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WTV 이주노동자방송국 소모뚜 대표

고단한 이주노동자의 삶을 통해 사람의 향기를 느끼다

 윤보중 기자    bj7804@nate.com

이주노동자의방송 MWTV는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이 만든 방송국이다.

2004년 고용허가제 도입을 앞두고 한국 정부는 외국인 이주노동자에 대한 대대적인 강제추방 정책을 실시했는데, 이에 많은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이 자신의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명동성당과 성공회성당을 거점으로 농성 투쟁을 전개했다. 당시 여기에 참여했던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이 만든 방송국이 MWTV이다.

당시에는 시민방송 RTV 제작진이 이주노동자들에게 함께 활동할 것을 권유했고, 촬영이나 취재 경험이 부족한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이 직접 카메라를 들고 현장을 누비며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담는데 주력하는 정도였다. 하지만 점차로 실력도 향상되고, 외국인 이주노동자를 위한 전문방송의 필요성을 절감한 이들은 이주노동자 목소리를 전달하고 한국사회와 소통할 수 있는 전문방송국 설립에까지 이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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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WTV 이주노동자방송국은 외국인 이주노동자와 한국 사회의 이질감을 허물고, 소수자의 인권 향상과 불평등을 철폐하기 위한 활동을 하고 있다.ⓒ 민중의소리

 

버마 출신 이주노동자 소모뚜는 버마 출신의 소띠하와 네팔 출신 강라이, 미누 등과 함께 ‘스톱 크랙 다운’이라는 밴드를 결성해 활동하는 한편, 버마인의 인권과 민주화를 위해 조직된 사회단체 버마행동에서도 활동했다. 그의 활동 영역은 문화 운동에서 인권 운동까지 외연을 넓혀갔고, 지난 2009년에는 MWTV의 대표직을 맡아 방송국 운영도 하게 되었다.

과정에서 그의 친구, 동료들이 표적 단속 등으로 강제 추방되는 일이 빈번했고 그 때문에 초창기에 함께 활동했던 이들도 거의 남아있지 않게 됐다. 그의 절친한 친구이자 스톱 크랙 다운의 리드 보컬이었던 미누도 강제추방 되었다. 소모뚜는 그동안 마웅저, 아웅틴 툰과 같은 유명한 버마 출신 활동가들과 함께 난민지위 획득을 위한 법적 투쟁을 전개했고 2심까지 승소한 상태지만, 여전히 정부의 완고한 태도 때문에 대법원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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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동자영화제 집행위원장을 맡았던 버마 출신의 아웅틴 툰의 소모뚜의 생일을 맞아 자신의 요리 솜씨를 선보이고 있다. 닭뼈를 제거하고 마늘과 양파, 찹쌀을 이용해 튀긴 통닭은 고소하면서도 부드러운 맛이 일품이다.ⓒ 민중의소리

소모뚜는 12월 10일 세계 인권 선언 62주년을 맞아 국가인권위로부터 인권상을 수여 받을 예정이었다. 그가 한국사회의 인권 향상에 기여한 공로는 크다. 그는 주류 방송에서는 잘 다루지 않는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불평등한 처우와 비인간적인 현실을 노래와 방송 등으로 고발하고 폭로하는데 앞장서 왔다. 이는 대외적으로 ‘다문화 사회’를 표방하고 여러 민족, 인종과 어울려 살아가려는 한국 사회의 노력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여기에 낯선 땅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려는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이 이질적인 존재로 남기 보다는 서로 이해하고 벽을 허물 수 있는 계기를 만드는 데 주력해왔다. 그는 인권위와 함께 이주노동자 순회상담에 참여하며 실무적인 도움을 주기도 했다. 현장에서 오랫동안 쌓아온 그들만의 소통 법은 인권위 직원들이 이주노동자를 상담하는데 적잖은 도움이 되었다.

그의 이런 활동이 인정됐기 때문에 국가인권위 또한 그에게 상을 주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가 국가인권위와 협력하며 외국인 이주노동자를 위한 활동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는 동안에도 상황은 이상하게 꼬여만 갔다. 이주노동자 영화제를 지원했던 국가인권위원회 관계자들이 어느 날은 그들에게 한국 사회에 너무 간섭하지 말라는 투의 상식 밖의 발언을 하고 나섰다. 사실상 외국인 이주노동자의 사회활동에 대해 거부감을 드러낸 셈이었다.

그를 인권상 대상자로 추천했던 인권위 관계자는 더 이상 인권위에 존재하지 않았고, 인권위 상임위원과 전문위원들이 대거 사퇴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마저 발생했다. 논란의 중심에 선 현직 국가인권위위원장의 태도를 비판하는 인권운동가들의 요구는 정치권과 전 사회로 확대돼 국가위원장 사퇴를 촉구하는 목소리는 압도적인 여론으로 형성됐다.

결국, 소모뚜는12월 10일 프레지던트 호텔에서 열리는 인권위 시상식에 참여하지 않기로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은 외국인 이주노동자에게 처음으로 주어지는 인권상이었다. 더욱이 12월 9일은 소모뚜의 생일이기도 했다. 수유너머 건물에서 같은 층 식구들과 모여 조촐한 생일파티를 열었던 소모뚜는 생일 케이크를 나눠먹던 중에 자신을 바라보는 동료와 지인들에게 말했다.

“제가 내일 인권위에서 수여하는 인권상을 거부하기로 했습니다. 사실 저는 한국에 인권위가 있다는 사실이 부럽습니다. 왜냐면 나의 조국 버마에는 그런 기구가 없기 때문입니다. 비록 정치상황이 나아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버마의 인권 상황은 정말 열악하죠. 저도 하루 빨리 고국으로 돌아가 인권위를 만들고 우리 국민의 인권 향상을 위한 활동을 하고 싶습니다.

제가 국가인권위의 상을 거부하는 것은 국가인권위를 위한 일이기도 합니다. 왜냐면 우리가 원하는 것, 그리고 인권위가 주는 상이란 것도 결국은 우리의 인권을 증진시키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인권상을 거부하는 것은 어려운 선택이 아니었습니다. 왜냐면 그것이 우리의 인권을 옹호하는 것이고, 우리는 상을 받기 위해 인권운동을 하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한국사회와 통하고 싶었던 지난 15년의 세월이 소모뚜의 말 속에 담겨 있었다. 즐겁고 유쾌하던 생일 파티에서 잠시나마 숙연한 분위기가 흘렀다. 하지만 상을 거부하는 행위가 인권을 증진시킬 거라는 그의 확신만큼, 다시 즐거운 시간이 계속됐다. 그리고 그는 생일파티에 참석한 여러 사람들에게 내일 꼭 참석해달라는 당부를 빠뜨리지 않았다.

12월 10일 프레지던트 호텔에서 열린 인권시상식에는 많은 수상자들이 상을 거부하고 불참했다. 심지어 현병철 국가인권위원장이 상을 수여하려 하자 그의 사퇴를 촉구하는 현수막을 펼쳐 보이는 이도 있었다. 그리고 같은 시각 국가인권위원회 건물에서는 현병철 국가인권위원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유인물이 뿌려졌고, 국내의 저명한 인권운동가들이 모여 그의 사퇴와 인권위 정상화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자리에서 소모뚜는 인권상 수상 거부자로서 마이크를 잡았다. 그는 국가인권위 위원장의 양심에 호소하면서 “한국민의 요구가 무엇이고 인권 향상을 위해 애써온 많은 사람들의 목소리가 무엇인지 거기에 귀 기울이면 될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그는 여전히 국가인권위에 대한 애정과 지지를 피력했다. 그는 상을 거부하는 그 순간이야 말로 국가인권위가 본래의 자리로 돌아오는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국가인권위 인권상 거부한 이주노동자방송국 소모뚜 대표

이주노동자방송국 대표인 소모뚜가 국가인권위의 인권상 수상을 거부한 사연을 전하고 있다. 세계인권선언 62주년에 맞추어 진행된 국가인권위 인권상 시상식은 많은 수상자들이 상을 거부하며 사상 초유의 사태를 맞았다. 국내의 많은 인권운동가들은 물론, 정치권까지도 국가인권위 현병철 위원장의 부적절한 언행과 행동때문에 사퇴를 촉구하고 나섰다.ⓒ 민중의소리


MWTV는 방글라데시, 네팔, 버마, 몽골, 중국, 인도네시아, 필리핀, 러시아, 베트남 등지에서 온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이 모여 한국인과 함께 운영하는 방송국이다. MWTV는 2011년에는 고발과 폭로만이 아니라,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이 한국 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유용한 정보를 전달하는 방송도 늘려나갈 예정이다. 이외에도 그 동안 꾸준히 벌여온 이주노동자 미디어 교육, 이주노동자 영화제와 같은 문화 활동도 확대할 계획이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좀 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필요하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 정부에 비판적인 시민사회단체에 대한 지원금이 대폭 줄었고, 이 때문에 직간접적으로 MWTV도 영향을 받았다. 겨우 후원금으로 유지되고 있지만, 사무실 임대료나 방송 제작 비용에 들어가고 나면 활동가들에게 활동비를 지급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그래서 자원활동가들의 참여가 점차로 중요하게 제기되고 있지만, 내실 있는 방송국의 운영을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의 후원과 관심이 절실한 실정이다.

소모뚜는 올 한 해 가장 기억에 남는 일로 손이 잘려나갔지만 농장에서 일하기 때문에 산재 인정이 되지 않는 한 우즈베키스탄 노동자의 이야기와 고용허가제의 폐단으로 인해 마땅한 일자리를 찾지 못한 채 비관 자살로 생을 마감한 베트남 이주노동자의 이야기를 떠올렸다.

소모뚜의 15년. 한국 사회는 참 많이 변했다. 농촌에는 이주결혼여성들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고, 그들이 나은 자녀들이 성장해 소년에서 어른으로 성장해가고 있다. 북에서 온 주민들도 점차로 그 수가 증대하고 있고, 외국에서 온 동포들도 꾸준히 그 수가 늘고 있다. 외국인 이주노동자 사이에서 태어나 피부색은 다르지만 엄연히 한국인으로 자란 외국인 이주노동자 2세대도 존재한다. 그들은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한 부분을 이루고 있다.

살과 피를 가진 인간, 꿈과 사랑을 간직한 이들이 단지 피부색이 다르거나 언어나 문화적인 이질감 때문에 언제까지나 이방인으로 살아가야 하는 지에 대해 우리 사회는 이제 진중한 답을 내려야 한다.

그리고 , 여기 그들과의 벽을 허물려는 소모뚜의 작은 노력을 남겨본다.

“우리는 자신이 보낸 돈을 쓰며 잘 지내고 있다는 행복한 모습이 담긴 가족의 사진을 보고 불법체류자로서 타국에서 겪고 있는 다양한 고통을 견딥니다. 가족들도 서로 못 보지만 가족을 위해서 고생하는 불법체류 이주노동자에게 늘 감사하며 늘 건강하기를 매일 기도해주며 삽니다. 서로를 위해서 서로가 할 수 있는 것을 최선을 다해서 사는 것입니다. 서로를 감사하며 서로를 더 그리워하며 서로를 더 사랑하며 사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그들에게서 가족을 사랑하는 방법과 책임지려는 의지를 배울 수 있고 남을 위해 자신을 헌신하려는 인간다운 사람의 향기를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윤보중 기자 bj7804@nate.com>민중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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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14 14:11 2010/12/14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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