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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사가 전사에게..................

3일전에 열사가 전사에게 투쟁기금을 전달했습니다.
국민대학교83학번 김윤기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성남에 있는 덕진양행에 취업해서(그 때는 위장취업이라고 했습니다.) 노조위원장을 했지요. 결국 교섭자리에서 자본에 항거해 분신자결하신 분입니다.
저한테는 1년 선배죠. 이 사람이 있었던 서클이(그 때는 동아리가 아니라 서클이라고 했습니다) 청문회라는 서클인데 선후배 회원들이 김윤기열사 장학회를 만들어서 운영하다가 이번에 일부를 노동자투쟁기금으로 전달하게 된것입니다.
쌍용자동차하고 재능교육동지들한테 전달했습니다.
많은돈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큰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단 24년이라는 시공을 뛰어넘어 열사가 투쟁하는 전사들한테 반드시 이 싸움 승리하라고 주신거고 또한 노동조합도 아닌 대학서클에서 투쟁기금을 전달했다는게 나름대로 좋더군요.
그래서 어제 대한문 갔다가 재능교육촛불문화제 갔다가 재능환구단 농성장이 침탈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시청으로 갔다가 소주한잔 하고 들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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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중공업 고 최강서열사 부활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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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자 삽입 이미지오늘 소식을 보니 사측과 합의를 봐서 내일 장례를 치르기로 했다는군요.

이 그림 그려준지 22일 만입니다.

왠지 우울한 오후입니다.

대한문앞 민주노총 노동자대회에 나가봐야 겠습니다.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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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척 오랜만에 들어왔네요. 하하하 자기집도 제대로 관리못하면서..........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1988)

ㅡ김광규

4·19가 나던 해 세밑
...
우리는 오후 다섯 시에 만나
반갑게 악수를 나누고
불도 없이 차가운 방에 앉아
하얀 입김 뿜으며
열띤 토론을 벌였다
어리석게도 우리는 무엇인가를
위해서 살리라 믿었던 것이다
결론 없는 모임을 끝낸 밤
혜화동 로우터리에서 대포를 마시며
사랑과 아르바이트와 병역 문제 때문에
우리는 때묻지 않은 고민을 했고
아무도 귀기울이지 않는 노래를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노래를
저마다 목청껏 불렀다
돈을 받지 않고 부르는 노래는
겨울밤 하늘로 올라가 별똥별이 되어 떨어졌다
그로부터 18년 오랜 만에
우리는 모두 오랜만에 무엇인가 되어
혁명이 두려운 기성세대가 되어
넥타이를 매고 다시 모였다
회비를 만 원씩 걷고
처자식들의 안부를 나누고
월급이 얼마인가 서로 물었다
치솟는 물가를 걱정하며
즐겁게 세상을 개탄하고
익숙하게 목소리를 낮추어
떠도는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모두가 살기 위해 살고 있었다
아무도 이젠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적잖은 술과 비싼 안주를 남긴 채
우리는 달라진 전화번호를 적고 헤어졌다
몇이서는 춤을 추러 갔고
몇이서는 허전하게 동숭동 길을 걸었다
돌돌 말은 달력을 소중하게 옆에 끼고
오랜 방황 끝에 되돌아 온 곳
우리의 옛사랑이 피흘린 곳에
낯선 건물들 수상하게 들어섰고
플라타너스 가로수들은 여전히 제자리에 서서
아직도 남아 있는 몇 개의 마른 잎 흔들며
우리의 고개를 떨구게 했다
부끄럽지 않은가
부끄럽지 않은가
바람의 속삭임 귓전으로 흘리며
우리는 짐짓 중년기의 건강을 이야기했고
또 한 발짝 깊숙이 늪으로 발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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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 좋은 글이라서 올렸습니다.

다시 길을 떠나며....
 
모든 걸 다 내려놓고 떠납니다.
먼저 화계사 주지 자리부터 내려놓습니다.

얼마가 될지 모르는 남은 인생은
초심으로 돌아가 진솔하게 살고 싶습니다.

“대접받는 중노릇을 해서는 안 된다.
” 초심 학인 시절, 어른 스님으로부터 늘 듣던 소리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제가 그런 중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칠십, 팔십 노인 분들로부터 절을 받습니다.

저로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일입니다.
더 이상은 자신이 없습니다.

환경운동이나 NGO단체에 관여하면서
모두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한 시절을 보냈습니다.

비록 정치권력과 대척점에 서긴 했습니다만,
그것도 하나의 권력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무슨 대단한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은 생각에 빠졌습니다.

원력이라고 말하기에는 제 양심이 허락하지 않는 모습입니다.
문수 스님의 소신공양을 보면서 제 자신의 문제가 더욱 명료해졌습니다.

‘한 생각’에 몸을 던져 생멸을 아우르는 모습에서,
지금의 제 모습을 분명히 보았습니다.

저는 죽음이 두렵습니다.
제 자신의 생사문제도 해결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제가 지금 이대로의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이대로 살면 제 인생이 너무 불쌍할 것 같습니다.

대접받는 중노릇 하면서,
스스로를 속이는 위선적인 삶을 이어갈 자신이 없습니다.

모든 걸 내려놓고 떠납니다.
조계종 승적도 내려놓습니다.

제게 돌아올 비난과 비판, 실망, 원망 모두를 약으로 삼겠습니다.
번다했습니다. 이제 저는 다시 길을 떠납니다.

어느 따뜻한 겨울, 바위 옆에서 졸다 죽고 싶습니다.

2010년 6월 14일 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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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한진중공업 희망버스 때 한진중공업 화장실에 그림 그리는 모습입니다..

놀러갔다기 놀다왔는데 왠 호들갑을 그렇게들 떠는지.........

하여튼 우연찮게 인터넷에서 이 사진을 찾았네요.

이 사진은 얼마전에 죽은 전해투 고 이광호 동지가 찍어준  사진입니다...

김진숙 살리러 가더니 지는 죽어버렸습니다.  허허허

날밤 꼬박세우고 뭐 할일이 없나 어슬렁 거리다가 산책이나 한답시고 크레인 밑으로 해서 도크로 돌아보려고 슬슬 걸었는데 크레인에 김진숙동지가 나와 있더군요.

한 아침 6시나 됐을라나...........

그래서 멀리서 고함으로 인사하고 다시 농성하는 동지들에게 왔는데 이젠 뭐할까 생각하다가 제눈이 훤한 화장실벽에 꽂혔습니다.

노조사무실에 가서 검정매직 있느냐고 했더니 두말않고 주데요.

그 매직갖고 그린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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