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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민주주의의

민주주의는 귀찮은 일이다.  비효율과도 친분이 두텁다.

흔히 다수결로 결정하여 의견을 모으지만, 많은 경우 합리적인 선택과 거리가 멀다. 문제를 해결하고자 할때, 대안의 질은 고민의 깊이와 비례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결국, 고민없는 여러사람의 동의 보다는 이해당사자 한 사람의 대안이 조직을 위해 좋은 선택이 될 수 있다.

 

그렇다고 독재로 가란 말인가?

결과론적으로 볼때, 독재는 목표달성에 있어 효율성이 높다. 스티브잡스가 자신의 직감과 독단적인 선택으로 애플을 이끌어 온 것으로 유명하지 않은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오히려 독재를 했다면 한국사회는 좀 달라지지 않았을까? 상상해본다.

 

'독단'과 '독재'는 낙관적 결과가 담보되었을 때 긍정적인 가치판단을 할 수 있다.

진보진영의 조직, 정당에서는 민주주의의 이념을 목숨처럼 소중히 여기며 실천하고자 하지만 지도부와 평회원,당원간 의식수준(주도그룹의 생각)의 차이 때문에 독재를 하고 있다.

부정하고 싶겠지만, 의견수렴 수준을 보면 알 수 있다. 의견이 다를 때 전선을 긋는 행위는 독재와 독단의 표본이다.

 

그래도 왜 민주주의여야 할까?

민주주의는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기 때문이다.

민주화가 결과를 위한 행위였다면 민주주의는 목표가 뚜렷하지 않은 과정의 행위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시행착오가 많고 결과는 더디다.

하지만 그 과정에 어떤 가치가 있는지에 집중해야 한다.

 

한사람의 열걸음보다 열사람의 한걸음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람들은 선동 보다는 실천적 경험으로 움직였을 때 지구력을 갖는다.

본인의 경험을 통해, 성찰하고, 다시 계획을 수정하고 실행하는 가운데 성장한다.

대중은 어린아이가 아니다. 어르고 달래서 선동하는 교육과 교화로 크게 변화하지 않는다.

때문에 과정중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야 한다.

 

조직이 무너졌을 때 책임을 같이지고자 하는 사람은 어떻게든 그 조직운영에 참여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다. 조직 안에서 사장이나, 대표에게 의존해서 일하는 조직원은 실패 후에 책임자를 원망하기 마련이다.

 

독재는 성공할 때 빛을 발하지만 실패할 때 모두를 망가뜨린다.

역으로 민주주의는 성공이라 말할 수 있는 결과가 없을 수도 있지만, 실패할 때 그 빛을 발한다.

 

쓰다보니 너무 범위가 넓어졌다.

그냥 내가 속한 조직의 의사소통과 관련하여 고민하다보니 여기까지 왔다.

 

진보의 성찰이 가능한 내가 좋아하는 조직안 에도 다양할 갈등이 있다.

그 갈등이 나를 성찰하게 한다. 갈등은 해결이 아니라 관리하는 것이라고 강의하고 다녔는데

정작 우리는 갈등을 견디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서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건 당연하다. 그 다른 생각을 드러내서 피튀기는 토론을 하기도 하고 생각이 바뀌지 않는다면 그냥 다르구나 인정하면 되는데, 감정이 실리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일까?

힘들어하고 혹은 비난하는 맘은 갈등에 익숙치 않아서인것 같다.

 

민주주의란게 별게 있는가? 갈등에 익숙해지는 거다.

개별화된 집합체에서 조정하고 관리해야 할 일인데, 감정이 실리면서부터 민주주의와는 이별하는 길로 접어드는 것이다.

 

나는 혹시, 나와 다른 의견들이 일어날 때 감정부터 상하고 있지는 않은가?

그렇다면 내가 결정권자의 위치에 있을때, 독재가 될 가능성이 높다. 순응과 복종에 익숙한 이들과만 일하려고 할테니 말이다.

 

내안에 민주주의가 살아숨쉬고 있는지 돌아보는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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