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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생각 2.

좀전 저녁 먹다가 우연하게 든 생각이다.

소크라테스의 대화법의 결론인 <너 자신을 알라>는 아마도 소피스트(궤변론자라고 칭해지지만 본래의 뜻은 지혜로운 자이다. 소피(sophi)는 지혜를 뜻한다. 그런데 소피라는 이름은 서양에서 오로지 여성에게만 주어진다. 남성에게는 주어지지 않는다. 왜 그럴까?^^)의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닐까 하는...

 

맥락은 이러하다.

<인간에 대한 규정>과 관련된 소피스트의 일화를 들어보자.

소피스트가 누군가에게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그 누군가는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인간은 두 발로 걸어다니는 털 없는 짐승이다.>

이때 소피스트는 잠시 있다가,

털을 뽑은 닭을 그 누군가에게 던지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옛소! 여기 인간이오!>

 

이 일화에서 보자면, 누군가가 인간에 대한 규정이 옳다고 이야기할 때,

그 규정이 가지고 있는 불완전성, 특수성을 비판하기 위한 것임을 살펴볼 수 있다 하겠다.

그런데 이러한 불완전성, 특수성을 마치 보편성인 것인 양하는 것을 꼬집는 것 역시 소크라테스의 대화법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다고 한다면 소크라테스의 대화법의 결론인 <너 자신을 알라>는 결국 소피스트의 영향을 받은 것이고, 그 대화법 역시 소피스트가 이미 사용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지...

 

또한 소피스트들은 아마도 경험론자이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경험론자들은 어떤 종류의 보편적인 것, 절대적인 것, 본질, 본성 등과 같은 것을 절대로 인정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들은 이 세계가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사실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험론자들의 이러한 상대성에 기초해서는 어떠한 삶의 기준을 세울 수 없었기 때문에

소크라테스는 이러한 상대성을 비판하면서 삶의 기준을 세워보고자 하였다.

그러한 기준을 소크라테스는 <진리>라고 칭하였다.

이러한 진리는 절대적이며 보편적인 것이라야 하며, 그 진리의 장소는 바로 <신>이다.

그런데 이 소크라테스의 '신'은 근대 데카르트의 '신'과는 다른 느낌을 주는 것으로 보여진다.

왜냐하면 앞에서도 말했다시피 대화법의 결론, 즉 진리로서의 <너 자신을 알라>는 타자의 <타자성>을 인지하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데카르트의 '신'은 타자의 타자성을 인정하고 있지 않다.

소크라테스의 진리, 그리고 그 장소로서의 <신>은 타자의 타자성 그 자체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말하자면 칸트의 <물 자체(Thing Itself; Ding an Sich)>와 유사한 측면이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소크라테스가 만일 절대적이며 보편적인 것으로서의 진리를 말하고자 했다면,

그 즉시 자신의 진리인 <너 자신을 알라>는 자신의 칼에 자신을 찌르는 결과를 맞이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결과를 피하기 위해서 기꺼이 독배를 마신 것이 아닐까?

 

두서없이 잡생각을 풀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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