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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덕스러운 영국 날씨

영국에 오기 전에는 영국에 비가 많이 온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심지어 어떤 지역은 비가 오지 않는 날을 세는 것이 비 오는 날을 세는 것보다 더 쉽다는 말까지 있었다. 그런데 막상 리즈에 와보니, 날씨가 기대보다 좋았다.

 

사실 처음 며칠은 꽤 춥게 느껴졌다. 춥게 느낀 주된 이유는 날씨라기보다는 생활 환경과 내 상황이었다. 밤 10시에 리즈 공항에 도착해서 무거운 여행 가방을 끌고 어렵게 학교의 임시 기숙사를 찾아갔다. 너무 지쳐 아무래도 샤워를 하고 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공용 샤워실에 뜨거운 물이 나오지 않는 것이었다. 돌돌 떨면서 방으로 돌아와 라디에이터를 켰으나 난방도 작동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썰렁한 방에서 얇은 이불을 덮고 떨면서 잤다. 리즈의 첫날 밤은, 진짜로 추워서 잠이 깨는 괴로운 밤이었다.

 

그 이후 며칠 날씨는 그래도 좋았다. 한국의 가을을 연상시킬 정도로 파란 하늘... 따듯한 햇살... 하지만 금방 알게 된 사실은 날씨가 변덕스럽다는 점이다. 생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변화를 하루에 다 겪는 날도 적지 않다. 햇볕이 난다 싶으면 곧 구름이 끼고, 바람이 분다 싶으면 또 언제 그랬냐는듯 쨍쨍해진다. 아침에는 춥게 느껴지다가 낮이 되면 덥고, 다시 저녁만 되면 쌀쌀해진다. 감기 걸리기 딱 좋다.

 


(시장 집무실이 있는 '리즈 시빅 홀'. 그 앞은 '밀레니엄 광장', 조각상이 서있는 곳은 '넬슨 만델라 광장'. 9월11일에 찍었는데, 하늘이 한국 가을 하늘처럼 파랗다.)

 

그 이후 생활이 안정되면서 날씨에도 어느 정도 적응이 됐다. 여기 오래 산 사람들 말을 들어보니, 리즈는 10월부터 비가 많이 온다고 한다. 오후 4시만 되면 어두워지고 비는 처량하게 오는 늦가을, 겨울... 생각만해도 우울해진다. 그런데 정작 10월이 다 지나가는 지금까지 실제로 비는 많이 오지 않고 있다. 맑은 날도 꽤 많고 기온도 그리 낮지 않다. 보통 기온이 5도에서 15도 사이를 오간다. 요즘 서울 기온보다 조금 낮거나 비슷한 수준이다. 바람만 불지 않으면 별로 춥지 않다.

비는 생각보다 많이 오지 않고, 흐린 날이 많으며, 변덕스러운 날씨, 이게 지난 두달동안 겪은 영국 리즈 지역의 날씨다.

 

다음주부터는 영국의 섬머타임이 끝난다. 그러면 갑작스럽게 어둠이 빨리 찾아온다고 느끼게 될 것이다. 그런데 비까지 자주 오게 된다면, 정말 우울증 걸리기 딱 좋을 것 같다.

 

내가 사는 곳은 저녁만 되면 주위가 고요해진다. 나다니는 사람이 거의 없고, 숲이 많은 주거지여서 술집도 없다. 그러니 아무 것도 할 게 없다. 밤에 집에서 술 마시는 게 유일한 낙이다. 지금도 이런데 비까지 많이 오게 되면 술 마시는 일이 늘어만 갈 것 같다. (한가지 다행인 것은, 여기 대형 슈퍼마켓에서는 한국보다 싸게 맥주를 살 기회가 많다는 사실이다.)

2007/10/27 03:17 2007/10/27 03:17
6 댓글
  1. 김천희 2007/10/28 18:27

    오징어파전이 생각나면 좀 곤란하지 않을까요?^^ 내 맘이 좀 짠하네요... 건강 잘 챙기시길...사진 왼쪽 하단 첨엔 흰고무신인 줄 알았어요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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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marishin 2007/10/29 09:32

    밤에 캔 맥주 마시면서 오징어를 간절하게 느끼는데, 오징어파전까지 말씀하시니 저에겐 고문입니다.^^ 오징어는 없어도 나름대로 잘 지내고 있습니다. 공기가 서울과는 비교할 수 없이 맑아서 건강도 별 문제는 없을 겁니다. 걱정해주시는 심정은 충분히 느껴집니다만.

    정말로 오늘(일요일) 섬머타임이 끝나니 밤이 무섭게 빨리 찾아오는군요. 오후 6시에 이미 별이 초롱초롱한 한밤중으로 돌변합디다. 그 때문에 애꿎은 맥주만 들이켜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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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블랙 2007/10/29 15:09

    '사또'같은 곳이 없지요..ㅎㅎ..지금은 많이 안정되신것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신문, 방송, 날씨에 이은 다음 글도 기대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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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김동찬 2007/10/29 15:49

    전 작년 이맘때 리즈 근처 맨체스터에 있었는데, 4시만 되면 찾아오는 어두움..눈에 선하네요^^ 그래서 낮술 같지 않은 낮술을 많이 마셨지요. 싼 맛에 4캔 묶음으로 자주 사 마시던 칼링과 포스터가 살짝 그립네요. 나중에 보니 비터 종류가 좀 더 싸더군요. 술 너무 많이 하진 마시구요. 건강하십시오. 한겨레에서 칼럼을 읽을 수 없어 꽤나 아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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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marishin 2007/10/29 20:24

    블랙님, '사또'가 정말 그립습니다. 여기는 술집에서도 담배를 피울 수 없답니다.
    김동찬님 반갑습니다. 맨체스터에 계셨군요. 저는 칼스버그를 주로 마십니다. 대형 매장에서 싸게 파는 일이 자주 있거든요. 제 칼럼을 기억해주시니 반갑고 고맙습니다. 조만간 다른 방식으로 다시 찾아뵙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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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상경맘 2007/11/06 12:53

    기섭, 글 잘 받았다....날씨가 좋으니 좋네....찬 물 나올 때는 방법이 하나 있지...뜨거운 물 끓여서 대야에 담아가서 섞어서 하면 머리 감고 샤워까지 가능....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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