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게시물에서 찾기2008/03

4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8/03/17
    의료연대 충북지부 출범에 부쳐
    花無十日紅
  2. 2008/03/13
    진단평가 시대의 인삿말 "선생님 집에 다녀오겠습니다."
    花無十日紅
  3. 2008/03/09
    미국 민중조차도 거부한 이명박표 '선진 의료'
    花無十日紅
  4. 2008/03/03
    고소영, 강부자, 강금실을 넘어
    花無十日紅

의료연대 충북지부 출범에 부쳐

의료연대 충북지부 출범에 부쳐..

 

이들은 모든 것을 일치단결시켰다. 하물며 그들의 키까지도 말이다. 의료연대 충북지부가 출범하는 날. 지부의 선장과 조타수, 항해사의 키는 마치 자로 잰 것 같았다. 단결력을 과시하기 위해 키마저도 맞춘 모양이다.   나란히 서있는 세 사람의 키가 어쩜그라 같은지 보는 이들의 실소를 자아냈다.

지난 3월 5일 의료연대 충북지부가 출범했다. 충북대병원노조로 시작한 이들은 마침내 단위사업장의 이름을 버리고 의료연대 충북지부로 안착했다. 현재 소위 단위사업장이 충북대병원 밖에 없음에도 이들이 충북지부로 출범한 이유는 무엇일까? 무릇 산별노조에서 지부라하면 단위사업장 여럿이 모였을 때 출범하는 게 통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충북지부의 명칭을 과감히 사용한 건 단위사업장을 넘어선 사업의 각오가 묻어 있기 때문이다.

 

미국 대선에서 최초의 흑인 대통령을 꿈꾸는 버락 오바마는 미국의 새로운 희망설파자로 유명하다.  미국인들에게 여러 희망을 설파하는 것 중에 '노동자가 노조를 만들수 있게 된 것'을 희망이라고 말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의료연대 충북지부는 그 '희망'을 실천하려는 것이다.   노동자에게 노조 설립의 희망을 설파해 나가고, '희망의 동참자'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이들의 각오다.  그 각오를 위해 과감히 단위사업장 이름을 떼 버린 것이다.

그들의 가슴엔 '비정규직 철폐'가 새겨진 노란 리본이 달려 있다.  출범부터 중요한 과제로 비정규직 철폐 사업을 받아 안고자 하는 의지가 묻어 있다.  이를 직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점은 새로운 부서의 신설에 있다. 미조직비정규부장을 신설한 것이다. 그것도 1부장, 2부장 등 두 개 부서가 늘어났다. 지부의 지향성을 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단위사업장의 역할을 넘어서 지역 조직을 중심으로 하겠다는 포부가 간부 인선에 달려 있는 것이다.

물론 험로도 예상된다. 이제까지 단위사업장 중심의 사업체계가 전면적으로 개편되기 때문이다. 당일 출범식에서 신임 지부장이 취임사에서 호르몬 과다분비로 인해 글썽인 ‘눈물’의 의미는 여기에 있을 듯 하다.  개척정신으로 전인미답의 길을 가야하는, 모든 것을 새롭게 시작해야하는 막연한 두려움도 함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늘 곁에서 이들을 보아온 나로서는 이들의 출범이 산별노조 운동의 새로운 전기가 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들이 보여준 운동에 대한 열성이 새로운 길이 개척가능하다는 자신감을 복돋아 주었으리라 믿기 때문이다.

아무쪼록 의료연대 충북지부의 출범을 축하하며, 이후 미조직,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조직화를 위해 더욱 헌신적 노력을 당부하는 바이다. 더불어 지역 산별노조도 다시 한번 미조직. 비정규직 조직화가 ‘산별노조의 중요 임무’ 중의 하나임을 환기시키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진단평가 시대의 인삿말 "선생님 집에 다녀오겠습니다."

진단평가 시대의 인삿말

"선생님 집에 다녀오겠습니다."

 

내일은 전국 일제고사가 있는 날. 학교는 분주하다. 갑작스레 자상해진 교사는 학생의 건강을 걱정한다. 살뜰하게 아픈 곳을 묻는 교사. 선생님의 질문의도를 단박에 꿰뚫은 학생은 이내 온 몸이 아프다. 치명적인 ‘일제고사 병균’에 감염된 것이다. 내일 학교에 등교할 수 없을 만큼 말이다. 당연지사 내일은 병결처리.

전국일제고사가 시행되던 그 때 그 시절. 평균성적을 갉아먹는 하위권 학생들에게 일제고사 시험일은 앓아눕기 지정일이었다.  어김없이 창궐한 '급성 일제고사 바이러스'에 감염되는 날로 병결자가 늘어나는 날이었다.

 

10여년 전. 옥천에서는 이보다 더한 일이 발생했다. 옥천교육청은 일제고사 인센티브 제도를 도입했다. 순위에 따라 우수성적 학교에 100만원. 200만원 이런 식의 인센티브가 제공된다. 물론 학교 인사나 정책의 불이익은 없다. 하지만, 이 정책이 일선학교에 미치는 파괴력은 무시무시했다.

학교 석차를 올리기 위한 기발한 묘책이 동원됐다. ‘답안 훔쳐보기’ 활성화 제도가 도입이 그것. 교육 가치보다 성적이 우선인 세상에서 ‘공개적 컨닝’ 정도야 애교로 눈감아 줄 수 있는 것 아닌가? 공부 잘 하는 학생이 성적이 떨어지는 학생에게 도움과 협력, 우애를 키우고, 학교석차를 올리는 일석삼조의 효과를 올릴 수 있는 ‘답안 훔쳐보기’를 적극 장려한 것이다.

 

아프지 않은 아이를 아프게 만들고, 비도덕을 권장하도록 만든 건 '일제고사'에 내포된 석차지상주의의 절대적 폐해였다.  

'급성 일제고사 바이러스'는 아이들의 가슴에 깊은 타 학우들에게 피해주는 아이로 낙인찍히게 만들었다.  가상의 바이러스가 실존의 바이러스가 되어 학생들에게 지울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비도덕적 행위를 자행해도 승자가 되면 아무탈없다는 반교육적 행태를 가르친 학교.  그 학교가 만든 오늘날의 자화상은 부끄럽기 그지없다.  '부동산 투기 안하면 바보'고 4천만원도 넘는 "싸구려" 골프회원권을 문제시하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다는 이들이 있다.  사회의 도덕률과는 무관하게 승자사회를 걸어온 이들의 밑바탕엔 비도덕적 행위가 체화된 '학습효과'로 가능하지 않았을까?

 

이렇듯 일제고사의 숨겨진 폐해가 우리 미래를 곪게 만들어갔다.  그러나, 세상에 비밀은 없다. 제 아무리 쉬쉬한다 한들 이런 행태가 감춰질리 만무하다.  끝내 일제고사의 반교육적 행태가 만천하에 공개되면서 일제고사 폐지 목소리가 드높았고, 끝내 일제고사는 폐지되었다.

그 후 10년. ‘잃어버린 10년’을 만회하겠노라는 이명박 정권이 들어섰다. 들어서자마자 10년 전에 사라진 악습이 포장만 조금 달리한 채 재생된다. 무늬와 포장은 달라졌을지언정 내용상으로는 하등 달라진 게 없는 ‘진단평가’의 실시가 그것이다. 비록 이름이 일제고사에서 진단평가로 달라졌을지언정 그 차별성을 눈 씻고 살펴봐도 내용상 차이점이 없다.

중1 진단평가가 실시된 3월 6일. 충북도교육청에서는 11일간 나홀로 맨몸 농성을 진행한 바 있던 전교조 충북지부장이 농성을 마무리했다. 마무리하는 자리에서 그는 진단평가의 문제점들을 조목조목 지적한 바 있다.

이번 진단평가가 사교육비를 증가시키고 학생을 시험전쟁의 ‘전투병’으로 내몬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점이다. 진단평가를 전후해 한 권에 1만 원에서 적게는 8천 원 정도에 달하는, 10여 종에 달하는 평가지가 불티나게 팔렸다. 그런가 하면 눈치 빠른 학원들은 진단평가 대비반을 만들어 수강생을 모집했다. 모 업체는 한 번에 2만 원을 받는 모의시험도 두 차례나 실시했다. 이 모의시험에는 6천 여 명이 응시했다 한다. 이렇듯 사교육시장이 진단평가 특수에 발빠른 움직임으로 짭짤한 수입을 올리는 동안, 학부모들은 엄한 사교육비를 지출해야 했다.

학생들은 새로운 중학교 친구들을 사귀고, 새로운 수업에 적응하는 대신 밤늦도록 불을 밝히고 진단평가 문제지 풀기를 반복해야만 했다. 바뀐 환경의 적응도 스트레스일터인데, 몇 일만에 ‘시험 전투’를 치러야 하니 볼멘소리가 안 나올 리 없다.

법적으로 금지된 일제고사의 허점을 파고들려하는 교육청의 얄팍한 비교육적 꼼수도 지적했다. 전국 68만 명이 응시한 중1 진단평가. 시도 교육감들이 논의해 전국적으로 일시에 같은 문제지로 시험을 치르고 개인별 성적을 공개(서울 등)하는 것은 엄연한 불법행위이다.

진단평가의 이름으로 일제고사가 기지개를 펴게 되면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은 반교육적 살풍경은 이제 곳곳에서 재현될 것이다. 사교육비 증가는 물론이거니와 학생들을 ‘성적 전투’에 내몰게 된다. 이미 중학교에도 보충수업과 야간자율학습까지 현실화 하려 하고 있다. 이제 얼마 안 있으면 중학생들은 새로운 인사법을 배워야 할 것이다. “선생님 집에 다녀오겠습니다.”라는 인사법을 말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미국 민중조차도 거부한 이명박표 '선진 의료'


미국 민중조차도 거부한 이명박표 '선진 의료'

 

이번 주말 미국에 유학 중이던 처제가 산후조리차 귀국해서 처갓집이 있는 전라도에 다녀왔다. 처제는 미국 유학생활 5년에 ‘한국의 맛’이 그리울 터다. 처제가 온데다 맞사위도 함께 했으니 ‘소곱창’을 먹으러 가자고 했다. 곱창 사수를 위해 부지런히 젓가락을 놀릴 생각을 하니 절로 군침이 돈다. 소곱창 집에 막상 들어가니 여러 집을 둘러봐도 한결같이 소곱창전골 뿐이다. 배는 고파 오고, 소곱창구이를 찾을 길이 없어 전골에 한번 빠져보기로 했다. 처음 먹는데도 입에 착 달라붙는다. 국물도 텁텁하거나 입에 감기지 않는 것이 역시 전라도 맛이다.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걸신들린 것처럼 먹어치우니 이내 포만감이 밀려온다. 포만감에 취해 두런두런 처제의 미국생활과 이제 며칠 밤만 더 자면 만 3개월이 되는, 아직 젖살이 빠지지 않은 처조카 얘기가 단연 화두다. 출생에서 지금까지 ‘이린’이의 피어날 세상에 대해서 말이다. 먼저 태어난 이야기. 그 중 병원비가 도마에 올랐다.

처제는 자연분만을 원했다. 하지만, 출산예정일이 지나도 감감무소식. 미국 병원에 입원해 꼬박 24시간 이상 유도분만을 했지만, 의사의 포기권유에 제왕절개 수술로 ‘이린’이는 세상의 빛을 처음 접했다. 하반신 마취를 한 상태에서 차가운 소독약이 스치는가 싶더니 모든 수술이 끝났다고 한다. 한 30분 정도 소요된 수술.

미국의 제왕절개 수술비가 얼마 나왔을까? 참고로 처제는 유학생 신분이라 인터내셔날 보험에 가입되어 있다. 내가 월 4만 2천원의 보험료를 납부하니 사용자 부담분을 치더라도 일년에 100만원 정도의 보험료를 납부한다. 처제는 나보다 두 배 정도의 보험료를 낸다고 한다. 일 년에 대략 200만원 정도의 보험료를 납부한다.

한국에서 비싸야 50만원 정도인 제왕절개 수술. 처제는 이 비싼 의료보험료를 내면서도 수술비로 1,600만원을 납부했다. 입원비까지 모두 포함하면 총 2,000만 원에 육박하는 비용을 지불했다고 한다. 내친 김에 처제는 미국병원비가 얼마나 비싼지 말을 이어갔다.

치과치료를 받으려면 족히 300만원은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듣고 떠오른 게 있다. 처제와 동서가 결혼식을 올리기 위해 한국에 왔을 때다. 결혼준비에 분주해야 할 동서는 만사를 제쳐놓고 먼저 찾은 곳이 있다. ‘치과’다. 제일 참지 못하는 게 치통인데 병원비 때문에 귀국할 날만 손꼽아 기다렸다고 한다. 그리운 ‘한국 음식’에 심취해야 하는데 고놈의 병원비 때문에 4개가 넘는 치아 치료를 받고 제대로 먹지 못해 한스러워 했다. 하지만, 오랫동안 짓눌렸던 치통에서 벗어난 것에 매우 기뻐하는 모습이었다.

에피소드는 계속 이어진다. 동서도 유학생 신분인데, 어느 날 몸이 아파서 수업을 며칠 빼먹었다. 더 이상 빼먹으면 F학점. 이건 큰일이다. 몸을 추슬러 병원에 갔다. 병원에 처음 접수비가 7만원. 몇 분도 안 되는 진찰이 14만원. 여기에 기타 2만원 총 23만원이 들었다. 맘 같아서는 직효를 자랑하는 주사를 한데 맞고 싶은데 9만원이란다. 결국 주사는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33만원에 몸살치료를 받을 정도로 강심장은 아니기에...

미국 대선에서 힐러리와 오바마가 뜨는 이유는 여기 있다고 한다. 3억 인구중 1/6에 해당하는 약 5,000만 명이 의료보험 소외국민인 나라. 덴젤 워싱턴의 2002년작 <존 큐>는 이런 미국사회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어쩌면 미국이 꿈꾸는 선진국은 전국민 의료보험을 실시하는 한국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런 한국의 ‘선진’제도를 이명박 정부가 크게 흔들려 하고 있다. 인수위는 ‘능동적 복지’ 운운하면서 건강보험의 골간을 파괴하는 ‘건강보험 당연지정제 폐지’를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한술 더 떠 ‘건강보험공단 개인진료정보를 민간의료보험 회사와 공유’하는 등 개인정보를 팔아넘기고, 민영의료보험도 확대하겠다는 정책을 밝혔다.

혈기탱천 의사협회는 ‘의료 사회주의’ 운운하며 한발 더 나아가 민영의료보험 확대와 건강보험 의무가입을 폐지할 것을 주장한다. 이미 서울지역 성형외과의 93%가 1년간 건강보험 진료비 청구를 하지 않는 등 의료보험 체제 붕괴에 앞장서고 있는 실정이다. 의료의 공공성 대신 어떻게 하면 ‘돈 욕심’을 채울지가 이들의 유일한 관심사이기 때문이다.

건강보험 당연지정제 폐지는 의료양극화를 심화시킨다. 오죽하면 김성이 보건복지가족부 장관 후보 인사청문화장에서 당연지정제 완화 추진 의사를 밝혔다가, 전재희 한나라당 의원이 질의 순서를 바꿔가면서까지 ‘한나라당은 절대로 완화하지 않는다’며 이 발언 진화에 급하게 나섰을까?

건강보험의 의료혜택이 적기 때문에 민영의료보험을 활성화하는 것이 과연 맞을까? 일단 건강보험을 만성적자에 허덕이게 만든 정부가 이를 언급하는 건 천부당만부당한 일이다. 정부는 ‘건강보험법’에 명시된 국고 지원의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지난 2002년부터 2005년까지 지급해야할 국고보조금 1조 5,722억원을 지급하지 않았으니 말할 자격없다. 돈 떼먹고 적자 운운하는 꼴을 납득할 국민은 없다.

오히려 건강보험 정책을 더욱 강화하고, 민영의료보험 시장을 축소시켜야 한다. 건강보험료를 25%이상 올리면 무상의료에 가까운 진료가 가능하다. 실제 일본에서는 완강한 건강보험 정책으로 진료비가 87만원을 넘지 못한다. 똑같은 위암수술을 할 경우 일본에서 16일 입원을 기준으로 총진료비 1,000만원 중 87만원만 본인이 부담하면 된다. 반면 한국의 경우 위암수술로 13일간 입원했을 경우 총 진료비 617만원 중 본인이 280만원의 거액을 부담해야 한다. 이 차이는 어디서 나올까?

민영의료보험의 문제가 핵심이다. 한국의 민영의료보험 시장은 2003년 6조 3천억원에서 해마다 1조원씩 증가해 2005년에는 8조 4천억원에 달한다. 그 기간 동안 건강보험료는 2003년 13조 7천억에서 해마다 2조원 정도 늘어 2005년 16조 9천억원을 징수했다. 건강보험료의 절반에 가까운 돈이 민영의료보험으로 징수된다. 건강보험을 25%만 올리면 일본처럼 무상의료가 가능하다고 언급한 것을 기억하는가? 민영의료보험 시장을 활성화할 것이 아니라 이 비용을 건강보험으로 흡수하고, 추가 민영의료보험료를 납부하지 않게 만드는 것. 이것이 ‘의료 선진화’의 진정한 해법이다.

선진국 미국을 바라보는 이명박 정부. 현재 미국 민중이 꿈꾸는 건 전국민 의료보험 시대다. 미국 민중이 꿈꾸는 새로운 선진국을 이명박 정부가 꿈꿔야 하지 않을까? 건강보험을 완화해 후진국으로 회귀하려는 이명박 정부. 의료정책의 감언이설에 현혹되는 순간 우리 주머니의 돈은 물처럼 빠져나갈 것이다. 건강보험 당연지정제를 완화할 것이 아니라 건강보험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 무상의료는 결코 먼 곳에 있지 않다.

* 참고 : 일본 의료제도 등에 대한 자세한 자료는 mbc 뉴스후 2월 23일 방송본을 참고하기 바란다. <존 큐> 영화도 한 번 쯤 볼 것을 권한다. 그리고 마이클 무어 감독의 <식코>가 개봉되면 꼭 관람하기 바란다. <식코>는 3월 국회에서 시사회가 열리며, 4월부터 전국에 개봉될 예정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고소영, 강부자, 강금실을 넘어

 

고소영, 강부자, 강금실을 넘어

- 줄임말 프렌들리의 맹활약, 그 이면에는 -

 

그 친구들은 번뜩이는 기지와 영민함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잠을 자고 일어나면 활개치는 ‘친구’들이다. 그들은 거침없이 인터넷 인기검색 상위권을 향해 하이킥을 날리고 있다. 친기업 정부 출범을 전후한 ‘줄임말 프랜들리’의 맹활약.

존득존득 입에 감기는 그들의 ‘실용적 용어’선택에 탄복할 따름이다. 왠만하면 전 국민이 다알고 있는 이들을 ‘포섭’ 대상자로 삼은 과감함도 눈에 띄인다.

고소영으로 시작한 그들의 질주는 이제 강금실로까지 치닫고 있다. 브레이크 없는 친구들의 질주를 제왕마저도 도통 막을 방법이 없는 듯하다. 여기서 잠깐, 다들 알고 있겠지만, 그들의 총명함에 한 번 빠져보자.

고소영st라인 : 려대, 망교회, 남, Seoul, Tennis
강부자 클럽 : 동산 부 클럽
강금실 내각 : 남의 싸리기땅을 제로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내각

연일 ‘줄임말 프렌들리’의 활약만이 난무할 뿐이다. 이들의 활약상에 취임식을 앞둔 친기업 정부의 지지율은 여지없이 곤두박질쳤다. 취임 전날 발표한 KBS의 여론 조사에 따른면 이명박 정부에 대한 지지율은 고작 75%에 지나지 않는다. 당선 직후보다 10% 정도 빠진 수치다. 보수 신문들의 지지율 조사에서는 이조차도 훨씬 못 미친 53-57%가 나왔다. 당선 이후 오락가락 행보가 그 결과를 초래했다. 김대중 정부 인수위의 지지율이 90%대였고, 노무현 정부 출범 직전인 2003년 2월 지지율이 92.3%라는 점에 비하면 보잘 것 없는 수치라 할 수 있다.

물론 여기에는 인수위의 오락가락, 비틀비틀, 횡설수설, 갈지(之)자 정치 등 조타수 없는 설익은 설레발 정치가 톡톡히 한몫했다. 유류세와 통신료 헤프닝, 영어몰입교육, 숭례문 국민모금, 인수위원들의 장어 향응 따위가 그것이다.

그러나, 정작 우려스러운 것은 ‘줄임말 프렌들리’의 사각지대 때문이다. 이 친구들이 분명 이명박 정부에 대한 태생적 ‘두드러기’가 있는 것 사실이지만, 유독 한 부분에 대해서는 무거운 ‘침묵의 카르텔’을 형성하고 동조자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747정부의 경제정책에 희생양을 노동자로 삼아야 한다는 부분에 대해서 그러하다. 이명박 당선자 시절에 발표된 경찰의 ‘집회 시위 관리 매뉴얼’에 대해 이들의 태도가 그러하다. 테이저건 사용과 백색 하이바(헬멧)으로 상징되는 ‘백골단의 귀환’에 대해 그 친구들은 침묵하고 있다.

한국 경찰은 지난 2005년부터 전기충격기를 도입해 사용해 왔다. 미국 테이저사에서 만든 X26C 기종이 그것이다. 이 회사 이름을 따 세칭 ‘테이저건’으로 회자되고 있다.  테이저건의 사거리는 6.5m이며, 두 개의 작은 침이 발사돼 5초 동안 무려 5만 볼트의 고압전류가 흐른다.

문제는 이 테이저건이 본래 사용목적인 집회 진압을 넘어 사람의 숨줄까지도 제압해 버린다는 점에 있다.  지난해 11월 7일. 국제사면위원회는 한국 경찰이 도입한 테이저건이 살인무기임을 경고한 바 있다. 국제사면위원회가 지난 2001년 이후 발표직전까지 테이져건의 위험성을 조사한 결과보고서는 가히 충격적이라 할 수 있다. 테이저건 사용으로 인해 미국과 캐나다에서 무려 290건에 달하는 사망사고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부검결과 최소 20건이 감전사가 직접 사망원인이었고, 전기 충격으로 인한 심장마비, 호흡곤란 등으로 인한 간접 사망원인을 일으켜 간접 사망원인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한마디로 테이저건은 살인무기에 지나지 않는다.  이에 국제사면위원회에서도 테이져건의 즉각적인 사용 중단을 강하게 제기하였다. 

이 내용이 지난해 11월 7일 국내 언론에 보도되었으니 경찰청이나 호사가들이 이를 모를리 없다.  경찰청은 올 1월 4일 당선 축하용 ‘메뉴얼’을 발표하였으니, 당연 이들의 분기탱천한 맹활약이 기대되던 터였다.  잘근잘근 씹기 좋은 폭발력을 가진 사안임에 틀림없다. ‘줄임말 프랜들리’의 생기가 넘칠 만한 사안 아닌가? 테이저 건을 소재로 한 잇단 삼행시 발표가 나올 법했다.

’루탄 ‘’압 백골단 전자 ‘’탄. 따위의 최진실 별(스타)이 총총히 빛날 법한데, 감감무소식이다. 벌떼처럼 달려들어야 할 친구들이 어찌된 일인지 이들이 생기를 잃어 버린 듯하다.. 입이 근질근질할 텐데 말이다. 살인위협에 시달리는 민중단체들만 분개했을 뿐 친구들의 말빗장은 도통 열리지 않았다.

지난 2월 20일에는 이명박 당선인이 어청수 신임 경찰청장에게 “경찰이 (시위대에) 매 맞는 모습을 절대 보이지 말라”라고 신신당부까지 했으니 테이저건이 대거 출동이 멀지 않은 듯하다.

하지만, 여기에 대해서도 이러쿵 저러쿵 입방아를 찧는 소리가 도대체 들리지 않으니 기이할 따름이다.

이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CEO가 ‘교부금 지원’등을 미끼로 지자체 단체장들을 파업 파괴자와 감시자로 내몰아도, 노동자의 최대 미덕을 무급 봉사 노동으로 강변할 때도, 파업권을 포기할 것을 강요할 때도, 얼토당토않은 핑계로 민주노총 방문을 거부했을 때도 뒷짐만 져왔다.

‘줄임말 프렌들리’의 주요 발원지이자 원천기술 보유처인 대통합민주신당은 ‘형식적 민주주의’에 대해서는 열변을 토하지만, 정작 노동자들의 실질적 민주주의에 대해서는 말폭탄을 퍼부을 생각은 전혀 없다. 친구들이 넘지 않아야 할 노란 폴리스라인은 딱 거기 ‘형식적 민주주의’까지다. 이 친구들에게 노동의 권리는 안중에도 없다. 그들 눈에 노동자는 경제성장의 걸림돌이요, 제압의 대상일 뿐이다.

‘줄임말 프렌들리’의 재치에 탄복의 감탄사를 연방 날리기 전에 노동자. 민중의 권리에 대해서 침묵의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어렵게 지켜왔던 노동자의 권리를 야금야금 갉아먹히는 꼴을 지켜볼 수만은 없지 않은가?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