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이방인 번역 2-2

이 번역은 1942년 갈리마르에서 출간된 L'étranger를 원본으로 삼으며, 때로 이휘영, 김화영, 이기언, 김예령, 이정서 번역을 참고한다.

 

한국에서 L'étranger 원본의 저작권은 소멸했다. 이 번역본은 무료로 배포 가능하다. 단, 영리 목적 사용은 불가능하며, 일부나 전부를 어떠한 형태로도 가공 내지 수정할 수 없다. 어차피 카뮈의 간결함을 한국어로 살려본답시고 내 멋대로 의역한 부분이 많아서 그렇게까지 신뢰할 만하진 않다.

 

 

제2부

 

II

 

결코 입 밖으로 꺼내고 싶지 않은 일들이 있다. 교도소에 들어오고 며칠 지나지 않아, 여기서 보낸 시간을 이야기하고 싶지 않게 되리란 걸 알게 됐다.

 

 

시간이 흐르자 그 거부감이 옅어졌다. 사실 교도소에 있던 첫 며칠간은 별로 실감이 나지 않았다. 마치 뭔 일이 터지지 않을까 기다리는 기분이었다. 마리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면회를 온 뒤 비로소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 마리 편지(아내가 아니라서 더 이상 면회 올 수 없단다)를 받은 날, 그날부터 이 감방이 내 집이자, 내 삶이 멈춘 곳이구나 싶었다. 체포 당일엔 다른 수감자들이 있는 방에 나를 가뒀다. 대부분 아랍인이었다. 그들은 나를 보더니 웃었다. 뭘 해서 들어오게 됐는지 물었다. 아랍인을 죽였다고 하자 다들 조용해졌다. 조금 뒤에 해가 졌다. 수감자들은 어떻게 거적을 이용해 잠자리를 만드는지 알려줬다. 한쪽을 둘둘 말아 베개 삼아 자면 됐다. 빈대들이 밤새도록 얼굴 위로 지나다녔다. 며칠 뒤 독방으로 격리됐다. 판자 침대에서 자야 했다. 용변용 양동이와 양철 대야도 있었다. 교도소는 도시 꼭대기에 있었고, 작은 창 너머로 바다가 보였다. 쇠창살에 기대어 빛을 향해 고개를 내밀던 어느 날, 교도관이 들어오더니 누가 면회 왔다고 알려줬다. 마리일 것 같았다. 마리였다.

 

 

긴 복도, 계단, 그리고 복도를 하나 더 지나 면회실에 도착했다. 매우 큰 공간이었다. 넓은 창 너머로 들어온 햇살이 면회실을 밝혔다. 두 개의 큰 철책이 면회실을 셋으로 길게 나누어 놓았다. 두 철책 사이로 8에서 10미터 정도의 간격이 있어 면회객과 수감자들을 갈라놓았다. 마리가 맞은편에서 보였다. 줄무늬 원피스에, 얼굴을 햇볕에 그을린 모습이었다. 내 쪽엔 십여 명의 수감자가 있었다. 대체로 아랍인들이었다. 마리는 무어 여성들한테 둘러싸였다. 그녀 양옆으로는 검은 복장에 입술을 꽉 다문 쪼그만 노파, 그리고 맨머리에 손짓을 많이 해가며 무척 큰 목소리로 말하는 뚱뚱한 여성. 철책 사이 거리 탓에 면회객들과 수감자들은 아주 크게 말해야 했다. 사람들 목소리가 텅 빈 벽에 반사되어 울렸다. 하늘에서 창문으로 흘러내린 억센 빛은 사방으로 튀어 올랐다. 면회실에 막 들어갔을 때 살짝 현기증이 날 지경이었다. 감방은 더 조용하고 어두웠다. 익숙해지기까지 몇 초 정도 걸렸다. 마침내 가득한 햇살 사이로 얼굴 하나하나가 선명하게 보였다. 둘러보니 철책 사이의 복도 끝에 교도관 한 명이 앉아 있었다. 아랍인 수감자들과 그 가족들은 대체로 웅크려 마주 앉았다. 그들은 소리치지 않았다. 소란에도 불구하고 나직한 목소리로 서로 대화를 나누었다. 밑에서부터 형성된 어렴풋한 속삭임은, 그들 머리 위로 교차하는 대화들에 대비되어 지속적인 저음부처럼 들렸다. 마리한테 다가가는 와중에 이 모든 걸 알아챘다. 마리는 벌써부터 철책에 몸을 기댄 채 있는 힘껏 웃어 보였다. 무척 아름다워 보였지만, 그 말을 어떻게 전할지 몰랐다.

 

 

“좀 어때?” 마리가 큰 소리로 말했다. “어떻긴, 이렇지.” “괜찮아? 더 필요한 건 없고?” “응, 전혀.”

 

 

우리는 말을 멈췄다. 마리는 여전히 웃었다. 뚱뚱한 여성은 내 옆 사람한테 소리 질렀다. 남편 같았다. 솔직해 보이는 인상의 키 큰 금발 남성이었다. 이미 대화가 한창이었다.

 

 

“잔느가 걘 마음에 안 든대.” 여성이 목이 터져라 소리쳤다. “응, 그렇구나.” 남성이 말했다. “당신이 나오면 걜 다시 데려갈 거라고 말했는데도 싫대.”

 

 

레몽이 안부를 전한다고 마리가 건너편에서 소리쳤다. 나는 “고마워.”라고 말했다. 하지만 옆 사람 목소리 때문에 말이 묻혔다. 옆 사람은 “좀 어때 보이는지” 물었다. 아내는 웃으며 “더할 나위 없이 좋아 보인다”고 말했다. 내 왼쪽엔 가녀린 손을 가진 키 작은 젊은이가 말없이 있었다. 아까의 쪼그만 노파와 마주 앉은 채였다. 둘은 깊은 눈길을 주고받았다. 그런데 마리가 내게 희망을 품으라고 소리치는 바람에 그들을 더 오래 관찰하진 못했다. 나는 “그래.”라고 말했다. 동시에 마리를 바라봤다. 마리 어깨를 원피스 위로 감싸고 싶었다. 그 얇은 천을 바랐다. 그밖에 무얼 더 희망해야 하는지 몰랐다. 마리가 여전히 웃는 걸 보니 마리도 그런 뜻이었나 보다. 마리의 반짝이는 치아와 눈가의 잔주름만 보였다. 마리는 다시금 “곧 나오게 될 거야. 그럼 우리 결혼하자!”라고 말했다. 나는 “과연 그렇게 될까?”라고 대답하긴 했지만 뭐라도 말하려고 한 말이었다. 그러자 마리는 여전히 큰 목소리로 그렇다며, 무죄가 선고될 거고, 다시 해수욕할 수 있을 거라고 매우 빠르게 말했다. 그런데 옆에 있던 여성이 바구니를 교도소 측에 맡겼다고 소리 질렀다. 뭐가 들어 있는지 하나하나 열거했다. 비싼 돈 준 거니 꼭 확인하라고 했다. 다른 편에 앉았던 젊은이는 여전히 자기 어머니와 마주 보았다. 아랍인들의 속삭임이 낮게 깔려 지속됐다. 밖에서 들어오는 빛이 창에 기대 부풀어 오르는 것처럼 보였다.

 

 

상태가 별로 안 좋아졌다. 이만 가고 싶었다. 소음 때문에 괴로웠다. 다른 한편으론 마리와 조금 더 오래 있고 싶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모르겠다. 마리는 자기 직장 이야기를 하면서 계속 미소 지었다. 속삭임, 외침, 대화가 교차했다. 내 옆에 있던 작은 젊은이와 노파의 눈길 주위로 침묵의 외딴섬이 형성됐다. 점차 아랍인들을 데려갔다. 첫 수감자를 데려가자마자 거의 모두 말을 멈췄다. 쪼그만 노파는 쇠창살로 다가섰다. 그 순간 교도관이 아들에게 돌아오라고 손짓했다. 젊은이는 “잘 들어가요, 엄마.”라고 말했다. 노파는 쇠창살 사이로 손을 내밀어 시간을 붙잡고 싶다는 듯이 아들에게 천천히, 작은 손짓을 했다.

 

 

노파가 떠나는 동안 모자를 손에 쥔 남성이 들어와 그 자리를 차지했다. 수감자가 한 명 나왔고, 둘은 활기차게 대화했다. 하지만 주위가 워낙 조용해서 둘은 작게 말했다. 오른 편에 있던 남성을 데리러 왔다. 아내는 더 이상 소리칠 필요가 없단 걸 눈치채지 못했단 듯이 여전히 큰 소리로 “몸 잘 챙기고, 조심해야 돼!”라고 말했다. 그리고 내 차례가 왔다. 마리는 손으로 키스를 보냈다. 면회실을 나서기 나는 뒤돌아봤다. 마리는 움직이지 않은 채 얼굴을 쇠창살에 바짝 붙여 여전히 어그러질 정도로 힘껏 미소 짓고 있었다.

 

 

얼마 후 마리 편지를 받았다. 그리고 그때부터 결코 입 밖으로 꺼내고 싶지 않은 일들이 시작됐다. 어차피 뭐든 과장해선 안 된다. 내가 남들보다 잘하는 게 있었다면 바로 과장하지 않는 거였다. 그런데 수감되고 얼마 지나지 않은 동안 나는 여전히 자유인처럼 사고했다. 그게 제일 힘들었다. 예를 들어 해변에서 노닐다가 바다로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발치에 와 닿는 첫 파도 소리, 물속에 몸을 담갔을 때의 촉감과 해방감을 상상하다 보면 감방을 둘러싼 벽이 얼마나 좁은지 순간 느껴졌다. 그런데 이런 기분도 몇 달 안 갔다. 그 이후론 온통 죄수처럼 사고했다. 마당에서 매일 하는 산책이나 변호인 접견을 기다렸다. 나머지 시간은 나름 잘 때웠다. 나더러 마른 그루터기 안에서 하늘에 핀 꽃이나 바라보며 살라고 했어도 결국엔 차츰 익숙해졌으리라는 생각을 자주 했다. 새들이 지나가거나 구름과 마주치길 기다렸을 거다. 마치 변호인이 매고 오는 이상한 넥타이를 기다렸듯, 다른 세계에서 마리 몸을 꼭 껴안을 수 있는 토요일을 기다렸듯. 어쨌든 잘 생각해보면, 난 그루터기에 갇힌 건 아니었다. 나만 못한 처지도 있었다. 결국 무엇이든 간에 익숙해지고 만다. 엄마 생각이었다. 자주 말씀하시던 생각이었다.

 

 

더구나 평소에도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는 건 아니었다. 처음 몇 달은 힘들었다. 그런데 이런저런 노력 덕분에 시간이 그럭저럭 지나갔다. 예컨대 여자가 그리워 괴로웠다. 젊었으니 당연했다. 마리만 생각했던 건 결코 아니다. 그냥 여자 생각이 몹시 났다. 여태까지 알았던 여성들, 여성들을 사랑했던 모든 장면이 어찌나 머리에 떠오르던지 감방이 여성들 얼굴과 내 욕망으로 가득 찼다. 어떤 면에선 불안정해질 정도였다. 한편 그러면서 시간을 죽이기도 했다. 마침내 취사 담당과 식사 시간마다 동행하던 교도관 대장하고 친분을 쌓았다. 여자 이야기는 교도관이 먼저 꺼낸 거였다. 수감자들이 여자 생각 때문에 보통 불만을 품기 시작한단다. 나도 불만이라고, 이런 취급은 부당한 것 같다고 말했다. 교도관은 말했다. “바로 그래서 범죄자들을 교도소로 보내는 거죠.” “뭔 말이에요?” “그렇다니까요, 자유가 그런 거예요. 그 자유를 빼앗는 거죠.”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점이었다. 나는 동의하며 말했다. “그렇네요. 그게 바로 형벌이겠죠?” “그렇죠. 뫼르소 씨야 이해가 되겠죠. 다른 수감자들은 이해를 잘 못 하거든요. 결국 알아서들 해결하지만.” 그러곤 교도관은 떠났다.

 

 

담배도 문제였다. 교도소에 수감되자 벨트, 구두끈, 넥타이, 주머니에 든 물건 전부, 무엇보다 담배를 빼앗겼다. 감방에 갇히고 나서 담배를 좀 돌려달라고 해봤다. 그럴 수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첫 며칠은 너무 힘들었다. 담배 때문에 정말 낙심한 것 같다. 침대 판자에서 뜯어낸 나뭇조각을 빨아대곤 했다. 온종일 끝없는 구역질에 시달렸다. 왜 아무한테도 해 될 게 없는 걸 못하게 하는지 이해가 안 갔다. 시간이 지나고 이것도 형벌의 일부라는 걸 알게 됐다. 그런데 그땐 이미 담배를 안 피우는 게 익숙해진 다음이었다. 나에겐 더 이상 형벌로서 의미는 없던 셈이다.

 

 

이런 불편한 점을 뺀다면 그렇게까지 힘들진 않았다. 결국 시간을 어떻게 죽이느냐가 문제였다. 지난날을 더듬어보기 시작하면서부턴 더 이상 지루하지 않았다. 가끔 내 방을 떠올렸다. 한쪽 구석에서 출발해 눈앞에 보이는 모든 물건을 머릿속으로 열거하며 한 바퀴 도는 상상을 했다. 처음엔 금방이었다. 그런데 다시 할 때마다 조금씩 길어졌다. 가구 하나하나가, 그 안에 담긴 물건 하나하나가, 모든 물건의 디테일이, 그중에서도 무늬, 균열, 잘린 모서리, 색깔, 표면의 결이 떠올라서. 동시에 이 머릿속 목록을 잊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무엇 하나 빼먹지 않고 열거하려 했다. 어찌나 열심히 했던지 몇 주 지나자 방에 뭐가 있는지 생각하며 몇 시간씩 보낼 수 있었다. 그리고 생각하면 할수록 평소에 간과했거나 잊었던 부분들이 새로이 떠올랐다. 단 하루만 살았던 사람이라도 교도소에서 큰 문제 없이 100년은 살 수 있겠단 사실을 깨달았다. 지루해하지 않을 만큼 추억거리가 있을 테니. 어쩌면 그게 이점이기도 했다.

 

 

잠도 문제였다. 처음엔 밤에 잠이 잘 안 왔고, 낮에는 전혀 잘 수 없었다. 차차 밤에 잠이 잘 오기 시작했고, 낮에도 잘 수 있었다. 마지막 몇 달간은 하루에 16시간에서 18시간씩 잠만 잤달까. 남은 6시간은 식사, 용변, 회상, 체코슬로바키아 사람 이야기로 때웠다.

 

 

매트와 침대 판자 사이에 오래된 신문 조각을 찾은 참이었다. 천에 거의 달라붙어 누렇게 변색됐고 앞뒤가 비칠 정도였다. 사건·사고에 실린 기사였다. 도입부가 빠져 있었는데, 보아하니 체코슬로바키아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체코 마을에 살던 남성이 돈을 벌려 마을을 떠났다. 25년 뒤에 부자가 되어 아내와 아이를 데리고 돌아왔다. 남성의 어머니와 누이는 고향 마을에서 여관을 운영하는 중이었다. 남성은 어머니와 누이를 놀래려고 아내와 아이를 다른 곳에 머무르게 한 채 혼자 어머니네 여관으로 갔다. 여관으로 들어갔는데 어머니가 남성을 못 알아봤다. 남성은 장난삼아 객실 하나를 잡았다. 수중에 든 자기 재산을 보여줬다. 밤중에 어머니와 누이는 재산을 훔치려 남성을 망치로 때려죽인 후 시체를 강물에다 던져버렸다. 다음 날 아침 사정을 모르던 아내가 여관으로 찾아가서 여행객의 신분을 밝혔다. 어머니는 목을 맸다. 누이는 우물에 몸을 던졌다. 이 기사를 수천 번은 읽었을 거다. 한편으론 믿기지 않았고, 다른 한편으론 당연하다 싶었다. 결국 자업자득인 면도 있다고 생각했다. 절대 장난을 치면 안 된다.

 

 

여하간 수면, 회상, 신문 기사, 빛과 어둠의 교차 사이로 시간은 흘렀다. 교도소에 있다 보면 시간관념을 잃게 된다는 글을 분명 읽은 적이 있다. 그런데 나한텐 별 의미가 없었다. 하루가 얼마나 길면서도 동시에 짧을 수 있는지 미처 몰랐었다. 분명 살아가기에 너무 길긴 했지만, 어찌나 늘어지던지 하루가 다른 하루의 경계를 허물 정도였다. 하루하루가 이름을 잃어갔다. 내겐 오로지 어제와 내일이라는 단어만이 의미를 가졌다.

 

 

어느 날 교도관이 내가 수감된 지 5개월째 됐다고 말했다. 사실이겠거니 했지만 잘 이해가 안 갔다. 어차피 감방 안에선 늘 같은 하루가 펼쳐졌고, 언제나 같은 일만 반복했다. 바로 그날, 교도관이 떠나고 나서 쇠그릇에 비친 내 얼굴을 봤다. 그릇을 바라보고 웃으려고 노력해봐도 그저 심각해 보이기만 했다. 거울을 앞에 든 채 흔들어 보았다. 미소 지었지만 여전히 엄숙하고 슬픈 표정만 되돌아왔다. 하루가 저물어 갔고, 언급하기 싫은 시간이 되었다. 이름 없는 시간이었다. 저녁의 소리가 침묵의 행렬로 교도소 각층을 올라탔다. 천창으로 다가가 마지막 빛을 빌려 내 모습을 다시 한 번 봤다. 여전히 굳은 얼굴이었다. 어차피 나도 그 순간엔 심각했으니 별로 놀랄 일도 아니지? 그런데 동시에, 몇 달 만에 처음으로 내 목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이미 오래전부터 내 귀에 울려 퍼지던 소리였는데, 혼잣말이었단 걸 깨달았다. 그 순간 엄마 장례식 날 간호사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결국 막다른 길이었다. 그리고 누구도 교도소 안에서 맞이하는 저녁이 어떤지 상상할 수 없을 게다.

 

 


Deuxième partie

 

II

 

Il y a des choses dont je n'ai jamais aimé parler. Quand je suis entré en prison, j'ai compris au bout de quelques jours que je n'aimerais pas parler de cette partie de ma vie.

 

 

Plus tard, je n'ai plus trouvé d'importance à ces répugnances. En réalité, je n'étais pas réellement en prison les premiers jours : j'attendais vaguement quelque événement nouveau. C'est seulement après la première et la seule visite de Marie que tout a commencé. Du jour où j'ai reçu sa lettre (elle me disait qu'on ne lui permettait plus de venir parce qu'elle n'était pas ma femme), de ce jour-là, j'ai senti que j'étais chez moi dans ma cellule et que ma vie s'y arrêtait. Le jour de mon arrestation, on m'a d'abord enfermé dans une chambre où il y avait déjà plusieurs détenus, la plupart des Arabes. Ils ont ri en me voyant. Puis ils m'ont demandé ce que j'avais fait. J'ai dit que j'avais tué un Arabe et ils sont restés silencieux. Mais un moment après, le soir est tombé. Ils m'ont expliqué comment il fallait arranger la natte où je devais coucher. En roulant une des extrémités, on pouvait en faire un traversin. Toute la nuit, des punaises ont couru sur mon visage. Quelques jours après, on m'a isolé dans une cellule où je couchais sur un bat-flanc de bois. J'avais un baquet d'aisances et une cuvette de fer. La prison était tout en haut de la ville et, par une petite fenêtre, je pouvais voir la mer. C'est un jour que j'étais agrippé aux barreaux, mon visage tendu vers la lumière, qu'un gardien est entré et m'a dit que j'avais une visite. J'ai pensé que c'était Marie. C'était bien elle.

 

 

J'ai suivi pour aller au parloir un long corridor, puis un escalier et pour finir un et pour finir un autre couloir. Je suis entré dans une très grande salle éclairée par une vaste baie. La salle était séparée en trois parties par deux grandes grilles qui la coupaient dans sa longueur. Entre les deux grilles se trouvait un espace de huit à dix mètres qui séparait les visiteurs des prisonniers. J'ai aperçu Marie en face de moi avec sa robe à raies et son visage bruni. De mon côté, il y avait une dizaine de détenus, des Arabes pour la plupart. Marie était entourée de Mauresques et se trouvait entre deux visiteuses : une petite vieille aux lèvres serrées, habillée de noir, et une grosse femme en cheveux qui parlait très fort avec beaucoup de gestes. À cause de la distance entre les grilles, les visiteurs et les prisonniers étaient obligés de parler très haut. Quand je suis entré, le bruit des voix qui rebondissaient contre les grands murs nus de la salle, la lumière crue qui coulait du ciel sur les vitres et rejaillissait dans la salle, me causèrent une sorte d'étourdissement. Ma cellule était plus calme et plus sombre. Il m'a fallu quelques secondes pour m'adapter. Pourtant, j'ai fini par voir chaque visage avec netteté, détaché dans le plein jour. J'ai observé qu'un gardien se tenait assis à l'extrémité du couloir entre les deux grilles. La plupart des prisonniers arabes ainsi que leurs familles s'étaient accroupis en vis-à-vis. Ceux-là ne criaient pas. Malgré le tumulte, ils parvenaient à s'entendre en parlant très bas. Leur murmure sourd, parti de plus bas, formait comme une basse continue aux conversations qui s'entrecroisaient au-dessus de leurs têtes. Tout cela, je l'ai remarqué très vite en m'avançant vers Marie. Déjà collée contre la grille, elle me souriait de toutes ses forces. Je l'ai trouvée très belle, mais je n'ai pas su le lui dire.

 

 

« Alors ? » m'a-t-elle dit très haut. « Alors, voilà. - Tu es bien, tu as tout ce que tu veux ? - Oui, tout. »

 

 

Nous nous sommes tus et Marie souriait toujours. La grosse femme hurlait vers mon voisin, son mari sans doute, un grand type blond au regard franc. C'était la suite d'une conversation déjà commencée.

 

 

« Jeanne n'a pas voulu le prendre » criait-elle à tue-tête. « Oui, oui », disait l'homme. « Je lui ai dit que tu le reprendrais en sortant, mais elle n'a pas voulu le prendre. »

 

 

Marie a crié de son côté que Raymond me donnait le bonjour et j'ai dit : « Merci. » Mais ma voix a été couverte par mon voisin qui a demandé « s'il allait bien ». Sa femme a ri en disant « qu'il ne s'était jamais mieux porté ». Mon voisin de gauche, un petit jeune homme aux mains fines, ne disait rien. J'ai remarqué qu'il était en face de la petite vieille et que tous les deux se regardaient avec intensité. Mais je n'ai pas eu le temps de les observer plus longtemps parce que Marie m'a crié qu'il fallait espérer. J'ai dit : « Oui. » En même temps, je la regardais et j'avais envie de serrer son épaule par-dessus sa robe. J'avais envie de ce tissu fin et je ne savais pas très bien ce qu'il fallait espérer en dehors de lui. Mais c'était bien sans doute ce que Marie voulait dire parce qu'elle souriait toujours. Je ne voyais plus que l'éclat de ses dents et les petits plis de ses yeux. Elle a crié de nouveau : « Tu sortiras et on se mariera ! » J'ai répondu : « Tu crois ? » mais c'était surtout pour dire quelque chose. Elle a dit alors ces vite et toujours très haut que oui, que je serais acquitté et qu'on prendrait encore des bains. Mais l'autre femme hurlait de son côté et disait qu'elle avait laissé un panier au greffe. Elle énumérait tout ce qu'elle y avait mis. Il fallait vérifier, car tout cela coûtait cher. Mon autre voisin et sa mère se regardaient toujours. Le murmure des Arabes continuait au-dessous de nous. Dehors la lumière a semblé se gonfler contre la baie.

 

 

Je me sentais un peu malade et j'aurais voulu partir. Le bruit me faisait mal. Mais d'un autre côté, je voulais profiter encore de la présence de Marie. Je ne sais pas combien de temps a passé. Marie m'a parlé de son travail et elle souriait sans arrêt. Le murmure, les cris, les conversations se croisaient. Le seul îlot de silence était à côté de moi dans ce petit jeune homme et cette vieille qui se regardaient. Peu à peu, on a emmené les Arabes. Presque tout le monde s'est tu dès que le premier est sorti. La petite vieille s'est rapprochée des barreaux et, au même moment, un gardien a fait signe à son fils. Il a dit : « Au revoir, maman » et elle a passé sa main entre deux barreaux pour lui faire un petit signe lent et prolongé.

 

 

Elle est partie pendant qu'un homme entrait, le chapeau à la main, et prenait sa place. On a introduit un prisonnier et ils se sont parlé avec animation, mais à demi-voix, parce que la pièce était redevenue silencieuse. On est venu chercher mon voisin de droite et sa femme lui a dit sans baisser le ton comme si elle n'avait pas remarqué qu'il n'était plus nécessaire de crier : « Soigne-toi bien et fais attention. » Puis est venu mon tour. Marie a fait signe qu'elle m'embrassait. Je me suis retourné avant de disparaître. Elle était immobile, le visage écrasé contre la grille, avec le même sourire écartelé et crispé.

 

 

C'est peu après qu'elle m'a écrit. Et c'est à partir de ce moment qu'ont commencé les choses dont je n'ai jamais aimé parler. De toute façon, il ne faut rien exagérer et cela m'a été plus facile qu'à d'autres. Au début de ma détention, pourtant, ce qui a été le plus dur, c'est que j'avais des pensées d'homme libre. Par exemple, l'envie me prenait d'être sur une plage et de descendre vers la mer. À imaginer le bruit des premières vagues sous la plante de mes pieds, l'entrée du corps dans l'eau et la délivrance que j'y trouvais, je sentais tout d'un coup combien les murs de ma prison étaient rapprochés. Mais cela dura quelques mois. Ensuite, je n'avais que des pensées de prisonnier. J'attendais la promenade quotidienne que je faisais dans la cour ou la visite de mon avocat. Je m'arrangeais très bien avec le reste de mon temps. J'ai souvent pensé alors que si l'on m'avait fait vivre dans un tronc d'arbre sec, sans autre occupation que de regarder la fleur du ciel au-dessus de ma tête, je m'y serais peu à peu habitué. J'aurais attendu des passages d'oiseaux ou des rencontres de nuages comme j'attendais ici les curieuses cravates de mon avocat et comme, dans un autre monde, je patientais jusqu'au samedi pour étreindre le corps de Marie. Or, à bien réfléchir, je n'étais pas dans un arbre sec. Il y avait plus malheureux que moi. C'était d'ailleurs une idée de maman, et elle le répétait souvent, qu'on finissait par s'habituer à tout.

 

 

Du reste, je n'allais pas si loin d'ordinaire. Les premiers mois ont été durs. Mais justement l'effort que j'ai dû faire aidait à les passer. Par exemple, j'étais tourmenté par le désir d'une femme. C'était naturel, j'étais jeune. Je ne pensais jamais à Marie particulièrement. Mais je pensais tellement à une femme, aux femmes, à toutes celles que j'avais connues, à toutes les circonstances où je les avais aimées, que ma cellule s'emplissait de tous les visages et se peuplait de mes désirs. Dans un sens, cela me déséquilibrait. Mais dans un autre, cela tuait le temps. J'avais fini par gagner la sympathie du gardien-chef qui accompagnait à l'heure des repas le garçon de cuisine. C'est lui qui, d'abord, m'a parlé des femmes. Il m'a dit que c'était la première chose dont se plaignaient les autres. Je lui ai dit que j'étais comme eux et que je trouvais ce traitement injuste. « Mais, a-t-il dit, c'est justement pour ça qu'on vous met en prison. - Comment, pour ça ? - Mais oui, la liberté, c'est ça. On vous prive de la liberté. » Je n'avais jamais pensé à cela. Je l'ai approuvé : « C'est vrai, lui ai-je dit, où serait la punition ? - Oui, vous comprenez les choses, vous. Les autres non. Mais ils finissent par se soulager eux-mêmes. » Le gardien est parti ensuite.

 

 

Il y a eu aussi les cigarettes. Quand je suis entré en prison, on m'a pris ma ceinture, mes cordons de souliers, ma cravate et tout ce que je portais dans mes poches, mes cigarettes en particulier. Une fois en cellule, j'ai demandé qu'on me les rende. Mais on m'a dit que c'était défendu. Les premiers jours ont été très durs. C'est peut-être cela qui m'a le plus abattu. Je suçais des morceaux de bois que j'arrachais de la planche de mon lit. Je promenais toute la journée une nausée perpétuelle. Je ne comprenais pas pourquoi on me privait de cela qui ne faisait de mal à personne. Plus tard, j'ai compris que cela faisait partie aussi de la punition. Mais à ce moment-là, je m'étais habitué à ne plus fumer et cette punition n'en était plus une pour moi.

 

 

À part ces ennuis, je n'étais pas trop malheureux. Toute la question, encore une fois, était de tuer le temps. J'ai fini par ne plus m'ennuyer du tout à partir de l'instant où j'ai appris à me souvenir. Je me mettais quelquefois à penser à ma chambre et, en imagination, je partais d'un coin pour y revenir en dénombrant mentalement tout ce qui se trouvait sur mon chemin. Au début, c'était vite fait. Mais chaque fois que je recommençais, c'était un peu plus long. Car je me souvenais de chaque meuble, et, pour chacun d'entre eux, de chaque objet qui s'y trouvait et, pour chaque objet, de tous les détails et pour les détails eux-mêmes, une incrustation, une fêlure ou un bord ébréché, de leur couleur ou de leur grain. En même temps, j'essayais de ne pas perdre le fil de mon inventaire, de faire une énumération complète. Si bien qu'au bout de quelques semaines, je pouvais passer des heures, rien qu'à dénombrer ce qui se trouvait dans ma chambre. Ainsi, plus je réfléchissais et plus de choses méconnues et oubliées je sortais de ma mémoire. J'ai compris alors qu'un homme qui n'aurait vécu qu'un seul jour pourrait sans peine vivre cent ans dans une prison. Il aurait assez de souvenirs pour ne pas s'ennuyer. Dans un sens, c'était un avantage.

 

 

Il y avait aussi le sommeil. Au début, je dormais mal la nuit et pas du tout le jour. Peu à peu, mes nuits ont été meilleures et j'ai pu dormir aussi le jour. Je peux dire que, dans les derniers mois, je dormais de seize à dix-huit heures par jour. Il me restait alors six heures à tuer avec les repas, les besoins naturels, mes souvenirs et l'histoire du Tchécoslovaque.

 

 

Entre ma paillasse et la planche du lit, j'avais trouvé, en effet, un vieux morceau de journal presque collé à l'étoffe, jauni et transparent. Il relatait un fait divers dont le début manquait, mais qui avait dû se passer en Tchécoslovaquie. Un homme était parti d'un village tchèque pour faire fortune. Au bout de vingt-cinq ans, riche, il était revenu avec une femme et un enfant. Sa mère tenait un hôtel avec sa sœur dans son village natal. Pour les surprendre, il avait laissé sa femme et son enfant dans un autre établissement, était allé chez sa mère qui ne l'avait pas reconnu quand il était entré. Par plaisanterie, il avait eu l'idée de prendre une chambre. Il avait montré son argent. Dans la nuit, sa mère et sa sœur l'avaient assassiné à coups de marteau pour le voler et avaient jeté son corps dans la rivière. Le matin, la femme était venue, avait révélé sans le savoir l'identité du voyageur. La mère s'était pendue. La sœur s'était jetée dans un puits. J'ai dû lire cette histoire des milliers de fois. D'un côté, elle était invraisemblable. D'un autre, elle était naturelle. De toute façon, je trouvais que le voyageur l'avait un peu mérité et qu'il ne faut jamais jouer.

 

 

Ainsi, avec les heures de sommeil, les souvenirs, la lecture de mon fait divers et l'alternance de la lumière et de l'ombre, le temps a passé. J'avais bien lu qu'on finissait par perdre la notion du temps en prison. Mais cela n'avait pas beaucoup de sens pour moi. Je n'avais pas compris à quel point les jours pouvaient être à la fois longs et courts. Longs à vivre sans doute, mais tellement distendus qu'ils finissaient par déborder les uns sur les autres. Ils y perdaient leur nom. Les mots hier ou demain étaient les seuls qui gardaient un sens pour moi.

 

 

Lorsqu'un jour, le gardien m'a dit que j'étais la depuis cinq mois, je l'ai cru, mais je ne l'ai pas compris. Pour moi, c'était sans cesse le même jour qui déferlait dans ma cellule et la même tâche que je poursuivais. Ce jour-là, après le départ du gardien, je me suis regardé dans ma gamelle de fer. Il m'a semblé que mon image restait sérieuse alors même que j'essayais de lui sourire. Je l'ai agitée devant moi. J'ai souri et elle a gardé le même air sévère et triste. Le jour finissait et c'était l'heure dont je ne veux pas parler, l'heure sans nom, où les bruits du soir montaient de tous les étages de la prison dans un cortège de silence. Je me suis approché de la lucarne et, dans la dernière lumière, j'ai contemplé une fois de plus mon image. Elle était toujours sérieuse, et quoi d'étonnant puisque, à ce moment, je l'étais aussi ? Mais en même temps et pour la première fois depuis des mois, j'ai entendu distinctement le son de ma voix. Je l'ai reconnue pour celle qui résonnait déjà depuis de longs jours à mes oreilles et j'ai compris que pendant tout ce temps j'avais parlé seul. Je me suis souvenu alors de ce que disait l'infirmière à l'enterrement de maman. Non, il n'y avait pas d'issue et personne ne peut imaginer ce que sont les soirs dans les prisons.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