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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2/21
    일어나라 노동자여
    花無十日紅

일어나라 노동자여

 

일어나라 노동자여

 

 

아직도 차량 통행량은 줄지 않았다. 깊어가는 정적을 뒤흔들며 도로표면을 긁고 질주하는 차바퀴의 마찰음 소리가 점점 크게 들려온다. 조금 더 밤이 깊어지면 우리는 ‘출동’할 수 있다.

 

체온 킬러 ‘칼바람’에 맞서기 위해 알콜기운을 비축하며 ‘대기’해 왔던 우리에게 출동지침이 떨어졌다. 3인 1조로 나뉘어 미리 파악한 지점으로 도착했다. 아득히 높아보이는 전봇대. 우릴 타켓으로 날아오는 삭풍의 총탄. 하지만 머뭇거릴 여유는 없다. 마른침을 삼키고 이를 악물고 맨몸으로 전봇대에 올랐다. 난생처음 해보는 전봇대 맨몸 등정과 현수막 걸기. 의욕은 앞서지만 따라주지 않는 얼어붙은 몸과 미숙한 손놀림 속에 힘겹게 할당량을 완수했다. 그렇게 ‘민중후보 백기완’을 알리는 현수막은 시내 요소요소의 전봇대를 점거해갔다.

 

나의 대선투쟁 맞보기는 그렇게 시작됐다.

 

그로부터 5년뒤. 나는 맛보기를 넘어 실질적인 대선투쟁에 결합했다. 아직 학생신분이었지만, 지역 대선투쟁의 안살림과 바깥활동을 넘나들며 ‘선거밥’을 먹었다. 십시일반 모은 돈으로 어렵사리 개소한 사무실. 석유난로 주위로 옹기종기 모인 우리는 대선투쟁의 다짐과 각오를 이야기하며 밤늦도록 ‘새우깡’을 곁들인 소주잔을 기울였다.

 

드디어 도착한 대선투쟁 트레이드마크.  권영길 후보의 출사를 알라는 포스터를 뜯어본 순간 모인 이들의 눈빛엔 실망감이 어렸다. 지금은 한나라당에게 심각한 지적재산권을 침해당한 '일어나라 코리아' 포스터가 그것이다.  휘날리는 태극기. 게다가 한 쪽 구석에 자리잡은 조그만 후보자의 얼굴.  도통 납득하기 힘든 포스터였다.

 

97년 1월 한보부도 이후 경제위기가 심화되고 대선 직전 IMF 구제금융을 받으며 고용불안이 심각하게 제기된 상황에서 느닷없이 일어나라 코리아라니. 경제회생을 위해 노동자의 희생을 강요하는 보수정치권 후보들과의 ‘변별력’을 상실한 선거기조에 동의하기 힘들었다. 문제제기가 잇따르고 비난이 빗발쳤다. 실망감이 컸다.

 

그러나, 실망감이 냉소로 이어지진 않았다. 대선 투쟁의 기조를 바꾸기 위한 노동자들의 정치가 불붙었다.  노동자들의 비판적 시각을 담아 민주노총은 대선 투쟁의 목표를 담은 포스터를 제작했다.  핏줄선 노동자의 옆 모습. 고개를 반쯤 숙인 듯한 그러나 주먹을 불끈 쥔 남성 노동자.  그 노동자는 대선 투쟁에 임하는 동지들에게 일어설 것을 격려했다. ‘일어나라 노동자여’ 노동자에게 자본의 위기를 모두 떠넘기려는 자본에 맞설 것을 독려했다. 노동자의 정치투쟁이 대선 흐름을 바꾸어 냈다. 권영길 후보는 노동자의 정치 투쟁에 선거기조를 전면 수정했다.  ‘총파업을 조직하는 최초의 대통령 후보’를 선언하고 삭발투혼을 밝혔다. ‘일어나라 코리아’로 시작한 97년 대선투쟁은 신자유주의에 맞서기 위한 ‘일어나라 노동자여’로 저물어갔다. 

 

다시 10년이 흘렀다. 10년이 흐른 지금 ‘일어나라 노동자여’를 이끌어낸 ‘노동자 정치'는 그 운신의 폭이 점점 좁아지고 있다. ’노동자 정치‘는 현장에서 임단투를 통한 ’민생정치‘ 해결로만 국한되어가고 있다.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96-97 신자유주의 저지 총파업 투쟁을 성사시킨 ’노동자 가두정치‘. 해마다 ’정치총파업‘을 벌인 노동자들이 정치는 ’정치‘로 취급받지 못하는 듯하다.  한국 사회의 가장 급진적 정치가인 노조 대표자들의 '정치 외면 태도'는 납득하기 힘들다. 

스스로 '대중활동은 노조가 정치는 민주노동당'이라 세뇌시킨 노동자들은 정작 중요한 정치투쟁엔 관람객으로 타자화되었을 뿐이다.  때가 되면 세액공제를 실시하고 계급투표를 조직하는 것이 최선의 정치로 바뀐 것이다.  한국사회 정치투쟁의 선봉장이 스스로 활동공간을 노조로만 국한하고 있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코리아 연방공화국’ 포스터 사태부터 시작해 ‘세상을 바꾸는 대통령’ 현수막, 그리고 대선 5일을 남겨둔 상황에서는 1억원을 들여 수도권 중심으로 ‘엄마! 민주노동당이 필요해’라는 슬로건으로 현수막교체로 2007년 대선은 ‘분당’과 '새로운 진보정당'으로 한편으로는 '계급정당 건설 복격화로' 새로운 대선 투쟁국면이 열렸다.

 

나는 이 대선 투쟁 국면에서 다시 한번 ‘노동자 정치’가 분출되기를 원한다. 현장에서의 민생정치를 넘어선 가두 정치투쟁에 앞장섰던 노동자들. 미국식 신자유주의의 이식을 위한 한미FTA 저지 총파업 투쟁으로 이어진 노동자들이다. 정치투쟁을 정치와 노조활동이 분리된 따로국밥식으로 받아들여선 안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정치의 주체였던 노동자들이 ‘노동자 정치’를 더욱 강화해 나가야 하지 않을까?

 

정치의 화두는 민생이다. 결국 노동자가 잘 살수 있게 만드는 것. 이것이 우리 노동자의 정치다. ‘비정규직 철폐’ ‘무상의료, 무상교육’ ‘사회공공성 강화’는 임단투의 현장민생정치를 넘어선 사회민생정치 투쟁이다. 이번 대선이 이러한 ‘노동자와 민중의 민생’을 담보하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오류다. 비판을 수용하지 못하는 왜곡된 민주노동당의 동맥경화도 심각한 문제라 할 수 있다.

 

이제 다시 노동자들이 나설 차례다. 노동자의 민생정치를 위해 총력투쟁을 시작할 때라 본다. 정치는 결코 멀리있지 않다. 노동조합과 별개의 문제도 아니다. 노동자들이 그동안 해 왔던 그 투쟁을 승리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 이것이 정치다. 고개 돌리지 말자. 동지가 정치의 주체다. 진보정치의 관객에서 주인공으로 노동자의 정치를 펼쳐야 한다. 필요에 따라 세액공제와 계급투표에 동원되는 노동자가 아닌 스스로의 해방을 위해 투쟁하는 정치의 주체, 노동자를 위한 진짜 정치판을 만들자.  노동자를 비싼 관람료를 지불하는 관객으로 내몰지 않고 진정한 '노동자 계급 정치를 실현'할 수 있는 정당, 진보를 넘어 "노동자 계급'으로 설 수 있는 그런 정당을 꿈꿔보자

 

다시 한번 외쳐보자. ‘일어나라 노동자여! 노동자 계급의 해방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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