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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3/13
    진단평가 시대의 인삿말 "선생님 집에 다녀오겠습니다."
    花無十日紅

진단평가 시대의 인삿말 "선생님 집에 다녀오겠습니다."

진단평가 시대의 인삿말

"선생님 집에 다녀오겠습니다."

 

내일은 전국 일제고사가 있는 날. 학교는 분주하다. 갑작스레 자상해진 교사는 학생의 건강을 걱정한다. 살뜰하게 아픈 곳을 묻는 교사. 선생님의 질문의도를 단박에 꿰뚫은 학생은 이내 온 몸이 아프다. 치명적인 ‘일제고사 병균’에 감염된 것이다. 내일 학교에 등교할 수 없을 만큼 말이다. 당연지사 내일은 병결처리.

전국일제고사가 시행되던 그 때 그 시절. 평균성적을 갉아먹는 하위권 학생들에게 일제고사 시험일은 앓아눕기 지정일이었다.  어김없이 창궐한 '급성 일제고사 바이러스'에 감염되는 날로 병결자가 늘어나는 날이었다.

 

10여년 전. 옥천에서는 이보다 더한 일이 발생했다. 옥천교육청은 일제고사 인센티브 제도를 도입했다. 순위에 따라 우수성적 학교에 100만원. 200만원 이런 식의 인센티브가 제공된다. 물론 학교 인사나 정책의 불이익은 없다. 하지만, 이 정책이 일선학교에 미치는 파괴력은 무시무시했다.

학교 석차를 올리기 위한 기발한 묘책이 동원됐다. ‘답안 훔쳐보기’ 활성화 제도가 도입이 그것. 교육 가치보다 성적이 우선인 세상에서 ‘공개적 컨닝’ 정도야 애교로 눈감아 줄 수 있는 것 아닌가? 공부 잘 하는 학생이 성적이 떨어지는 학생에게 도움과 협력, 우애를 키우고, 학교석차를 올리는 일석삼조의 효과를 올릴 수 있는 ‘답안 훔쳐보기’를 적극 장려한 것이다.

 

아프지 않은 아이를 아프게 만들고, 비도덕을 권장하도록 만든 건 '일제고사'에 내포된 석차지상주의의 절대적 폐해였다.  

'급성 일제고사 바이러스'는 아이들의 가슴에 깊은 타 학우들에게 피해주는 아이로 낙인찍히게 만들었다.  가상의 바이러스가 실존의 바이러스가 되어 학생들에게 지울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비도덕적 행위를 자행해도 승자가 되면 아무탈없다는 반교육적 행태를 가르친 학교.  그 학교가 만든 오늘날의 자화상은 부끄럽기 그지없다.  '부동산 투기 안하면 바보'고 4천만원도 넘는 "싸구려" 골프회원권을 문제시하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다는 이들이 있다.  사회의 도덕률과는 무관하게 승자사회를 걸어온 이들의 밑바탕엔 비도덕적 행위가 체화된 '학습효과'로 가능하지 않았을까?

 

이렇듯 일제고사의 숨겨진 폐해가 우리 미래를 곪게 만들어갔다.  그러나, 세상에 비밀은 없다. 제 아무리 쉬쉬한다 한들 이런 행태가 감춰질리 만무하다.  끝내 일제고사의 반교육적 행태가 만천하에 공개되면서 일제고사 폐지 목소리가 드높았고, 끝내 일제고사는 폐지되었다.

그 후 10년. ‘잃어버린 10년’을 만회하겠노라는 이명박 정권이 들어섰다. 들어서자마자 10년 전에 사라진 악습이 포장만 조금 달리한 채 재생된다. 무늬와 포장은 달라졌을지언정 내용상으로는 하등 달라진 게 없는 ‘진단평가’의 실시가 그것이다. 비록 이름이 일제고사에서 진단평가로 달라졌을지언정 그 차별성을 눈 씻고 살펴봐도 내용상 차이점이 없다.

중1 진단평가가 실시된 3월 6일. 충북도교육청에서는 11일간 나홀로 맨몸 농성을 진행한 바 있던 전교조 충북지부장이 농성을 마무리했다. 마무리하는 자리에서 그는 진단평가의 문제점들을 조목조목 지적한 바 있다.

이번 진단평가가 사교육비를 증가시키고 학생을 시험전쟁의 ‘전투병’으로 내몬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점이다. 진단평가를 전후해 한 권에 1만 원에서 적게는 8천 원 정도에 달하는, 10여 종에 달하는 평가지가 불티나게 팔렸다. 그런가 하면 눈치 빠른 학원들은 진단평가 대비반을 만들어 수강생을 모집했다. 모 업체는 한 번에 2만 원을 받는 모의시험도 두 차례나 실시했다. 이 모의시험에는 6천 여 명이 응시했다 한다. 이렇듯 사교육시장이 진단평가 특수에 발빠른 움직임으로 짭짤한 수입을 올리는 동안, 학부모들은 엄한 사교육비를 지출해야 했다.

학생들은 새로운 중학교 친구들을 사귀고, 새로운 수업에 적응하는 대신 밤늦도록 불을 밝히고 진단평가 문제지 풀기를 반복해야만 했다. 바뀐 환경의 적응도 스트레스일터인데, 몇 일만에 ‘시험 전투’를 치러야 하니 볼멘소리가 안 나올 리 없다.

법적으로 금지된 일제고사의 허점을 파고들려하는 교육청의 얄팍한 비교육적 꼼수도 지적했다. 전국 68만 명이 응시한 중1 진단평가. 시도 교육감들이 논의해 전국적으로 일시에 같은 문제지로 시험을 치르고 개인별 성적을 공개(서울 등)하는 것은 엄연한 불법행위이다.

진단평가의 이름으로 일제고사가 기지개를 펴게 되면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은 반교육적 살풍경은 이제 곳곳에서 재현될 것이다. 사교육비 증가는 물론이거니와 학생들을 ‘성적 전투’에 내몰게 된다. 이미 중학교에도 보충수업과 야간자율학습까지 현실화 하려 하고 있다. 이제 얼마 안 있으면 중학생들은 새로운 인사법을 배워야 할 것이다. “선생님 집에 다녀오겠습니다.”라는 인사법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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