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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은 왜 실패했느냐는 질문

내가 1년동안 영국에서 배운 것이 하나 있다면 그건 질문의 중요성이다. 선생들은 석사과정에 갓 들어온 학생들에게 “제기된 질문에 제대로 답하는 것”을 (학문적) 글쓰기의 핵심으로 꼽았다. 그리고 논문의 첫걸음은 자신의 관심사를 명료한 질문 형태로 정리하는 것이라고 했다. 질문을 제대로 해야 좋은 대답을 찾을 수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처음엔 너무 뻔한 말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과제물을 작성하면서 '질문에 제대로 답하기'와 '제대로 된 질문을 제기하기'가 참 어렵다는 걸 깨달았다.

 

지난 8월 이후 내가 가장 궁금했던 것은, “촛불은 왜 실패했는가?”라고 묻는 이가 왜 그리도 없을까 하는 점이었다. “촛불이 남긴 의미는 무엇인가?”라는 식의 질문은 넘쳐났지만, '실패'에 집중하는 이는 거의 없었다. (적어도 내가 아는 범위에서는 그랬다.) 그런데 며칠전 김규항이 (촛불 이후) “왜 달라진 게 없을까?”, “어디에서부터 잘못된 것일까?”라는 질문을 제기했다. (원문은 촛불과 지식인들 1 - 지성, 작동을 멈추다) 이런 질문을 제기했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이 글은 '전형적인 좌파적 현실 분석'을 담고 있다. 요약하자면 이렇다. 지금의 모든 문제를 이명박 탓으로 돌리면, 김대중 정권 이후 이어진 '신자유주의 자본화'라는 본질을 은폐하게 된다고 그는 주장한다. 그리고 “지식인들은, 특히 진보 혹은 좌파를 자처하는 지식인들은” 문제의 본질을 드러내야 한다고 지적한다. 본질을 드러내는 게 지성인데, “슬프게도, 촛불의 열기 속에서” “지성은 작동을 멈추었다”고 그는 진단한다. 말하자면, “어디에서부터 잘못된 것일까?”라는 질문에 대한 그의 '잠정적인' 답은 지성이 작동하지 않은 데서부터 잘못됐다는 것이다.

 

“촛불이 실패한 게 지성이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인가?” 내 답은 “아니오”다. '비판적 지성'이 작동하지 않는 위기이기에, 촛불이 들고 일어났다고 보는 게 더 현실에 가깝다. 하지만 내가 말하자는 것은 김규항의 '답'이 틀렸다는 게 아니다. 이것을 놓고 논쟁하는 것은 내겐 유익하지 않다. (그러니 내 글을 논하더라도 이 부분을 놓고 하지는 말기를 바란다.)

 

내가 생각하는 문제는 다른 데 있다. 그의 글은 두가지 전제를 깔고 있다. 첫째로 '지성'이 존재한다는 전제, 둘째로 한국 사회가 자본화하고 있지만 '지성'은 홀로 자본화 물결에서 벗어나 있다는 전제가 그것이다. 이 두가지를 전제하지 않으면, '슬프게도 지성이 작동을 멈추었다'고 말할 수 없다.

 

하지만 나는 두가지 전제 모두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지성, 엄밀히 말하면 '비판적 지성'은 한국 사회에서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그리고 비판적 지성이 자취를 감춘 것은 '자본화' 물결 탓이 크다. 학계의 비판적 지성은 말할 것도 없고, 이른바 시민단체 또는 사회운동단체들의 '비판적 지성' 또한 돈에 물들어 사라졌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는 각종 프로젝트 명목으로 시민단체 또는 운동단체에 상당한 자금을 제공했다. 이 지원의 첫번째 목표는 체제 밖에 있는 세력을 체제 안으로 끌어들이는 것이다. 체제내화 작업에 돈만큼 효과적인 수단은 없다. 그런데 이런 지원을 전혀 받지 않은 시민단체 또는 운동단체가 과연 얼마나 될까? 민주노총조차 정부의 지원금을 받아썼다. (노동넷의 2006년 3월 기사 정부 지원금을 반납하자를 보면, 민주노총은 2001년 정부 지원금을 받기로 결정했고 2006년 현재 지원금 규모가 30억원이라고 한다.)

 

이런 체제내화 작업이 거의 마무리된 시점에 '사회의 본질'을 제대로 폭로할 '비판적 지성'이 작동하리라고 본다면 그건 너무 순진한 생각이다.

 

'비판적 지성'의 재구성은 중요하다. 물론 이 지성이 이른바 '집단 지성'이 아님은 말할 것도 없지만, 그렇다고 '지식인 또는 활동가의 전유물'도 아니다. 먼저 필요한 것은 비판적 지성조차 자본화 물결에 휩쓸려 익사했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것이다. 또 '지식인 또는 활동가'들이 자신들을 옭아매고 있는 '자본의 사슬'을 끊지 못하는 한, 그들은 기껏해야 비판적 지성을 재구성하는 데 걸림돌이 되고 말 거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나는 비록 지식인도 활동가도 아니지만, 이 경고는 누구보다 먼저 나 자신을 향한 것이다.) 그리고 저들이 이 사슬을 끊지 않으면, 비판적 지성을 다시 구성하는 일은 이 사슬의 외부로 밀려나있는 이들의 몫이 될 수밖에 없다. (그들이 할 수 있겠느냐는 또 다른 문제다.)

2008/10/22 15:01 2008/10/22 15:01
6 댓글
  1. 김디온 2008/10/22 19:21

    비판적 지성이 없었기 때문에 촛불은 일어났다...
    지성이 자본에 포섭되었다.

    그러면 촛불의 실패는 무엇 때문인가, 하는 첫 번째 물음은 여전히 남는 것 같습니다.
    자본의 사슬을 끊지 못한 사람들은 지성의 부재에 답답하여 촛불을 함께 들었으며
    결국 다시 일상화 되었다- 라고 하는 결론이라면(제가 맞게 읽은건지 모르겠으나)
    촛불이 일어난 사태의 배경 설명은 되어도 그것이 왜 다시 일상화되었는지는 빈칸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정말로 실패는 어떤 실패였는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섣불리 의미를 붙이고자 하는 것은 우습겠지만,
    제 개인적 생각으론 이번 패배는 무엇을 잃는 것이 아니라 얻는 것이라고 생각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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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marishin 2008/10/23 00:46

    맞습니다. 제 글은 '촛불은 왜 실패했는가'에 대한 답변을 담고 있지 않습니다. 아직은 제가 답이 없기 때문입니다. 김규항의 '답'이 맞는지 여부를 놓고 논쟁을 하는 게 건설적이지 않다고 쓴 것도, 제가 어떤 구체적인 답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글은 한국 사회에서 '비판적 지성'의 문제만 거론한 글입니다.

    그리고 그냥 인상비평을 하자면, “무엇을 잃는 것이 아니라 얻는” 패배는 무의미할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이 국면에서 패배는 어떤 사람들에게는(예컨대 학생들 따위) 끔찍한 고통의 지속 또는 강화를 뜻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에게 “잃는 것이 아니라 얻는 패배”라는 말은 말장난처럼 받아들여질지 모른다는 걱정이 앞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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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ㄹ백당시기 2008/10/24 13:29

    촛불은 이미 성공했다. 촛불은 성공할 수 없었다, 처음부터.

    촛불의 성공을 어떻게 규정하는가?
    이명박을 쫓아내고, 한나라당을 몰아내는 것이 성공이라고 보는가?
    아니면 이명박의 정책을 바꾸게 하는 것이 성공이라고 보는가?
    그렇게 보았다면 촛불은 어차피 처음부터 성공할 수 없었다.

    이명박의 정책을 멈칫하게 했는가?
    한나라당이 정책을 멈칫하게 했는가?
    그렇다. 그렇게 보면 엄청난 성공이다.

    고구려중장기병의 창끝이 아니고서는 수나라 100만대군을 막지 못한다.
    어떤 언설이나 비판도 그것을 막지는 못한다.
    권력이나 무력이 아니고서는 이명박과 한나라당을 막지 못한다.
    권력과 무력이 없는 촛불이 성공해봐야 얼마나 성공하겠는가?

    그래서 촛불을 대성공이다.
    촛불은 엄청난 성공이다.
    촛불은 더 큰 성공을 할 수도 있었으나, 그것을 바라기는 무리다.
    국가의 권력을 합법적으로 잡고 있는 대통령과 한나라당을 어떻게 멈추는가? 그것을 무력으로 멈출 가능성이 있는가? 그래서 얻을 것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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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marishin 2008/10/27 09:05

    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성공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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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Donnie 2009/01/20 19:18

    우선 글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제 짧은 머리로 생각해 본 바로는
    비폭력이라는 것에 힘을 받고 초반 쉬운 참여로 인해 근래 보기힘든 대규모 집회가 될 수 있었지만 그 비폭력이라는 딜레마에 스스로 빠져 집회가 장기화 되면서 당연히 정부와 기득권층에게 미래의 여유라는 측면에서 불리해질 수밖에 없기때문에 스스로 갈팡질팡 하다가 서서히 힘을 잃고 실패 한거 같습니다.

    의식의 변화와 거쳐가야 할 단계를 밟는 거라며 실패가 아닌 성공이라는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차라리 한번쯤 꽝 터트렸으면 어땟을까 하는 바램입니다. 너무 얌전해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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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marishin 2009/01/21 09:36

    Donnie님 반갑습니다. 사실 저도 비슷한 생각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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