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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실과 공무원 접근이 중요한 이유

이 글은 전적으로 나 개인의 의견이다. 내 직장, 내 업무와는 하등 관련이 없다. “xxx신문의 아무개가 이렇게 썼다”고 인용하는 건 허용하지 않는다.

 

별로 이야기하고 싶은 주제는 아니었지만, 기자실 문제를 꺼낸 마당이니 한마디 더 해야겠다. 애초 내 글은 '기자실' 문제를 계기로 삼긴 했지만, 기자의 진짜 문제가 뭔지 생각해보자는 글이다. 그런데 상황 맥락이 있는지라, 애초 의도가 선명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 그래서 이런 저런 반응들이 나오는데, 일일이 답할 생각은 없다. 아니 사실은 경험의 차이가 워낙 커서, '기자실' 문제를 둘러싼 소통과 이해는 기대하기 어렵다. 나는 10여년동안 온갖 기자실 돌아다니면서 이것 저것 수없이 겪은 사람이다. 그런데 기자실 근처에도 가보지 않고, 단편적으로 기자실의 실태를 전해들은 사람들을 어떻게 설득하겠나?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물론 기자실에 문제가 없었다고 말하는 건 아니다. 과거에 문제가 많았다. 기자실 폐쇄성을 이야기하면, 그 첫번째 피해자는 내가 있는 신문사 기자들이다. 1980년대말, 그리고 90년대 초반, 우리는 기자실에 들어가기 위해 수없이 싸웠다. 우리는 왜 기자실에 들어가려고 했을까? 기자실에 접근하지 못하면, 정부 부처의 온갖 정보로부터 소외당한다는 것이 첫번째 이유였다. 물론 기자실에 들어가는 건 양날의 칼이다. 기자실에 들어가는 순간, 정부 부처로서도 통제의 여지가 생긴다. 하지만 공무원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파헤칠 기회도 생긴다. 기자가 제 정신만 차리면, 문제보다는 장점이 훨씬 많다.

 

기자실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글 가운데 정부 부처가 아니라 기자단에게 푸대접을 받았다는 걸 지적하는 글들이 꽤 있다. 그 심정을 알 만하다. 그런데 그들은 왜 기자실에 들어오려고 애썼을까? 이유는 내가 있는 신문사가 그랬던 것과 똑같다. 기초 정보와 사실에 대한 접근이 안되면 기사를 쓸 수 없다.

 

그런데 이젠 정부가 기자들을 기자실에서 몰아내려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기자들이 반발하는 건 당연하다. 이유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다. 그럼 정부는 왜 기자들을 내몰려고 할까? 기자들을 기자실로 끌어들였던 동기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젠 기자 통제가 불가능한 시절이다. 이유가 없어졌다. 상황은 간단하다. 기자실은 그동안 정부과 기자의 이해가 맞아떨어져서 유지됐는데, 이제 정부쪽에서 받을 게 없어졌다.

 

정부가 철저히 브리핑을 하고 정보를 제때 공개하면 되지 않냐고 하지만, 현실을 모르는 소리다. (정보 공개를 하지 말자는 소리가 아니다. 이것도 중요하다.) 브리핑으로 대체한다는 시스템은 정부가 무슨 짓을 꾸미고 있는지 폭로하는 걸 막는 시스템이다. 아메리카합중국 같은 나라가 그렇다. 그런 의미에서 '선진화'라면 선진화다. 그런데 나는 이런 선진화 거부한다. 아메리카합중국 같은 시스템에서는 일부 유력 언론 곧 에이피통신,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등등 손에 꼽을 수 있는 언론사 기자만이 제대로 공무원을 접촉할 수 있다. 그러니 이들만 공식 브리핑에서 알 수 없는 것들을 써댄다. 그리고 이런 시스템에서야말로 언론 통제가 쉽다. 일부 유력 언론과 공무원들이 결탁하면, 공무원이 특종거리를 주는 대신 진짜 중요한 이야기는 함께 감추는 게 가능하다. 노무현 정부가 기자실을 없애고 공무원 접촉을 차단하면, 힘있는 보수 신문에 정보는 더욱 집중될 것이다.

 

원론으로 돌아가서 생각해볼 필요도 있다. 국민은 정부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알 권리가 있다. 정부가 원하는 것만이 아니라, 원치 않는 것도 알 권리가 있다. 어떤 언론학자는 기자들이 공무원 업무 공간에 마구 들어가는 나라가 어디 있느냐고 하지만, 그의 말이야말로 틀렸다. 기자에게는 싸움을 해서라도, 하다하다 안되면 서류를 훔쳐서라도, 정부가 어떤 일을 꾸미고 있는지 국민에게 알릴 의무가 있다. 다만 이런 행위는 '언론의 공익성'이 전제되는 한에서 정당화될 수 있다. 미리 전화하고 시간 잡고 만나는 방식에서, 공무원이 알리고 싶지 않은 것들을 기자들이 알아내는 게 정말 가능하겠는가? 진짜로 그렇게 믿는 사람 있으면 나와보라.

 

정부에 대한 감시는 언론의 기본 의무다. 기자들이 할 수 있어도 안하려고 한다면 문제지만, 잘 안한다고 해서 이 의무가 무의미해지는 건 아니다. 누군가는 해야 하고, 이 일을 할 여건이 나빠지는 건 막아야 한다.

 

2007/05/25 18:57 2007/05/25 18:57
6 댓글
  1. 행인 2007/05/25 19:31

    기자들이 기자실을 우습게 아는 시기가 빨리 도래하길 빕니다. 기자정신과 공무원정신이 잘 조화돼 시너지를 발하면 좋겠는데, 그건 요원하겠죠? 주는 떡 먹는 기자정신과 낙지부동 공무원정신이 오늘날의 이 꼴을 만들었는데, 참 안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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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아거 2007/05/26 05:54

    경험에서 나온 현실 분석과 간접경험이나 상상을 통해 만든 현실 분석 둘 중에 어떤게 정확한 것인가를 따지자면 분명 전자입니다.
    그런데 말이죠. 그 경험자 그룹의 현실분석이 늘 정확하다고만은 볼 수 없다고는 생각지 않으세요. 이를테면 고종석 기자가 쓴대로 진실은 여러겹에 둘러싸여 있는데, 내 경험에서만 보면 그게 진실같아 보이고 남은 나를 진짜 알아주지 않는다고 보는 겁니다.
    예를 들어 일전에 미국 종이회사들의 벌목방법에 대한 여론을 연구한 적이 있었습니다. 펄프회사들의 벌목 방법중에 이른바 clearcutting이란게 있습니다. 산 한 면을 완전히 바리깡 내버리는 것이지요.
    미국 환경단체와 공중들의 여론은 대부분 부정적입니다. 보기에도 흉하거든요.
    그런데 종이회사 사람들은 물론이고 심지어 forestry학자들까지 나서서
    clearcutting에 대해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은 문제될 게 전혀 없고 왜 공중들이 이렇게 오해를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학자들이 내놓은 clearcutting 사실과 신화 (http://www.wvu.edu/~agexten/forestry/clrcut.htm) 를 보면 이들이 공중들을 계몽시키려고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산림학 박사들과 일반인이 이야기할 때, 혹은 산림업계 사람들과 이야기할 때 일반인보고 "우리 경험으로 볼 때 당신들 생각은 완전히 myth야...경험해보면 알거야..."라고 한다면 일반인들이 "오 그렇습니까?"하겠냐는 겁니다.

    저는 이걸 저널리즘의 철학 차원에서 논의하고 싶지 않습니다. 이 문제는 언론이 대공중관계(PR)에 완전히 실패하고 있는 또하나의 사례가 된다는 점만 이야기하고 싶네요. 언론은 늘 사람들을 "계몽"시키고 싶어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한 목소리로 계몽시키려고 하는데 오히려 반감만 더 낳고 있다면 계몽하려는 내용의 진위에 관계없이 우리 인식에도 뭔가 문제가 있지 않나 하는 것을 되돌아봐야 합니다.

    이건 우리 직업에 관계된 일이니까 당신들은 좀 빠져죠 라고 이야기하거나
    이건 도무지 말로는 이해를 시킬 수 없다는 자세를 보인다면
    저는 한마디로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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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아거 2007/05/26 06:11

    글이 길어져서 제가 올린 어떤 글 밑에 이어서 썼습니다. 양해를 구합니다.
    http://gatorlog.com/?p=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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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yy 2007/05/30 19:36

    국정 브리핑 자료에 의하면 한국보다 언론환경이 좋다고 평가되는 여러 나라들이 공무원 개별 접촉을 막고 있으며 '미리 전화해서 시간 잡고 만나는 방식'만을 허용한다고 합니다. 그런 나라들에서는 어떻게 취재가 이루어지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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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marishin 2007/05/31 09:16

    그런 나라들이 '선진국'인 아메리카합중국 같은 나라들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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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marishin 2007/05/31 10:09

    yy님, 오해의 소지가 있어서 덧붙이자면 저로서는 이 문제가 많은 이야기가 얽혀있는 복잡한 문제입니다. 기회를 내서 이에 대한 제 생각을 따로 적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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