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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로워하는 이들에게 드리는 새해 인사

지금 이 땅의 사람들이 괴로움에 시달리고 있다. 경제 위기가 깊어지면서 내년엔 삶이 또 얼마나 힘들어질지 상상하기도 힘들다. 벌써부터 곳곳에서 목숨을 끊는 사람들 이야기가 끊이지 않는다. 이 고통을 어떻게 끝낼 수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

 

많은 사람은 대통령 하나 잘못 뽑아서 이 꼴이 됐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건 절반의 진실이다. 그동안 쌓아온 형식적 민주주의마저 크게 후퇴하고 있고 무능한 정부 탓에 위기가 더 커진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근본적인 위기는 이 나라가 총체적으로 부실하다는 데서 찾아야 한다. 온 땅이 빚으로 지은 모래성이다. 눈을 들어, 우뚝 솟은 고층 아파트들을 바라보자. 한 때는 '상류층의 상징', '중산층의 희망'이었던 아파트들이 이제 모두의 발목을 잡는 덫이 되고 말았다. 아무도 사줄 사람이 없는 이 시멘트 덩어리들을 위해 얼마나 많은 빚을 쏟아부었던가? 할 수 있는 건, 재깍재깍 소리를 내는 시한폭탄이 터지지 않기를 기도하는 것뿐이다. 폭탄이 터지는 최악은 피할지라도 우리네 삶이 더 힘들어질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민주주의 측면에서도 이 나라는 총체적으로 부실하다. 지난 여름 대규모 촛불집회는 이 나라의 민주주의가 아직 살아있다는 희망을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그 이후 상황은 이 민주주의가 얼마나 허약한지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상황이 조금 바뀌면서, 폭주하는 정권을 그저 바라보는 처지로 몰렸다. 무기력한 야당, 전략없는 대중운동 탓으로 돌릴 일이 아니다.

 

지난 정권에서도 이 나라의 민주주의는 말뿐이었다. 수많은 사람이 거리고 나서고 심지어 분신까지 했어도 한-미 자유무역협정 체결이 강행됐다. 농민들이 두들겨맞아 죽어도, 대통령이라는 자가 진심어린 사과 한번 한 적 없다. 또 비정규직 확산을 재촉할 법률이 힘으로 관철됐다. 이 모두를 정당화하는 데는 말 한마디면 족했다. “국가 경제를 위해서!!!” 경제를 위해서 농민의 희생은 어쩔 수 없었고, 경제를 위해서 자유무역협정은 피할 수 없었으며, 경제를 책임지는 기업들의 부담을 덜어주려면 비정규직들이 희생해야 했다. 또 중소기업들을 살리려고 이주 노동자들의 권리는 뒷전으로 밀렸다. 그리고 많은 사람이 암묵적으로 동조했다. 그렇게 '경제' 앞에 '민주주의'는 무기력했다. 힘없고 가난한 이들도 당당한 주권자임을 인정하고 그들의 권리를 먼저 보장하는 민주주의는 ‘돈이 안되는’ 장식품일 뿐이었다.

 

안타깝지만 이제 고통을 피할 길은 없다. 이제 남은 것은 현실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민주주의 대신 선택한 '경제성장'이 결국 남긴 건 빚더미뿐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더 잘 먹고 싶다는 욕망은 유해 물질 쓰레기로 채워질 뿐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더 잘 입고 더 잘 놀고 싶다는 욕망은 소비를 부추기는 기업들의 노리개로 전락했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제는 우리를 현혹하는 '욕망이라는 거짓 형상'을 떨쳐내고 '진짜 현실'을 마주해야 한다. 그 현실이 '시궁창'이고 고통스럽고 폭력적일지라도, 아니 사람마저 상품으로 전락시키는 자본주의 아래에서 현실은 원래 그렇게 고통스럽고 폭력적이며 비참하기에, 그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어느 문닫은 상점/ 길게 늘어진 카페트/ 갑자기 내게 말을 거네/ 난 중동의 소녀/ 방안에 갇힌 14살/ 하루 1달러를 버네

난 푸른 빛 커피/ 향을 자세히 맡으니/ 익숙한 땀, 흙의 냄새/ 난 아프리카의 신/열매의 주인/ 땅의 주인

문득 어제 산 외투/ 내 가슴팍에 기대 눈물 흘리며 하소연하네/ 내 말 좀 들어달라고/ 난 사람이었네/ 공장 속에서 이 옷이 되어 팔려왔지만/ 난 사람이었네/ 어느 날 문득 이 옷이 되어 팔려왔지만/ 난 사람이었네

 

이렇게 노래하는 어느 가수의 놀라운 깨달음을, 괴로움에 신음하는 이들에게 새해 선물로 드린다.

2008/12/29 18:36 2008/12/29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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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진보 진영의 글을 번역해 공개하는 걸 주 목적으로 하지만 요즘은 잡글이 더 많습니다. marish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