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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만원 세대'의 문제점

< 88만원 세대 >라는 책의 '세대론'이 요즘 극우신문에 이용당하고 있다고 걱정하는 소리들이 있다. 그런데 내 생각에는 원래 저 세대론은 우익들에게 이용당하게 되어 있었다. 지금 상황이 이렇게 된 것은 공동 저자 가운데 한명이 어떤 사람의 낚시질에 걸려들었기 때문이 아니다. 진짜 이유는 또 다른 공동 저자의 말 속에 담겨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는 공히 세대론이 필연적으로 지닐 수밖에 없는 한계에 대해 인식하고 있었다. 또한 계급문제를 전면에 내세울 경우 책이 얼마나 팔리지 않을지도 잘 알고 있었다. 그 결과 떠올린 방책이 불안정노동의 전면화라는 다분히 계급적인 문제에 세대론의 '당의(糖衣)'를 입힌다는 것이었다.

출처: 88세대론 <조선> 독우물에 빠지다

 

한마디로 말해서 '한계'(내 표현으로 하자면 '문제')를 알면서도, 책을 팔기 위해 세대론이라는 '설탕물'을 듬뿍 뿌렸다는 이야기다.

 

책이 많이 팔리고 많은 사람이 읽도록 노력하는 건 바람직한 일이지 탓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목적이 좋더라도 해서는 안되는 짓도 있다. '설탕물'을 뿌리는 것이다. 설탕을 많이 넣으면 먹는 사람의 이가 썩는다. 게다가 먹는 사람이 단물만 빼먹고 내버릴 위험이 아주 크다. (“이 책을 가장 열심히 읽는 20대”라는 “이른바 명문대생” 대부분이 아마도 그랬을 것이다. “제 밥그릇만 챙긴 386 때문에 '잘난 내'가 이 고생을 하고 있다”, 이렇게 생각하고 책을 덮지 않았을까?)

저 글을 읽으면서 내 머리 속에 떠오른 글귀가 있다. 리오 후버만의 글이다.

 

우리의 프로그램을 약간 완화하고 약간은 수용하고 약간은 타협하면, 우리가 다시 힘을 얻을 것이라고 스스로를 속이는 것도 이제 중단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 그것은 파멸의 길이다. 우리의 말에 세상이 귀기울이게 되더라도 우리의 주장이 왜곡되거나 귀기울일 가치가 없게 변질되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

 

대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우리가 무엇을 지지하는지 정직하고 분명하게 말하자. 우리의 사회주의적 신념을 선언하고 가르치자. 어디에서든지. 많은 사람이 모인 곳에서든지, 소수의 사람 앞에서든지. 우리의 운동 규모가 적다고 걱정하지 말고, 운동의 질을 더 생각하자. 연구하자. 열심히 노력하자. 사회주의의 복음을 널리 전하는 투쟁을 벌이자. 황금의 지배를 추구하는 세력을 이해할 자질을, 그리고 또 황금률을 위해 투쟁하는 이들을 이해할 자질을, 젊은 세대가 갖출 수 있도록...

 

이것이 바로 우리의 책임이다. 모호한 태도를 취하지 않고, 일부를 잘라내 버리지도 않고, 겁을 내 피하지도 않으면서, 우리가 본 데로 이야기할 때 이 일을 가장 잘 수행할 수 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의 진실을, 전체 진실을 이야기하자.

(이 글귀에 대해서는 내가 썼던 이 글을 참고)

 

(2009년 2월3일 추가) 88만원 세대론의 파산선언!이라는 글을 보면, “계급적인 문제에 세대론의 '당의(糖衣)'를” 입혔다는 공동저자의 말은 거짓말일 뿐이다! 후버만의 글을 권할 가치도 없는 셈이다.

 

그야말로 이제 “끝”... 더 논할 가치도 없다. 그래서 댓글이나 트랙백도 닫는다.

2009/01/30 16:25 2009/01/30 16:25
5 댓글
  1. marishin 2009/02/02 10:00

    이 글에 붙어있는 두번째 트랙백을 읽어보고서, 트랙백을 건 이유가 궁금해졌다. 왜 걸었을까? 내 글과는 소재만 같을 뿐인데... 내 글에 대한 반박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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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marishin 2009/02/02 11:44

    정말 정곡을 찌르는 코멘트를 발견하다.

    “우석훈이 스스로 자신의 사상적 경향을 파악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에, 아마도 헛소리와 말실수가 계속될 것이고, 그 때문에 주류 언론에서 각광받을 것이다. 아무튼 우석훈은 한국 사회에서 한자리 차지하게 되었고, 소수의 지지자는 계속 유지될 것이다.”

    출처는 http://playin.innori.com/37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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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DEOKKYU 2009/02/02 18:29

    반박은 아니구요. 그냥 님 글 보고 걸어봤을 뿐이에요 ^^;; 부담되시면 삭제하셔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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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marishin 2009/02/02 18:41

    아, 그렇군요. 부담될 것은 없습니다. 그냥 읽고 나서 궁금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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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marishin 2009/02/03 12:10

    내 글에 대해 '현실적인 방법론'이 없는 '원칙'의 강조라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고 하는 지적을 봤는데, '설탕물'을 뿌리는 건 현실적인 방법론 또는 전술이 아니다. 그건 자살 행위일 뿐이다. '타협'하지 말자는 말이 아니다. 설탕물을 뿌리는 건, 역효과만 내는 '실패할 수밖에 없는 전술'이라는 말이다. 대안을 제시하라고 할지 모르지만, 내게 구체적인 대안은 없다. 그러나 저 방법이 잘못이라는 것만큼은 확신할 수 있다. 그리고 때로 비판은 그 자체로 일정한 대안을 담을 수도 있다.

    리오 후버만의 글이 '낭만적'이라고 생각하는 건, 후버만의 주장은 '아름답지만 실천할 가치 또는 필요는 없다'는 인식을 함축하는 것이라고 본다. 후버만의 주장은 실현할 가치가 있으되 실현하려면 거의 '목숨을 걸다시피' 해야 하는 것이다. 특히 “우리가 사는 세상의 진실을, 전체 진실을 이야기”하는 것이 그렇다. 이 부분은 내 좌우명이라고 할 수도 있는 말이다. 물론 노력을 하되 잘 되지 않는 게 내가 처한 현실이지만.

    나에 대한 지적의 출처는 생략. (이 논의가 내 블로그 밖으로 퍼져 나가, 내가 따라가서 논의에 참여할 필요가 생기는 걸 최소화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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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88만원 세대론과 계급문제 먼 댓글 보내온 곳 2009/01/31 05:32

    자신이 제창했던 88만원 세대론이 조선일보와 같은 극우신문에 이용당하는 것을 우려하면서 공저자인 우석훈의 글을 비판하는 박권일의 글을 레디앙에서 볼 수 있었다. 이 글을 보고난 소감은 박권일이 88만원 세대론에 대한 비판의 본질을 놓치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는 레디앙의 글에서 불평등연구회를 소개한 한겨레신문 기사를 인용하여 조선일보나 변희재가 아니라 불평등연구회의 세대론 비판연구자들이 소통해야 할 사람들이라고 얘기한다. 그는 세대론이 계급문제로 가는..

  2. Subject: [88만원 세대론]을 조선이 낚은 사태 먼 댓글 보내온 곳 2009/02/01 16:48

    http://www.leejeonghwan.com/media/archives/001351.html 이정환닷컴에서 RSS구독하다가 읽었는데…. 사태의 전말은 조선일보에 변희재가 실크세대론을 88만원세대론에 대한 대안으로 들고 나왔고, 이에 우석훈이 맞장구를 쳤단다. 그런데, 그것에 대해서 88만원세대 공저자인 박권일이 우석훈 잘못했다고 딴지를 놓은 것. 구조를 이야기 한다는 것은 구조 속에 들어 있는 인간들을 무력한 인간으로 본다는 의미도 함께 갖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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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진보 진영의 글을 번역해 공개하는 걸 주 목적으로 하지만 요즘은 잡글이 더 많습니다. marish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