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대의 유행, 마르크스철학
이 모든 주장들[포스트모더니즘의 주장: 인용자]에 대한 이론적 근거를 철저하게 파고드는 논리적 성찰이 결여되어 있을 때 저 현란한 주장은 기껏해야 풍부한 말의 성찬이거나 아니면 이데올로기적 유행 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마치 마르크스의 철학이 이데올로기로서 모든 것을 휘집고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난 후에, 그리고 그 경향 속에 함몰되어 있지 않았다면 비지성적인 존재일 뿐만 아니라 역사적 책임의식조차 없는 존재로서 손가락질을 받은 이후에, 결국 우리에게 남아 있는 것이라곤 그것은 한 시대를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유행에 지나지 않았음을 확인하게 된다.
그 많던 사회과학 출판사들도 이제는 다른 목소리를 낸다. 사회과학 출판사나 그들이 간행했던 문화적이고 지성적이었던 잡지에서조차 그렇게 은연중에 강요했던 마르크스나 레닌의 그림자는 찾아보기 힘들다. 오히려 수정주의자로 비판받았을 그런 견해들이 문화의 다양성이라는 이름 속에서 모든 것을 소화할 수 있을 듯한 관용의 얼굴을 내밀고 있다. 이런 현상은 철저한 지적 사대주의와 그것과 결합된 돈독이 오른 천박한 상업주의의 얼굴로서 다가온다.
그러나 우리의 지적 허영심은 이론의 정당성을 철저하게 추구하는 양심 대신 특정한 지식체계에 대한 선전자와 그에 따르는 경제적 보상만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도 우리 현실에 대한 다양성과 일상성이라는 이름으로.
김영건, <철학과 문학비평, 그 비판적 대화>,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007, 책세상, 2000, 69-7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