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난민의 날에 들어본 한국거주 버마난민의 삶(3)
인권위 주최 난민인권 순회 상담 때.
지난 2010년에 국가인권위원회에서 한국 내 난민, 이주노동자, 결혼이주여성 등의 인권문제 해결을 위한 인권순회 상담을 했다. 나는 인권위 담당자의 부탁으로 순회 상담 초기 기획을 만들 때부터 순회 상담하는 곳까지 같이 다니면서 기록 촬영, 공연 등을 함께했다. 순회 상담이란 이주민들이 많이 거주하는 곳에 있는 이주민지원센터에 가서 이주민들이 겪고 있는 다양한 인권문제에 대해 인권위, 노무사, 변호사, 법무부, 노동부 등이 함께 상담을 해주는 것이다.
그때 우리 단체 회원 부부가 난민신청을 했는데 난민실에서 이들 부부와 연락이 안 된다고 해서 이들의 신청서를 없앴다. 그런데 남편 분이 운이 나쁘게도 출근길에 출입국 단속반에게 걸려 보호소로 잡혀 갔다. 그래서 나는 회원의 석방을 위해 순회상담 때 오는 법무부 담당자한테 가서 우리 회원의 석방을 위해 상담을 했다.
회원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중 내가 그 분에게 "저희 버마행동을 너무 미워하지 마세요"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분에 나에게 "현 정부는 당신네 단체에 대한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답했다.
그는 이어서 나에게 "당신 같은 사람들을 조직해 우리 사회를 흔들고 있는 사람을 어떻게 난민으로 받아주나. 난민 인정 해준다는 것은 우리랑 같이 살아도 된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우리가 사람들을 조직해서 사회를 흔든다? 한국 내 이주민들도 사람으로 인정해 달라고 하는 우리의 목소리와 행동이 사회를 흔드는 것인가, 이주민들을 사람으로 인정해 주지 않고 차별, 탄압과 배제를 하는 법제도가 사회를 흔드는 것인가?
그의 말을 듣자 순간적으로 그냥 웃음 밖에 안 나왔다.
"좋습니다. 그럼 이제부터 우리가 버마 민주화 하나만 신경 쓰고 활동할 테니까 이주민들이 사업장내 겪고 있는 폭행, 욕설, 임금 무지급 등 우리가 하지 말라고 요구하고 있는 여러 탄압들이 더 이상 발생하지 않게 당신들이 책임지고 해주세요. 해주겠다고 약속하신다면 우리는 더 이상 이주민에 대한 활동들을 안 하겠어요."
이렇게 말하니 그는 그저 나를 보고 웃었다.
이 날 내가 알게 된 것은 난민 인정이란 한국 정부에게 어떤 말도 하지 않고 입 닫고 사는 사람들에게만 해주는 것이라는 것, 그러니까 민주주의의 기본인 표현의 자유가 이주민에게는 해당이 안 된다는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출입국법에는 외국인은 정치활동도 할 수 없게 되어 있다. 작년 이주민 인권현황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이 있었다. 버마행동의 한 회원이 자신들의 탄압 상황을 발언하는 이주민들에게 통역을 하기로 했는데 전날 출입국에서 전화가 걸려왔단다. 내일 기자회견 때 통역을 하면 출입국법 위반으로 강제추방하겠다고. 우리 회원이 통역하는 게 전부라고 답하자 출입국 직원은 그것은 네 사정이고 그래도 하겠다면 출입국 위빈이니 알아서 하라고 했단다. 협박에 겁이 난 그는 그날 통역하러 가지 못했다.
사회 소수자들의 아픈 소리를 외면하고 통제하며 보호도 못해주는 그런 법은 따르는 것보다 위반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수백만원짜리 외국인 등록증?
인도적 지위 허가를 받은 사람이 취업을 할 수 있게 법이 개정되자 우리 회원들은 외국인 등록증과 취업 허가를 받으러 출입국 사무소로 갔다. 그런데 난민신청을 하기 전에 비자 없이 체류한 것에 대해 최소 400만 원에서 2000만 원까지 벌금을 내야 외국인 등록증과 취업 허가증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우리는 400만 원 또는 2000만 원이라는 큰 돈을 한꺼번에 내고 외국인 등록증을 받을 능력도 없고 그렇게도 하고 싶지 않았다. 비자 없이 체류했지만 그동안 죄를 지은 적도 없고 성실하게 일했던 것뿐인데 벌금을 내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납득할 수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또다시 외국인 등록증과 취업허가증 없이 일하게 됐다.
벌금에 대한 안타까운 사연도 있었다.
난민 신청을 한 지 일 년 넘었는데도 결정이 안 나와서 취업 허가를 받게 된 부부가 있었다. 남편이 임신 중인 아내를 데리고 외국인 등록증과 취업 허가증을 받으러 출입국에 갔는데 비자 없이 체류한 기간에 대한 벌금
400만 원을 내야 한다고 했다. 수백만 원 벌금을 내고 등록증을 받는 것은 이들에게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미등록 이주노동자 강제추방 단속이 강화된 시기에 임신 때문에 병원으로 자주 가야 하는 아내의 안전을 위해 남편은 주변 친구들한테 돈을 빌려 400만 원 벌금을 내서 외국인 등록증을 받았다.
나는 이들 부부에게 인터뷰하러 갔었다. 경제적으로 어려워 임신 중인 아내의 병원비마저 힘든 상황에서 할 수 없이 400만 원 벌금을 눈감고 냈던 이들 부부에게 내가 한국 사회에 하고 싶은 말을 물었다. 그들의 대답은 "자신들을 사람으로 인정하고 사랑해 달라"는 것이었다.
낮은 곳으로부터 사랑하자
난민에 대한 나의 글은 이번 것까지 해 3번째다. 난민들이 한국에서 겪고 있는 어려운 현황을 더 많이 쓸 수도 있겠지만 여기까지만 쓰겠다. 60년 역사를 가진 유엔난민협약에 가입한 지 10년이 넘는 한국이 난민 처우를 더 개선해야 한다는 것을 아렬주기 위해 나의 경험을 바탕으로 글을 썼다. 현황을 알리자는 의지 외에 어느 누구에게도 탓하고자 하는 마음은 없다.
함께 사는 것이 행복해야만 진정한 다문화 사회, 달콤한 다문화 사회가 가능하다는 것. 그리고 사회의 소수자들, 약자들이 자신의 꿈을 실천할 수 있는 기회가 있는 사회만이 진정한 민주주의 사회라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해 나가자는 것이 나의 외침이고 요구다.
"진정한 사랑은 다른 사람에게 주는 사랑에서부터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