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모뚜 이주노동자방송 대표 인터뷰

 

-이주노동자 방송이라…. 굉장히 의미 있는 일인데요. 최근 어려움이 많으시다고 들었습니다.

 

이주노동자들의 눈과 귀와 입이 되려는 방송이에요. 도움이 되는 정보나 교육을 제공하고 한국사회에 우리의 생각과 권리를 발언하고 소통하기 위한 거죠. 한국어 포함해서 11개 국어로 방송도 하고 온라인으로 뉴스레터도 보내고. 상근자 4명이 최저임금보다 낮은 월급으로 일하고 있어요. 저 참 나쁜 대표죠(웃음).
‘퍼블릭 엑세스(필자 주 : 미디어에 대한 대중의 참여를 주장하는 운동)’ 방송국인 시민방송(RTV)을 통해 나가고 있었는데, 그 동안 정부에서 나오던 지원금이 이번 정부 들어 끊겼습니다. 운 좋게도 ‘아름다운 재단’에서 1년 지원금을 받아 운영 중이죠. 이 스튜디오를 쓰게 해 준 ‘연구공간 수유너머’에서도 학생, 학부모들이 지원해주고 있구요. 저도 제 돈 쓰면서 대표하고 있는데, 한계가 있어요. 후원이 많이 필요한 상태입니다.

 

-한국엔 어떻게 오게 되셨어요?

 

미얀마에서는 제 성격을 제대로 펼치기가 힘들었어요. 전 자유롭게 말하고 활동하고 싶고, 제 희망을 자유롭게 추구하면서 노력하고 싶은데 나라가 그런 상황이 아니에요. 돈이 있어도 자유롭게 사업할 수 없고, 국민을 감시하고 엄청난 세금을 거두는 정부는 부패했죠. 미얀마에도 한국처럼 아들이 부모를 부양해야 하는 문화가 있어요. 제가 여동생 둘이 있는 장남이거든요. 큰 아들이 부모님께 효도하고 여동생들 공부시키고 싶은 작은 욕심도 이루기가 힘들었어요.
그 때 찾은 유일한 방법이 외국에 나가 일하는 거였죠. 그래서 대학 1학년이었던 95년, 학교를 그만두고 한국에 오게 됐습니다.

 

-한국 사신지 벌써 14년째시군요. 지나가면서 보면 한국 사람인 줄 알겠어요. 한국말도 정말 유창하신데요?

 

처음 취직한 공장에 저 혼자 외국인이었는데, 정말 답답하더라구요. 일하는 것도, 사람들과 친해지는 것도 무슨 의사소통이 돼야 말이죠. 사람들이 저기서 뭐 좀 가져오라고 하면 그걸 못 알아들어서, 아예 그분이 가리킨 곳에 있는 물건들을 죄다 갖다 드리곤 했어요. 우리 엄마가 말하라고 입도 만들어주고 들으라고 귀도 만들어줬는데, 내가 뭐하고 있는 건가 한심했죠. 그래서 일만 끝나면 집에 틀어박혀 중고생 교과서 보면서 닥치는 대로 읽고 썼어요. 신문의 영어회화 코너는 한국말과 영어가 동시에 나오니 도움이 많이 됐어요. 벽에 붙여놓고 무조건 외웠어요. 한국에 친구도 없고 갈 데도 없으니 5시간이고 6시간이고 공부만 했죠 뭐. 그렇게 한 6개월 지나니 좀 살겠던데요(웃음). 

 

-그동안 언론에도 많이 나오셨더군요. 이주노동자 방송도 그렇고, 인권운동에 밴드활동까지 주제도 다양하게. 

 

한국엔 많은 이주민 공동체가 있어요. 미얀마 공동체, 네팔 공동체 등등. 이 공동체를 통해서 서로 돕고 교류하고, 국경일을 함께 기념하기도 해요. 공동체 활동을 하면서 한국 사는 이주민들의 생활에 대해 많이 알게 됐어요. 저도 그렇고, 이주민들은 모두 꿈과 희망을 가지고 한국에 온 사람들이예요. 그런데 그들이 일하던 공장에서 도망 나오고, ‘미등록 노동자’, ‘불법 체류자’가 돼 강제 추방되고, 심지어는 자살하기도 해요. 이건 아니다 싶었죠. 산업연수생 제도, 고용허가제가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만든 것인지 고민하고 고민했어요. 한국은 부족한 노동력을 채워야 했고, 우리는 그걸 제공하는 대신 정당한 월급을 받고 기술을 배우고, 결국은 서로의 필요를 채워주기 위한 거잖아요? 그런데 우리에겐 아무런 힘도 권리도 없었어요.

꿈이 있으면 그걸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게 인간의 본성이죠. 친구들과 모여 앉아서, ‘우리가 일만 할 때가 아니다. 더 많은 사람이 다치기 전에 우리가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얘기했어요. 그래서 8년 동안 일했던 공장을 그만두고 이주노동자의 인권을 위한 활동에 참가하게 됐죠. 방송도, 밴드도 목적은 하나예요. 이 땅에서 모든 사람들이 평등하게 살았으면 하는 바람, 서로 존경하고 사랑하면서 살아가는 것, 그 얘길 하기 위한 다른 방법들일 뿐이에요. 

 

-산업연수생제도, 고용허가제는 무엇이 문제던가요?
 
사실 투자금이나 기술을 가지고 있지 않은, 저와 같은 단순 노동자들은 한국에서 자유롭게 일할 수 있는 제도가 없어요. 유일한 제도가 산업연수생제도였죠. 당시 연수생으로 들어오려면 브로커를 통해야 했어요. 브로커에게 수수료, 비자비용, 비행기 값까지 지불해요. 그걸 충당하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집까지 잡혀요. 그만큼 한국에 희망을 걸고 온다는 거죠. 연수제도는 3년으로 운영되는데, 그 기간 동안엔 ‘연수생’이기 때문에 ‘노동자’로서의 권리가 없어요.

기술을 가르친다는 이유로 월급은 적고, 제 때 못 받아도 말도 제대로 못하죠. 거의 봉사활동 수준이죠. 어떤 연구결과를 보니 우리 같은 사람들, 하루 평균 노동시간이 11시간이래요. 한국 직원들과 차이가 나죠. 그러다 연수기간이 끝나면 싼 값에 노동력을 쓰는 이점이 없어지니 회사에서 연수생을 정식으로 채용하는 일은 드물어요. 나름대로는 엄청난 비용을 들여 한국까지 왔는데, 돈은 돈대로 못 벌고 기술도 못 배운 상황에서 다시 고국으로 돌아갈 순 없잖아요. 그렇게 버티다보니 ‘불법 체류자’가 되고, 그런 상황에서 일하다 보니 ‘미등록 노동자’가 되고 하는 거죠.  

 

-그런 폐단을 없애려고 고용허가제가 시행된 건데요.

 

네. 브로커를 통해 들어오는 시스템을 없애고 정부 간의 합의를 통해 인력을 주고받게 됐죠. 한국 경제가 점점 발전하면서 연수제도만 가지고는 노동력이 부족하기도 했구요. 하지만 고용허가제는 고용주에게 보다 많은 권한을 줬어요. 고용주가 정부에게 어떤 인력이 몇 명 필요하다고 먼저 신청하고, 한국에 입국한 외국인 노동자들을 모아놓고 그 중에 맘에 드는 사람들을 필요만큼 골라서 데리고 가요.

그 과정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의 의지는 전혀 반영되지 않아요. 천식이 있는 노동자가 먼지 날리는 가구공장으로 가게 되더라도 방법이 없는 거죠. 일단 고용주에게 선택되면 다른 곳으로 이직할 수 없어요. 하고 싶은 일, 배우고 싶은 기술을 꿈꾼 그들에게 고용허가제는 선택권을 허락하지 않죠. 3년의 기간 동안, 1년 단위로 계약을 갱신하는데 고용주가 계약을 연장해주지 않으면 두 달 이내에 다른 직장을 찾아야 해요. 못 구하면 나의 노동력이 한국에선 쓸모없단 의미니, 집으로 돌아가야 하죠.

지금까지 한국에 살면서, 한국 사람들이 ‘우리는 하나’를 외치며 서로 사랑하고 단결하는 모습을 좋아했어요. 뿌리깊은 단일민족주의에서 나온 문화죠. 하지만 그런 민족주의도 ‘인권’이란 가치를 넘어설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이주민들은 무엇을 위한 수단도 아니고, 불쌍한 사람은 더더욱 아닙니다. 서로의 필요에 의해 도와가며 함께 사는 사람들일 뿐이죠. 단 한명이라도 그의 권리를 존중받지 못하는 일은 이제 한국에선 없어야 해요. 한국은 이미 민주화, 선진화 된 나라잖아요.     

 

-죄송한 말씀이지만, 본인도 ‘미등록 노동자’의 신분이신데 이런 활동을 하는 게 위험하진 않으신가요? 

 

하하. 왜 아니겠어요. 한 미얀마 친구가 고용허가제의 문제점을 이야기하는 기자회견에 초청된 적이 있어요. 그 친구가 한국말을 못해 제가 통역해주기로 했죠. 그런데 출입국관리소에서 전화가 왔어요. 한국은 외국인의 정치활동이 금지돼 있대요. 그래서 제가 그걸 통역해주면 출입국법 위반으로 추방하겠다더군요. 그런데 제 생각엔 아무래도 그 직원께서 정치라는 걸 잘 이해 못하셨던 것 같아요. 우리가 매일 먹고 자고 일하는 모든 활동이 정치 아닌가요? 그런 사소한 활동도 제대로 안되면 생활 자체가 불가능한 건데….

 

-다 그만두고 미얀마로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한 적도 많을 것 같아요.

문제가 있을 때 도망가면 참 간단하죠. 그런데 언제까지나 그렇게 살 순 없어요. 시간이 좀 걸릴 뿐이지, 계속 노력하면 우리가 원하는 세상을 우리가 만들 수 있어요. 가고 있으면 언젠간 목적지에 닿는 것처럼. 처음 한국 왔을 땐 ‘3년만 있다 가야지’ 했어요. 그런데 일이 좋고 사람들이 좋아 있다 보니 3년은 훌쩍 지났고, ‘2002년 월드컵만 보고 가야지’ 했는데 아직도 못 갔어요. 한국은 제게 또 하나의 고향이에요. 지금 제가 하는 활동도 한국이 싫고 한국 사람이 미워서 하는 게 절대로 아닙니다. 비판이나 항의를 하는 게 아니라, 정든 내 고향이 더 좋아졌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표현하는 거예요.

나 혼자 잘 살긴 쉽지만, 많은 사람이 다 같이 잘 살게 되는 건 어려워요. 그래도 많은 사람이 잘 살면, 그 안에 나도 포함되니 좋은 거죠. 그게 제 희망이에요.

 

-최근 한국사회도 이주노동자, 다문화 가정 등에 대한 관심이 늘고 있죠. 정부 차원에서도 많은 정책이 나오고, 국회에도 ‘빈부격차차별시정위원회’가 생기구요. 상황이 많이 나아지고 있는 건가요?

 

우리 문제에 관심 있는 사람이 많아진다는 건 세상이 변하고 있다는 거죠.  이주노동자 친구들이 겪은 일들, 바라는 점들을 기자회견, 세미나, 시민단체들을 통해 글로, 인터뷰로 표현하려고 노력했고, 지금에서나마 그걸 들어주려고 한다는 게 저희에겐 반가운 일입니다. 지금 다문화 사회를 위한 정책이 나오곤 있지만, 그 대상은 노동자와 국제결혼가정 뿐이에요. 지금 한국에 있는 이주민들이 백만 명 정도 되는데, 정책의 혜택을 받는 건 15만 정도밖에 안 되는 거죠. 나머지 90만 이주민에 대한 배려도 필요해요. 한국 경제에 필요하다는 측면에서 이주노동자와 국제결혼가정을 배려하는 건 사실 민족주의 성격이 더 강한 거라고 봐요.

하지만 정책의 근본은 정말 그들을 한국 사람들과 동등하게 사랑하고 존중하는 한국 정부의 마음에서 나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아니라면 그 정책들은 오래가지 못할 거예요. 

 

-지금은 무슨 일을 하세요?

 

소화기에 압력을 표시하는 계기판을 만드는 일을 해요. 이주노동자 인권 운동하면서 만난 선배님의 동생이 운영하시는 회산데, 5년 째 일하고 있어요. 외국인 노동자는 저 혼자죠.

 

-요즘 경제가 많이 어려운데, 영향은 안 받으세요?

 

얼마 전 한국인 직원 3명이 정리해고 됐어요. 그런데 전 제일 마지막까지 남을 자신 있어요(웃음). 사장님이 “너만 있으면 내가 회사를 비워도 마음이 편하다” 하시거든요. 외국인이든 한국인이든 차별하지 않는 사장님도 훌륭하시지만, 내 자리를 안정적으로 보장받고 싶으면 무슨 일이든 적극적으로 배우고 정말 열심히 해서 인정받으려 스스로 노력하는 게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앞으로 계획은요?

 

우선 이주노동자방송이 안정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재정문제를 해결하는 게 큰일입니다. 전문 인력도 부족한 상황이라, 좀 더 나은 방송을 만들려고 미디어 관련 공부를 하고 있어요. 방송장비 다루는 법도 배우고 있구요. 그리고 외국인 노동자들은 입국하자마자 산업안전교육을 하루 받게 되는데, 한국어도 서툰 사람들이 하루 배운 것 가지고는 절대 안전하게 일 못해요. 다쳐도 보상받을 권리가 없는 사람들인데. 그들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 산업안전기사 자격증을 따려고 공부 중입니다.

매년 열고 있는 이주노동자 영화제도 준비 중이예요. 밴드 공연도 해야 하고. 힘들지만 열심히 하면 언젠간 잘 되겠지 하는 희망과 기대를 잃지 않으려고 합니다.


글 서지영 나라경제 기자
사진 전민규 중앙일보 시사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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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19 14:51 2009/09/19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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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이주노동자방송]을 가다.

    Tracked from 2010/04/02 09:57  dele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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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Subject: [이주노동자방송]을 가다.

    Tracked from 2010/04/02 09:57  dele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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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밀방문자 2009/10/03 01:25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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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박수현 2010/04/02 14:21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많은 내용이 담겨있는 인터뷰네요.. 잘 읽었어요 오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