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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이야기3

디지털의학 vs. 아날로그의학 : 진단
채현주님의 글입니다
 
 
아래 평범하면서도 중요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한 사례를 통하여 양방과 한방의 진단 상의 차이점을 규명하고 그 유용성을 논하고자 합니다.

사례 : 53세 남성의 현훈 피곤 안혼 소변불리 경우

진료일자 : 2004.7.14

○남성 : 머리가 어지러워서 양방병원에서 진찰을 받았으나 특별한 원인은 없고 신경성이므로 푹 쉬라는 지시를 받았으나 어지럼증이 계속되어 왔습니다.

●한의 : 안녕하세요. 우선 진맥을 해보죠.
진맥결과 : 우맥은 촌약 관약 척긴, 좌맥은 촌약 관긴 척긴
폐기허, 심혈허, 간울구화열, 신음허양항으로 현훈 피곤 간울울열  상기, 소변불리 (진료부 기록)


일반적으로는 촌맥은 힘이 있고 척맥은 고요한데 반하여, 님의 맥상은 역전되어 있습니다. 이런 맥상의 경우 일반적으로는 신우염이 의심되고 간염도 의심됩니다. 아울러 어지럽고, 피곤하고,  소화도 잘 안되고, 짜증이 잘 나고, 상기감도 있으며, 눈이 깔깔하고 시력이 안좋아지고, 소변볼 때 색이 진하다든가 소변량은 적고 자주 보게 되는 증상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양방병원에서는 어떤 검사를 받았습니까.

○남성 : 소변검사, 혈액검사, 흉부X-ray촬영 등을 했습니다. 예, 소변을 자주 보는 편이며, 소변이 조금씩 나오고 그렇습니다. 소화는 잘 됩니다. 그리고 원래 시력이 아주 좋았으나 몇 년전부터 시력이 매우 나빠져서 웬만한 크기의 글씨(진료부에 작성내용을 가리키며)조차도 잘 못 봅니다.

●한의 : 그래요. 그럼 복진을 통해 확인해봅시다.
복진결과 :
일월~경문 혈 압통 → 간담울열 → 허실협잡으로 협통
곡골, 중극 관원 혈 압통 → 방광염 요로염 r/o
지실 혈 압통 → 신음허양항 →  만성 신우신염 r/o (진료부 기록)


반응수준으로 보건데 비뇨기계통에 만성염증이 있을 듯 합니다. 혹시 소변을 오래 참는 습관이 있습니까. 소변을 오래 참게 되면 방광이 가득 채워진 후엔 요관을 채우고 심지어 신우까지 소변이 채워져서 신우염을 유발합니다. 심하면 보우만씨 주머니에 압력을 가중시켜서 모세혈관이 파열을 일으켜서 혈뇨늘 누게도 됩니다.

양방의 검사결과 이상이 없으니 염증이라 진단을 할 수는 없겠으나 충혈현상은 분명합니다. 일정한 혈류량과 기(氣)류량 중에서 하복부 쪽으로 충혈충기현상이 발생하므로 흉곽 쪽으로는 허혈현상이나 기허현상이 발생한 것 같습니다. 이 밖에 추가적으로 말씀하실 하실 것이 있으십니까.


○남성 : 예, 없습니다.

Crimson

진단의 방법과 내용상의 차이 : 디지털의학 vs. 아날로그의학

우리는 시계를 보고 시간을 말합니다. 디지털시계로는 머뭇거리지 않고 자신감 있게 일정한 시각(예:2시 10분 15초)을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날로그시계로는 일정시각을 자신감 있게 말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2시 10분 15초를 가리키는 바늘에 대하여 약간은 주관적으로 2시 10분이라 할 수도 2시 11분이라 할 수도 있는 부정확한 인식을 드러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날로그는 2시 10분에서 2시 11분을 향하는 변화상에 대한 통찰을 겸하게 되며 이것이 아날로그시계의 커다란 장점입니다.

의학적 진단에 있어서도 이렇게 디지털적 진단과 아날로그적 진단으로 구분해볼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T,t를 시간, X,x를 병인, Y,y를 질병이라 할 때

양방에서는 임상자료를 통계처리하여 임상의들에게 일정한 진단기준을 제시해 줍니다. 혈액검사나 소변검사 상으로 특정 지표물질이 일정한 수준에 도달하면 염증으로 진단하지만, 기준치에 미달하면 진단을 내리지 않습니다. 또한 조직검사를 통하여 조직학적인 변화를 토대로 염증도 병리학적인 단계별로 구분하여 진단할 것이나 조직학적인 변화가 없으면 진단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질병적 변량인 △Y를 확인하고 병인적 변량인 △X를 추정하여 설명하는 방식입니다.

그래서 양방의 질병명은 질병적 변량인 △Y를 기준으로 위염, 위궤양, 위암이라 진단합니다. 이러한 진단방법은 디지털적인 진단방법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생명과학분야에서는 추정한 △X에 관한 가설은 시간이 경과하면서 변한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는 당대의 가설은 매우 과학적인 것으로 인정하는 관습에 젖어 있습니다. 하지만 폐기된 가설들의 비과학적인 논리를 역으로 추적해볼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권위를 인정하는 교과서를 시대순으로 늘어놓고 역시대 순으로 읽어보면 폐기된 가설들의 논리적 허구성과 비합리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이렇게 폐기된 가설들조차 권위를 인정받던 당대에는 매우 과학적인 가설로 통했습니다.

이러한 과학의 비과학적이고 반인륜적인 부도덕한 오만함을 배경 삼아 '폐기된 가설들을 기준 삼아 행해졌던 의술'은 오늘날의 지배적인 가설의 입장에서 보면 '언제나 비과학적이고 반인륜적인 부도덕한 의술'일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과학적이라고 인정받고 있는 가설 역시 시간이 경과하면서 그 과학적 권위를 상실하게 될 것이 뻔히 예상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버드의대를 졸업하고 부속 보드윈병원에서 일하는 심장전문의 조지프 잉겔핑거(62) 박사가 양심적으로 말했듯이 2% 수준의 인식의 한계 내에 머물러 있는 과학이 이루어 놓은 지식의 체계가 과학적 방법으로 미지의 세계인 98%에 도전하는 한 불가피하게 봉착하는 현상일 것입니다.
  
한방에서는 망진, 문진(聞), 문진(問), 절진(맥진 포함)을 통하여 진단합니다. 그것은 질병을 진단하는 것이 아니라 병인을 진단하는 방식입니다. 그중에서도 맥진을 예로 들자면 맥진을 통하여 아날로그 방식으로 인지되는 변화의 기운, 즉 병인의 시간적 변량인 dx/dt를 감지하여 질병적 변량인 △Y를 추정합니다.

그래서 한방의 진단명은 양방처럼 질병명으로 진단하지 않고, 풍, 한, 서, 습, 조, 화, 습열, 한습, 또는 기, 혈, 음, 양 등과 같은 병인의 시간적 변량인 dx/dt를 기준으로 간기울결, 간화상염, 간열, 간담습열, 간혈허, 간음허 간양상항, 간기허, 간양허 등으로 병인적 개념으로 진단합니다. 그러니 이러한 진단방법은 아날로그적인 진단방법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진단방법은 시간이 경과하더라도 금과옥조로 삼을 만큼 거의 변하지 않습니다.

사실 한의학에선 질병적 변량인 △Y는 치료과정에서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한방의 처방 방법은 질병적 변량인 △Y에 따라 위염, 위궤양, 위암 등으로 어떻게 진단되든지 간에 아날로그적 진단의 결과인 병인의 시간적 변량인 dx/dt가 한증의 벡터라면 역벡터의 온열제인 dt/dx로 처방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한의학에서 음양이론에 의한 생리적 균형회복 개념은 삭제할 수 없을 만큼 주요한 중심이론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처방 역시 금과옥조로 삼을 만큼 거의 변하지 않아도 양방에서 현대에 들어와 새롭게 발견했다는 질병에조차 적용이 가능하며 매우 뚜렷한 치료효과를 발휘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시하자면 마치 당뇨병 환자가 각종 합병증을 예방하기 위하여 인슐린요법 등으로 건강을 관리하듯이, 침시술을 통하여 AIDS환자의 건강을 관리하는데 성공적이었다는 내용을 MBC에서 보도한 적도 있습니다. 이렇게 과학적인 양의학을 뛰어넘는 임상효과에 대한 증거는 넘쳐납니다.


그런데 현대에 이르러 자연과학의 눈부신 발달의 결과로 과학적인 의료장비가 발명되었습니다. (그런데 한중일 삼국의 의료제도를 비교하면 확연한 차이점을 알 수 있는데, 한방을 많이 사용하는 동양 삼국 중에서는 유일하게 우리나라에선만 이러한 의료장비의 대부분을 양의사들이 독점사용토록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양방에선 근래에 이르러서야 비교적 정확하게 질병적 변량인 △Y에 관하여 진단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에 반하여 한방은 이러한 의료장비의 대부분을 사용할 수 없도록 규제되어 있으므로 전통적인 방식에 의존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질병적 변량인 △Y에 관한 진단행위로부터 배제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사정으로 인하여 질병적 변량인 △Y에 관한 독점적 진단행위에 자신감을 얻은 양방 측에서 고래로 한방의 병인의 시간적 변량인 dx/dt를 평가하는 진단방법이 유용했음은 치료적 측면에서 이미 검증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한방을 비과학적이라고 매도합니다. 그러나 앞서 언급된 동양삼국의 의료제도와 관련된 사정을 충분히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감히 이런 주장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자연과학은 양의학의 부분집합이 아닙니다. 생물학과 양의학의 관계는 생물학과 한의학의 관계보다 우월하지 않습니다. 양의학과 생물학 사이에 학문적인 성과에 대한 공유에 있어서 개방성이 있듯이 한의학과 생물학 사이에도 동일한 수준으로 학문적인 성과에 대한 공유에 있어서 개방성이 있습니다. 이러한 공유성은 물리학과도, 화학과도, 생화학과도 모두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따라서 양방과 한방 간의 질병적 변량인 △Y에 관한 진단의 능력 차이는 한방에 대하여 연관학문의 학문적인 성과에 대한 공유에 있어서 개방성을 보장하지 않는 현행 의료법의 편파적인 권력배분에 기인하고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한방에서는 위와 같은 불리한 여건 하에서도 병인의 시간적 변량인 dx/dt에 관한 진단을 통하여 효과적인 치료를 계속하고 있으며 의료소비자들이 만족하는 효용수준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제가 제시한 진료사례는 양방적 진단으로는 질병적 변량인 △Y가 충족되지 않아서 질병이 아닙니다. 그러나 한방적 진단으로는 병인의 시간적 변량인 dx/dt에 해당하는 심혈허, 폐기허, 기혈하충 등으로 진단되고 처방되고 치료됩니다.

이렇게 양방만이 과학이라고 주장하면서도 환자의 기본적인 주소증을 외면할 수밖에 없는 양의학의 사각지대에 대하여, 현대과학의 수준을 초월한 초과학적인 방법을 통하여 효과적으로 진료하는 한의학이 언제까지 비과학적이기 때문에 잘못된 의학이라 지탄받아야 할 것인가. 이에 대하여 양방이나 한방의 이해당사자가 아닌 제삼자인 의료소비자들이 올바른 판단을 현명하게 내려주실 것으로 믿습니다.


디지탈의학과 아날로그의학의 결합을 고대하며...

① 양의학은 가설의 집합에 불과할 수도..

현대과학이 자랑하는 관찰능력으로도 포도당이 어떻게 세포 내로 들어가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결론없는 가설들만 존재하지요.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려있는 내용조차 가설적 결론이 수없이 많이 실려있지요. 그런 앞선 그럴듯한 가설들은 시간이 경과하면서 새로운 그럴듯한 가설들로 대체됩니다.

그러고도 앞선 가설들의 용도폐기 되는 과정에서 앞선 가설들을 근거로 응용되었던 의료행위들의 잘못에 관하여 별다른 해명도 하지 않습니다. 예시하자면 편도절제수술 같은 경우가 이에 해당합니다. 예언컨데 양의학이 지금보다 훨씬 더 발전하게되면 비장절제술도 잘못이라고 주장하게 될 것이 확실해 보입니다.

즉 과학이란 이렇게 그럴듯한 가설로 기만하는 행위들의 집합이라고 평가할 수도 있습니다.

② 과학이라고 믿는 양의학의 진단기술은 치료에 결정적인 요소인가

양의학은 디지탈 의학이라 할 수 있습니다. 건강상태를 A라 하고, 질병상태를 B라 할 때, 양의학은 A→B(A TO B)의 결과인 B에 대하여 의학이 아닌 영상기술 발달이라는 과학의 성과에 의하여 개발된 진단장비를 독점하여 B를 정확히 진단하는 것은 사실이나 A에서 B로 변화되는 과정과 이유에 관하여 언제나 그럴듯하지만 곧 뒤집어질 가설에 맡깁니다.

치료는 질병의 원인을 제거할 때 가능합니다. 그런데 양방에선 질병의 원인에 대하여 수많은 대체될 가설들로 채워져 있기 때문에 원인을 제거하지 못합니다. 따라서 치료는 불가능하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한의학은 아날로그 의학입니다. 한의학은 A→B(A TO B)의 변화(→이나 TO)에 대하여 의학이 아닌 영상기술 발달이라는 과학의 성과에 의하여 개발된 진단장비의 사용으로부터 배제(한중일 가운데 우리나라에 한함)되어 B를 정확히 진단하지는 못하나 A에서 B가 되는 과정과 이유(→이나 TO)를 거의 변화되지 않는 금과옥조적인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지요.

한방에선 치료를 위하여 원인으로 진단된 사항의 벡터량에 대하여 역벡터의 처방을 내리므로 알고보면 한의학이 훨씬 더 이론적으로 합리적이며 근본적인 치료가 가능한 것입니다. 진단된 벡터량에 역벡터로 처방하기의 치료효과는 수천년 동안 검증되었으며, 지금도 검증되고 있습니다.


양의사들은 이런 사실을 공부를 안했으니 모르겠지요. 의학에서 중요한 것은 디지탈적인 결과(B)가 아니라 그런 결과가 발생하는 원인과 작용(→이나 TO)입니다. 이런 벡터에 역벡터 처방하기를 모르는 양의학에선 주로 어떤 디지털적으로 진단된 질병적 변량인 △Y를 제거하기 위하여 저마다 다른 병인의 시간적 변량인 dx/dt를 가진 환자에 대하여 동일한 화학요법이나 수술요법을 사용하는데 급급하므로 치료효과가 저하될 수밖에 없지만,

한의학에선 그런 결과가 발생하기 전에 그런 결과를 향하여 치닫는 아날로그적으로 진단된 기운의 변화인 병인의 시간적 변량인 dx/dt를 포착하여 그런 기운의 변화를 원상회복시키도록 벡터에 역벡터 처방하기의 방제나 침구를 사용하여 어떤 질병적 변량인 △Y에 도달하지 않도록 조치합니다. 그러므로 한의학은 그런 점에서 양의학보다 훨씬 더 예방의학적입니다.

③ 그러므로 진정한 현대적인 의학은 병인의 시간적 변량인 dx/dt를 포착하는 아날로그의학과 질병적 변량인 △Y를 정확히 포착하는 디지탈의학의 결합의학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료제도의 이상적인 모습이 홍콩, 싱가폴, 중국 등에 제도적으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PS : 지난번 본글에 대한 양방 측의 반론에 대하여 한방을 변론하는 내용을 모은 것으로서 관심 있는 분들만 보시면 됩니다. 양방 측의 입장은 제목을 통하여 추정 가능할 것입니다.


1. ‘양의사가 과학의 인식능력 2%에 불과라 말한 것’을  인용한 곳은..  

『일본 의료제도의 현주소』의 댓글에 인용했군요.  

존경받는 양의사가 되려면

언론의 보도를 보면 우리나라에서 소위 능력있는 분들은 정밀진단이나 수술을 받기 위하여 미국이나 일본으로 가더군요. 왜 이런 일이 발생해야 합니까. 그것은 우리나라에서 소위 능력있는 분들로부터 우리나라 양의사들이 불신받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양의사들은 남들(일본의 70.3%나 되는 양의사들)은 은 무조건 모자란 자들이고 자신들만 세계최고의 의술을 가진 것처럼 호도합니다.

정말 능력있는 의사들이 국민건강증진을 위하여 위험수준이 높은 심장내과 신경외과 등의 의료영역을 택하여야 하거늘 이런 과는 항상 인력부족현상이 심각하고 돈벌이에 혈안이 되어 성형외과 등을 전공분야로 택하는 세태는 국민을 배신하는 행위입니다.

나는 위와 같은 양의사들을 경멸하며, 아래 기사에 등장하는 이런 양의사들을 존경합니다. 이런 양심적인 양의사들은 "우주현상 중에서 인간이 설명할 수 있는 부분은 단 2%에 불과하다"고 말할 정도로 의료인의 한계를 겸손히 고백하고 환자를 위하여 항상 새로운 의료방법에 열린 마음을 가지는 사람들입니다.


"뇌호흡, 서양 의학으로는 설명 못해"

심장전문의 잉겔핑거 박사
효과 시연·발표 위해 방한

“우주현상 중에서 인간이 설명할 수 있는 부분은 단 2%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뇌도 마찬가지예요. 뇌의 기능 중 우리가 이해 못하는 부분이 훨씬 많죠. 예를 들어 뇌 수련을 받은 사람이 눈을 가린 채 책을 읽기도 하거든요.” 이런 황당하게 들리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세계 최고’라는 미국 하버드의대를 졸업하고 부속 보드윈병원에서 일하는 심장전문의 조지프 잉겔핑거(62) 박사다. ...(중략)...

고혈압·당뇨 등 만성질환으로 고생하는 환자들에게도 뇌호흡을 가르치고 있다. 처음에는 마지못해 시작했던 환자들 일부는 혈압이 떨어지고 숙면을 취할 수 있게 되었다고. 과학적 작용 원리를 꼼꼼히 따지는 서양 의학을 배워 평생 증거 중심으로 환자들을 치료해온 잉겔핑거 박사는 이런 ‘비과학적인’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까.

“뇌호흡으로 고혈압과 당뇨를 치료할 수 있다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의사가 증명해낼 수 없다고 해서 환자들이 조금이라도 낫는 현상을 무시할 순 없잖아요.”

(글=이지혜기자 wigrace@chosun.com )



2. 백성주님께/ 과학철학은 명제의 진위를 결정함에 있어서 가치중립적인가. 학적방법에 대하여 가치중립적인 초과학철학을 제안합니다. 

감기조차 치료하지 못하는 양의사로 추정되는 제봉님의 주장에 동조하신다면 '감기를 치료하지 못한다'가 참명제로 채택해야겠지요. 그러나 '감기는 치료될 수 있다'가 사실이라면 위의 양방의 주장은 참명제가 아닌 거짓 명제임이 분명합니다.

볼 수 있는 것만 보려하므로 무지한 수준에 머물러 있는 과학의 오류에 해당하는 증거는 넘쳐납니다. 그것은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에 관하여는 사실 여부를 확인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보려고 하지 않으므로 그럴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과학이란 미명하에 거짓명제를 참명제인 것처럼 둔갑시키는 작태는 통탄할 일입니다.

과학철학은 명제의 진위를 결정함에 있어서 가치중립적인가. 불행하게도 그렇지 못합니다. 과학철학은 학적방법에 대하여 편파적인 잣대를 적용합니다. 학문하는 방법에는 직관과 통찰이란 방법도 있습니다. 이런 방법을 통하여 획득한 지혜 역시 인류생활에 많은 유익한 지침이 되어왔습니다. 통찰을 부정하는 학문은 인류를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젠 과학철학을 비판해야 할 때이고, 이미 비판당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유익한 지식이라 하더라도 님이 주장하는 '과학철학의 학적방법'을 벗어났으면 과학이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유익한 지식을 사용하지 않겠다 함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학문에는 자연과학, 사회과학, 인문과학 등 다양한 학문이 있으며 제 각각 학적방법이 다르답니다.

동양에 뿌리를 둔 학문들은 주로 직관과 통찰을 통한 지혜를 최고의 학문적 가치로 삼는 전통이 유지되어 왔습니다. 한의학 역시 이런 학적방법을 통하여 획득한 지식의 체계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한의학은 님이 주장하는 과학철학의 편파적인 잣대로 볼 때는 과학이 아닐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유익성까지 부정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수천년에 걸친 충분한 임상진료 분야에서 확실한 유용성을 확보했기 때문입니다. 유용성이 확인되었으나 과학의 영역에 포함되지 못한 것을 미신이라 하겠습니까. 아니지요. 그것은 아직은 과학의 영역이 도달하지 못한 초과학이라 칭해야 마땅할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과학철학에 대한 맹신 자체가 동양철학의 주체성을 상실하는 위기를 드러낸다고 주장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저는 님께 초과학철학을 주장합니다. '통찰을 통하여 획득한 지혜로서, 언제나 반복적으로 유익성이 확인된 지식이지만, 아직 과학철학적 방법으로는 그 작용기전을 명쾌히 설명할 수 없는, 지식의 체계의 참명제로의 채택 방법을 제안할 수 있는 철학'이라고 정의 해볼까요. 그런 초과학철학에 의하여 참명제로 지지되는 지혜의 총화가 동양사회 뿐만이 아니라 세계인류복지에 기여하는 시대가 곧 올 것입니다. 
 


3. 갈바람님께/ 제봉님이 증언은 필요 없다고 하시던데요.

①감기에 대한 진실/ 갈바람 04/07/09 [20:57]

감기바이러스 감염은 손으로 눈을 비빌 때 옮는게 90~95%라고 한다.
손으로 눈을 안비비고 비비고 싶으면 손을 씻으면서 눈을 씻자.
정말 놀라운 사실 아닌가. 손으로 눈을 안비비면 감기의 90~95%를 예방할 수 있다고 한다.

→ 채현주 답 : 예방의학이 중요하다고 말씀을 하시는군요. 그런데 감기감염확률 90~95% 같은 수치를 동원한 예방의학적 지식이 대국민적으로 홍보된 사실이 있습니까. 저같은 사람도 모르는데 무슨 대국민홍보가 있었으리오마는.. 진실을 토론하는 자리에서 정말 진실이 나오는군요. 그동안 감기로 양의사님들이 장사 많이 해먹었다는 사실을 고백하시는군요. 예방의학적 지식이 잘만 활용된다면 감기환자의 95%는 줄어들겠군요.

제가 무슨 자랑이라고 침만으로 감기 치료한다고 했겠습니까. 그것 별것 아닙니다. 한의사들 사이에서 이런 이야기 하면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라서 저는 그 즉시 바보가 됩니다. 그런데 양방과 한방의 진실게임에서는 효력을 발휘하는군요. 이래서 양심적인 양방의사님들을 존경할 수도 있구요.

②채현주님 뒤늦지만 답변올림/ 갈바람 04/07/13 [13:25]

감기가 없으면 일차진료 양의사들은 먹고 살 게 없지요. 지금의 의사수를 유지할려면 의보는 감기중시정책을 유지하겠지요. 양의사수를 대폭 줄이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요.

결론 : 저는 이런 진실을 사랑합니다.


4. 제봉님께/ 2%의 과학이 98%의 초과학을 사이비라 규정할 능력이나 되나요.

의학은 실증적인 학문입니다. 의학 그 자체가 과학은 아닙니다. 아직도 인체는 신비의 베일로 감춰진 부분이 너무도 많기 때문입니다.

과학이 아니면 비과학입니다. 그러나 비과학이란 용어는 가치중립적인 용어일 뿐이고 가치를 개입시키면 미신과 초과학으로 구분될 것입니다. 그런데 인체의 신비의 베일로 감춰진 부분에 경험적으로 코드를 맞춰서 뛰어난 치료효과를 보이는 한의학이 미신이겠습니까. 한의학은 겨우 2% 과학의 협량함으로 인하여 과학적 사고로는 이해가 불가능한 초과학입니다. 겨우 2%는 이점에서 겸손해져야 합니다.

님께서 아무리 '초과학적인 한의학'을 사이비라 규정하려고 애쓴들 갈바람님의 '한방에 대한 믿음이 뿌리 깊었다.' 증언에서 보듯 한의사들이 홍보활동을 안 해도 먹고 사는데 지장 없습니다. 왜냐, 실증적인 치료효과가 우수하기 때문입니다.

2% 신세의 알량한 과학의 일개 분과에 불과한 양의학의 실증적인 치료능력에서의 한계로 인하여, 힘으로 무너뜨릴 수 있는 한의학은 아닌 듯싶습니다. 그렇게 실증적인 치료능력으로 안되니 왕따작전이라도 하려는 것입니까. 제봉님은 수고가 많으시겠지만 결과는 실망만 돌아올 겁니다.


5. 보다가님께/ 제가 과학을 부정하던가요.  
  
제가 언제 과학을 부정하던가요. 과학 없이 어떻게 초과학이란 말이 가능하겠습니까. 제가 과학을 인정하기에 초과학을 주장한 것 뿐입니다. 못보셨나요. 저의 무당에 관한 정의를..

무당칼럼은 한편으론 巫堂으로서 양방과 한방의 의학적 원류로서 양방과 한방의 소통의 접점이고, 다른 한편으론 無黨으로서 양방과 한방에 대하여 언론인으로서의 사명감을 곁들여 편견없이 접근하려는 의학칼럼이라는 뜻이랍니다.


6. 손님께/ '과학은 미신이다'라고 주장할 수도 있습니다.

우주현상 자연현상은 우리가 과학이라 지칭하는 2%의 지적능력으론 이해할 수 없는 초현상이기 때문이다. 초현상을 설명할 수 없으면서 매우 합리적인 양 아집을 부리는 그것이 종교요 미신이다 라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7. 제봉, 손님 님께/ 초과학과 초현상을 혼돈하고 계십니다.  

님들이야 '한의학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현대과학의 한계 때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아도 먹고 삽니다. 그런데 님이 이해하지 못한다 하여 초능력 현상(초현상)과 한의학의 초과학성을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지요. 초능력은 일상적으로 경험되는 현상이 아니지만, 한의학은 일상적으로 반복적으로 경험되는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세계 속에서 의료소비자의 의료욕구를 충족시킴에 있어서 부족함이 없습니다. 의료소비자들이 돌대가리입니까. 그들의 욕구는 여러분들이 상상하는 이상으로 매우 까다롭습니다. 그들의 까다로운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했다면 한의원들은 벌써 간판이 내려졌을 것입니다. 감기도 못 고치는 양의학이 무슨 할 말이 그리도 많습니까. 제가 워드실력이 딸려서 반복하여 댓글하기 어려우니 본문이라도 제대로 읽으시고 댓글 과정을 찬찬히 훑어본 후에 댓글을 다셨으면 좋겠습니다.

한의학적 지식은 고래로 개인의 전유물이 될 수 없으며 만인에게 열려있습니다. 그것은 특허의 문제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어떤 이가 대동강 물을 팔아먹은 봉이 김선달처럼 특허를 내어 전유하려고 하더라도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한방은 질환의 원인에 대한 진단과 처방과 치료효과가 뚜렷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과학이 스스로 가진 2% 인식의 한계로 인하여 현대과학이 요구하는 인식방법의 수준으로 설명할 수 있는 해석학이 발달되어 있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덧셈 밖에 모르는 어린이 수준의 과학을 향하여 곱셈에 해당하는 어른 수준의 초과학적 지식을 이해시킬 수 없는 경우와 정확히 일치합니다.

앞으로 100년 후면 가능할까요. 아직은 덧셈 수준에 머물러 있는 현대과학의 인식의 수준이 한의학을 이해할 수 있는 곱셈수준에 도달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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