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95년도

내 나이 20살

한국으로 떠날 비행기를 타기 전 공항에 나 그리고 나의 부모님이 서로 멍하며 보고 있다.

두 눈에 눈물로 가득한 엄마의 얼굴이 내가 20년 동안 봤던

엄마의 모습들 중 가장 힘들어 보였다.

내 두 손을 꽉 잡고 너무나 걱정하고 나에게 너무나 미안해하고 있다.

남자는 눈물을 흘리면 안 된다는 인식을 지키려 노력하시는 아버지의 모습도 참 힘들어 보인다. 나에게 “미안하다, 아버지 대신 가족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너를 정말 고맙고 미안하다.”라고 이야기 하셨다. 20년 동안 부모님 곁에서 아무걱정 없이 살아 올 수 있었던 내가 아버지 어머니에게 감사 드려야 하는데...

비행기에 올라가야 할 시간이 되자 엄마는 온 몸을 떨면서 울고 아버지도 울기 시작했다. 가족을 떠나 혼자서 세상을 덤벼야 할 나도 걱정과 슬픔을 견디지 못해 울었다.

우리 모두는 가족을 위해 그리고 꿈과 희망을 위해 서로의 눈물을 외면 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떠나야 할 시간이다.

내 가족, 내 고향, 내 친구들, 내 그리움 모두를 떠나야 할 시간이다.

마지막으로 우리서로 볼 수 있는 시간이 오자 엄마가 나에게 마지막 한 미디를 하셨다.

“네가 우리에게 무엇 보다 중요하다. 무슨 일이 있어도 꼭 건강히 들어와 줘”

“꼭 건강히 들어 와줘

들어 와 줘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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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3년도

정부가 한국에서 4년 이상 체류한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을 강제추방 하겠다고 발표했다.

많은 미등록노동자들이 걱정 속에 빠져 잠은 못자고 일하고 있어도 일이 손에 잡지 않고

있다.

대대적 강제 추방이라....

우리가 무엇을 잘 못 했기에..

우리가

IMF 외환위기 때 한국 경제 회복을 위해 월급 반만 받고 사장님과 함께 라면을 먹으면서 한국경제 살리기에 함께 했던 것들...

2002 월드컵 때 좋아하는 유럽 팀들을 외면해 한국 팀에게 “대~한~민~국”이라고 목 터질 정도 응원했던 추억들...

아플 때나 기쁠 때나 함께 했던 우리가 진정한 친구가 아니어서 강제 추방으로 인연을 끊으려고 하는 것인가?

“.......?”

강제 단속 시작했다.

단속 시작과 함께 이주노동자들이 자살한 소식이 하나들씩 일어났다.

더 이상 공포에 버티지 못해 전동차 앞으로 뛰어 내렸던 이주노동자 “비꾸”

400만원의 브로커 비용을 들며 한국에 입국했는데 단속 때문에 일을 못하게 되어 심한 정신적 압박을 받아 결국 죽음을 선택한 이주노동자 “브로흔”..

목매어 죽는...

바다로 뛰어 내리는...

단속이 무서워 아픈데도 병원을 못가서 결국에 숨지는...

추운 겨울 속 얼어 죽은 ....

보호소 화재로 ....

한국이 이주노동자들에게 희망의 땅이 죽음의 땅으로 되어가고..

더 이상 희망을 위해 희생자들 없으면 좋겠다는 바람과 이들의 억울한 죽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이유로 나는 “친구여 잘 가시오”라는 노래를 만들었다.

“우리의 친구여 동지여 편안하게 가시오

저 세상 끝에서 보아라 너를 위해 우리 기도해

오~ 잘가

오~ 너를 위해 우리 기도해

우리 친구여~ 동지여~ 얼마나 힘들었나

더 이상 이런 죽음 없게 널 위해 기도 하네

우리 함께 기도 하네”

(다국적 노동자 밴드 스탑크랙다운의 노래)

나의 노래를 들으신 분들 모두가 눈물 흘리면서 그들에게 안타까움을 전했다.

나의 노래를 불렸던 보컬 미누도 결국에 강제 추방을 피할 수 없었다.

하지만 미누는 자살한 이주노동자들처럼 몸과 마음 모두 다 한국을 떠났지 않고 한국을 사랑하는 자신의 마음을 한국에서 남겨서 네팔로 떠났다. 고마울 줄 알고 사랑을 할 줄 아는 평범한 인간다운 모습을 끝까지 보여 줬던 것이다.

나마스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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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도부터 진행 해온 강제 단속이 이제 2010년도가 되니 7년이 됐다.

한사람의 인생을 바꾸려면 4년이면 충분하다는 말이 있어서 7년이 너무 긴 시간이다.

하지만 2003년도부터 18만 명이 되는 미등록 노동자 수가 아직도 그 정도 남았으니 한국 사회가 미등록 노동자들 없이 안 된다는 것인가?

아니면 7년 동안 강제추방만으로 해결하려는 것이 잘 못 된 건가?

미국에도 한국인 미등록노동자가 25만 명이나 있다하던데...

7년이 충분한 시간이다.

무엇을 하고 있다는 것 보다 어떻게 하고 있다는 것이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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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친구들 모임에 가면 미등록, 고용허가제 등 여러 이주노동자들이 있다.

미등록 친구들은 강제단속 때문에 고통스럽고 고용허가제 친구들은 과도한 일과 하늘같은 사장을 모셔야 하는 일상에 지치고 있다. 다들 공동적으로 받고 있는 것이 사업 내 욕설, 폭행에 대한 스트레스다.

참자!!

우리의 희망을 위해...

우리의 가족을 위해...

함께 사는 것에 행복해야만 진정한 다문화 사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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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에 고용허가제 네팔 이주노동자 레미가 자살했다.

자신의 몸과 맞지 않는 일을 계속하게 되어 몸이 점점 약해지고..

한국 입국 때 필요한 비용을 위해 빌려온 빚을 갚지 않고 네팔로 들어가지도 못 하고..

결국 자신의 소중한 생명을 .....

나는 이주노동자들의 자살 소식을 들을 때 마다 내가 한국으로 떠나기 전 눈물 흘리면서

울고 있던 부모님들 생각이 많이 나다.

네팔인 레미도 그리고 한국으로 들어 온 모든 이주노동자들도 나와 똑 같이 공항에서 눈물 흘리면서 잘 갔다 오겠다고 가족들 에게 약속을 했었을 거야.

그들의 가족들도 그들에게 건강해야해, 잘 다녀와야 한다고 얘기 했을 거야.

마지막 시간 까지 반복해서 라도...

“모두에게 사랑하는 가족이 있고

소중한 가족이 있고

아름다운 희망이 있는 것처럼

한국에 들어 와서 일하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에게도 .....”

난 더 이상 “친구여 잘 가시오” 노래를 부르고 싶지 않아...

                                                                                     모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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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26 22:33 2010/01/26 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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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트루로드 2010/01/28 18:31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 정말 죽음에 대한 소식은 듣고 싶지 않지요. 특히 이주노동자의 사망 소식은..

  2. 2010/01/28 20:08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모뚜님의 글을 항상 읽고 있었어요. 하지만 덧글을 쓰는 것이 제겐 매우 힘든 일이었네요. 저는독일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데요, 아마도 독일에서 공부하는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에 대한 스스로의 자괴감 때문일 거라고 생각해요.
    제 기숙사의 이웃들은 대부분 방글라데시, 모로코, 몽골, 중국에서 온 이주인들인데, 많은 친구들의 형제자매들이 소위 '불법'으로 한국에서 일하고 있다고 해요. 우리는 이주자들에 대한 선주민 소위 독일인들의 냉냉함에 대해 함께 쉽게 욕했지만 독일정부보다 훨씬 간악한 한국정부에 대해선 처음엔 말을 잘 못했었어요. 잘안되는 말로 우선 제가 막 한국정부를 욕해야 말이 이어졌죠. 왜냐면, 한국에서의 이주노동자들의 상황이 너무도 처참하기 때문에 누구도 쉽게 말하지 않는다는 걸 늦게서야 알았어요.
    이주노동자에 대한 한국정부의 폭력에 대한 얘기 외에 우리는 한국드라마나 음악에 대한 얘기를 하곤 했어요. 무언가 소통할 수 있다는 데에 기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한국의 문화산업들이 아시아의 다양한 집단들의 문화를 파괴하고, 그 문화산업을 통해, 노동의 착취를 통해 제조된 상품이 무비판적으로 판매되게 하며, 한국에 대한 자본주의적 로망과 이데올로기를 생산하기 때문에 마음이 무거워질 때가 많아요.
    고된 그리고 가슴아픈 삶을 사셨던 레미님의 명복을 빕니다. 그리고 또 바래고 싶은 마음은, 친구를 보내게 하는 세상이 아닌 모뚜님의 마음처럼 함께함을 노래할 수 있는 세상이 어서 오길 기도합니다. 그런 세상을 부르는 물결같은 음악들로 저 문화산업의 지층들도 다시 새롭게 쌓여가길 바라고요. 아휴 너무 길어졌네요;

  3. 박수현 2010/04/02 14:27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눈물이 나도록 미안하고 또 미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