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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무장단체를 만드는가

1. 올해는 블로그에 글을 번역해서 올리는 데 힘을 쏟겠다고 결심했는데 진척이 없다. 꽤 오래 손을 놨더니 진득하게 번역에 매달리는 게 엄두가 안나는 상태다. 그래도 다시 한번 올해 중에 보드리아르 관련 글 하나는 꼭 번역하기로 다짐.

 

2. 최근 독일 학자 클라우스 슐리히테의 책 <누가 무장단체를 만드는가>(이유경 옮김, 현암사, 2010)를 읽었다. 이런 책이다. “박사과정 일곱 명과 감독관이자 기록을 담당한 연구자와 공동 토론하는 형식으로 연구했다. 박사과정 학생들은 모두 2001~2007년에 최소한 6개월 동안 현장 리서치를 수행했다. 나는 이 기간에 세르비아에서 현장 리서치를 수행했다. 그러나 내가 이미 리서치한 우간다, 말리, 세네갈, 라이베리아 자료도 이 연구에 이용했다.”(40쪽) 연구 대상 무장단체가 자그마치 80개다.

 

그래서 큰 기대를 품고 읽었는데, 사례 소개는 별로 많지 않다. 우리에겐 거의 알려지지 않은 에리트리아인민해방전선(Eritrean People’s Liberation Front, EPLF)에 대해 조금 알게 된 게 가장 큰 소득이다. 20세기 후반부에 활동한 무장단체 가운데 가장 성공적인 조직이란 평가를 받는다는 집단이다. 이 조직이 (무장)운동단체에서 정부기구로 질적 변화를 이루는 과정은 현재 우리의 관점에서도 연구할 가치가 있지 않을까 싶다. 무장 부분만 빼면 조직과 전술, 전략 등은 보편적인 고민거리일테니까. 예를 들어 “운동조직에서 지방자치정부로”라는 관점에서 연구해 볼 수 있겠다는 이야기. 다만 이게 실제로 가능한 이야긴지는 모르겠다. 앞으로 이 단체에 관련된 자료를 찾아서 읽어봐야 판단이 가능할 것 같다. 아무튼 꽤 인상적인 활동을 통해 독립국가를 건설하는 데까지 간 성공 사례인 건 분명하다.

 

책의 핵심 주장은 현대의 무장활동은 18, 19세기 서양의 국민국가 건설 과정의 폭력 동원과 질적 차이가 없는 정치활동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폭력이 난무하는 제3세계를 “실패한 국가”로 낙인찍는 담론은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테러와의 전쟁” 이데올로기가 부적절한 건 말할 것도 없고. 다만 이 국가 건설 시도가 서구적 근대국가로 귀결될지는 불확실하다는 게 저자의 지적이다.

 

저자의 이론적 배경은 베버부터 부르디외까지를 연결시키려고 하는 정치사회학이다. (영어로 쓴 책을 번역한 것 같은데, 번역의 질은 책 내용을 이해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을 만큼 무난하다. 몇몇 용어 번역이 의아스럽기는 하지만 큰 문제는 아니다)

2010/09/23 10:10 2010/09/23 10:10
11 댓글
  1. 앙겔부처 2010/09/23 10:37

    오!! 이 책 꼭 읽어봐야겠네요!! 저번에 무장 세력을 얘기하니까 테러리즘은 무조건 반대라는 사람을 만나서 벙쪘는데, 이 책 읽으면 테러에 대한 애매한 저의 입장을 정리하는 데에 도움이 되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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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arishin 2010/09/23 11:03

      이 책은 테러라는 말 자체가 이미 부정적인 가치가 들어간 용어이기 때문에 쓰지 않습니다. 비정부기구의 무장 활동이라는 비교적 객관적인 용어를 쓰죠. 그리고 이런 단체들의 조직, 활동, 정치 등등을 다룹니다. 테러 그 자체에 대해서라면 ‘테러리즘, 폭력인가 저항인가?’(아주 특별한 상식 시리즈의 한권)이라고 이후출판사에서 나온 비교적 얇지만 만만치 않은 책이 더 나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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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앙겔부처 2010/09/23 11:19

      덧글에 테러라고만 썼지만 테러 자체에 대한 것보다 무장 단체(특히 책에서도 연구 재료로 삼은 하마스 등)의 활동. 그 중 비무장 민간인에 대한 살상 부분에 관심이 더 많고, 그래서 애매한 입장을 가진 거구요. 또 근대 국가가 폭력을 독점한 뒤로 국가 외의 무장 세력에 대한 불법/적대화의 근대적 담론과 그걸 받아들여 무장 단체를 테러 집단이라 욕하는 사람들에 반감을 갖고 있는데 구체적인 근거를 이 책에서 얻을 수 있겠다 싶은 거구요.

      글구 활동하면서 공식적으로 저도 테러라는 말은 쓰지 않고 있습니당..; 쓰다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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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치치 2010/09/23 11:53

      실례지만 테러는 테러블, 끔찍하다는 말에서 나온거 아닌가요. 원래 그로즈니가 체첸말로 끔찍하다는 뜻인데 아 저 끔찍한 놈들, 그로즈니하다가 그로즈니가 됐다고 들었어요. 그로즈니는 전인민의 무장화로 유명한데 땅밑으로 파이프라인이 지나가기때문에 거길 독립시켜주면 골치아프다고 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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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arishin 2010/09/23 13:37

      앙겔부처/ 그렇군요. 무슨 뜻인지 알겠습니다. 이 책은 구체적인 사례 중심이라기보다는 이론적인 책이라는 건 염두에 두시는 게 좋겠습니다.

      치치/<테러리즘, 폭력인가 저항인가?>를 보면, 테러리즘은 프랑스 자코뱅 정부의 행태를 지칭하면서 영국 보수 정치인 에드먼드 버크가 거의 처음(?) 사용했다고 하는군요. 처음부터 특정한 가치 판단이 담긴 거죠. 물론 1800년대말 러시아 무정부주의자들은 이 용어를 스스로 자랑스럽게 썼다고 하는데, 이들을 빼면 누구도 이렇게 쓰지 않죠. 적어도 남의 폭력적 행동을 비난할 때만 쓰는 용어라는 건 명백한거죠.

      그리고 영어의 경우 어원은 ‘공포’를 뜻하는 테러에서 나온 게 아닐까 싶습니다. (쓰고 보니 이상하군요. 테러리즘이 테러에서 나온 게 아니겠느냐는 뜻이었는데...^^ 아무튼 어원 측면에서 핵심은 두려움, 공포가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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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치치 2010/09/23 13:55

      그렇다면 테러블이란 말은 테러에서 발생했음이 분명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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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치치 2010/09/23 13:59

      댓글 수정이 안되네요. 테러블이 불어로 무서운을 뜻하는것은 맞는것 같아요. 앙팡 테러블이 무서운 아이들이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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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arishin 2010/09/23 14:29

      수정, 삭제 기능을 깜빡하고 빼먹었군요. 바로 추가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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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비밀방문자 2010/09/29 21:19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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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marishin 2010/09/30 02:08

    작업 과정은 이렇습니다. 1. 저녁 6시쯤 영어로 번역할 기사나 칼럼 10건 정도를 선정합니다. 2. 몇명의 전속(?) 번역자들에게 일거리를 분배합니다. 3. 번역자들이 다음날 오전까지 번역문을 보내옵니다. 4. 편집자가 검토하고 손봐서 인터넷에 올립니다. 쉬운 일은 아니나 번역하는 기사 건수가 많지 않으니 그럭저럭 이어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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