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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학생회 반성폭력학생회칙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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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개정 반성폭력학생회칙(2013) 비판
1. 총체적 평가
2013년 9월 27일 개정된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학생회 반성폭력학생회칙(다음부터 ‘개정 반성폭력회칙’)은 많은 이야깃거리를 남겼습니다. 성폭력 개념에서 성적 언동을 제외한 성별권력관계에 기반한 행위를 제외했으며, 피해자 중심주의를 폐기했습니다. 사실 이런 점은 일부분에 불과합니다. 개정 반성폭력회칙은 조문들의 논리적 위계를 강화했으며 사건 처리 절차를 보다 명백히 규정해놓았습니다.
이외에도 상당수 법적 개념 도입이 눈에 들어옵니다. 예를 들어 ‘가해피의자’, ‘귀책사유’, ‘명시적 동의’ 등이 있습니다. 다른 한편 반성폭력운동에서는 볼 수 없었던 개념들 역시 다수 포함되었습니다. ‘개개인의 안전’, ‘성차별주의’, ‘침해로부터 보호’, ‘직접적이고 적극적인 침해’ 등입니다. 이런 개념의 도입이 실제로 어떤 효과를 나타낼지는 두고 봐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개정 반성폭력회칙에 대한 포괄적인 평가는 새 개념이 어떻게 성폭력 사건 해결 과정에서 작동하고 관여했는지 분석하는 작업도 수반해야 할 것입니다.
‘성차별주의’가 기존에 볼 수 없었던 개념이라는 점에 의아해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반성폭력 자치규약들은 현상으로서 ‘성차별’을 지적하는 경우는 있어도 원인으로서 ‘성차별주의’를 언급하는 경우는 드뭅니다. 이건 ‘성차별주의(sexism)’이라는 개념이 낯선 까닭도 있겠지만 기존 운동이 주로 ‘남성중심주의’나 ‘가부장제’ 등의 용어를 보다 선호한 까닭일 것입니다. 이들 용어를 제쳐두고 ‘성차별주의’를 채택하는 데 어느 정도의 고려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느 쪽으로 보든 무의미한 변화는 아닐 것이라고 판단합니다.
이외 특기사항은 피해자의 인적 사항 보호에 관한 사항이 조항으로 명시되어 있지 않고 2차 가해에 대한 해설 단계로 내려갔다는 점입니다. 인적 사항 보호는 사건 처리를 관통하는 사항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조금 이례적으로 보입니다. 또 하나 특기사항은 사건 신고를 공론화와 동일시한다는 점입니다. 기존 반성폭력 대책위원회나 학교 성폭력상담소 등이 사건에 따라 공론화 없이 당사자들 사이에서만 처리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는 점을 볼 때, 이런 동일시는 의외입니다. 물론 ‘공론화’에 대한 개념정의 자체가 다르다고 평가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마지막 특기사항은 사건 처리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가 피해자의 공동체 복귀나 치유가 아니라 공동체의 상호신뢰로 보인다는 점입니다(제10조 제2항 해설). 아마 이 부분이 기존 자치규약과 개정 반성폭력회칙의 가장 큰 차이 중 하나가 아닐까 싶습니다.
여하간 워낙 변한 부분이 많기에 이들 모두를 다루는 것은 제 능력 밖으로 여겨집니다. 때문에 저는 개정 반성폭력회칙의 성폭력 개념 정의를 중심적으로 비판적인 논의를 이어나가겠습니다.
2. 개정 반성폭력회칙상 성폭력 개념 정의
제5조 (성폭력의 개념) 성폭력은 상대의 동의를 받지 않은 성적 언동을 함으로써 한 인간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적극적이고 직접적으로 침해하고 인간의 존엄을 해치는 행위이다. 이는 일방적 신체 접촉, 성적으로 모욕적인 발언, 성적으로 불쾌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 등 유무형의 다양한 종류를 포괄한다. 당사자가 한 명인지 다수인지, 피해자가 성폭력이 있었음을 아는지 알지 못하는지는 성격 규정과 관련이 없다.
① (동의 없는 행동) 여기서 동의는 명시적 동의를 말한다. 해당 행위에 대한 명시적인 동의 이외에는 어떤 언행도 성적 행위에 대한 동의로 간주되어서는 안 된다. 피해자는 가해자에게 호의적인 태도를 보였거나, 가해자와 함께 술을 마시거나 숙박시설에 갔거나, 해당 행위 이외의 다른 성적 행위에 동의했다는 이유로 문제가 된 행위에 동의한 것으로 간주되지 않을 권리가 있다.
② (성적 언동) 성폭력은 폭력 가운데서 성적 언동을 통해 발생한 폭력을 말하며, 이는 단순히 성적 수치심을 불러일으키는 행동이나 성별권력관계에 기반한 행동과는 다른 개념이다.
③ (직접적이고 적극적인 침해) 성폭력은 성적 자기결정권을 직접적이고 적극적으로 침해하는 행위이다. 가령 성적 자기결정권을 제약하는 사회구조에 편승하거나 성적 자기결정권을 보호하기 위한 노력에 소홀한 것은 성폭력이 아니다. 그러나 특정 성을 모욕하고 성적 도구화하는 분위기를 조성하거나 이에 동조하는 일은 성폭력에 해당한다.
④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결과) 어떤 행위가 성폭력인지의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은 행위자의 의도가 아니라 피해자의 성적 자기결정권이 침해되었는지의 여부이다. 가해자에게 성적인 의도가 없었거나, 피해자를 비하•희롱하려는 의도가 아니었거나, 피해자의 동의가 있다고 생각했다는 이유로 사건을 성폭력이 아니라고 규정해서는 안 된다.
법조문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이 조항을 처음 접했을 때 조와 항의 관계 때문에 혼란스러울 것입니다. 왜 첫 번째 문단은 제1항으로 묶이지 않고, 항들과 별도의 위상을 갖는지에 관한 문제일 것입니다. 기존 회칙에도 존재하던 문제인데 그대로 계승되었습니다. 제5조에 한정하여 이를 보자면, 첫 번째 문단은 성폭력에 대한 일반 개념정의 규정이고, 제1항에서 제4항은 각각의 요건을 분설하는 관계라고 볼 수 있습니다. 바꿔 말하자면 제5조에 따른 성폭력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제1항에서 제4항이 모두 충족되어야 합니다.
제5조 “성폭력은 상대의 동의를 받지 않은 성적 언동을 함으로써 한 인간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적극적이고 직접적으로 침해하고 인간의 존엄을 해치는 행위이다”에 따른 성폭력이란 (1) 동의가 없는 (2) 성적 언동으로 (3) 적극적이고 직접적인 행위로서 (4) 성적 자기결정권 침해의 결과를 야기한 행위가 될 것입니다. 만약 (2), (3), (4)를 충족하더라도 동의가 있거나, (1), (3), (4)를 충족하더라도 성적 언동이 아니면 성폭력이 아니게 됩니다.
3. 개정 반성폭력회칙상 성폭력 개념의 취지와 한계
개정 반성폭력회칙은 기존 성폭력 개념이 너무 넓었기 때문에 이를 성적 언동으로 한정하려고 시도합니다(QnA 중 A4). 즉 제5조에서 살펴본 성폭력 개념 요소들 중에 핵심적인 부분은 (2) 성적 언동 부분입니다. 성별권력관계에 기반한 행위를 성폭력 정의에서 제외하는 조항이자 피해자 중심주의를 폐지하는 조항이기도 합니다. 제5조 제2항 해설은 “성폭력은 인간의 성이라는 특수한 대상에 관한 폭력이다”라고 하며 그 특성을 설명합니다.
성적 언동과 성적 언동이 아닌 성별권력관계에 기반한 행위를 나누는 기준이 무엇인지가 문제됩니다. 제5조 제2항 해설은 판단 기준을 명시하지는 않지만 “여성이 당한 폭력은 어떤 권리에 대한 것이든 모두 성폭력이라는 주장은, 이러한 특수한 맥락에서 권력관계를 상쇄하거나 피해 확산을 막기 위해 불가피하게 정당화되는 보호장치나 심리적 태도, 관념들을 그것들이 정당화될 수 없는 경우에까지 이용할 길을 열어준다”라는 부분을 보아서는 결국 어떤 권리에 대한 폭력인지를 기준으로 성적 언동과 그렇지 않은 행위를 구분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제5조 제3항과의 관계에서 보면, 여기서 권리는 성적 자기결정권을 의미한다고 볼 것입니다. 성폭력이란 여성이 당한 폭력 중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폭력이라고 정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성적 자기결정권에 관한 제4조의 해설을 보면 “성폭력이 아니라 해도, 성적 자기결정권을 억압하거나 부당하게 제한하는 것이나 어떤 식으로든 성에 근거해 차별하는 것은 인권 침해이다”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더라도 성폭력이 아닌 경우가 있는 셈입니다. 성적 자기결정권 침해를 기준으로 성폭력을 판단할 수 없다는 뜻이지요.
제5조 제2항과 제3항의 논리적 귀결상 성적 언동은 성적 자기결정권의 침해 여부에 달려있는데 제4조 해설에 따르면 성적 자기결정권의 침해는 성폭력을 정의해줄 수 없습니다. 개정 반성폭력회칙을 통틀어 보아도 ‘성적 언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게 됩니다. 개정 반성폭력회칙은 ‘성적 언동’이라는 개념을 새롭게 도입해서 기존 회칙과 차별을 두려고 했지만, 정작 그 시도가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하기는 힘들 것입니다.
4. 젠더 기반 폭력을 탈색한 개정 반성폭력회칙
왜 개정 반성폭력회칙은 ‘성적 언동’을 구분하는 데 실패했을까요? 아마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행위=성폭력’이라는 등식에 동의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지 않을까 싶습니다. 왜 이 등식에 동의하지 않는지는 알 수 없으나, 성적인 성격을 띤 행위들로 성폭력을 규정하는 거의 대다수의 경우는 이 등식에 동의합니다. 성적 성격을 띠었는지 아닌지 자체를 구분하는 기준이 성적 자기결정권과의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개정 반성폭력회칙의 태도는 과잉 방어로 보입니다.
논의를 진행하기 위해 개정 반성폭력회칙의 의도가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행위로 성폭력의 범위를 한정하려는 것이었다고 가정하겠습니다. 이런 시도 자체가 낯설진 않습니다. 한 번 성폭력 개념이 변한 역사적 과정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한국에서 처음 성폭력 개념이 도입되었을 당시 성폭력은 상당히 포괄적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성폭력은 인간의 양성 즉 남성과 여성 중 어느 한 성이 다른 성을 지배하고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말설하는 일체의 행위를 말한다. 그런데 현대 사회에서 성의 가해자는 남성, 피해자는 여성이다”(최영희, p. 7)와 같은 문구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때문에 한국 여성주의자들이 성폭력 개념을 점차 확대해왔다는 일각의 주장은 오해입니다. 이런 흐름은 1991년 큰 전환점을 맞게 됩니다.
성폭력특별법 제정을 둘러싸고 여성의 전화는 성폭력에 아내구타, 강간, 강제추행 등, 인신매매, 매매춘, 성적 희롱, 직장 내 여성구타 외에도 성차별적 대우와 정신적 폭력 등 여성이기 때문에 겪는 무형의 폭력을 포함하려고 했습니다(신상숙, p. 21). 반면 한국성폭력상담소는 성폭력을 강간, 성적 희롱, 추행 등 신체적 피해와 심리적으로 느끼는 불쾌감, 공포, 두려움으로 정의하게 됩니다(신상숙, p. 22).
전자와 같은 개념 규정을 통상 젠더 기반 폭력(gender-based violence)이라고 부릅니다. 후자는 성폭력을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모든 행위로 규정하는데, 1990년대 당시 성적 자기결정권은 꽤 생소한 개념이었습니다. 이 성적 자기결정권이란 “한 개인이 자기 자신의 섹슈얼리티와 연관된 문제들에 관하여 자유롭게 선택하고 결정하는 자율적인 주체라는 것을 인정하는 법-권리적 표현”(신상숙, p. 23) 정도로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정리하자면 성폭력을 젠더 기반 폭력으로 이해하는 견해와 섹슈얼리티 침해로 이해하는 견해가 존재했습니다. 논의 끝에 성폭력을 성적 자기결정권 침해로 이해하는 견해대로 성폭력특별법이 제정되었습니다. 젠더 기반 폭력이되 성적 의미를 지녔다고 보기 힘든 가정폭력과 성매매 등은 빠지게 되었습니다. 비록 맥락은 다르지만 개정 반성폭력회칙도 결론적으로는 당시 한국성폭력상담소가 취했던 입장이나, 제정된 성폭력특별법과 비슷한 양상을 보인 셈입니다.
성폭력특별법과 그 부수된 현상들은 즉시 한계를 보이기 시작합니다. 성적 의미를 특화해서 성폭력을 정의했는데 이것이 성기와 성교를 중심으로만 사고가 되고 도리어 여성의 정조권 보호를 위해 작동하는 모습까지 보인 것이지요(변혜정, p. 47). 제도화된 성폭력은 법적인 해결에 초점을 맞추면서 ‘폭력’ 부분을 강조하게 되고 피해자의 경험이나 감정보다는 극심한 피해사실과 그 심각성을 부각시키기에 이릅니다.
그에 대한 대응으로서 여성주의 운동 역시 남성의 폭력을 강조하기 위해 그 대상을 무력화시키는 전략을 구상하게 되고, 그 결과가 동질적인 피해자 여성이었습니다(변혜정, p. 48). 이 악순환이 오늘날 어디에 이르렀는지 확인해보기는 쉽습니다. 성폭력은 날이 갈수록 탈맥락화되고, 악마화되며 성폭력에 대한 사회 전반의 인식이 개선되기보다는 가해자에 대한 처벌과 징계의 수위만 높아지는 형국입니다.
법이 성폭력을 처벌하고, 그 수위를 높이니까 성폭력은 그만큼 끔찍한 사회악으로 인식됨과 동시에 적어도 일정 수준에는 이르러야 성폭력이라고 볼 수 있는 이중적인 장치가 마련됩니다. 학내 반성폭력 운동도 이런 분위기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입니다.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되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사회적 낙인 효과가 수반되며, 자신을 피해자로 드러내는 것은 그만한 피해를 증명해야만 가능한 형국으로 흘러갑니다.
조금 더 부연설명을 하자면 현재 학내 반성폭력 담론이 맞이하는 사태는 성폭력에 대한 두 개 시선의 충돌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학내 반성폭력 운동은 성폭력특별법 제정과는 무관하게 젠더 기반 폭력을 성폭력으로 정의하는 기조 아래 있었습니다. 여기서 사회적으로 성폭력을 바라보는 시선과 학내 반성폭력 운동이 성폭력을 바라보는 시선 사이 격차가 생깁니다.
학내 반성폭력 운동의 관점에서 보면 성차별적 발언도 성폭력에 해당하고, 그런 발언을 한 자는 성폭력 가해자가 됩니다. 이때 가해자는 중죄인이나 파렴치한이 아니라, 성차별적 발언을 한 사람에 불과합니다.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 등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이지요. 반면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성폭력 개념 때문에 ‘성폭력 가해자’로 한 번 명명된 사람에 대해서는 온갖 부정적 인식과 시선을 보내게 됩니다. 가해자는 어떻게든 성폭력 사실을 부정하려고 들고, 사실관계 확인과 성폭력 개념은 자주 도마 위에 오르게 됩니다.
여기서 개정 반성폭력회칙이 취한 태도는 사회적 시선에 알맞은 범위 내로 성폭력 범위를 제한한 것입니다. 개정 의도는 제5조 제2항 해설에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제5조 제2항 해설은 성폭력 가해자에 대한 사회적 낙인을 언급하며, 성폭력에 그만큼 낙인효과가 있으니 이를 특수하게 취급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성폭력을 특수하게, 엄격하게 다루는 사회적 시선을 기본적으로 수용하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5. 후퇴로서 개정 반성폭력회칙
분명 지금의 반성폭력 담론이나 성폭력특별법, 학내 반성폭력 운동이 여러 한계를 드러내는 것은 맞습니다. 개정 반성폭력회칙은 이 위기상황에서 나름 해답을 제시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해답이 과연 작금의 한계를 극복하는 데 유용한지 의문입니다.
반성폭력 운동이 한계에 마주한 까닭 중 하나는 성폭력 개념이 기존 남성 위주 섹슈얼리티를 바꾸는 데에까지 나아가지 못했기 때문입니다(변혜정, p. 54). 여전히 성폭력 피해자는 법정과 사회에서 비난을 받곤 하며, 갖은 의심에 시달려야 합니다. 설령 성폭력을 섹슈얼리티 침해로 정의하는 것이 맞다 하더라도, 여성이 진정 주체적으로 섹슈얼리티를 향유하는 상황은 도래하지 않았습니다. 자기 섹슈얼리티가 사소화되거나 무시되는 상황을 문제제기할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반성의 초점은 오히려 성폭력 개념을 너무 좁게 정의하고, 성폭력을 심각한 범죄로만 한정시킨 제도화 전략, 성폭력특별법 제정 과정에서 찾아야 할 것입니다. 지금 당장 법 제도를 바꿀 수 없더라도, 그런 사회적 인식에 의존한 채 진행되어온 전략들을 되돌아볼 필요는 있겠지요. 나아가 과연 젠더와 섹슈얼리티를 구별해서 후자만을 위주로 성폭력을 사고하는 것이 그렇게 용이한가, 혹은 가능한가 짚어야 합니다. 섹슈얼리티에 대한 개념정의만 놓고 봐도 학자마다 천차만별이지요. 일각에서는 섹스, 젠더, 섹슈얼리티는 결국 수행적이기 때문에 모두 문화적으로 구성되며, 이들이 ‘젠더’로서 나타날 수 있다고 설명하기도 합니다(Butler).
미국 급진적 여성주의 진영에서 논의되었던 성폭력 개념 역시 여성이 남성으로부터 경험하는 학대, 강제, 완력의 모든 형태라고 정의됨과 동시에 일종의 권력 시스템으로서 여성을 통제하는 섹슈얼리티에 대한 분석과 일맥 상통한다고 평가됩니다. 실제로 성적 자기결정권 침해를 강간, 성적 희롱, 추행 등으로 한정시키지 않는 이상, ‘성적 자기결정권’이라는 개념만 가지고는 그 한계가 어디까지일지 가늠하기 힘듭니다.
젠더 기반 폭력이지만 섹슈얼리티에 대한 폭력은 아니라고 여겨지는 가정폭력만 해도 그렇습니다. 가정폭력은 사회적 권력관계를 쥐는 남편이 아내를 구타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질 때가 있는데, 이런 폭력행위를 젠더 기반 폭력으로서 성폭력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구타행위가 섹슈얼리티와 무관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이런 폭력이 피해자에게 특정한 섹슈얼리티를 투영하고 강요한 결과가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요? 피해자를 소극적이고 미약한 섹슈얼리티의 소유자로 덧씌우지 않는 가정폭력이 가능하냐는 것입니다. 이 지점에서 섹슈얼리티와 젠더의 구별이 가능한지, 혹은 가능하더라도 의미가 있는지 의문입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일상적으로 묻어 나오는 젠더 기반 폭력과 섹슈얼리티 통제 문제를 제기할 언어들을 개발하고, 그 피해들이 이야기될 수 있는 토대를 만드는 작업입니다. 성폭력의 범위를 축소하고 이를 개별적인 문제로 파악하려는 흐름에 맞서 다양한 성폭력의 맥락과 경험을 되살려 사회적 차별로서 성폭력, 공동체가 책임져야 하는 문제로서 성폭력을 새롭게 쟁점화해야 합니다. 그때서야 처벌 위주로 진행되는 현재의 성폭력특별법 흐름에 제동을 걸 수 있을 것입니다.
너무 추상적인 것 같아 조금 정리를 해보겠습니다. 반성폭력 운동은 강간이나 성폭력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어느 정도 바꾸는 데 일조했습니다. 예를 들어 정조가 있느냐 없느냐를 가지고 성폭력을 판단하지 않고, 친고죄를 폐지하고(과연 이것이 반성폭력 운동만의 성과인지에 대해서는 논의의 여지가 있습니다만), 부부 사이에도 성폭력을 인정하는 식으로 말입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오해(짧은 옷이 강간을 유발한다)나 의혹(꽃뱀 아니냐)은 끊이지 않고, 특수하고 심각한 몇 가지 성폭력 유형에만 집중하는 모양새입니다(친족 성폭력, 아동 성폭력, 장애인 성폭력 등).
지난 반성폭력 운동을 되돌아본다면 성폭력 개념을 성적인 행위들로 좁히려고 시도하다가 성폭력을 강간 등으로 협소하게 이해하는 사회적 분위기에 휩쓸려버린 기억이 있습니다. 오늘 반성폭력 운동을 하고, 성폭력 개념을 재구성한다는 건 이 실패지점들을 기억하고 남성중심적으로 편향된 섹슈얼리티에 개입할 수 있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다시 말해 기존 운동이 충분히 포섭하지 못했던 젠더/섹슈얼리티 문제와 경험들을 성폭력이라는 문제의식 안에 담아내고 성폭력을 악마화하려는 흐름에 맞서 이를 사회적인 문제로 다루려는 움직임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개정 반성폭력회칙은 지난 20년 동안 발견된 반성폭력 운동의 한계지점들을 극복하려고 하기보다는, 그 한계지점까지만을 자기 운동의 범주로 삼으려고 합니다. 오늘날 구분이 과연 가능한지조차 의문인 섹슈얼리티와 젠더를 새삼스럽게 분리하려고 하며, 1990년대 성폭력특별법 제정운동이 보였던 과오, 협소한 성폭력 범주 내에 자신을 가두는 과오를 되풀이하려는 중입니다. 개정 반성폭력회칙을 후퇴라고 평가하는 까닭입니다.
개정 반성폭력회칙도 반성폭력 운동의 이념을 계승해서 성폭력에 대한 사회적 해결, 공동체의 책임 등을 강조하고 성폭력이 심각한 피해를 준 행위에 국한된 것은 아니라고 강조합니다. 혹은 성폭력을 강간 등에만 국한시키는 사회적 시선에 동조하는 것도 아니고, 사회적 시선보다는 넓게 성폭력을 파악한다고 할지도 모릅니다. 저도 개정 반성폭력회칙이 여전히 성폭력을 사회구조적인 문제로 바라본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 해법으로 제시한 ‘성폭력 범위 축소’가 적절한 해결책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변혜정, “성폭력 개념에 대한 비판적 성찰: 반성폭력운동단체의 성정치학을 중심으로”, 한국여성학 vol. 20 no. 2, 2004.
신상숙, ”젠더, 섹슈얼리티, 폭력: 성폭력 개념사를 통해 본 여성인권의 정치학”, 페미니즘연구 vol. 8 no. 2, 2008.
최영희, “여자는 남자들의 먹이인가?”, 베틀 no. 11, 1985.
Butler, Judith, Gender Trouble, Routledge,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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