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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이상 내것이 아닌 열망

 빈집 

기형도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 <입 속의 검은 잎>, 문학과지성사, 1989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다.

이 짧은 시를 외지 못해 매번 더듬거린다.

전화기 너머 친구가 이 시를 낭독한다. 그가 고맙다.

 

사당동 족발집에서 족발을 뜯으며 시를 낭독한다.

웃음거리가 된다.

나의 절절함과 상관없이 웃는 타자들이 고맙다.

 

어장관리남이 명언을 날린다.

내가 돈이 있냐? 잘생기기를 했냐? 그래서 어장관리하는거야 임마.

섹스는 자위로 해결되니까 그냥 편한 여자친구가 좋아.

아하. 그럴때 어장관리를 하는구나. 애도에 관한 이야기를 에로로 받아치는 친구의

가벼움이 고맙다.

 

족발집을 나와 2차를 가려고 준비중인 친구들.

난 더 술을 마셨다가는 우울감이 깊어질것 같아 도망친다.

헐크가 된 친구가 나를 번쩍 안아서 들고 뛴다.

내 덩어리를 들고 뛰는 것 자체가 너무 웃겨서 눈물흘렸다.

 

결국 도망치기는 성공.

 

빈집이 아니라 시끌벅적한 곳에 갇힌 사랑도 간혹 고마울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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