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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6/01
    심상정 욕하지마(9)
    마돈나
  2. 2010/05/24
    선거브로커와 낭만(2)
    마돈나
  3. 2010/04/28
    내게 있어 책읽기란
    마돈나

심상정 욕하지마

심상정 후보 덕분에 경기도 진보신당 정당득표율은 올라갈 것이다.

대중은 그렇다. 자기이해, 자기이익, 자기연민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들이다. 대중이 나쁜가? 소신이 없어뵈는가? 아니다. 대중만큼 솔직한 소신이 어디있는가? 그래서 대중의 마음 만큼 잡기 힘든 것도 없을 것이다. 중당선대위가 만류했지만 끝끝내 사퇴를 결심한 심후보의 마음을 움직인 건 뭔지 잘 모르겠지만, 그녀를 보고 대중은 움직일 것이라고 예상한다. 반MB정서로 인해 유연하지 못하다는 평을 듣던 진보신당의 유연함을 보여준 사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대중에게는...

 

심 후보는 욕먹을 것이다. 내부로부터. 

국회앞 기자회견을 못하게 할 정도로 당원들은 흥분했다. 그런데 그분들이 진보정당 당원 전부를 대표하지 못한다. 난 진보신당에 실망했었다. 후보단일화를 하겠다고 나섰을 때도 깨고 나왔을 때도 그랬다.

이유는? 들어보지 않았다는 것. 민주주의를 입에 달고 다니면서도 정작 당원도 많지 않은 진보신당은 당원의 이야기를 잘 들어보지 않고 집행부가 결정해왔다. 입장에 맞으면 추켜 세우고, 입장에 맞지 않으면 비난한다. 내부안에서의 전선긋기가 지긋지긋해서 난, 탈당으로 맘이 굳혀지고 있던터다.

 

심후보는 똑똑하다. 내가 소설을 써보자면.

중앙선대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왜 그녀는 사퇴를 결심했을까? 심적 부담이 컸다고 본다. 민주노총과 유시민 후보가 쿵짝해서 심후보를 내려앉혔다는 설이 있고 그 증거가 있다고 하나, 난 팩트의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 그리고 심후보가 밝히지 않았는가? 외부의 이유는 없었다고. 그럼 그녀의 말을 믿자. 음모설에 휩싸이지 말고. 제발.

어느 누구도 유시민 후보의 입장이라면 쿵짝이 아니라 후보단일화를 위해 갖은 애를 다썼을 것이다. 진보신당 후보라면 안그러겠는가?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상상하며 같은 우리에 넣지 말라고 비판하고 싶은가? 난 나라도 그럴것이기 때문이다.

 

여튼, 만약 유시민 후보가 낙선했을 경우, 여론의 화살은 심상정에게 날라가 꽂힐 것이다. 진보신당을 대하는 사람들은 더욱 싸늘해질 것이다. 물론 몇 안남은 당원끼리 껴앉고, 하나님이 주시는 시련이라며 고통스런 기도를 올리면서 당을 유지한다면야 모르겠지만, 진보신당은 쪼그라들게 분명하다. 심 후보는 정당내에서 '학'과 같은 대접을 받을지 모르겠지만, 정치무대에 복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심상정, 욕하지 마라. 그녀는 정치를 안다. 그녀가 유시민을 도우려고 그랬을까? 유시민에게 다른 약속을 받아냈기 때문에 사퇴했을까?(진보신당 어느 당원이 분개해서 그러더군. 세상에, 아무리 사퇴에 반대한다고 하루아침에 더러운 정치적 거래를 한 심상정으로 판단해버리다니, 진보진영 무섭다) 난 아니라고 본다.(어디까지 내 상상) 주민의 여론과 생각을 읽었다고 본다. 그것이 진보신당에 도움이 되었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런데 왜 대화하지 않았느냐고? 선거기간은 짧다. 하지만 여론의 움직임은 가속화하여 후보가 느끼는 위기감은 더욱 컸을 터.

 

심상정 후보 사퇴가 주는 선물은 유시민이 받은게 아니고 진보신당이다. 

당내는 시끄럽겠지만, 당밖은 진보신당 이미지 좋아졌다. 제발, 당원끼리 만나지 말고 대중좀 만나보라.

 

난, 후보단일화 좋아하지 않는다.

민주주의라는게 이런저런 계급계층을 대변하는 다양한 정당의 출현이 필요하다고 본다.

당선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라고 어느 선배는 그랬지만, 난 무대에 서는 것도 중요하지만 존재자체가 중요한 부분도 있다고 본다. 정말 갈곳없어 진보신당 간 진보지향의 젊은이도 있지 않은가!

 

진보신당이 후보단일화를 처음부터 시도하지 않았으면 더욱 좋을뻔했다.

단일화하려다 깨고 나온건 어떤 고상한 이유를 붙이더라도 납득할 수 없다.

어차피 나라의 미래가 어떻고 저떻고 보다, 정당이익을 기대하고 단일화시도한 것 아니겠는가!

 

진보신당 당원들! 심상정 욕하지 마라. 후보와 소통이 안되서 설득할 수 없었다면 진보신당 자체의 문제다. 심후보 개인의 문제로 돌리지 마라. 개인의 문제로 돌려서 책임을 회피하려고 하지 말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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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브로커와 낭만

 그래 욕해도 좋다. 뜬금없이 탤런트 윤동환 후보 선거운동을 한다니... 난 진보신당 당원이고 같은 지역구에 진보신당 구의원 후보자도 출마한다. 진보신당 후보자를 도와야 하나, 뜬금없이 윤동환 후보를 돕기로 맘먹었으니, 머지 않아 소문날테고 욕을 들어먹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하고 싶은대로 하고싶다. 적어도 선거만큼은... 진보신당 후보자의 연설문  녹음을 도왔으니. 빚진 마음은 좀 덜어낼 수 있으리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사이트를 뒤져서 윤동환 후보사무실 연락처를 알아냈다. 이런! 휴대폰 번호다. 선거사무실에 전화도 놓지 못했으니, 그의 선거운동이 얼마나 허술한지 단번에 눈치챌 수 있었다. 전화했다. 직접 받는다. 연예인이라 그런지 왠지 좀 떨린다.

 

"저어, 저는 지역에서 오랫동안 활동한 사람인데요. 선거를 돕고 싶습니다"

"아, 예, 이따가 전화드리죠. 띠띠띠띠"

오우, 이런. 고맙단 소리를 듣기를 바라지는 않았지만, 왠지 썰렁하다. 하지만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보니 경계할 만 하다. 나를 선거브로커 쯤으로 여겼을터. 그러게 메일주소라도 알았다면 나의 순수성을 장황하게 설명할 수 있었을 텐데...

 

그리고 난 문자를 남겼다. "저 선거브로커로 오인하지 마세요"

 

자발성이 크면, 그 순수성을 의심받는 세상인줄을 몰랐던가. 내가 이쯤에서 토라질 내공은 아니지. 그는 전화했다. 흠. 전화하겠다고 하더니 직접 전화를 주니 신뢰가 간다.

난 짧게 나를 소개했다. 긴장하면 혀도 굳고 귀도 굳는 법. 쓸데없이 장황하게 나를 설명했다. 또한 그가 자신의 블로그 주소를 영어로 알려주는데 그것도 제대로 못알아 들었다.

 

이런 된장. 귀가 굳었다.

 

그는 건조하게 말한다. "급여를 줄 수 없는데요"

오우, 이런. 난 급여따위 필요없다. 나도 월급받고 일하는 사람인걸.

 

내가, 그를 지지하고자 했던 이유 중의 하나가 낭만주의적이라는 거다.  중앙정치가 흙탕으로 뒤범벅이된 장마철 한강이라면 풀뿌리정치는 흙탕 구덩이다. 다를 바가 없다. 투표율이 낮을 수독 끈끈한 지역토호들의 잔치일뿐이다. 그리고 그들의 뻔한 선거운동은 토나올정도로 유치하다. 하지만, 현행법상 진보정당도 마찬가지의 선거운동을 할 수밖에 없고, 그렇게 닮아가고 있는게 현실이다. 하지만 그는 살사공연을 준비하는 등 선거문화를 바꾸고자 하고, 특히 주변 조직도 없이 순진하게 선거운동을 하는거다.

 

추노에 출연했음, 추노 배경음악이라도 틀어대야 마땅하지 않은가. 생각을 못해서는 아닐테고, 닭살돋아서 시도하지 않는건 아닐까?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니, 참, 순진하고 낭만적이라는 생각이 들고 웃음도 나온다. 

하지만, 난, 낭만과 순수를 회복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더 나아가, 불법선거를 마구 저질러대서라도 기득권에게 유리한 선거문화를 바꿔야 한다는 생각이다. 가령 하지 말라는건 더하는거지.

 

그리고 막걸리를 마셨다. 회의를 마치고 선배들과 종로 광장시장 한복판에서 부어라 마셔라...

맛도 고마고만하지만, 사람들은 들끓었다. 추억을 마시는듯 하다. 몇십년전 손님들이 앉아서 '이모님'과 다정하게 이야기한다. 손님들끼리도 이야기한다. 손님 어깨를 비집고 껌파는 할머니가 껌을 내민다.

 

빈대떡집 이모님은 필사적으로 '사지마'라고 소리지른다. 내가 '왜요?" 그랬더니 빌딩이 3채란다. 그 다음 오는 껌팔이는 아들이 '판사'고 다른 껌팔이는 부천에 빌라가 있다고 한다.

 

그래서 물었다. "이모님은 빌딩이 몇채인데요?"  대답 회피.

내가 듣기론 빈대떡 이모님이 아주 부자라고 들었다.

 

껌은 동정과 연민을 보태어 시중가보다 비싸게 팔린다. 하지만 그녀는 그냥 껌팔이다. 빈대떡 이모도 그렇고  껌팔이가 빌딩이 여러채면 어떤가. 그냥 그것밖에 할 줄 아는게 없어서 그 장사를 하는거 아닌가. 그녀들은 그저 자신의 직업에 충실할 따름이다.

 

문제는 껌을 소비하는 사람들이다. 행상에 대한 동정과 연민을 통해 우월감을 사는 행위 말이다. 그리곤 그들이 재산 때문에 심하게 배신당했다고 느끼는거... 어쩌면 그냥 편의점에서 사는게 나을지도 모른다. 소규모 자영업자의 급여가 이미 최저생계비수준이 된 지 오래다.

 

차암 건조한가?

 

세상은 그렇다. 정치판이던, 오늘처럼 비오는 빈대떡집이던, 낭만은 눈씻고 찾을래야 찾을 수 없다.

어쩌면 난 윤동환 후보에 대해 나 나름대로 낭만적인 상상을 하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하지만, 적어도 낭만적으로 덤벼드는 새내기 정치인에게 그런 실망을 주고 싶지 않았다. 나같은 유권자도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 이미 경계하는 사람에게 신뢰를 줄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 경험이다.

 

시간이 필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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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있어 책읽기란

 

로쟈의 인문학 서재 : 곁다리 인문학자 로쟈의 저공비행
이현우 저 | 산책자 |



로쟈의 인문학 서재를 읽다가 문득 나에게 있어 책읽기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생각한다.
글자 이전에 언어라는 걸 습득하게 되면서 많은 이들은 엄마가 읽어주는 동화책이 어렴풋이 기억날 것이다. 더듬어 본다. 기억에 없다.
책읽기는 온전히 본인의 몫이었던 당시, 안타깝게도 난 글을 2학년이 되어서야 깨쳤다. 남들보다 2년가량 유예한 셈이다.

10대의 책읽기는 인어공주부터 시작한다.
학교 후문에는 대백과 사전 한질을 구입하면 망원경이나 지구본을 서비스로 준다며 영업자들이 눈에 띄곤했다.
당시, 나때문에 엄마가 개고생한다는 주위사람들의 세뇌 때문인지 소비욕구를 억압하는데 이력이 난 나로서는 언감생심 책을 질로 사들이는 건 현실성이 없어보였고, 성식이 오빠 집에서 대리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 대백과 사전은 펼쳐보지도 못한채 망원경이나 지구본을 마냥 만져보다 집으로 돌아왔다.
외할머니 댁으로 보따리 싸서 보내질 무렵 엄마는 최초의 제안을 했다.
사고 싶은 걸 하나 사라. 이별의 징표로 목걸이 같은걸 주지는 못할망정. 
여하튼 나는 당장 서점으로 달려가 동화책한권을 냉큼 골랐다. '인어공주' 그 물거품의 아련한 아픔, 외사랑의 덧없음을 그때 배웠던가?

여하튼, 시골로 간 나는 사랑방에 아무렇게나 흐트러져 있는 선데이서울이나, 사촌동생이 읽다만 위인전, 삼촌들이 끄적거리며 읽었던 각종 소설들을 읽었다. 기억나는 건 루즈벨트 대통령 위인전이요, 나머지는 제목도 기억나지 않는다.

20대의 책읽기는 순전 폼잡기였다.
남자만이 여자를 꼬시기 위해 책읽기를 하는 건 아니다. 여자도 목적을 다른 데 두고 책읽기를 하기도 한다. 당시, 난 남자를 꼬시기 위했다기 보다, '난 너희들과 달라'라는 차별성을 목적에 두고 어떤 숭고한 의미부여를 자아에게 마구 심어주기 위해 책을 읽었던 것 같다. 정확히 말하면 10대 후반부터이다.

대학시절, 김현의 문학비평이나, 김윤식의 임화평전, 보들레르의 시, 아타키즘 관련한 책, 사상서 월간 현대문학 등등을 겨드랑이에 끼고 다녔다. 이렇다할 선배도, 선생도, 책을 함께 토론할 친구도 없이 그저, 서점 사회과학서적이나, 문학코너를 돌며 멋있어 보이는 책들을 골라 읽었던 듯 한다. 물론 학교도서관 죽순이기도 했다. 열람표에 가득하게 적힌 도서목록은 아직도 갖고 있는데 내가 그 책을 읽었던 기억은 정말 하얗다.
다만, 목적은 이룬 셈이다. 당시를 회고하던 남자친구는 "우리학교에서 네가 제일 멋있었다" 한마디로 갈음해주니까 말이다. 이건 자랑.

하지만, 부끄러운 과거이기도 한다. 공부라는 걸 자좀감의 재료가 아닌,  쾌락의 도구였다면 난 어쩜 의도하지 않았어도 알짜배기 멋있는 사람이 되었으리라.'목적이 이끄는 삶'은 사람을 한없이 초라하고 텅빈존재로 만드는 재주가 있다. 알맹이 없는 벼껍데기같이 휑하다. 그리고 후회한다.

로쟈가 거론한 책들과 영화들, 많은 텍스트들이 그 세월에 나를 거쳐갔건만, 어쩜 주인공 얼굴조차 기억하지 못하는가. 웃긴건, 그가 느꼈던 저 감흥을 나는 느끼지 못했을 뿐더러, 마치 공무원시험서를 들여다보듯 땀을 삐질삐질흘리며 게걸스레 우겨넣었을 뿐이다.

30대의 책읽기는 삶이다.
커리어에 대한 로망이 있던 시절, 정확히 말하면 20대 후반이건가. 난 자기개발서를 탐독했던 것같다. 정말이지, 매일같이 주먹을 꽉쥐고 살지 않았던가. 비동시성엔 고개를 돌리고, 동시성을 불러일으키는 의식에 주목하고 마치 그것이 이뤄지고 있는냥, 전도가사 된듯 열정과 긍정에너지를 마구 퍼올렸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참 웃긴 짓이었다. 하지만 그건 나의 욕망과 삶과 직결된 무엇이었다.

그러다, 친구의 소개로 강신주의 '철학, 삶을 만나다'를 만났다. 한참을 솔로로 지내던 이들이 애인을 만나 첫번째 묻고 싶었던 말이 "왜 이제 나타났냐?" 던가. 왜 이제야 저를 찾아오셨는지 가슴팍을 고사리같은(?) 두손으로 콩닥콩닥 때려주고 싶을 정도로 나에겐 신선한 자극이었다.
세상을 바라보는 나만의 렌즈를 만들어 주는 인문다운 인문으로의 진입이라고나 할까.
그 이후 고구마줄거리처럼 재미난 책들이 고개를 내밀었다. 아, 신선하고 파릇파릇한 애인들이여.
난, 침대에 방금 배송된 젊은 애인들을 펼쳐놓고 한참을 흐믓하게 바라보았다. 표지만 봐도 가슴이 설렌다.
앳지나는 사각형의 친구들... 잠을 자지 않고도 피곤하지 않을 수 있다면 밤새 사랑을 나누고 싶지만, 어쩌랴. 조각모음의 시간은 순전히 그렇게 만들어진 동물적 본능인것을.

어느새 책을 의인화하는 단계에 이른 셈이다. 즐겁지만 때론 망치로 견고하게 얼어붙은 관습의 굴레를 깨는 아픔도 겪어야 하고, 난독의 괴로움속에 살짝쿵 삐지기도 하고, 너무 다른 그대를 보며 왜이렇게 다른지 한숨을 쉬기도 하고 아예 재미없음 버리기도 한다. 

어제, 내 침실을 뒹굴던 책을 소개한다.
무례한 복음 때문에 지른 이택광의 '민족, 한국 문화의 숭고대상'
세미나 때 읽어야 할 프란츠파농의 ' 대지의 저주받은 사람들'
이택광이 알라딘과의 인터뷰에서 추천한 최장집 '민중에서 시민으로'
피터싱어 '물에 빠진 아이 구하기'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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