로 했다."
교회국민운동본부가 배포한 포럼 홍보물에는 '종북좌파들의 국가 부정과 적화 통일, 수쿠크법과 이슬람의 비정상적 포교, 북한의 인권문제, 동성연애법, 인터넷언론들의 교회 공격, 교회 부패와 세속화, 전교조, 교과서의 기독교 왜곡 등 10개 주제를 놓고 포럼을 열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당신들의 하나님은 반공·친미 이데올로기인가?
그들에게 있어서 선은 '반공·친미'인 듯하다.
분명 그들에게는 하나님보다 '반공·친미'가 우위에 있다.
예수는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가르쳤지만, 그들은 이웃까지도 종북좌파로 몰아가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그들이 포럼에서 다루고자 하는 10개의 주제 중에 '교회의 부패와 세속화'라는 주제가 들어있다는 것이다. 과연, 그들은 그 주제에서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그들이 말하고자 하는 '교회의 부패와 세속화'가 무엇일까 참으로 궁금하다.
기독교정당을 만들어 정치적인 힘을 갖겠다는 것이 부정적인 의미의 교회의 세속화요, 교회가 세속화되어간다는 말은 바로 교회의 부패와 떼어놓을 수 없는 연관성이 있다.
혹시, 그들이 말하는 '교회의 부패와 세속화'는 그들과는 다른 길에 서서 나름 신앙적 양심을 가지고 행동하는 이들을 세속에 물든 이들로 치부하려는 것은 아닌지 심히 우려스럽다.
그들은 1970~1980년대 민주화운동의 과정에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과 진보교단이 민주화운동과 통일운동에 박차를 가하자, 교회가 정치에 관여한다고 얼마나 많은 비판을 해댔는가?
무임승차로 민주주의의 열매를 실컷 따먹고는 그 사이에 자기들 배만 불려 대형교회를 이루더니만, 고작 한다는 짓이 정권획득을 목표로 하는 '정당'이란 말인가?
당신들이 하는 짓들로 한국교회는 물론이요, 하나님의 이름이 더러워지고 있는데 정녕 그것을 알지 못하는 이들은 당신들밖에는 없는 것 같다.
허긴, 당신들이 그렇게 신봉하고 섬기는 하나님이란 '반공, 친미, 돈', 이 삼박자가 아닌가?
그런 당신들에게 뭘 기대할 수 있단 말인가?
<img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0/0622/IE001210160_STD.jpg">
교인들이여, 무지에서 벗어나라
한국의 대형교회 목사들이 이런 짓을 하면서도 떵떵거리며 살 수 있는 기반은 무엇인가?
대형교회를 떠받치고 있는 교인들인 것이다.
그들의 맹목적인 신앙은 반공과 친미와 돈에 미친 목사들이 주입한 바도 있지만, 그런 헛소리에 "아멘!"이나 해대고 헌금하는 무지한 교인들에게도 책임이 있다.
수준 미달의 목사가 대형교회를 이루고, 교계의 원로라고 칭송을 받는 현실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대형교회의 메커니즘은 철저하게 잉여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기업의 마케팅과 다르지 않다.
대기업에서 컨설팅을 하듯 대형교회도 수많은 예산을 들여가며 전문업체에 컨설팅을 의뢰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교회는 신앙공동체가 아니라, 하나의 기업으로 변질되어 버렸다.
그렇게 만든 1차적인 책임은 목사들에게 있다고 할 수 있겠지만, 그것을 지속적으로 양산해내고 지지해주는 것은 교인들인 것이다.
제발, 그 무지에서 벗어나라. 그래야, 구원의 길이 희미하게나마 보일 터이다.
장님이 장님을 인도하는 격인 한국의 보수대형교회, 그런데 그들은 확신에 차 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당신들이 진짜, 하나님을 믿는다면 지금 이럴 때가 아니다
당신들의 하나님은 '반공, 친미, 돈'이니 진짜 하나님을 만난 적도 없겠지만, 당신들이 진짜 하나님을 믿는다면 지금 이럴 때가 아니다.
얼마 전처럼 무상급식 투표 같은 거 하라고 독려하고 그럴 때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정당이나 만들겠다고 할 때도 아니다.
아무리 이야기해도 들어먹지 않겠지만, 당신들이 성서의 정신에 따라 재해석하고 다음과 같은 문제에 대해 성서적으로 답해야 할 것이다.
정당을 만들기 위해 열리는 포럼에서 다루고자 하는 10주제('교회의 부패와 세속화'는 다뤄도 좋을 것 같다)말고, 이런 주제들을 가지고 포럼을 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각종 토목사업(4대강, 한강르네상스, 평창동계올림픽, 제주해군기지 등)이 하나님의 창조세계의 보전과 어떤 관련성이 있는가?
- 국가에 의해 자행되는 인권유린의 문제(서울역 노숙자강제 퇴거, 한진중공업 문제, 사회적인 약자에 대한 문제 등)에 대해서 교회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 희망 없는 한국의 보수대형교회와 그런 유사단체들을(한기총, 뉴라이트 등) 어떻게 해체할 것인가?(아마도 이것이 '교회의 부패와 세속화'라는 주제의 영역에 들어갈 것이다)
- 한국교회 역사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하거나 교회의 본질을 심각하게 왜곡한 목사들의 명단
조롱받는 한국교회, 조롱당하는 하나님
<img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1/0823/IE001340640_STD.jpg">
24일 서울시 주민투표를 앞두고 곽노현 교육감을 물리쳐야 한다는 문자가 뿌려졌다.
ⓒ 윤근혁 곽노현
오늘날 한국교회는 세상에서 조롱을 당하고 있다.
그 조롱이라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함으로 받는 거룩한 조롱이 아니라, 아무리 좋게 봐주고 눈감아주고 싶어도 더는 참을 수 없어 내뱉는 조롱인 것이다.
누가 그렇게 한국교회를 조롱받게 만들고, 하나님을 조롱당하게 하는가? 바로 기독교정당같은 것들을 만들겠다고 하는 보수대형교회와 목사들, 반공, 친미의 최전선에 서 있는 각종 보수 기독교단체들, 부자들 편만 드는 강남 교회들, 설교가 아니라 '보수반공 시국강연'에 버금가는 설교를 하는 목사들과 아멘으로 화답하는 이들, 기독교은행 설립을 적극지지하며 교인들을 끌어 모았던 목사들이 아닌가?
세상의 빛과 소금의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는 현실을 반성하고 회개해야할 교회는 자기 몸 불리기에만 연연해 왔고, 그들의 바람대로 성공했다.
어느 정도 몸집이 커지자 이제 그들은 스스로 하나님이 되어버렸다. '하나님'이라는 이름은 그들의 주장을 합리화하고 뒷받침하는 껍데기로 남은 것이다.
교회 안에 들어온 약육강식의 논리와 강자독식의 논리(대형교회가 주변의 작은 교회들을 통폐합하거나 작은 교회 교인들 쓸어모아가는 일 등은 대형마트가 소형마트를 죽이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반성서적인 논리임에도 불구하고 정의가 되어버렸다.
그것의 일상화된 현실은 이번 서울시 무상급식관련 투표를 하기 전 보수대형교회 목사들이 교인들에게 투표를 독려했던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그들은 이렇게 대사회적인 문제에 대해 보수적인 입장을 취하면서도 정치적인 행보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참으로 개탄할 일이다.
교계에서는 재정적인 후원과 분담금을 많이 내는 대형교회 목사들의 목소리는 커질 수밖에 없었고, 이젠 그들의 말이 곧 한국교회를 대변하는 말처럼 되어버렸다.
어느 누구도 감히 그들의 말에 토를 달지 않으려고 한다.
그런 점에서 이번 기독교정당에 대한 것 역시도 이들의 협조가 없이 물밑작업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전면에 나서든 나서지 않든 그들은 세속정치에서도 교계정치에서의 단맛을 누리고 싶은 것이다.
부끄러운 줄 알라.
당신들이 조롱의 대상이 된 것을 부끄러워 말고, 하나님의 이름이 조롱의 대상이 된 것을 부끄러워하라.
기독교정당? 기독교은행하고 같은 꼴로 가려고?
얼마 전, 기독교은행 설립과 관련해서 사기를 친 강보영 목사가 구속되었다.
검찰의 수사결과가 나오면 얼마나 추잡한 일들이 기독교은행 설립과 관련해서 있었는지 밝혀지겠지만, 문제는 그 당시 기독교은행 설립을 적극적으로 지지했던 보수단체들과 대형교회 목사들의 반성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냥, 자기들도 피해자라는 이야기만 있을 뿐이다.
기독교은행, 그것은 성서의 정신과도 어긋나는 수많은 요인들이 있었지만, 그 핵심 고리에 '돈'이 개입되어 있으므로, '하나님과 돈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는 하나님의 말씀에 상치된다고 보았던 것이다.
그리고 결국, 사기사건으로 막을 내렸다.
그렇다면 기독교은행에 이은 기독교정당의 의미는 무엇인가?
정당의 목적은 '정권의 획득'이다.
그러니까, 이제 기독교가 정치권에서 정치적으로 일정 정도 힘을 발휘하겠다는 것이고, 한국교회의 교인 숫자에 비추어보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라고 계산하는 듯하다.
그들의 계산법이 황당하기도 하지만, 이미 지난 총선에서 패배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다음 총선에서 비례대표의 가능성을 점치는 모양이다.
그러나 앞으로 남은 일 년과 합한 지난 4년의 시간은 한국의 보수대형교회의 모습을 너무나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기에 이전보다 더 많은 표를 얻지 못할 것이다.
더군다나, 그들의 꿈은 정교일치에 있는 듯하니, 그들에게 조그마한 권력이라도 주어진다면 한국교회뿐 아니라 한국사회가 불행해질 것이다.
기독교정당의 의미, 그것은 아무것도 없다. 굳이 찾는다면, 이런 움직임 자체가 한국교회가 얼마나 썩었는지를 보여주는 표징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
보수 대형교회 목사님들, 부끄러운 줄 아세요
아마도 그들은 어떤 연유에서건 언론에 자신들의 이름이 거론되어야 힘이 넘치는 노출증 환자들이 아닐까 싶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렇게 황당한 일들을 하는데 버젓이 이름을 올릴 수 있을까?
아니면, 전혀 의식이란 것이 없어서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 것일지도. 자신들 스스로 교계의 지도자라고 착각을 하는 모양인데, 그 밑에서 어떤 연관관계를 가지고 있는 측근들에게야 그럴지 모르겠지만, 그냥 객관적으로 그들과 별반 상관없는 나 같은 평범한 목사의 눈에는 그들이 목사로 보이질 않는다.
아니, 신앙적인 양심의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면 "독사의 XX들아!" 하고 외치던 예수의 분노의 일성이 터져 나온다.
벌거벗고도 부끄러운 줄 모르는 불쌍한 사람들, 부끄러운 줄도 모르는 철면피들. 보수 대형교회 목사님들, 부끄러운 줄 아세요.
당신들 때문에 정말 목사라는 것이 창피해 죽고 싶을 때가 있어요.
덧붙이는 글 | 김민수 기자는 한국기독교장로회 소속 목사입니다.
|
여러분들과 지척의 거리에서 207일째 아침을 맞았습니다. 이번에도 가까이서 볼 순 없었지만 두 번째만큼 참담하진 않았습니다. 그립지 않아서가 아니라 우리가 한자리에서 만날 날이 점점 가까워진다는 희망 때문입니다. 207일전 이 크레인에 오를 땐 몹시 추웠습니다. 한겨울의 새벽 세시 그 캄캄한 어둠속에 가파른 계단을 오르며 삶에 대한 의지보단 죽음에 대한 결의가 더 비장했습니다. 207일. 유서를 세 번 썼던 주익씨, 우서조차 쓸 수 없었던 재규형. 그 마음들을 다 알 것 같은 시간들이었습니다. 2003년에도 트위터가 있었다면 주익씨를 지킬 수 있었겠죠. 그때도 희망버스가 있었다면 재규형마저 잃진 않았겠죠. 저를 여기까지 올라오게 한건 사람 목숨보다 돈이 훨씬 중요한 조남호였지만 저를 여기서 내려가게 하는건 여러분들 일겁니다. 207일전 그 캄캄한 새벽 여길 오를 때 저는 혼자였습니다. 배낭을 몇 번이나 쌌다 풀기를 반복하면서 숱한 시간을 번민했습니다. 52년을 살았는데 처분해야 할 것도 정리해야 할 것도 별로 없었습니다. 그게 다행이면서도 서러웠습니다. 수많은 노동자들이 그렇게 전선에 섭니다. 매일 유서를 쓰는 심정으로 하루하루의 투쟁을 이어갑니다. KTX여승무원 동지들이 3년을 싸울때도, 기륭전자 동지들이 6년을 싸우는 동안에도 애처롭긴 했으나 그 싸움이 우리들의 것이 되진 못했습니다. 쌍용차에서 15명이 죽어나가는 동안에도 안타깝긴 했으나 우리 모두의 전선이 되진 못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연대가 어떤 힘을 만들어 내는질 보았습니다. 나약하고 소심한 개인들이 모여 어떻게 기적을 만들어 내는지를 놀랍게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그 희망을 짓밟는 야만과 광기에 대해서도 똑똑히 확인했습니다. 잊지맙시다. 그래야 우리가 그려갈 새로운 미래를 상상할 수 있습니다. 어제 여러분들이 띄워 보내신 풍등이 이 크레인 위 다섯 사람의 머리 위를 거쳐 강정으로, 전북 버스로, 유성으로, 그리고 수많은 전선으로 날아갔을 거라 저는 믿습니다. 그동안 우리가 왜 울어야 했는지, 왜 패배해야 했는지 그리고 왜 죽어야 했는지, 희망버스는 뼈저리게 가르쳐줬습니다. 그 처절한 절망의 댓가로 이제야 비로소 어떻게 연대해야 하는지를 배웠습니다. 모든 불편을 기꺼이 감수하고 먼 길 달려와 주신 여러분들. 2차 때 다친 다리로 3차 때도 기꺼이 앞장서 주신 백기완 선생님. 먼저 내려오셔서 자리를 맡아야 한다고 땡볕에 앉아계셨던 박창수 동지 아버님, 여러 어르신들, 실무를 책임지고 계셨던 여러분들. 여러분들의 간절한 마음으로 앞으로 얼만가 될지 모를 크레인의 날들. 건강히 잘 견뎌나가겠습니다. 훨씬 단단해진 우리 조합원들, 그리고 가족들과 함께 꼭 이겨내겠습니다. 여러분들이 놓아주신 견고한 계단을 네명의 동지와 함께 밟고 내려가는 날까지 웃으면서 끝까지 함께! 투쟁! |
최근 댓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