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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의 시대가 프랑스의 검열관들에 도전하다

에릭 홉스봄(Eric Hobsbawm)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1999년 12월호

 

이 저명한 영국의 좌파 역사학자가 자신의 책 <극단의 시대>가 5년동안 프랑스어판으로 번역되지 않다가 가까스로 1999년 10월에 프랑스에 선보인 것에 대해 쓴 글입니다. 이미 20여개 국가에서 번역출판된 이후의 일입니다. 이 책이 20세기를 평가하면서 공산주의에 대해 "뉘우침"이 없는 태도를 보여, 프랑스의 출판사들이 그동안 번역을 거부했다는 군요. 하지만 프랑스 지식 계층의 반마르크스주의 분위기를 비웃듯, 한달만에 4만권이나 팔렸답니다.


 

 

에릭 홉스봄의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책 `극단의 시대 (Age of Extremes)'가 프랑스어로 나오기까지 5년이나 걸렸다. 그 사이 20개 언어 이상으로 이미 번역됐다. 번역서 출판 한달 뒤인 1999년 11월까지 이 책은 베스트셀러 명단에 오르면서 4만권이나 팔렸다. 이 전체 사건은 프랑스 지적 생활을 둘러싼 동요와 모호성을 드러내준다. 누구도 이 책의 품질을 부인하지 않았다. 재정상의 고려 문제도 아니었다. 문제가 된 것은 홉스봄의 생각, 특히 좌파에 대한 뉘우침없는 그의 태도였다. 오랫동안 `스탈린주의화'를 겪은 뒤에 가까스로 빠져나온 프랑스에서, 이념적, 지적 분위기가 이 책 출판에 적절하지 않다는 느낌을 받게 됐다. 출판사들은 프랑스 작가 프랑수아 퓌레(Franc?is Furet)의 생각 곧 20세기가 공산주의와 나치주의로 떨어졌으며 둘은 위험한 전체주의라는 점에서 똑같다는 생각을 옹호하는 책들을 선호했다.

 

홉스봄의 책을 번역하기로 결정하면서, 에디시옹 콩플렉스 (Editions Complexe) 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는 역사를 단 하나의 공식 이론으로 축소하기를 거부했다. 프랑스어를 쓰는 독자들은 이런 태도를 칭찬했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는 이제 막 끝나가는 이 세기의 역사에 대한 풍부하고 복잡한 논쟁에 기여했다. 여기, 홉스봄이 책 출판에 얽힌 문제를 설명한다.


 

<극단의 시대: 짧은 20번째 세기 1914-1991>은 1994년 영국에서 출판됐고 곧 바로 미국에서 나왔다. 그리고 곧 주요 언어로 출판됐다. 딱 한 언어를 빼고. 독일어,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유럽판과 미주판으로), 이탈리아어, 중국어 (타이완어와 본토어로), 일본어, 아랍어로 말이다. 러시아판은 곧 작업에 들어갔고, 다른 모든 유럽연합 국가 언어판도 - 딱 하나를 빼고 -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중부와 동부 유럽의 대부분 과거 공산국가 언어도 마찬가지다. (폴란드어, 체코어, 헝가리어, 루마니아어, 슬로브어, 세르보크로아티아어, 알바니아어)

 

그러나 지난 10월까지는 프랑스어판이 나오지 않았다. 리투아니아 (인구 370만명), 몰다비아 (430만명), 아이슬랜드 (27만명) 등의 출판사들과 달리, 프랑스 (5840만명)의 출판사들은 `극단의 시대'를 자국 언어로 번역하는 것이 가능하거나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같아 보였다. 하지만 리뷰 <르 데바 (논쟁, Le Debat)> (1997년 1-2월호)가 비판적 심포지엄에 100쪽 가량을 할애할 정도로 이 책은 충분한 중요성이 인정됐다. 100쪽에는 저명한 프랑스 출판인들이 왜 이 책이 프랑스에서 출판될 수 없었는지를 설명하는 글 몇쪽도 포함됐다. 그러나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와 벨기에 출판사가 주도하지 않았다면, 이 책은 여전히 프랑스어를 쓰는 세상에 다가갈 수 없었을 것이다.

 

30여개 나라 출판인들과 달리 혼자서 프랑스 출판인들이 `극단의 시대' 번역에 저항한 것은 기묘하다. 놀란 이는 저자만이 아니다. 나의 이전 책 대부분은 프랑스어로 번역됐고 실로 몇몇은 최근에 프랑스에서 재판까지 나왔다. 나의 3권짜리 19세기 역사책을 - 이는 아직도 출판되고 있는데 - 출판한 이가 이 연작의 완결판인 `극단의 시대' 출판을 아무런 말도 없이 거절하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않았다. 프랑스 출판인들이 암시하듯, 이 책이 (다른 내 책 프랑스어판과 달리) 손해를 볼 것 같은가? 이 책이 출판된 다른 나라들의 반응과 판매로 판단하건데, 대중의 관심이 없을 것 같지는 않다. 프랑스 출판인들이 집단적으로 이 책 출판을 거부한 것은 다른 설명을 요구한다.

 

반마르크스주의자 편향 (Anti-Marxist bias)

가장 간략한 설명은 지성계의 논쟁과 추문을 전문적으로 조사하는 미국 학술잡지 <링구아 프랑카 (Lingua Franca)>에서 제시했다. 뉴욕대학의 역사학자인 토니 주트 (Tony Judt)는 "25년전이었다면 <극단의 시대>는 한주만에 번역됐을 것이다. 그래 뭐가 바뀌었나? 3가지 힘이 이 책 출판을 막는 데 공모한 것이 명백하다. 프랑스 지식인들 사이의 독설적 반마르크스주의의 성장, 인문학 출판 예산 삭감, 그리고 특히 이런 흐름에 도전하기 싫거나 두려워하는 출판계.(1) 주트는 "(<극단의 시대>와) 대등하게 20세기 역사를 야심차게 다루며, 소비에트 공산주의를 다루는 방식이 현재 파리의 취향에 훨씬 더 가까운" 프랑수아 퓌레의 대성공을 거둔 책 <환상에서 벗어남 (Le Pass? d'une Illusion)>이 나오기 직전에 이 책이 나왔다는 점은 아마도 "홉스봄의 책 같은 작품이 출판되는 것을 프랑스 출판인들이 조심스러워 하도록 만들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국 예술 및 과학 아카데미와 베를린의 비센샤프트스콜레크 (Wissenschaftskolleg), 일본의 선토리재단이 후원하는 지식교류위원회의 `뉴스레터'도 비슷한 설명을 제시했다.(2) 뉴스레터는 현재 파리의 지적 유행은 좌파에 대한 홉스봄의 뉘우침없는 태도가 "당황스러운 것"이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관점은 갈리마르출판사 (Gallimard)의 피에르 노라 (Pierre Nora)가 프랑스 출판인들이 보는 상황을 권위있고 투명하게 설명한 것과도 같은 맥락이다. 그는 모든 출판인들이 "원하든 그렇지 않든, 그들이 들어가 있는 지적 환경과 이념적 환경을 고려할 의미감을 느낀다. [홉스봄의] 책이 지적, 역사적으로 우호적이지 않은 분위기를 직면할 것이라고 생각할만한... 심각한 이유가 있다. 이것이 시도해보길 꺼려하는 이유를 설명한다."고 말했다. 프랑스는 "가장 오랫동안, 가장 깊게 스탈린주의화한 나라"였다. 그래서 "그 경향의 침체는 평범한 마르크스주의를 포함해 과거 친 소비에트, 친 공산주의 시대를 적건 많건 회상시킬 수 있는 것들에 대한 적개심을 두드러지게 한다. 에릭 홉스봄은 혁명적 대의에 대한 애정을, 거리를 둘지언정, 자부심의 지점으로 키운다... 그러나 지금 프랑스에서는 이런 태도가 심하게 추락했다."(3) 이 출판인이 스스로를, 저자의 태도가 "심하게 추락한" 나라 프랑스의 일부분이라고 느끼는지, 또는 느낀다면 어느 정도까지 느끼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이런 주장에 비춰볼 때 독자들은 아마 <극단의 시대>가 - 퓌레의 `환상에서 벗어남'처럼 - 본질적으로 심하게 정치적이거나 이념적으로 논쟁적이라고 기대할 것이다. 이 책은 그런 식이 아니다. 독자들이 금방 발견하겠지만 결코 같은 종류의 책이 아니다. 이 책은 포괄적인 20세기 역사책으로 책 자체의 가치에 따라 평가되기를 요구한다. (이 책은 혁명의 시대 18세기 말 이후 지금까지 세계의 역사를 구성하기 위해 오래 전부터 시작된 연작의 마지막 책이다.) 이 책을 미국은 말할 것도 없고 중국, 타이완, 이스라엘, 시리아, 캐나다, 한국, 브라질처럼 정부와 지적 유행이 전혀 다른 광범한 나라에서 인정했고 진지하게 다뤘다. 저자와 출판사들을 경제적으로 아주 만족하게 하면서, 이 책은 3개 대륙에서 아주 폭넓게 팔렸고 읽혔다. 사람들은 적어도 프랑스만큼 심각하게 "스탈린주의화했던" 나라의 출판인들을 무사히 통과한 것을 목격할 수 있다. 또 훨씬 더 극적으로 "침체"를 겪은 나라 - 이른바 옛 공산주의 국가에서도 이 책 출판을 주저하지 않았음을 목격할 수 있다. (공산 정권 시절, 내 역사적 작품은 러시아, 폴란드, 체코슬로바키아에서 결코 출판되지 않았다.)

 

<극단의 시대> 프랑스어판 출판은 이제, 피에르 노라가 노골적으로 평가한 프랑스의 지적인 상태가 암시하듯, 프랑스의 독자들과 지적인 독서 계층이 다른 나라와 정말로 다른지를 확인할 수 있게 해준다.

 

이 일로 독자들은 프랑스에서 <극단의 시대> 출판을 계속 거부한 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사적으로 이용한 다른 주장 곧 번역이 끝날 시점에는 이 책이 이미 시대에 뒤떨어질 것이어서 읽을 가치가 없어질 것이라는 주장을 평가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저자의 관점에서, 개정판을 낼 때는 아직 안왔다. 세계 상황이 1990년대 중반 이후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았다. 만약 나의 일반적인 역사 분석과 세계 관찰이 이 세기 말에 책을 많이 고치도록 요구한다면, 그것은 (책을 쓴) 이후의 일들이 이 책 내용을 무용지물로 만들었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국제 상황은 여전히 이 책의 19장 앞 부분에 간략히 묘사한 것과 똑같다. 중앙 아프리카 대호수 지역에서 (과거의 자이레에서) 벌어진 극적이고 끔찍한 일들은 이 묘사에 실례를 더하는 것이다. "짧은 20세기"가 단순히 공산주의의 붕괴와 함께 끝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체제의 일반적 위기 속에 끝난다는 것이 이 책 주장의 핵심이다. 이는 1930년대 이후 가장 심각한 세계적 자본주의 경제 위기인 1997-1998년의 분출로 확인됐다. 실로, 이 위기는 저자가 세계 경제가 "이 천년이 끝나기 전에 번영하는 확장기에 새로 들어가게 될 것이라고 내비쳤을 정도로 너무 낙관적임을 암시한다. 물론 저자가 "새로운 확장기로 들어가는 것이 당분간 소비에트 사회주의 붕괴의 부수 효과와 세계의 일부 지역이 무정부 상태와 전쟁으로 빠져들고 세계적인 자유 무역에 과도하게 의지하는 것 등 3가지 때문에 방해받을 것"이라고 - 이는 맞는 것으로 드러났다 - 덧붙였음에도 말이다. 간단히 말하면, 저자의 관점은, 저자의 20세기 해석의 장점과 약점은 - 적어도 지금까지는 - 1994년 이후 벌어진 일의 영향을 크게 받지 않았다.

 

이 때문에 프랑스 독자들에게 내놓은 글은 최소한의 수정을 빼면 처음 출판된 원문 또는 다른 나라말로 번역될 내용 바로 그대로다. 나는 독자들의 판단에 맡긴다. 어쨌든, 나는 프랑스어판이 가능하도록 해준 에디시옹 콩프렉스, 길고 어려운 영어 문장을 훌륭하게 번역한 P.E. 도자 (Dauzat)와 다른 번역자들에게 감사한다는 말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다. 또 1990년대의 `올바른 생각 (비앙팡상, bien-pensant)' 유행이 거부한 작가의 책을 자국민들이 읽는 것을 모든 프랑스 지식인이 반대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지난 몇년동안 보여준 파리의 친구들에게도 감사한다.

 

 

* 역사학자, <극단의 시대: 짧은 20번째 세기, 1914-1991>, <자본의 시대, 1848-1875>, <제국의 시대, 1875-1914>의 저자. 3권 모두 아버커스 (리틀, 브라운)에서 출판했다.

Historian. Author inter alia of Age of Extremes: The Short Twentieth Century, 1914-1991, The Age of Capital, 1848-1875, and The Age of Empire, 1875-1914, all published by Abacus (Little, Brown)

 

(1) "Chunnel Vision", Lingua Franca, November 1997 pp 22-24. ("터널 비전", `링구아 프랑카', 1997년 11월 22-24쪽.)

(2) "Furet vs. Hobsbawm", Newsletter, Fall/Winter 1997-98, p 10. ("퓌레 대 홉스봄", `뉴스레터', 1997-1998 가을/겨울호, 10쪽.)

(3) Pierre Nora, "Traduire: necessité et difficultés, Le Débat, Paris, no. 93, January-February 1997, pp 93-95. (피에르 노라, "번역하기: 불가피한 것과 어려움", `르 데바(논쟁)', 파리, 93호, 1997년 1-2월호, 93-95쪽.)

 

원문: mondediplo.com/1999/12/05hobsbawm

번역: 신기섭

2004/07/11 18:41 2004/07/11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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