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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16/10/19
    잡생각 2.
    곰탱이
  2. 2016/10/19
    잡생각 1.
    곰탱이
  3. 2016/10/09
    고양이 철학자..
    곰탱이

잡생각 2.

좀전 저녁 먹다가 우연하게 든 생각이다.

소크라테스의 대화법의 결론인 <너 자신을 알라>는 아마도 소피스트(궤변론자라고 칭해지지만 본래의 뜻은 지혜로운 자이다. 소피(sophi)는 지혜를 뜻한다. 그런데 소피라는 이름은 서양에서 오로지 여성에게만 주어진다. 남성에게는 주어지지 않는다. 왜 그럴까?^^)의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닐까 하는...

 

맥락은 이러하다.

<인간에 대한 규정>과 관련된 소피스트의 일화를 들어보자.

소피스트가 누군가에게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그 누군가는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인간은 두 발로 걸어다니는 털 없는 짐승이다.>

이때 소피스트는 잠시 있다가,

털을 뽑은 닭을 그 누군가에게 던지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옛소! 여기 인간이오!>

 

이 일화에서 보자면, 누군가가 인간에 대한 규정이 옳다고 이야기할 때,

그 규정이 가지고 있는 불완전성, 특수성을 비판하기 위한 것임을 살펴볼 수 있다 하겠다.

그런데 이러한 불완전성, 특수성을 마치 보편성인 것인 양하는 것을 꼬집는 것 역시 소크라테스의 대화법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다고 한다면 소크라테스의 대화법의 결론인 <너 자신을 알라>는 결국 소피스트의 영향을 받은 것이고, 그 대화법 역시 소피스트가 이미 사용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지...

 

또한 소피스트들은 아마도 경험론자이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경험론자들은 어떤 종류의 보편적인 것, 절대적인 것, 본질, 본성 등과 같은 것을 절대로 인정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들은 이 세계가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사실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험론자들의 이러한 상대성에 기초해서는 어떠한 삶의 기준을 세울 수 없었기 때문에

소크라테스는 이러한 상대성을 비판하면서 삶의 기준을 세워보고자 하였다.

그러한 기준을 소크라테스는 <진리>라고 칭하였다.

이러한 진리는 절대적이며 보편적인 것이라야 하며, 그 진리의 장소는 바로 <신>이다.

그런데 이 소크라테스의 '신'은 근대 데카르트의 '신'과는 다른 느낌을 주는 것으로 보여진다.

왜냐하면 앞에서도 말했다시피 대화법의 결론, 즉 진리로서의 <너 자신을 알라>는 타자의 <타자성>을 인지하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데카르트의 '신'은 타자의 타자성을 인정하고 있지 않다.

소크라테스의 진리, 그리고 그 장소로서의 <신>은 타자의 타자성 그 자체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말하자면 칸트의 <물 자체(Thing Itself; Ding an Sich)>와 유사한 측면이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소크라테스가 만일 절대적이며 보편적인 것으로서의 진리를 말하고자 했다면,

그 즉시 자신의 진리인 <너 자신을 알라>는 자신의 칼에 자신을 찌르는 결과를 맞이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결과를 피하기 위해서 기꺼이 독배를 마신 것이 아닐까?

 

두서없이 잡생각을 풀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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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생각 1.

요즘 모기가 아주 극성이다.

일교차가 커서 그런 것일 수 있겠다.

일교차가 크니까 사람들이 이중으로 고생한다.

감기와 모기... 기씨 형제들..

 

그런데 모기들이 인간들에게 접근하는 전술에 변화가 생겼다.

무엇인고 하니...

전에는 1마리씩 게릴라 방식으로 인간의 피를 얻으려고 했다.

그래서 방 안에 있는 모기를 다 잡으려면 밤을 새다시피 해야 했다.

그런데 지금은 1마리씩 사람에게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2~3마리씩 무리를 지어 접근하는 것이다.

아마도 1마리씩 접근하다가는 모두 전멸하는 사태가 벌어져,

피를 얻어야 하는 희생이 크므로 그 희생을 줄이고자 하는 것은 아닐지...

일종의 <성동격서> 방법이라고나 할까...

1마리가 앵앵 소리를 내며 사람에게 접근해서 사람의 정신을 그쪽으로 쏠리게 해 놓고서는

나머지 모기들이 소리 없이 피를 얻어가는 방식...

 

모기도 진화하고 있는 것 같다...

모기에 대처하는 인간의 방식도 진화해야 하지 않을까...

어떻게?

고민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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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철학자..

어제 점심 때쯤 학교에 갔다.

학교에 있는 호수를 끼고서 도서관으로 향하던 중,

호수의 물가에 앉아서 하염없이 호수의 물을 바라보고 있는 고양이를 발견했다.

야 하고 불렀는데도 들은 척 만 척... 그냥 호수의 물만 바라보고 앉아 있는 거였다.

이야... 고양이 네가 뭔가 심사가 싱숭생숭한 모양이렷다!

그래.. 어찌 인간만이 철학적 사색에 잠기겠는가!

우리 고양이 선생도 그럴 수 있음을...

나에게 깨우쳐준 고양이 철학자 선생께 고맙다는 인사를...

내일 또 볼 수 있을까...

무얼 생각하는지 한번 물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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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후에 그 고양이 철학자를 보지 못했다...

언젠가는 또 만나게 되겠지...

그때 다시 물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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