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학익진 그리고 코기토

<칼의 노래>(김훈, 생각의 나무, 2003)에서 발췌했다.

 

=============================================================

 

- 학익진

"일자진에서 학익진으로 전환하는 수상 훈련은 더디게 진전되었다. 나의 함대가 도주하고 적의 함대가 따라올 때, 적을 적의 사정거리 경계점까지 유도해 놓고 갑자기 나의 함대를 거꾸로 돌려 공세로 바꾼다는 것은 힘들지만 가능한 일일 것이었다. 그때, 나의 모든 함대는 거꾸로 돌아선다. 선두는 후미가 되고 후미는 선두가 된다. 선두나 후미는 본래 없는 것이다. 선두는 후미가 되고 후미는 선두가 된다. 선두나 후미는 본래 없는 것이다. 선두는 돌아서서 후미가 되고 후미는 돌아서서 선두가 된다. 선두는 돌아서면서 양쪽으로 펼쳐 날개를 이룬다. 날개는 적을 멀리서 둘러싼다. 제2열과 제3열은 빠르게 나아가면서 양쪽으로 펼친다. 제2열은 오른쪽 날개에 제3열은 왼쪽 날개에 가세한다. 제4열 제5열 제6열은 양쪽 날개의 분기점으로 집중해서 중군(中軍)을이룬다. 중군은 새의 가슴이다. 새는 가슴 근육으로 날개를 움직인다. 대장선은 중군의 한가운데 위치한다. 제7열 이후는 중군의 뒤쪽을 받친다. 중군에서 양쪽 날개의 끝까지는 낮에는 깃발로, 밤에는 쇠나팔로 연결한다. 날개는 가볍고 빠르며, 중군은 무겁고 강력하다.

날개는 멀리서부터 적을 조인다. 적은 집중되고 나는 분산된다. 집중된 적은 분산된 나를 향해 쏜다. 적의 화력은 집중에서 분산으로 흩어진다. 분산된 나는 집중되 적을 향해 쏜다. 나의 화력은 분산에서 집중으로 모인다.

날개는 더욱 다가온다. 적의 화력은 전방위를 감당해야 한다. 나의 화력은 초점을 이룬다. 중군을 휘몰고 들어가 분산된 적을 부순다. 적은 전방위를 쏘고 나를 한 방위를 쏜다.

적은 계통을 잃는다. 적은 흩어진다. 흩어지면서 중군의 외곽을 우회하는 적들을, 제7열 이후가 다시 막아선다. 진은 거대한 새처럼 물 위에서 너울거린다. 너울거리면서 적을 가슴 깊이 품는다. 품어서 죽인다. 펼쳐서 가두고, 조여서 품고, 품어서 죽인다. 적을 품어서, 적의 안쪽에 숨어 있는 적의 죽음으로 적을 죽인다." (93~94쪽)  

 

 

- 코기토

"나의 적은 전투 대형의 날개를 펼치고 눈보라처럼 휘몰아 달려드는 적의 집단성이기에 앞서, 저마다의 울음을 우는 적의 개별성이었다. 그러나 저마다의 울음을 우는 개별성의 울음과 개별성의 몸이 어째서 나의 칼로 베어 없애야 할 적이 되어야 하는 것인지를 나는 알 수 없었다. 적에게 물어보아도 적은 대답할 수 없을 것이었다." (113쪽)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