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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 번역 2-3 (2)

이 번역은 1942년 갈리마르에서 출간된 L'étranger를 원본으로 삼으며, 때로 이휘영, 김화영, 이기언, 김예령, 이정서 번역을 참고한다.

 

한국에서 L'étranger 원본의 저작권은 소멸했다. 이 번역본은 무료로 배포 가능하다. 단, 영리 목적 사용은 불가능하며, 일부나 전부를 어떠한 형태로도 가공 내지 수정할 수 없다. 어차피 카뮈의 간결함을 한국어로 살려본답시고 내 멋대로 의역한 부분이 많아서 그렇게까지 신뢰할 만하진 않다.

 

 

제2부

 

III (계속)

 

토마 페레스 차례가 되었다. 경위가 증언대로 부축해줘야 했다. 페레스는 엄마와 친분은 있었지만 나와는 장례식 날 딱 한 번 만났다고 말했다. 내가 그날 뭘 했는지 묻자 “그게 말입니다, 그날 너무 슬펐습니다. 아무것도 눈에 안 들어왔어요. 마음이 아파 다른 데 신경 쓸 겨를이 없었습니다. 저한텐 너무 고통스러운 날이었습니다. 게다가 제가 실신을 했어요. 뫼르소 씨가 어땠는지 볼 수가 없었어요.”라고 대답했다. 차장 검사는 적어도 내가 우는 모습을 봤는지 물었다. 페레스는 못 봤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검사가 말했다. “배심원 여러분께서 참작해주시기 바랍니다.” 변호인이 화를 냈다. 다소 과장된 목소리로 페레스한테 내가 “울지 않는 모습을 보았는지” 물었다. 페레스는 “못 봤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방청객들이 웃었다. 변호인이 소매 한쪽을 걷어 올리며 단호하게 말했다. “바로 이게 이 재판의 모습입니다. 모든 게 진실이기도 하고, 진실이 아니기도 합니다!” 검사는 굳은 표정으로 서류 제목 부분을 연필로 두드렸다.

 

 

5분 정도 휴식시간을 가졌다. 그사이 변호인이 오더니 모든 게 잘 돌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5분이 지나고, 셀레스트가 피고인 측 증인으로 불려갔다. 내가 신청한 증인이란 뜻이다. 셀레스트는 종종 내 쪽을 바라보며 손으로 파나마모자를 돌렸다. 가끔 나랑 일요일에 경마를 보러 갈 때 입던 새 정장을 입었다. 셔츠를 잠그기 위해 구리 단추를 하나만 한 걸 보니 옷깃은 달지 못한 모양이었다. 내가 자기 식당 손님인지 물었고 셀레스트는 “제 친구기도 합니다.”라고 말했다. 나를 어떻게 생각하느냔 질문에는 남자답다고 답했고, 더 자세히 말해달라는 질문에는 남자답다는 게 달리 설명이 필요하냐고 답했다. 내가 폐쇄적이라고 생각했는지 묻자 불필요한 말은 하지 않는다고만 대답했다. 차장 검사는 내가 식대를 제때 지급했는지 물었다. 셀레스트는 웃더니 “그야 우리 둘 사이 일이지요.”라고 말했다. 내 범죄행위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물었다. 셀레스트는 증언대에 두 손을 올렸다. 무언가 준비해온 눈치였다. “제가 보기엔 불운한 사고입니다. 모두 아시다시피 불운은 불운입니다. 불운한 사고 앞에선 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그저 불운한 사고입니다.” 셀레스트는 계속하려 했지만 재판장이 됐다며, 수고했다고 말했다. 그러자 셀레스트가 조금 멍하게 있었다. 할 말이 남았단다. 재판장은 간결하게 마치라고 했다. 셀레스트는 또 불운 이야기를 꺼냈다. 재판장이 말했다. “잘 알겠습니다. 그런데 우린 바로 그런 불운한 사고를 판단하려고 이 자리에 모인 겁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셀레스트는 자기 지혜와 선의의 한계에 도달했다는 듯이 내 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의 눈이 반짝거렸고, 입술은 떨렸던 것 같다. 나한테 더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말하는 듯했다. 나는 아무 말도, 아무 손짓도 하지 않았지만, 처음으로 남성을 껴안아주고 싶었다. 재판장이 다시금 증언대에서 내려가라고 말했다. 셀레스트는 방청석으로 가 앉았다. 심리가 계속되는 내내 남아 있었다. 몸을 약간 앞으로 기울이고, 팔꿈치를 무릎에 괴고, 모자를 손에 쥐고, 오가는 말을 빠짐없이 들으며. 마리가 들어왔다. 모자를 썼는데, 여전히 예뻤다. 그래도 난 맨머리가 더 좋았다. 내가 서 있는 곳에서 봉곳한 마리 가슴이 느껴졌다. 항상 약간 도톰하게 부푼 아랫입술도 보였다. 엄청 초조해 보였다. 곧바로 마리한테 언제부터 나를 알았는지 물었다. 마리는 우리가 같이 일하던 시절을 언급했다. 재판장은 마리와 내가 어떤 사이인지 알고 싶어 했다. 자기가 내 여자 친구라고 말했다. 다른 질문에선 우리가 결혼할 사이인 건 사실이라고 대답했다. 서류를 넘기던 검사는 갑자기 언제부터 관계를 맺기 시작했는지 물었다. 마리가 날짜를 댔다. 검사가 무심한 목소리로 그날은 엄마가 돌아가신 다음 날인 것 같다고 지적했다. 그러고선 약간 빈정거리면서, 굳이 민감한 문제를 들추고 싶진 않고, 이 상황이 마리한테 불편할 순 있지만, (여기서 그의 말투가 더 딱딱해졌다) 직무상 그런 사정을 일일이 고려해줄 순 없다고 했다. 결국 마리한테 우리가 관계를 가진 그 하루를 요약해달라고 요구했다. 마리는 말을 꺼렸지만 검사의 강권에 우리가 같이 해수욕했고, 영화를 보러 갔고, 내 집으로 갔다고 말했다. 차장 검사는 예심 때 마리에게 관련 진술을 듣고 당시 상영 중이던 영화를 알아봤다고 밝혔다. 마리더러 직접 무슨 영화가 상영 중이었는지 말하라고 덧붙였다. 그러자 마리는 하얗게 질린 목소리로 페르낭델이 출연한 영화였다고 말했다. 마리가 말을 마치자 법정은 완전히 조용해졌다. 검사는 일어서더니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몹시 흥분한 목소리로,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킨 채, 천천히 또박또박 말했다. “배심원 여러분, 피고인은 자기 어머니가 사망한 이튿날 해수욕을 했고, 부적절한 관계를 시작했고, 코미디 영화나 보며 시시덕댔습니다. 이상입니다.” 검사가 앉는 동안 침묵이 이어졌다. 그런데 마리가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그게 아니라며, 다른 사정도 있다며, 자기 생각과 반대되는 말을 하도록 강요당했다며, 나를 잘 아는데 내가 잘못한 건 전혀 없다며. 그런데 재판장의 신호에 경위가 마리를 데리고 나갔고, 심리는 이어졌다.

 

 

이어서 마송이 나와 내가 정직한 사람이고 “그리고 말이에요, 솔직한 사람이에요.”라고 말했지만 다들 별 관심이 없어 보였다. 살라마노 말에도 사람들이 그다지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살라마노는 내가 자기 개 일로 잘 대해줬다고 말했다. 엄마와 나에 관한 질문도 받았다. 내가 엄마랑 더 이상 나눌 대화가 없어서 엄마를 양로원에 보냈다고 대답했다. “이해해 주십시오. 이해해 주세요.” 살라마노가 말했다. 그런데 아무도 이해하는 것 같지 않았다. 살라마노를 데리고 갔다.

 

 

다음으로 레몽 차례가 됐다. 마지막 증인이었다. 레몽은 나한테 작은 손짓을 하더니 곧바로 내가 결백하다고 말했다. 그런데 재판장은 평가가 아닌 사실만 말하라고 지적했다. 묻는 질문에 대답하라고 권고했다. 피해자와의 관계를 명확히 밝히라고 요구했다. 레몽은 그 기회에 자기가 피해자의 누이에게 손찌검한 뒤로 피해자가 자기에게 원한을 품게 됐다고 말했다. 한편 재판장은 피해자가 나에게 원한을 품을 만한 이유는 없었는지 물었다. 레몽은 내가 해변에 있었던 건 우연한 결과였다고 답했다. 그러자 검사가 어째서 내가 이 비극의 원인이 된 편지를 쓰게 됐는지 질문했다. 레몽은 그저 우연이라고 대답했다. 검사는 이번 사건에서 우연이 양심에 끼친 폐해가 상당해 보인다고 응수했다. 레몽이 정부에게 손찌검을 했을 때 내가 개입하지 않은 것도 우연이었는지, 그 일로 내가 참고인 진술을 해준 것도 우연이었는지, 당시 내가 레몽에게 전적으로 유리한 진술을 한 것도 우연이었는지 물었다. 끝으로 뭘 하며 먹고사는지 질문했다. 레몽이 ‘창고지기’라고 대답하자 차장 검사는 배심원들에게 주변 사람들은 레몽을 포주로 안다고 밝혔다. 나는 레몽의 공범이자 친구였다. 그렇지 않아도 가장 더럽고 질 낮은 치정극이, 패륜아가 개입돼 더욱 악랄해진 셈이었다. 레몽이 반박하려고 했고 변호인도 항의했으나, 일단 검사가 말을 끝낼 때까지 기다리라고 했다. 검사는 “더할 말은 별로 없습니다. 피고인은 증인의 친구입니까?”라고 레몽에게 물었다. 레몽은 대답했다. “네, 제 절친입니다.” 차장 검사는 내게도 같은 질문을 했다. 나는 레몽을 바라봤다. 레몽은 내게서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나는 “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검사는 배심원단을 향해 말했다. “어머니가 사망한 다음 날 부끄러운 줄 모르고 방탕한 짓을 일삼은 자가, 바로 그자가 하찮은 이유로 살인을 저질렀습니다. 문란하기 짝이 없는 사건을 해결한답시고 말입니다.”

 

 

검사는 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변호인이, 더는 참을 수 없었는지 두 팔을 들며 소리쳤다. 소매가 내려가며 풀 먹인 셔츠 주름이 드러났다. “도대체 피고인은 어머니 장례를 치러서 기소된 겁니까, 아니면 사람을 살해해 기소된 겁니까?” 방청객들이 웃었다. 하지만 검사가 다시 몸을 일으켜 세우며 법복을 바로잡곤, 존경하는 변호인처럼 순진하지 않고서야 그 두 범주의 사건 사이에 깊고, 비장하고, 본질적인 상관관계가 있다는 걸 놓칠 수 없다고 말했다. 검사는 힘차게 외쳤다. “그렇습니다! 저는 피고인에게 범죄자의 마음으로 어머니를 묻은 죄책을 묻고자 합니다.” 방청객들은 이 발언에 강한 인상을 받은 모양이었다. 변호인은 어깨를 으쓱이며 이마를 뒤덮은 땀을 닦아냈다. 변호인조차 동요한 모습이었다. 나는 일이 내게 불리하게 돌아간다는 걸 깨달았다.

 

 

일단 여기까지였다. 법정을 나와 호송차에 탑승하며 여름 저녁의 냄새와 색깔을 잠시나마 다시 발견했다. 바퀴 달린 감방의 어둠 속에서, 내가 사랑한 도시가 들려주는 모든 친숙한 소리와, 간혹 만족감을 느끼던 어떤 시간이 되면 찾아오는 소리를, 깊은 피곤에서 건져내듯 하나하나 되찾았다. 나른한 대기로 퍼지는 신문팔이들의 외침, 공원에 남은 마지막 새들, 샌드위치 장수들의 부름, 도시의 높은 굽잇길을 지나는 트램들의 우는소리, 그리고 밤이 항구 위로 기울기 전에 하늘이 자아내는 웅성거림. 눈먼 채 도시를 돌아다니는 기분이었다. 교도소에 들어가기 전까진 참 익숙했는데. 그래, 오래전 일이지만 내가 만족감을 느끼던 시간이었다. 그럼 가볍고 꿈도 없는 잠이 늘 나를 기다렸다. 그런데 무언가가 변했다. 다음 날을 기다리던 내가 마주한 건 감방이었으니까. 여름 하늘에 그어진 낯익은 길이 무구한 잠으로 인도해 줄 수 있듯이, 교도소로도 인도해 줄 수 있었다.

 


Deuxième partie

 

III (continue)

 

Quand est venu le tour de Thomas Pérez, un huissier a dû le soutenir jusqu'à la barre. Pérez a dit qu'il avait surtout connu ma mère et qu'il ne m'avait vu qu'une fois, le jour de l'enterrement. On lui a demandé ce que j'avais fait ce jour-là et il a répondu : « Vous comprenez, moi-même j'avais trop de peine. Alors, je n'ai rien vu. C'était la peine qui m'empêchait de voir. Parce que c'était pour moi une très grosse peine. Et même, je me suis évanoui. Alors, je n'ai pas pu voir Monsieur. » L'avocat général lui a demandé si, du moins, il m'avait vu pleurer. Pérez a répondu que non. Le procureur a dit alors à son tour : « MM. les jurés apprécieront. » Mais mon avocat s'est fâché. Il a demandé à Pérez, sur un ton qui m'a semblé exagéré, « s'il avait vu que je ne pleurais pas ». Pérez a dit : « Non. » Le public a ri. Et mon avocat, en retroussant une de ses manches, a dit d'un ton péremptoire : « Voilà l'image de ce procès. Tout est vrai et rien n'est vrai ! » Le procureur avait le visage ferme et piquait un crayon dans les titres de ses dossiers.

 

 

Après cinq minutes de suspension pendant lesquelles mon avocat m'a dit que tout allait pour le mieux, on a entendu Céleste qui était cité par la défense. La défense, c'était moi. Céleste jetait de temps en temps des regards de mon côté et roulait un panama entre ses mains. Il portait le costume neuf qu'il mettait pour venir avec moi, certains dimanches, aux courses de chevaux. Mais je crois qu'il n'avait pas pu mettre son col parce qu'il portait seulement un bouton de cuivre pour tenir sa chemise fermée. On lui a demandé si j'étais son client et il a dit : « Oui, mais c'était aussi un ami » ; ce qu'il pensait de moi et il a répondu que j'étais un homme ; ce qu'il entendait par là et il a déclaré que tout le monde savait ce que cela voulait dire ; s'il avait remarqué que j'étais renfermé et il a reconnu seulement que je ne parlais pas pour ne rien dire. L'avocat général lui a demandé si je payais régulièrement ma pension. Céleste a ri et il a déclaré : « C'étaient des détails entre nous. » On lui a demandé encore ce qu'il pensait de mon crime. Il a mis alors ses mains sur la barre et l'on voyait qu'il avait préparé quelque chose. Il a dit : « Pour moi, c'est un malheur. Un malheur, tout le monde sait ce que c'est. Ça vous laisse sans défense. Eh bien ! pour moi c'est un malheur. » Il allait continuer, mais le président lui a dit que c'était bien et qu'on le remerciait. Alors Celeste est resté un peu interdit. Mais il a déclaré qu'il voulait encore parler. On lui a demandé d'être bref. Il a encore répété que c'était un malheur. Et le président lui a dit : « Oui, c'est entendu. Mais nous sommes là pour juger les malheurs de ce genre. Nous vous remercions. » Comme s'il était arrivé au bout de sa science et de sa bonne volonté, Céleste s'est alors retourné vers moi. Il m'a semblé que ses yeux brillaient et que ses lèvres tremblaient. Il avait l'air de me demander ce qu'il pouvait encore faire. Moi, je n'ai rien dit, je n'ai fait aucun geste, mais c'est la première fois de ma vie que j'ai eu envie d'embrasser un homme. Le président lui a encore enjoint de quitter la barre. Céleste est allé s'asseoir dans le prétoire. Pendant tout le reste de l'audience, il est resté là, un peu penché en avant, les coudes sur les genoux, le panama entre les mains, à écouter tout ce qui se disait. Marie est entrée. Elle avait mis un chapeau et elle était encore belle. Mais je l'aimais mieux avec ses cheveux libres. De l'endroit où j'étais, je devinais le poids léger de ses seins et je reconnaissais sa lèvre inférieure toujours un peu gonflée. Elle semblait très nerveuse. Tout de suite, on lui a demandé depuis quand elle me connaissait. Elle a indiqué l'époque où elle travaillait chez nous. Le président a voulu savoir quels étaient ses rapports avec moi. Elle a dit qu'elle était mon amie. À une autre question, elle a répondu qu'il était vrai qu'elle devait m'épouser. Le procureur qui feuilletait un dossier lui a demandé brusquement de quand datait notre liaison. Elle a indiqué la date. Le procureur a remarqué d'un air indifférent qu'il lui semblait que c'était le lendemain de la mort de maman. Puis il a dit avec quelque ironie qu'il ne voudrait pas insister sur une situation délicate, qu'il comprenait bien les scrupules de Marie, mais (et ici son accent s'est fait plus dur) que son devoir lui commandait de s'élever au-dessus des convenances. Il a donc demandé à Marie de résumer cette journée où je l'avais connue. Marie ne voulait pas parler, mais devant l'insistance du procureur, elle a dit notre bain, notre sortie au cinéma et notre rentrée chez moi. L'avocat général a dit qu'à la suite des déclarations de Marie l'instruction, il avait consulté les programmes de cette date. Il a ajouté que Marie elle-même dirait quel film on passait alors. D'une voix presque blanche, en effet, elle a indiqué que c'était un film de Fernandel. Le silence était complet dans la salle quand elle a eu fini. Le procureur s'est alors levé, très grave et d'une voix que j'ai trouvée vraiment émue, le doigt tendu vers moi, il a articulé lentement : « Messieurs les jurés, le lendemain de la mort de sa mère, cet homme prenait des bains, commençait une liaison irrégulière, et allait rire devant un film comique. Je n'ai rien de plus à vous dire. » Il s'est assis, toujours dans le silence. Mais, tout d'un coup, Marie a éclaté en sanglots, a dit que ce n'était pas cela, qu'il y avait autre chose, qu'on la forçait à dire le contraire de ce qu'elle pensait, qu'elle me connaissait bien et que je n'avais rien fait de mal. Mais l'huissier, sur un signe du président, l'a emmenée et l'audience s'est poursuivie.

 

 

C'est à peine si, ensuite, on a écouté Masson qui a déclaré que j'étais un honnête homme « et qu'il dirait plus, j'étais un brave homme ». C'est à peine encore si on a écouté Salamano quand il a rappelé que j'avais été bon pour son chien et quand il a répondu à une question sur ma mère et sur moi en disant que je n'avais plus rien à dire à maman et que je l'avais mise pour cette raison à l'asile. « Il faut comprendre, disait Salamano, il faut comprendre. » Mais personne ne paraissait comprendre. On l'a emmené.

 

 

Puis est venu le tour de Raymond, qui était le dernier témoin. Raymond m'a fait un petit signe et a dit tout de suite que j'étais innocent. Mais le président a déclaré qu'on ne lui demandait pas des appréciations, mais des faits. Il l'a invité à attendre des questions pour répondre. On lui a fait préciser ses relations avec la victime. Raymond en a profité pour dire que c'était lui que cette dernière haïssait depuis qu'il avait giflé sa sœur. Le président lui a demandé cependant si la victime n'avait pas de raison de me haïr. Raymond a dit que ma présence à la plage était le résultat d'un hasard. Le procureur lui a demandé alors comment il se faisait que la lettre qui était à l'origine du drame avait été écrite par moi. Raymond a répondu que c'était un hasard. Le procureur a rétorqué que le hasard avait déjà beaucoup de méfaits sur la conscience dans cette histoire. Il a voulu savoir si c'était par hasard que je n'étais pas intervenu quand Raymond avait giflé sa maîtresse, par hasard que j'avais servi de témoin au commissariat, par hasard encore que mes déclarations lors de ce témoignage s'étaient révélées de pure complaisance. Pour finir, il a demandé à Raymond quels étaient ses moyens d'existence, et comme ce dernier répondait : « Magasinier », l'avocat général a déclaré aux jurés que de notoriété générale le témoin exerçait le métier de souteneur. J'étais son complice et son ami. Il s'agissait d'un drame crapuleux de la plus basse espèce, aggravé du fait qu'on avait affaire à un monstre moral. Raymond a voulu se défendre et mon avocat a protesté, mais on leur a dit qu'il fallait laisser terminer le procureur. Celui-ci a dit : « J'ai peu de chose à ajouter. Était-il votre ami ? » a-t-il demande à Raymond. « Oui, a dit celui-ci, c'était mon copain. » L'avocat général m'a posé alors la même question et j'ai regardé Raymond qui n'a pas détourné les yeux. J'ai répondu : « Oui. » Le procureur s'est alors retourné vers le jury et a déclaré : « Le même homme qui au lendemain de la mort de sa mère se livrait à la débauche la plus honteuse a tué pour des raisons futiles et pour liquider une affaire de mœurs inqualifiable. »

 

 

Il s'est assis alors. Mais mon avocat, à bout de patience, s'est écrié en levant les bras, de sorte que ses manches en retombant ont découvert les plis d'une chemise amidonnée : « Enfin, est-il accusé d'avoir enterré sa mère ou d'avoir tué un homme ? » Le public a ri. Mais le procureur s'est redressé encore, s'est drapé dans sa robe et a déclaré qu'il fallait avoir l'ingénuité de l'honorable défenseur pour ne pas sentir qu'il y avait entre ces deux ordres de faits une relation profonde, pathétique, essentielle. « Oui, s'est-il écrié avec force, j'accuse cet homme d'avoir enterré une mère avec un cœur de criminel. » Cette déclaration a paru faire un effet considérable sur le public. Mon avocat a haussé les épaules et essuyé la sueur qui couvrait son front. Mais lui-même paraissait ébranlé et j'ai compris que les choses n'allaient pas bien pour moi.

 

 

L'audience a été levée. En sortant du palais de justice pour monter dans la voiture, j'ai reconnu un court instant l'odeur et la couleur du soir d'été. Dans l'obscurité de ma prison roulante, j'ai retrouvé un à un, comme du fond de ma fatigue, tous les bruits familiers d'une ville que j'aimais et d'une certaine heure où il m'arrivait de me sentir content. Le cri des vendeurs de journaux dans l'air déjà détendu, les derniers oiseaux dans le square, l'appel des marchands de sandwiches, la plainte des tramways dans les hauts tournants de la ville et cette rumeur du ciel avant que la nuit bascule sur le port, tout cela recomposait pour moi un itinéraire d'aveugle, que je connaissais bien avant d'entrer en prison. Oui, c'était l'heure où, il y avait bien longtemps, je me sentais content. Ce qui m'attendait alors, c'était toujours un sommeil léger et sans rêves. Et pourtant quelque chose était changé puisque, avec l'attente du lendemain, c'est ma cellule que j'ai retrouvée. Comme si les chemins familiers tracés dans les ciels d'été pouvaient mener aussi bien aux prisons qu'aux sommeils innoc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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