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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터섬

 

 

내가 일하는 사무실 벽에는 세계지도 하나가 붙어 있다.

 

그냥 멍하니 그 지도를 보면서 태평양은 참으로 넓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태평양 한 귀퉁이에 조그만 점으로 자리하고 있는 이스터섬을 보았다.

 

이스터섬,한번도 그 섬의 역사에 대해 관심을 가져본적이 없던 나는

 

처음으로 이스터섬의 역사를 찾아보았다.

 

모아이 석상으로 유명한 이스터섬은 대체 언제부터 사람이 살았고 그네들의 문명을 이루다 사라졌을까

 

그저 막연히, 또 발견이라는 용어를 쓰는 어느 유럽의 탐험가들의 표현이나 만나겠지 하고 검색을 시작하긴 했지만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과 학자들이 이스터섬에 대한 연구와 고찰을 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됐다.

 

 

 

우리들은 흔히 역사를 과거와 현재와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표현하곤 한다. 뭐 일정 부분 동의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과거를 선택한다.   

 

그래서 우리들은 믿고 싶은 과거 즉 기억하고 싶은 과거만을 머릿속에 저장하고

 

모든 합리화의 근거로 활용하게 된다. 이러고 싶지 않지만  나또한 이렇다.    

 

하지만  과거는 모든 것의 과거이다

 

 

 

그래서 역사는 무엇의 역사라고 하지 않고 무엇을 위한 역사인가 하고 물어야 하는 것이다.

 

그럼으로서 역사가 존재하는 단 하나의 이유, 단절을 피할 수 있다.

 

컴퓨터 리셋하듯이 새로 부팅할 수 있는 세상이면 역사는 필요없다.

 

우리에게 역사가 필요한 것은  누군가와 계속 관계를 맺어가고 있고

 

누군가와 계속 이야기를 나누고 있고 앞으로도 그러길 바라기 때문이다.

 

역사는 그래서 중요한 것이다.

 

어느 시험지에 빈칸을 채우려고 배우는 것이 아니다.

 

 

 

이스터 섬의 문명은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무분별한 채벌과 식량채집으로 그 비옥하던 토양을 황폐화 시키고 식량 부족 사태를 맞딱드려 서서히 도태된 것으로 보고 있다.

 

 

1995년  디스커버리 지에 이스터 섬에 관한 글을 썻던 제리드 다이어먼드는

 

이렇게 적고 있다.

 

"왜 그들은 그들 행위의 결과에 대해 생각해 보고, 너무 늦기 전에 그만두지 않았을까? 대체 마지막 나무를 베어 넘기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러나 나는 재난이 갑자기 닥친 것이 아니라 아주 서서히 다가왔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버려진 채 방치되어 있는 수백개의 석상들을 생각해보아도 그렇다. 섬의 숲은 어느날 갑자기 사라진 것이 아니라 매우 천천히, 수십년에 걸쳐서 사라졌다. 어쩌면 전쟁이 석상을 옮기는 작업을 방해했을 수도 있고, 어쩌면 석상을 완성하고 나니까 섬의 줄이 동이 났을 수도 있다. 벌목의 위험을 경고하려는 사람이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그들의 목소리는 조각가나 관리 또는 족장들과 같이 계속 숲을 벌목함으로써 이익을 얻는 자들에 의해 억압되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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