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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8/02/21
    일어나라 노동자여
    花無十日紅
  2. 2008/02/13
    복잡한 아들의 회사
    花無十日紅
  3. 2008/02/05
    마지막 수업
    花無十日紅
  4. 2008/02/04
    창립둥이와 바지런이
    花無十日紅
  5. 2008/02/04
    학계에 보고해야 한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花無十日紅
  6. 2008/02/04
    부활하는 호죽
    花無十日紅
  7. 2008/02/04
    그들도 '밝은 세상'을 맞이할 수 있을까요?
    花無十日紅
  8. 2008/02/04
    산재의 추억
    花無十日紅

일어나라 노동자여

 

일어나라 노동자여

 

 

아직도 차량 통행량은 줄지 않았다. 깊어가는 정적을 뒤흔들며 도로표면을 긁고 질주하는 차바퀴의 마찰음 소리가 점점 크게 들려온다. 조금 더 밤이 깊어지면 우리는 ‘출동’할 수 있다.

 

체온 킬러 ‘칼바람’에 맞서기 위해 알콜기운을 비축하며 ‘대기’해 왔던 우리에게 출동지침이 떨어졌다. 3인 1조로 나뉘어 미리 파악한 지점으로 도착했다. 아득히 높아보이는 전봇대. 우릴 타켓으로 날아오는 삭풍의 총탄. 하지만 머뭇거릴 여유는 없다. 마른침을 삼키고 이를 악물고 맨몸으로 전봇대에 올랐다. 난생처음 해보는 전봇대 맨몸 등정과 현수막 걸기. 의욕은 앞서지만 따라주지 않는 얼어붙은 몸과 미숙한 손놀림 속에 힘겹게 할당량을 완수했다. 그렇게 ‘민중후보 백기완’을 알리는 현수막은 시내 요소요소의 전봇대를 점거해갔다.

 

나의 대선투쟁 맞보기는 그렇게 시작됐다.

 

그로부터 5년뒤. 나는 맛보기를 넘어 실질적인 대선투쟁에 결합했다. 아직 학생신분이었지만, 지역 대선투쟁의 안살림과 바깥활동을 넘나들며 ‘선거밥’을 먹었다. 십시일반 모은 돈으로 어렵사리 개소한 사무실. 석유난로 주위로 옹기종기 모인 우리는 대선투쟁의 다짐과 각오를 이야기하며 밤늦도록 ‘새우깡’을 곁들인 소주잔을 기울였다.

 

드디어 도착한 대선투쟁 트레이드마크.  권영길 후보의 출사를 알라는 포스터를 뜯어본 순간 모인 이들의 눈빛엔 실망감이 어렸다. 지금은 한나라당에게 심각한 지적재산권을 침해당한 '일어나라 코리아' 포스터가 그것이다.  휘날리는 태극기. 게다가 한 쪽 구석에 자리잡은 조그만 후보자의 얼굴.  도통 납득하기 힘든 포스터였다.

 

97년 1월 한보부도 이후 경제위기가 심화되고 대선 직전 IMF 구제금융을 받으며 고용불안이 심각하게 제기된 상황에서 느닷없이 일어나라 코리아라니. 경제회생을 위해 노동자의 희생을 강요하는 보수정치권 후보들과의 ‘변별력’을 상실한 선거기조에 동의하기 힘들었다. 문제제기가 잇따르고 비난이 빗발쳤다. 실망감이 컸다.

 

그러나, 실망감이 냉소로 이어지진 않았다. 대선 투쟁의 기조를 바꾸기 위한 노동자들의 정치가 불붙었다.  노동자들의 비판적 시각을 담아 민주노총은 대선 투쟁의 목표를 담은 포스터를 제작했다.  핏줄선 노동자의 옆 모습. 고개를 반쯤 숙인 듯한 그러나 주먹을 불끈 쥔 남성 노동자.  그 노동자는 대선 투쟁에 임하는 동지들에게 일어설 것을 격려했다. ‘일어나라 노동자여’ 노동자에게 자본의 위기를 모두 떠넘기려는 자본에 맞설 것을 독려했다. 노동자의 정치투쟁이 대선 흐름을 바꾸어 냈다. 권영길 후보는 노동자의 정치 투쟁에 선거기조를 전면 수정했다.  ‘총파업을 조직하는 최초의 대통령 후보’를 선언하고 삭발투혼을 밝혔다. ‘일어나라 코리아’로 시작한 97년 대선투쟁은 신자유주의에 맞서기 위한 ‘일어나라 노동자여’로 저물어갔다. 

 

다시 10년이 흘렀다. 10년이 흐른 지금 ‘일어나라 노동자여’를 이끌어낸 ‘노동자 정치'는 그 운신의 폭이 점점 좁아지고 있다. ’노동자 정치‘는 현장에서 임단투를 통한 ’민생정치‘ 해결로만 국한되어가고 있다.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96-97 신자유주의 저지 총파업 투쟁을 성사시킨 ’노동자 가두정치‘. 해마다 ’정치총파업‘을 벌인 노동자들이 정치는 ’정치‘로 취급받지 못하는 듯하다.  한국 사회의 가장 급진적 정치가인 노조 대표자들의 '정치 외면 태도'는 납득하기 힘들다. 

스스로 '대중활동은 노조가 정치는 민주노동당'이라 세뇌시킨 노동자들은 정작 중요한 정치투쟁엔 관람객으로 타자화되었을 뿐이다.  때가 되면 세액공제를 실시하고 계급투표를 조직하는 것이 최선의 정치로 바뀐 것이다.  한국사회 정치투쟁의 선봉장이 스스로 활동공간을 노조로만 국한하고 있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코리아 연방공화국’ 포스터 사태부터 시작해 ‘세상을 바꾸는 대통령’ 현수막, 그리고 대선 5일을 남겨둔 상황에서는 1억원을 들여 수도권 중심으로 ‘엄마! 민주노동당이 필요해’라는 슬로건으로 현수막교체로 2007년 대선은 ‘분당’과 '새로운 진보정당'으로 한편으로는 '계급정당 건설 복격화로' 새로운 대선 투쟁국면이 열렸다.

 

나는 이 대선 투쟁 국면에서 다시 한번 ‘노동자 정치’가 분출되기를 원한다. 현장에서의 민생정치를 넘어선 가두 정치투쟁에 앞장섰던 노동자들. 미국식 신자유주의의 이식을 위한 한미FTA 저지 총파업 투쟁으로 이어진 노동자들이다. 정치투쟁을 정치와 노조활동이 분리된 따로국밥식으로 받아들여선 안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정치의 주체였던 노동자들이 ‘노동자 정치’를 더욱 강화해 나가야 하지 않을까?

 

정치의 화두는 민생이다. 결국 노동자가 잘 살수 있게 만드는 것. 이것이 우리 노동자의 정치다. ‘비정규직 철폐’ ‘무상의료, 무상교육’ ‘사회공공성 강화’는 임단투의 현장민생정치를 넘어선 사회민생정치 투쟁이다. 이번 대선이 이러한 ‘노동자와 민중의 민생’을 담보하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오류다. 비판을 수용하지 못하는 왜곡된 민주노동당의 동맥경화도 심각한 문제라 할 수 있다.

 

이제 다시 노동자들이 나설 차례다. 노동자의 민생정치를 위해 총력투쟁을 시작할 때라 본다. 정치는 결코 멀리있지 않다. 노동조합과 별개의 문제도 아니다. 노동자들이 그동안 해 왔던 그 투쟁을 승리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 이것이 정치다. 고개 돌리지 말자. 동지가 정치의 주체다. 진보정치의 관객에서 주인공으로 노동자의 정치를 펼쳐야 한다. 필요에 따라 세액공제와 계급투표에 동원되는 노동자가 아닌 스스로의 해방을 위해 투쟁하는 정치의 주체, 노동자를 위한 진짜 정치판을 만들자.  노동자를 비싼 관람료를 지불하는 관객으로 내몰지 않고 진정한 '노동자 계급 정치를 실현'할 수 있는 정당, 진보를 넘어 "노동자 계급'으로 설 수 있는 그런 정당을 꿈꿔보자

 

다시 한번 외쳐보자. ‘일어나라 노동자여! 노동자 계급의 해방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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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한 아들의 회사

복잡한 회사에 다니는 아들

 

 

“요즘 다니는 회사가 많이 복잡하니? 그래 알았다.” 수화기에 묻어오는 어머니의 목소리는 아쉬움이 담긴 듯 하기도 하고, 이해심이 섞인 목소리이기도 하다. 주변의 소음 탓과 나 역시 취기가 오른 탓에 다시 전화해야지 생각하고 수화기를 닫았다.

어머니에게 전화가 온 건 술자리가 한참 무르익었을 때다. 건배 속도가 빨라질수록 주변은 어수선하고, 절로 목소리들이 커져가기 마련이다. 한참 일대일 시답지 않은 술자리 논쟁을 하던 터라 자리에서 일어나기도 어려워 앉은 채로 전화를 받았다. 어머니는 아내의 연락처를 알고 싶다고 했다. 전화를 받은 김에 술기운을 빌려 말해버렸다. 어차피 내일 전화를 다시 하느니 그냥 말하는 게 편할 것 같아서...

“어머니, 이번 설에 집에 못가거든요. 대신 이번 주말에 갈께요.” 수화기 너머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오는데 주변의 소음에 묻혀 잘 들리지 않는다. 어머니도 주변의 어수선함을 알았던지 한 마디 하시더니 끊으신다. “요즘 회사가 많이 복잡하니? 그래 알았다.”라면서...

울 처갓집은 딸만 셋인 딸부자집이다. 그나마도 장녀인 안사람만 한국에서 생활한다. 그러니 명절 때면 장인장모 둘만 적적하게 보낸다. 결혼하면서 이런 사정을 감안해 한번은 처갓집에서 한번은 고향집에서 보내기로 했다. 지난 추석 때 고향집에 갔으니 이번 설은 처갓집에 갈 차례다.
벌써 결혼한 지 햇수로 5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도 눈치가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다. 부모님도 그렇지만 형들의 눈치도 보인다. 막내둥인지라 버티고 있지만, 그래도 여간 힘든 게 아니다.

부모님한테 이런 말하기도 미안해서 아예 못 간다고 이야기를 하고 그 속내는 이야기를 안했다. 헌데, 다음날 생각해보니 엊저녁 어머니의 말엔 뭔가가 있다. ‘복잡한 회사’라니... 선왕의 유지가 담겨 있는 승지원이 털린 회사도 아니고, 창고에 꼭꼭 숨겨놓은 수억 원대의 물감칠이 들통 난 회사도 아닌데 ‘복잡한 회사’라니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물론 한 가지 집히는 부분이 있기는 했지만...

주말에 집에 다녀오니 어림짐작했던 생각이 맞아 떨어졌다. 부모 자식 간의 핏줄로 통하는 ‘직감’은 빗나갈리 없다. ‘이 박사’ 때문에 ‘회사’가 복잡할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직설보다는 돌려 말하기를 좋아하는 충청도 ‘촌로(村老)’들이다. 대통령 때문이라고 쏘아붙이기 보다는 ‘이 박사’ 때문으로, 맨날 데모질이나 하는 민주노총보다는 ‘회사’로 에둘러 표현한 것이다. 하긴 초대 대통령을 박사라 불렀고, 같은 성씨를 쓰는 사람이 대통령에 당선됐으니 이박사라 칭하는 것도 무리는 없을 듯 했다. 밥값을 하는 곳을 회사라 부르는 것도 무방하다.

하지만, 늙스레한 이 촌로에게도 ‘노동정세’를 빼꼼하도록 만든 건 나다. 자식걱정으로 뉴스에 귀를 쫑끗 기울이게 만들고 대규모 집회를 촬영한 뉴스화면에 아들 얼굴이 나오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을 나도 잘 알고 있다.

이 촌로들이 걱정하는 ‘이 박사’의 대노동 정책. 하지만, 촌로들보다 정작 우리 노동자들의 긴장감이 크게 느껴지지 않는 게 문제인 듯 싶다. 얼마 안 있으면 ‘이 박사’가 취임을 한다. 촌로들이 걱정하는 싸움의 시작도 얼마 남지 않은 듯하다. 우리 부모님의 걱정도 날로 커가겠지만, 응원도 커질 것으로 믿는다.

당신들은 세월을 타고 넘은 예리한 시각이 있다. 험난한 ‘노동정세’를 걱정하던 당신들의 시선은 ‘이 박사’의 만행으로 옮겨질 거라 믿는다. 그리고 이에 맞서는 ‘복잡한 회사’를 다니는 아들에 대한 응원도 커질 것이다. 이미 당신들은 세상이 점점 팍팍해지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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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수업

 

마지막 수업

 

째각째각째각... 초침이 정각을 향해 분주히 옮겨가고 있습니다. 딩동댕동. 세 시 정각이 되자 어김없이 수업시작을 알리는 경고방송이 흘러나옵니다. 또각 또각 또각. 귀에 익은 선생님의 구둣발 소리. 그 소리가 복도와 교실 사이의 경계창 사이를 헤집고 교실 안으로 안으로 파고듭니다. 교실 공기를 자극하던 구둣발 소리가 잠시 멈춘 사이, 드르륵 교실문이 열립니다.

복도의 한기를 몰고 들어온 선생님의 낯빛도 차갑습니다. 교실 문을 닫고 단상 앞으로 무겁게 무겁게 발길을 옮깁니다. 두 팔을 뻗어 손바닥으로 단상을 딛고 고개를 숙인 선생님은 한 동안 꼼짝도 안합니다. 얼마간의 숨 막힌 정막을 깨뜨린 것 역시 고개를 들어올린 선생님입니다.

충혈된 눈의 초췌한 모습. 미세한 얼굴 근육의 떨림이 느껴지는 선생님은 마지막 힘을 쥐어짠 듯 입을 열었습니다. “오늘은 마지막 수업입니다.” 그렇습니다. 이번 수업이 마지막이라는 것을 우리도 잘 알고 있습니다. 선생님의 어두운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한 건 그 때문입니다.

인수위 점령군 들어온 이후 공부시간 중 ‘미국어 몰입 교육’을 내세우며 우리말 사용을 금지했습니다. 이제 수업 시간 중에 우리말을 입 밖에 내서는 안 됩니다. 친절한 인수위 점령군은 혹여 있을 불상사를 우려해 ‘그 때 그 시절’ 동영상을 보여준 적이 있습니다. 내선일체와 황국신민화 시대의 영상입니다. 수업시간에 ‘금지된 우리말’을 사용할 때 가해진 끔찍한 체벌에 모든 학생들이 찔끔찔끔 오금을 저렸습니다.

선생님은 수업시간 동안 한글의 우수성과 아름다움을 낮은 목소리로 말씀해 주셨습니다. 어느덧 수업을 마칠 시간이 되었습니다. 딩동댕동. 벨이 울립니다. 인수위 점령군 시대의 수업이 시작됐음을 알리는 종이 울립니다. 내일부터 수업시간에 우리말글을 쓸 수 없음을 알리는 종이 울립니다.

선생님은 어쩔 줄 모르는 당황스런 모습으로 안절부절 하십니다. 그러나, 이내 한숨을 내쉬며 창백해진 얼굴로 우리를 등 뒤로 하고 칠판을 마주봅니다. 오른손으로 백목을 들었습니다. 떨리는 손에 힘을 주어 칠판에 한 자 한 자 또박또박 써 갑니다.

“한국어 만세!”

 


이제 얼마 안 있으면 한국인 알퐁스 도데가 탄생할지도 모릅니다. 정말이지 점령군의 횡포는 매한가지입니다. 총을 들지 않았을 뿐이지 인수위의 행태도 다를 바 없습니다. 지난 1월 30일에는 <영어공교육 완성을 위한 실천방안 토론회>가 열렸습니다.

공청회입니다. 사전을 찾아보았습니다. 한자로는 公聽會로 씁니다. 사전적 의미로는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의 기관이 일정한 사항을 결정함에 있어서 공개적으로 의견을 듣는 형식]을 말합니다. 말 그대로 국민의 의견을 들어야 합니다. 헌데, 이번 공청회는 참으로 독특합니다.

공청회를 하루 앞두고 예행연습을 진행했다 합니다.  토론자들을 사전에 모아놓고 공청회 진행과 내용에 대해 입맞추기를 한 겁니다.  공청회가 잘 짜여진 각본의 공연으로 바뀐 셈입니다.  리허설까지 하는 공청회는 유사 이래 처음일 듯 싶습니다. 드높은 악명을 자랑하는 박정희, 전두환마저도 미처 생각치 못한 놀라운 발상의 공청회입니다.

편파적 토론자 선정도 문제입니다. 토론자 중 ‘반대’ 입장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을 수 없습니다. 발제자와 토론자의 명함만 봐도 반대가 없음은 세 살박이 코흘리게도 알수 있습니다.  토론자는 인수위 상임자문위원.  패널은 인수위 자문위원 1명, 영어몰입교육 논문 발표자 2명, 인수위 위원장 추천 교수 1명, 이명박 후보 지지단체 학부모 대표 1명입니다.  반대자가 있을 턱 없습니다.  

여기엔 싹자르기식 토론자 배정도 한 몫했습니다.  교육단체도 끼워넣어야 모양새가 될 것 아닙니까?  모양새를 위해 교총이 패널로 섭외되었습니다.  그러자 비판여론이 일었습니다.  교육단체엔 전교조도 있고 참교육학부모회도 있기 때문입니다. 편파성 시비가 일자 도마뱀 꼬리자르기 식으로 교총패널을 잘라 버렸습니다.  전교조의 패널 진입 차단을 위해 선빵을 날린 셈입니다.  반대여론의 싹을 잠재운 공평무시(公平無視)한 행정에 탄복할 따름입니다.

폐쇄적인 공청회 운영의 논란도 있습니다. 방청객을 10명으로 한정했다는 겁니다. 이 때문에 참석을 시도한 이들과 경찰간 출입을 둘러싼 마찰도 있었다고 합니다. 이를 두고 세입자와 철거민 사이의 몸싸움과 경찰력 충돌이 빚어지는 ‘건설업자 재개발 공청회’와 다를 바 없습니다.  사정이 이러니 향후 5년의 계획을 충실히 토론할 수 없습니다.  1시간 30분만에 후다닥 토론회를 졸속적으로 마쳤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사전을 검색해보면 공청회는 두 가지가 나옵니다. 公聽會와 空聽會가 그것입니다. 空聽會는 [참여하는 사람이 별로 없는 공청회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 합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公聽會보다는 空聽會가 사업추진엔 훨씬 실용적이라 판단하는 정부의 탄생이 머지 않았음을 또렷이 기억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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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립둥이와 바지런이

창립둥이와 바지런이

 

그는 창립둥이다. 회사 문을 열 때부터 회사밥을 먹어왔다. 올해로 열네살박이가 된 회사니 녹록하지 않는 짬밥이다.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 중에 왕고참이다. 그는 회사의 산 증인이자 숨 쉬는 역사인 셈이다.

14년 전만 해도 그는 날고 기었다. 좋은 회사에 입사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에 비해 돈도 많이 벌고, 일도 덜 힘들었다. ‘좋은 회사’를 다니는 그에게 사람들은 부러운 시선을 한 눈에 받았다. 그럴수록 회사에 대한 자긍심도 강해졌고, 괜스레 어깨가 으쓱여지는 듯 했다.

하지만, 14년이 흐른 지금. 그는 그 자리에 함께 하고 있다.

그 옆에 함께 앉아있는 이는 바지런이다. 과장이 섞였겠지만, 1년 365일을 일한다고 한다. 내 옆자리에 앉아 있는 바지런이는 한 시간이 넘게 술자리를 했지만, 도통 입을 열지 않는다. 술자리만이 아니라 평상시에도 그가 입을 여는 것을 본 기억이 없다. 과묵함과 성실함이 잘 버무려진 전형적인 바지런이다.

그런 그 바지런이가 요즘엔 전에 없던 일을 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지 않는 행동을 한 것이다. 무려 열흘 넘게 연차휴가를 사용했다. 아픈 것도 아니다. 집안 문제나 개인 사정 때문도 아니다.  

창립둥이와 바지런이가 함께 술을 기울이게 만든 건 ‘괘씸한 회사’ 탓이다.

창립둥이는 그동안 받아왔던 부러운 시선을 되갚고 있는 중이다. 지난 14년간 회사는 그의 임금을 조금씩 깎았다. 그를 부러워했던 사람들의 눈빛은 측은함으로 바뀐 듯하다. 그의 회사는 더 이상 ‘좋은 회사’가 아니다. 그는 지난 14년간 ‘빼앗기는 삶’을 살아온 것이다.

바지런이가 휴가를 사용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그의 삶은 더욱 팍팍해진다. 남들이 인정해 줄 정도로 1년 365일을 꼬박 일했는데, 월급봉투는 갈수록 가벼워지니 말이 없는 그 조차도 화가 날 수밖에 없다. 그는 노동조합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휴가를 사용한 것이다.

회사가 ‘위기’ 상황인 것도 아니다. 해를 거듭할수록 벌어들이는 돈이 늘어나고 있다. 회사 홈페이지는 2004년 81억의 매출을 올렸다고 자랑하고 있다. 업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우량기업이다.
여기에 이 회사 대표이사는 주변 사람들의 ‘귀감’이 되는 사람으로 칭찬이 자자하다고 한다. 작년에는 대표이사가 저축의 날에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장관에게 표창을 받기도 했다. 대표이사는 5년간 소년소녀가정 세대를 위한 결연 사업을 추진하고, 어려운 농가마을에 연간 4억 원에 상당하는 12만여 톤의 재생순환골재를 무상공급하기도 하는 등 ‘모범 한국인’이다.

그런 회사가 도를 넘어선 못된 짓을 하고 있다.  회사는 노조 조합원보다 비조합원들이 ‘집회’를 훨씬 많이 하고 높은 단결력을 과시한다. 조합원보다 5배 정도 많은 비조합원들의 자발적인 ‘노조탄압 집회’가 끊이지 않는다. 조합원들이 한두 명이라도 있으면 어김없이 비조합원들의 집회가 개최된다. 노골적인 집단 왕따 결의대회다.

회사는 노조가 창립하자 전례에 없던 신규채용을 실시했다. 회사의 채용기준은 ‘입이 걸고 험상궂은 인상’이었던 모양이다. 회사는 지금 면접을 무사통과 한, 조합원들의 조카뻘 정도의 ‘앳된 청년들’이 활개치고 다닌다. 급기야 그들이 노조 위원장을 폭행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이런 회사니 14년간을, 1년 365일을 ‘빼앗기는 삶’을 살아온 노동자들이 화가 나지 않는 게 이상할 지경이다. 이들은 노조를 만들고 ‘못된 회사’와 싸움을 각오했다.
노조는 최근 결사항전을 각오하는 한편 회사에 마지막 입장을 전달했다. 회사가 입장을 수용하지 않으면 11명의 조합원들의 본격적인 싸움이 시작될 예정이다.

하지만, 부담감도 없지 않다. 사내 집회를 하면 비조합원들의 ‘맞불집회’대오가 전 조합원의 5배에 달하니 기가 죽을 수밖에 없다.

노조 간부는 민주노총의 연대를 믿는다고 힘주어 말했다. 노조간부가 발언하는 동안 우리를 주시하는 묵묵한 눈빛이 느껴졌다. ‘바지런이’ 조합원의 눈빛이다. 그는 한 번도 입을 열진 않았지만, 우리가 함께 해 줄 것을 눈빛에 담아 보내고 있었다. ‘못된 회사’에 맞서 노동자권리를 찾기에 민주노총이 함께 했으면 하는 바램을 담아서 말이다.

이 회사가 바로 얼마 전 직원 명단에도 없는, 문신을 두른 정체모를 거구의 ‘직원’이 노조위원장을 폭행했던 ‘우진환경’이다. 이제 설 연휴가 지나면 이들의 투쟁은 본격화될 예정이다.

14년간 ‘빼앗기는 삶’을 살아온 창립둥이가 ‘다시 찾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구호를 외치며 무거운 입술을 떨어뜨리는 ‘바지런이’ 조합원은 제 값을 받고 365일을 일할 수 있을까?
그 해답은 ‘창립둥이’와 ‘바지런이’의 투쟁에, 그리로 어깨걸기를 주저하지 않는 동지들의 모습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2008.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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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계에 보고해야 한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학계에 보고해야 한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학계에 보고해야 한다. 대박감이다. 사이언스지도 네이쳐지도 군침 흘릴만하다. 이 사실을 전해 들었다면 너도나도 자신의 잡지에 게재해 달라고 바지자락을 붙잡고 통사정해야 할 판이다.

 

약삭빠른 의료자본의 흥분도 예상된다. DNA 검사에 참여하고픈 의학자들이 줄을 설 게다. 자신의 손으로 신인류 진화의 비법을 밝혀내는 영광을 마다할리 없다.

 

군사기관도 눈독을 들일만 한다. 비밀병기 육성 가능성을 타진해 볼 것이다. 공상과학만화에서나 가능했던 돌연변이 ‘엑스맨 군단’을 만들 수도 있다. 놀라운 치유력을 가진 그를 통해 새로운 전쟁을 꿈꿔볼 만하다.

 

전화선을 통해 전해오는 그의 치유력에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추락사고를 당해 병원에 응급후송 되었다고 한다. 후송 직후 병원 측에서는 갈비뼈 6곳이 부러졌다며 금식 처방을 내렸다. 다음날 학계에 반드시 보고해야 할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하룻밤 사이에 부러졌던 6대의 갈비뼈가 모두 붙어버린 것이다. 의사는 단순 염좌라 했다. 발을 삐었을 때 말하는 그 염좌라고 한다. 그는 고통을 호소하면서 MRI 등 정밀 촬영을 요구했지만, 의사는 묵살했다. 그는 어느새 꾀병환자로 몰렸다. 단순 염좌에 불과한 환자가 고통을 호소하고, 고가의 MRI 촬영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보험료를 타 먹으려는 몰염치환자로 몰린 것이다. 결국 움직일 때마다 무의식적으로 나오는 신음소리마저 삼키며 그 병원을 퇴원했다.

 

만약 의사의 진단이 사실이라면 그야말로 대박감이다. 인류의학의 획기적 발전을 꿈꿔볼 기회다. 하룻밤만에 부러진 갈비뼈 6대가 붙을 수 있는 치유력의 비밀을 캐낸다면 말이다. 이 작업에 참여하고자 하는 의사들로 병원은 문전성시를 이룰 것이고, 기업은 물론이거니와 국가정책적 차원의 연구지원도 봇물을 이룰게다. 그가 공개되는 순간 언론의 취재경쟁으로 번쩍임이 멈추지 않을게다. 그러나, 어찌된 영문인지 해당 의사는 학계에 보고하지 않았다. 놀라운 치유력의 비밀에 관심이 없었거나 제2의 황우석 사태를 질러볼 자신감이 부족했기 때문일 게다.

 

그는 하이닉스 공장증설 현장에서 일했던 건설노동자다. 세상에 이런 일이 어딨냐며 호소하는 그는 아직도 병원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현대건설이 시공사인 공사판에서 사고를 당했지만, 건설회사는 모르쇠만 한단다. 산재처리는 언감생심 꿈도 못 꾸고 있다고 한다. 의료 문외한인 자신이 보기에도 부러진 갈비뼈가 너무 선명하단다. 누가 보더라도 판독할 수 있는 엑스레이 사진이란다.

 

어찌되었건 이건 학계에 보고해야할 중대한 사안이다. 그리고 연구결과를 반드시 내와야 한다. 어물쩡 넘어갈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 노동행정감시학회가 있다면 민주노총의 목소리에 귀를 쫑끗 세워야 한다. 대전지방노동청 청주지청(이하 청주노동지청)은 중요한 연구대상이 될 수 있다. 민주노총의 목소리에 귀 기울였다면, 그들의 행정이 정말 문제있음을 꼬집을 수 있다. 닷새짜리 공사중지명령 해제 이후에도 여전한 안전실태 미흡, 산재 은폐, 관리감독 소홀 등 연구과제가 널려 있다.

여기에 주눅행정과 호통행정도 연구대상이다. 말년은 비굴과 용감이 공존하는 모양이다. 정년퇴직이 1년밖에 남지 않았다는 지청장은 ‘주눅행정’과 ‘호통행정’을 오간다. 공사중지명령 해제를 촉구하는 지자체와 기업경영계에게는 고개숙인 ‘주눅행정’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그들의 압박정치에 백기투항과 굴복으로 화답했다. 반면 노동계에는 그의 넘치는 용기를 보여주었다. 현대건설 공사현장의 산재문제로 면담에 들어간 노동계 대표에게 반말과 고함으로 호통행정이 무엇인지 보여준 것이다. ‘강익강 약익약’ 행정의 전형이다.

인원부족만 되뇌이는 앵무새어법과 되돌이표 행정도 연구해야 한다. 명예산업안전감독관의 자발적인 ‘발품 감시행동’을 거부하는 그들만의 행정도 철저히 분석 해부해야 한다.

 

심리학회에서는 현대건설의 뻔뻔함에 대한 연구에 착수해야 한다. 같은 공사현장에서 3명이 산재로 죽었는데 요놈의 현대건설은 기세등등하다. 철면피도 이만한 철면피가 따로 없다. ‘2007년 사망재해 최악의 기업’답게 현대건설은 연이은 사망사고에 이렇다 할 사과없이 뻣뻣함을 고수한다. 사망재해 최악의 기업 선정을 명예롭게 받아들이니 놀랄노자 일 뿐이다. 여기에 산업재해를 적당적당 덮어버리려는 친불법 기업심리도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

기업은 산재를 은폐할 수 있지만, 산재를 입은 노동자와 가족은 산재의 멍에에서 벗어날 수 없다. 노동자의 불행을 기업의 성장 발판으로 삼는 현대건설의 마음보도 충분한 연구가치가 있다.

 

참고) 모언론사의 보도에 따르면 다양한 산재은폐 사례가 폭로되었다. 다음은 기사내용이다.

A씨는 산재발생 후 초진에서 단순염좌 진단을 받고 퇴원했다. 병원을 옮겨 재진단 받은 결과 뇌진탕(후유증)과 두개부좌상, 5-6 요추전방전위증 등의 진단을 받아 입원 치료중이다.

B씨 역시 산재발생 후 초진은 염좌와 좌상진단을 받고 퇴원했다. 역시 병원을 옮겨 재진단을 받은 결과 견갑골과 늑골 2대(6-7번)이 부러진 골절상을 입은 것으로 확인됐다.

D씨 역시 산재발생 후 초진은 후성결과 외상성 혈기흉과 우측다발성 늑골골절 등 3개의 진단만을 받았다. 그러나, 재진단 결과 두개골 및 안면골 골절, 비골 및 견갑골 골절 등 무려 8개항목에 대한 추가진단이 나왔다.

언론사는 이 보도를 하면서 건설사와 병원간의 유착에 강한 의혹이 제기되고 있음을 언급했다.

 

 

 

2008.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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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하는 호죽

부활하는 호죽

고 정진동 목사의 삶 따라 <호죽노동인권센터> 열어

 

신영복 선생이 직접 쓴 현판 글씨가 도착했다. <호죽노동인권센터>라고 쓴 현판 글귀 오른쪽 아래편엔 어김없이 ‘쇠귀’가 쓴 글임을 알리는 빨간 낙관이 찍혀있다.

      ▲ 신영복 선생이 써주신 현판, 아쉽게도 낙관은 담지 못했다.


신영복 선생의 아호인 ‘쇠귀’는 감옥살이를 마친 이후부터 써왔다. 세상으로 나온 이후 선생이 부모님과 처음 함께 산 곳이 우이(牛耳)동이었기 때문이다. 흔히들 아호를 ‘특별한 의미’의 마을 이름을 써온 관례에 따른 것이다. 한자로 쓸 때는 牛耳라 쓰지만, 한글로 표기할 때는 말뜻에 따라 쇠귀로 쓴다.

사람과 사람간의 ‘관계’를 중시한다는 신영복 선생. 그는 현판 글씨 요청에 신중함을 보였다. 호죽노동인권센터와의 ‘관계’와 ‘인연’이 없었던 탓이다. 그런 그가 선뜻 글을 써 준 건 ‘호죽’이 가지는 무게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호죽’은 충북지역 민중운동의 큰 별이었던 ‘정진동 목사’의 아호다. 정 목사는 청원군 옥산면 호죽리에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난 마을 이름을 따서 호를 정한 것이다. ‘호죽’은 한 평생 예수의 참삶을 실천해 왔다. 30여 차례의 연행과 옥고를 치루면서도, 한평생 노동자, 도시빈민을 위해 투쟁해 온 ‘호죽’이다. 소천(召天)하기 전까지 그는 800여건이 넘는 노동자·빈민의 인권 문제를 해결했다.

        ▲ 고 정진동 목사

 

  신영복 선생이 ‘관계’도 없고 ‘인연’도 없는 그 곳에 현판 글씨를 써 주고 ‘관계맺기’에 주저하지 않은 건 이 때문일 것이다. 선생은 ‘하방 연대’를 강조해 왔다. 흘러가 바다에 닿는 강물처럼 낮고 약한 이들에게 손을 내밀자는 것이다. 사회적 약자에게 손을 내밀고 어깨를 걸었던 ‘호죽’의 삶은 이런 선생이 외침과 물길을 같이 한다. 그 물결을 견결히 하겠다는데 선생이 마다할 리 없었을 것이다.

올해부터 <호죽노동인권센터>의 법률지기가 된 조광복 노무사는 ‘비정규 노동자, 외국인이주노동자, 최저임금 노동자 등 취약계층 노동자의 법률구조활동 지원과 노동이 존중받고 노동인권이 보호되는 사회를 지향하는 활동을 펴나갈 것임을 강조했다. 그것이 평생을 노동자와 가난한 이들의 벗으로 사시다 작고한 정진동 목사님이 남겨준 이름빚을 갚는 길이라 믿기 때문이다.

신영복 선생은 즐겨쓰던 ‘밤이 깊을수록 별은 더욱 빛납니다’라는 작은 글귀를 덧붙였다. 비정규노동자들의 어둠을 선명히 밝혀주길 바래는 마음을 담은 것일테다. 비정규 노동자들에게 문턱을 낮추겠다는, ‘호죽’이 영원히 살아 있음을 보여주겠다는 <호죽노동인권법률센터>의 개소가 기다려지는 것은 나뿐만이 아닐 게다.

 

 

2008.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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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도 '밝은 세상'을 맞이할 수 있을까요?

 

그들도 '밝은 세상'을 맞이할 수 있을까요?

 

“신발 아저씨는 요즘 뭐하세요?”

‘더 늦기 전에’라는 생각으로 결심했다. 이번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기 때문에... 큰 맘 먹고 거금을 들여 파마를 하기로 한 것이다.

꽤 오랜 기간 머리를 다듬지 않았더니만 이리삐죽 저리삐죽 정리불가 수준인데다 착 가라앉는 머리가 신경을 자극했다. 망설임도 있었다. 파마를 할지 커트만 할지 며칠간 고민했다. 처음 하는 파마는 아니지만 자칫 따가워질 주변의 시선도 의식해야 해야 한다. 여기에 내 딴에 파마를 하기엔 나이가 좀 많지 않은가 하는 생각도 있었다. 하지만, 맘 먹은 김에 질러보기로 했다. 파마를 하기로 작정한 것이다. 더 나이를 먹기 전에...

지짐머리로 둘둘 말려 피식 웃음이 나올 정도의 우스꽝스런 모습을 하고 있는데 낯익은 남자가 미용실에 들어온다. 남자는 미용실 사장님에게 반갑게 인사를 하고, 내게도 살갑게 고개를 숙인다. 낯익은 남자의 인사에 나도 답인사를 나누고 기억을 떠올려봤지만, 도통 누군지 긴가민가해서 그 남자의 정체를 알 길이 없었다.

미용실 사장님은 그 남자에게 “신발하구 샤시는 요즘 어떻게 지내요?” 묻는다. 남자는 “대다수가 놀고 있어요.”라며 말끝을 흐린다.

그들의 대화 속에서 나는 그 남자가 누군지 어림짐작 할 수 있었다. 내가 왜 그의 얼굴이 낯이 익었는지, 그가 내게 살갑게 인사를 했는지 알 수 있었다. 그가 2년 4개월간 전국을 뛰어다니며 투쟁했던 하이닉스-매그나칩 사내하청지회 조합원이라는 것을.

미용실은 우리 민주노총 사무실이 있는 복지관 1층에 자리잡고 있다. 때문에 대다수 지회 조합원들이 2년 4개월의 투쟁기간 동안 이 곳 ‘전용미용실’을 이용해 왔다. 그 인연을 투쟁이 마무리된 지금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 남자의 얼굴은 밝았지만, 나는 그를 제대로 쳐다볼 수 없었다. 아직 대다수가 취업을 하지 못했다는 그의 답변이 아리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신발아저씨’와 “샤시아저씨‘는 투쟁 과정 틈틈이 아르바이트로 신발을 팔고, 샤시공사에 참여했던 사람들을 지칭하는 별칭이다. 사장님과 친했던 이들 신발과 샤시는 아직 취업을 못했다고 한다. 투쟁이 마무리되면서 미용실로의 발길이 끊긴 사람들에 대해 간혹 소식을 묻지만, 그닥 좋은 소식을 들은 적이 없다고 한다. 그들은 아직도 ’거리‘를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는 처지라고 한다.

‘소모품과 생수 우선 납품기회’를 부여받은 사람들의 처지도 매한가지다. 2007년 4월 합의 이후 ‘우선 납품권’을 받은 이들은 ‘(주)밝은 세상’이라는 회사를 설립하고 자판기 임대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당시 조합원 86명 중에 21명이 의기투합하여 회사를 설립하기로 했지만, 수익성의 문제로 이중 10명은 사업참여를 포기하고 11명만이 함께 하기로 했다. 위로금을 딱딱 털어 십시일반으로 회사 설립자금을 모았다. 어렵긴 하지만, 적어도 이들만큼은 똘똘 뭉쳐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 꿈을 포기하는 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사업의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 11명 중 3명이 ‘자신의 회사’에서 중도하차해야 했다. 그들 스스로 만든 기업에서 ‘경영합리화 작업’을 위해 뜻을 함께 한 사람이 떠나야 한 것이다. 3명에 대해 ‘경영상의 어려움으로 인한 불기피한 무급 휴직’을 해야 했던 이들이나, '밝은 세상‘의 생존자들 마음 또한 밝을 리 없다. 자신의 회사를 등지고 공사판 막노동을 선택한 먹먹한 이들의 심정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정상화가 되면 다시 복귀하기로 했다지만 설립 6개월이 지났지만, 아직도 적자 행진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월급도 제대로 지급할 수 있는 형편도 아니다. 그저 악착같이 ‘버틸 뿐’이라고 했다. 오는 4월경에 예정된 자판기 추가 계약이 성사되면 숨통이 트일 것으로 고대하면서 말이다. 그 날이 되면 정말 이들의 바람대로 환하게 웃을 수 있는 ‘밝은 세상’이 될 수 있을까? 스스로 발길을 끊어야만 했던 3명이 다시 ‘밝은 세상’에 합류할 수 있을까?

밝은 세상은 그들 스스로 밝히는 것만이 아니라, 우리도 함께 밝혀줘야 할 무거운 책임이 있는 것은 아닌가. 사회적 약자를 위해 ‘연대의 불’을 늘 밝혀야 하는 것이 ‘노동운동’을 말하는 사람들이 늘 가슴에 품어야 할 영원한 과제일 것이다. 그들은 ‘동지’들의 온기있는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 현재 (주)밝은 세상은 커피자판기 임대 사업을 주로 하고 있다. 민주노총 충북본부를 방문하면 이들이 설치한 커피자판기의 달콤한 카페인을 맛 볼 수 있다. (문의 : (주) 밝은세상 043-238-2900)

 

 

 

                                                                                                                        2008.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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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재의 추억

산재의 추억

 

“안전그물망 사이에 벌어진 틈 보이지. 내 친구가 그 틈 사이로 발을 헛디뎌서 몇 미터 아래로 떨어졌어.”
“그물망 위로 삐죽 올라온 철근 보이지. 내가 아는 사람은 넘어져서 그 철근에 찔렸어..”

하이닉스 건설 현장


이들은 죽지 않고 다리가 부러진 것이 다행이고, 철근이 장기를 찌르지 않아 죽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라고들 덧붙인다. 다리가 부러지고, 대수술을 해야 한 것이 천만다행이라는 섬뜩함이 묻어나는 이들의 대화는, 안전조치를 위반한 건설현장의 사진을 보며 나눈 대화의 일부다. 건설 현장에서 평소 잘 알고 지내던 지인들이 당했던 ‘산재의 아린 추억’이 떠오른 것이다.

이들은 평범한 노동자들의 눈으로 산재 위험성을 지적한 것이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이들이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는 ‘허술한 안전조치’는, 관리감독 권한을 가진 날카로운 전문가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지난 6개월간 무려 3명이 산업재해로 죽어간 하이닉스 건설현장

연 이은 사망사고 발생에도 불구하고 뒷짐져왔던 노동부는 비난여론이 거세지자 공사중지 명령을 내린 바 있다. 하지만 공사명령을 조속히 해제하라는 청주시장, 충북도지사 등 지자체 단체장과 상공회의소 등의 ‘압박정치’에 굴복해 공사중지 명령은 닷새만에 해제되고 만다. 철저한 현장조사를 통해 안전조치 위반 항목을 모두 시정했기에 공사중지 명령을 해제했다는 노동부의 발표와 함께...
하지만, 공사중지명령 해제 이후 촬영된 사진은 여전히 ‘안전조치 위반 사례’가 널려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노동부의 거짓부렁이 백일하에 드러난 셈이다.

연이은 산업재해 사망은 건설자본의 지나친 ‘돈 욕심’ 때문이다. 사람의 생명보다 공사기한 단축만이 최선이라는 건설자본의 욕심이 화를 불러온 것이다. 3건의 사망사고 모두 굴지의 건설자본인 현대건설이 안전조치에 필요한 비용을 투자했더라면 발생하지 않았을 사건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6개월이 넘게 ‘백야(白夜)’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현대건설은 하이닉스의 공사기간을 단축하겠다며 24시간 철야 공사를 강행했다. 어둠이 존재하지 않는 ‘하얀밤’이 지속되면서, 피곤함을 호소하는 건설현장의 노동자들의 하소연도 높아지고 있다. 건설현장이 다른 노동현장보다 노동강도가 높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럼에도 생체리듬을 무시한 채 밤샘 노동에 시달린 건설노동자들의 피로는 산재로 연결되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현장에서 근무했던 노동자의 증언도 충격적이다. 재해 방지를 위해 안전담당자가 작업 중지를 요청해도, 건설사에서 밀어붙이기식으로 공사를 강행한다는 것이다. 노동자의 생명보다 돈벌이를 선택한 현대건설의 ‘과욕’이 죽음의 건설현장을 만들어 가고 있다.

현대건설은 사망사고 1위 기업으로 악명이 높다. 작년 노동건강연대와 매일노동뉴스에서 뽑은 ‘2007 사망재해 최악의 기업’으로 낙인찍히기도 했다. 2006년도에만 10명의 사망자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현대건설의 끝없는 돈욕심이 노동자를 사지로 내모는 것이다.

산재의 추억이 잊혀지려면 보다 엄격한 규제와 관리감독이 필요하다. 당선인이 꿈꾸는 선진국에서는 산재사망을 ‘기업살인’으로 규정하고 있다. 실제 영국에서 산재사망사고를 살인죄로 규정하고 처벌한 사례들이 있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의 비상하는 ‘747 시대’를 앞당기기 위해서라도 솜방망이 처벌을 넘어선 엄중한 처벌이 산재사망사고를 줄일 수 있는 길이다. 여기에 상시적인 안전조치 위반 관리감독도 병행되어야 한다. 노동부는 인력부족을 이유로 관리감독이 불가능하다고 항변하고 있다. 이는 명백한 직무유기에 해당한다.

인력부족만 항변하는 노동부

여기에 대해서 민주노총은 해법을 제시한 바 있다. 산업재해 예방활동을 주 임무로 하는 명예산업안전감독관이 하이닉스 공사현장에서 안전을 점검하도록 조치하라는 것이다. 명예산업안전감독관은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노동부가 위촉한 사람들이다. 노동부를 대신해 감독관으로 위촉된 노동자들이 재해예방 활동에 심혈을 기울여 철저한 관리감독을 할 수 있도록 하자는 제안이다.

그러나 인력부족을 운운한 노동부는 일언지하에 이 제안을 거부하고 말았다. 중대재해가 발생할 때마다, 관리감독 소홀 지적에 대해 앵무새처럼 인력부족을 항변할 뿐이다.

 

20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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