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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질과 퍼머넌트 링크

블로그의 개별 글들은 나름대로 고유한 주소를 갖고 있다. 이를 영어로는 퍼머넌트 링크라고 한다. 퍼머넌트 곧 결코 변하지 않고 유지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의 블로그에서 퍼머넌트 링크는 퍼머넌트와 거리가 멀다. (외국은 어떤지 모르고 알고 싶지도 않다. 내 관심사가 아니니까.) 이른바 '파워 블로거'라는 사람들도 이에 대한 인식이 약한 것 같다.

 

오늘 우연히 내가 2005년 12월에 쓴 글을 찾아봤다가 링크가 있길래 눌렀다. 글이 없다고 나온다. 잠깐 뒤져보니 글은 보존되어 있었지만, 주소가 바뀌었다. 이른바 '파워 블로그'로 분류할 수 있는 곳인데도 그랬다. '퍼머넌트 링크'라고 해놓고 바꾸면 어쩌나? 이래서는 퍼머넌트 링크라는 게 무의미하다. 장식품일 뿐이다. (재미 있는 것은 주소의 끝이 post_190.html에서 post-192.html로 바뀌었다는 사실이다. 어떻게 숫자까지 바뀌는 것일까?)

 

상황이 이래서는 링크로 처리하기 불안하다. 펌질 하는 심정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중요한 정보라면 퍼다놓는 게 안전하겠다. 일일이 바뀌는 링크 확인하고 그 때마다 주소 수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니 펌질 하는 사람 욕하기 전에, 퍼머넌트 링크도 지키지 못하는 자신을 먼저 돌아봐야 하는 게 아닐까?

 

이건 비단 블로그만의 문제는 아니다. 신문사 사이트부터 각종 게시판에 이르기까지 온갖 인터넷 사이트들이 시시때때로 바뀌고 사라진다. 인터넷 주소, 결코 못 믿는다.

 

인터넷에 떠도는 대다수의 정보는 대단한 자료의 가치가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다시 한번 생각해보라. 당신의 순간의 기록이 그렇게 가치가 없는 것인가? 게시판에서 싸우고 떠든 기록은 조금 지나면 무의미해지는가? 거창한 글만, 유명 인사의 글만 가치가 있는 건 아니다. 소소한 일상의 기록들이 나중에는 중요한 정보가 된다. 생활사를 무시하는 사람들은 결국 자신의 삶을 무시하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은 남들에게도 무시당한다. 자신도 무시하는 삶을 누가 존중해주겠나?

 

블로그에 큰 의미를 두는 이른바 '파워 블로거'들이라면 이는 더욱 중요할 것이다. 한번 정해진 퍼머넌트 링크를 잘 지키는 데는 많은 노력이 들지 않는다. 아니 게으를수록 더 잘 지킬 수 있다. 다른 것은 바꿔도 주소는 바꾸지 말아야 한다. 너무 부지런해서 탈이다.

 

블로그 주인장 혼자의 힘으로 주소를 지킬 수 있는 건 아니다. 이글루스가, 티스토리가, 포탈의 블로그가 문 닫으면 모든 것이 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모두 이른바 '설치형' 블로그를 써야 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할 수 있는 데까지는 주소를 지키고, 만일에 대비해서 글들을 따로 저장해두는 노력쯤은 할 수 있다.

 

당신이 존중받는 길 가운데 하나는 당신이 자기 스스로를 그리고 자신의 글을 소중하게 취급하는 것이다.

2008/01/16 00:32 2008/01/16 00:32
2 댓글
  1. 바리 2008/01/16 17:11

    최근 시민사회단체가 자신들의 활동에 관한 기사를 홈페이지에 스크랩 해놓은 것에 대해 언론사가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까지 저작권료를 내라고 내용증명을 보내어 논란이 일었던 적이 있어요. 그에 대한 법률적 해결 방안 중 하나는 스크랩이 아니라 링크로 처리하란 것이었고, 또 이에 대한 반론으로 이런 것이 있었어요. 신문기사는 저작물이기도 하지만 일종의 사료적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인데 링크로는 그 보존성을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이었지요. 이 글 읽고 생각이 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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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marishin 2008/01/17 19:48

    그 논란은 저도 들었습니다. 언론사 링크의 보존성도 문제입니다. 이래저래 한국은 펌을 조장하죠. 그러면서 저작권만 내세우니 답답한 노릇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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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진보 진영의 글을 번역해 공개하는 걸 주 목적으로 하지만 요즘은 잡글이 더 많습니다. marish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