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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생물학자 스티븐 굴드 - 래디컬하다는 건 무엇인가?

리처드 르원틴(Richard C. Lewontin), 리처드 레빈스(Richard Levins)

<먼슬리 리뷰> 2002년 11월호

 

진화생물학자 스티븐 굴드의 `래디컬한(근본적인)' 정치적, 지적 인생을 동료 학자들인 리처드 르원틴과 리처드 레빈스가 회고하는 글입니다. "래디컬함이란 언제나 근본적인 것으로 돌아가는 것이고 자신의 행동과 생각을 첫번째 원칙에 맞춰 재구성하는 것이다"는 말은 많은 고민을 하게 만듭니다. 또 "(변함없이 래디컬하는 데) 성공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가 아니지만, 우리 누구도 (래디컬함을 위한) 투쟁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는 말은 우리를 위로해줄 수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올해초, 스티븐 굴드(Stephen Jay Gould)는 폐암이 급속하게 확산되면서 회복의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그는 2002년 5월20일 60살에 숨졌다. 20년전 그는 석면에 노출되면서 생긴 것으로 추정되는 중피종에 걸렸다가 가까스로 목숨을 구했다. 당시 치료는 잘 됐으나, 그는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생각을 잊지 않았고 적어도 그의 친구들에게는 이 피할 수 없는 운명을 거의 기꺼이 받아들인다는 인상까지 줬다. 환경 공해의 결과로 추정되는 암에서 회복됐지만 그는 또 다른 암에 굴복하고 말았다.

 

스티븐 굴드의 공적인 지식 인생과 정치 인생은 독특한 것은 아닐지라도 아주 특별한 것이었다. 먼저 그는 진화생물학자이자 과학사가로서 진화과정에 대한 우리의 식견에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 둘째로, 그는 일반 대중을 위해 글을 쓰는 과학 해설자 가운데 가장 유명하며 영향력이 큰 인물이었다. 셋째로, 그는 사회주의를 지지하고 모든 종류의 제국주의와 억압에 반대하는 일관된 정치 활동가였다. 이런 면에서 그와 가장 닮은 인물은 아마도 1930년대의 영국 생물학자 제이. 비. 에스. 홀데인(J. B. S. Haldane)일 것이다. 그는 근대 진화유전학의 기초를 세우고 대중을 위한 뛰어난 과학 저술가이며, 우상파괴에 앞장서는 마르크스주의자인 동시에 `데일리 워커'의 칼럼니스트였으며, 공산당이 과학을 당강령에 종속시킬 것을 요구하자 마침내 당과 갈라선 인물이었다.

 

스티브 굴드의 작업을 특징짓는 것은 변치않는 래디컬리즘이다. 래디컬(radical)이라는 단어는 일상적으로는 극단적(extreme)과 동의어로 쓰인다. <먼슬리리뷰>는 <프로그레시브>(progressive) 독자에게는 래디컬한(극단적인) 잡지이다. 스티브 굴드는 래디컬한 수술을 통해 뇌의 종양을 제거했다. 또 래디컬한 사람은 좌익 (또는 우익)에서 벗어난 인물이다. 그러나 옥스포드사전을 간단히 훑어 보기만해도, 이 단어의 뿌리는 라틴어로 뿌리라는 뜻의 라딕스(radix)임을 알 수 있다. 래디컬하다는 것은 사물을 근본 뿌리부터 고려하는 것이고 절대적인 것으로 돌아가는 것이며, 자신의 행동과 생각을 첫번째 원칙에 맞춰 재구성하려는 것이다. 래디컬하려는 욕구는 "내가 어떻게 그것을 아는가?" 또 "왜 내가 저 길이 아니라 이 길을 따르고 있는가?"라고 물으려는 욕구이다. 스티브 굴드는 래디컬한 충동의 소유자였으며 그것이 제시하는 것을 따랐다.

 

먼저, 그는 과학에서 래디컬했다. 진화생물학에 끼친 그의 가장 유명한 공헌은 동료 나일스 엘드리지(Niles Eldridge)와 함께 만들어낸 단절된 평형(punctuated equilibrium) 이론을 제시한 것이다. 진화의 시대에 유기체 구성의 변화에 대한 표준적 이론은 변화가 일정한 시간 간격으로 다소간 균등한 변화가 지속적이면서 천천히 그리고 점차적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다윈의 19세기 저작은 여러가지로 해석이 가능하지만, 사람들은 이 이론이 다윈의 생각이라고 여겼다. 근대 유전학은, 발육 단계에서 계속 유지될 것으로 보이는 물려받은 변화라는 것이 유기체에 아주 사소한 변화만 유발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예컨대 돌연변이는 오랜 기간동안 아주 일정한 비율로 나타나며 그런 작은 변화의 자연 도태(선택)의 힘 또한 강하지 않다. 이런 사실은 모두 오랜 기간동안 종의 변화가 꾸준하면서도 천천히 나타남을 지적하는 것들이다.

 

하지만 화석을 보면, 변화는 훨씬 더 불규칙하다. 지리적 시간상 연속된 시대의 화석들 사이에는 어느 정도 급격한 변화가 나타나며 둘 사이의 중간단계로 추정되는 시기를 보여주는 증거는 많지 않다. 이에 대한 일반적인 설명은, 화석들이 상대적으로 아주 희귀하며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유기체의 실제적 진화의 한 단면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런 이론은 앞뒤가 딱 맞는 것이다. 그러나 엘드리지와 굴드는 근본적인 것으로 돌아가서 자연도태에 따른 변화율이 진정 모든 사람이 생각하듯이 꾸준한 것인지 되물었다. 보통의 화석보다 훨씬 더 순간적인 기록을 보여주는 일련의 화석을 검토함으로써 두 사람은 오랫동안 사실상 아무런 변화가 없다가 대부분의 변화가 짧은 기간동안 나타남으로써 단절되는 증거를 발견했다. 그들은 이 발견을 이론으로 일반화했다. 진화는 발작적이며 갑자기 나타난다는 것이 그것인데, 이 이론은 환경의 주요한 변화가 갑자기 나타난 직후에 진화의 대부분이 이뤄진다는 것 등 몇가지 가능한 해명을 제시한다. 스티브 굴드는 한걸음 더 나아가 삶의 역사에서 중요한 불규칙한 사건의 중요성을 더욱 강조하게 됐다. 그는 지구와 거대한 혜성의 충돌 이후 갑작스런 생물종의 대량 멸종과 여기서 살아남은 제한적인 생물군에 의한 생물 세계의 재구성에 큰 중요성을 부여했다. 그의 삽화적인 진화론과 역사 단계에 대한 마르크스 이론에 대한 그의 지지를 단순히 연결하려는 유혹은 피해야 한다. 연결고리는 이보다 훨씬 깊은 것이다. 이 고리는 그의 래디컬리즘에 있다.

 

굴드의 과학 래디컬리즘의 다른 면은 진화에 대한 설명에 접근하는 방식에서도 찾을 수 있다. 삶의 역사와 이것의 지리학적 분포와 생태적 분포에 관심을 기울이는 대부분의 생물학자들은 자연도태가 살아남은 유기체와 멸종한 유기체의 모든 특징의 원인이라고 여기며, 이에 대한 해명을 제시하는 것과 관련된 생물학자의 임무는 한 종의 어떤 특징이 왜 자연도태 과정에서 살아남았는지에 대한 합당한 이야기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유인원의 조상에서 진화하면서 인간종의 털 대부분이 사라진 상황에서도 눈썹이 남아있다면, 그것은 눈썹이 이롭기 때문이라는 식이다. 스티브가 과학 저작에서 특히 강조한 것은, 단순한 낙관적인 적응주의에 대한 거부였으며 더 나아가 진화과정의 변화 원인을 찾기 위해 다양한 형태의 근본적인 생물학적 과정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그는 진화란 어떤 선택하는 세력이 유발할 뿐 아니라 임의의 결과물이기도 하며 이 과정에서 남은 특징들은 다른 특성의 선택 과정의 물리적 부산물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진화적 변화의 역사적 우연성을 강하게 주장했다. 어떤 것이 특정한 시기에 어떤 이유에선가 선택됐을 것이고, 이와 완전히 다른 어떤 이유로 다른 시기에 어떤 것이 선택되며, 그래서 최종 산물은 진화의 연장선 전체 역사의 결과이고 이는 적응을 강조하는 것으로는 해명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컨대 인간이 지금의 모습을 띤 것은, 육상 척추동물이 많은 지느러미 같은 것을 단지 네개의 수족으로 단순화했고 조류의 심장은 우연히 오른쪽에 자리잡은 반면 포유류의 심장은 왼쪽에 자리잡게 됐고 내이의 뼈는 우리의 파충류 조상의 턱 일부분이 변화한 것이며, 우리의 진화 역사에서 아주 중요한 때에 우연히도 동아프리카가 건조해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지능을 갖춘 생물이 외계에서 우리를 찾아온다면, 그들이 우리처럼 인간의 모습을 띠고 성적 위계질서 때문에 고통을 겪으며 그들의 우주선에 지휘부가 따로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굴드는 또 유기체의 서로 다른 부위간 발육 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에 관한 유명한 사례가 그의 아일랜드 큰사슴(Irish elk) 연구다. 이 사슴은 요즘 사슴에 비해 뿔의 크기가 훨씬 큰 멸종동물이다. 적응주의가 만들어낸 설명은, 숫놈의 뿔은 암놈 쟁탈전에 쓰이기 때문에 지속적인 자연도태 과정에서 커졌다는 것이다. 또 아일랜드 큰사슴은 이 남성의 상징물을 너무 진화시킨 나머지 감당할 수 없이 뿔이 커졌고 그래서 일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해졌고 결국 멸종했다는 것이다. 스티브가 보여준 것은, 덩치가 큰 사슴과 작은 사슴의 뿔의 크기는 일반적으로 둘의 몸집 차이보다 훨씬 더 차이가 많이 나며, 이는 발육 과정에서 몸이 성장하는 비율과 뿔이 성장하는 비율이 다르기 때문이라는 사실이었다. 사실 아일랜드 큰사슴은 같은 몸집의 다른 사슴과 뿔의 크기가 정확하게 일치했으며 이 때문에 특별한 자연도태 이야기를 만들어낼 필요는 없다.

 

진화의 복잡성에 대한 굴드의 주장이 다윈을 뒤집는 것은 아니다. 다른 패러다임이라고는 없으며 단지 다윈의 애초 틀을 풍부하게 하는 완벽한 "정상 과학"이 있을 뿐이다. 이런 그의 주장들은 그의 설명에 나타나는 래디컬한 규칙을 정형화한 것이며, 언제나 근본적인 생물학 과정으로 돌아가서 그것이 제시하는 것을 본 것이다.

 

굴드가 최대 명성을 얻은 것은 생물학자로서가 아니라 대중들을 위한 과학 해설자로서였다. 과학적 지식과 사회적 행동의 상관관계가 언제나 문제였다. 과학적 지식은 소수의 엘리트들이 독점하고 이해하는 비밀의 지식이다. 하지만 이 지식을 사적인 권력과 공권력이 사용하고 통제하는 것은 사람 전체에게 커다란 사회적 영향을 끼친다. 중요한 지식이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는 극소수의 손에 있는데 어떻게 민주국가는 고사하고 그것과 유사한 것이라도 존재할 수 있겠는가? 이에 대한 번지르한 대답은, 과학 언론과 과학자들의 대중적인 저술행위같은 과학 대중화 도구가 있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학식있는 대중을 형성할 수 있다. 그러나 대중화 그 자체는 보통 혼돈을 유발하고 엘리트들의 의제를 강요하는 도구이다.

 

과학 언론인들은 두가지 어려움을 겪는다. 첫째는, 아무리 교육을 잘받고 똑똑하고 동기로 충반할지라도, 결국 그들은 자신들에게 이야기를 전해주는 과학자들을 믿을 수밖에 없다. 생물학자조차 물리학자가 양자역학에 대해 말하는 것을 믿지않을 도리가 없다. 과학보도의 많은 부분은 과학기관의 기자회견 또는 보도자료에서 출발한다. "블랙레그연구소의 과학자들이 오늘 반복적인 행동에 따른 부상에 예민한 유전자를 발견했다고 발표했다"는 식이다. 두번째로, 과학 기자들이 몸담고 있는 언론매체들은 극적인 설명을 기사에 넣으라고 강하게 압박한다. 소중한 지면을, 모든 것이 너무나 복잡하며 어떤 예상도 할 수 없고 물질의 진실을 발견하는 실험에 심각한 어려움이 존재하며, 결국 우리가 답을 알지 못할 것이라는 내용을 담은 기사에 할애할 편집자가 어디에 있겠나? 세번째로, 과학적 기술이 비밀스럽다는 점은 가장 지식이 풍부한 기자와 독자사이에서조차 극복 불가능한 수사적 장벽이 생기게 만든다. 일반 독자들이 접근할 수 있는 투명한 설명을 해주려면 글 쓰는 사람이 최대한 깊은 지식을 갖춰야 한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보통 잘 깨닫지 못한다.

 

과학자들과 대중 대상의 글을 쓰는 그들의 전기작가들은 보통 지적인 삶의 낭만, 과학의 경이를 무비판적으로 강조하고, 그들의 작업에 대한 한층 더 큰 지지를 얻기 위해 선전, 선동을 일삼는 데 관심을 둔다. 스티븐 호킹과 그의 지적인 작업에 사로잡힐 수 없을 만큼 냉담한 가슴을 지닌 이가 어디 있겠나? (글의 목적이) 과학적 지식 집단에 대한 단순한 정보를 제공하려는 것일 때조차 (그에 대한) 이해는 너무나 복잡미묘한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어서, 단순하면서도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글을 쓰게 만드는 압박감을 억제하기 힘들다.

 

스티브 굴드는 예외였다. `자연사잡지'에 매달 쓴 과학 문제에 대한 그의 글 300개는, 이 가운데 상당수는 책 형태로 보급되기도 했는데, (지적 수준을) 독자 수준으로 떨어뜨리지도 않고, 그렇다고 과학을 과도하게 단순화하지도 않는 설명 기법으로 과학적 발견과 문제를 진실되면서도 세심하게 해설해줬다. 그는 야구, 합창 음악, 교회 건축 등에 대한 언급을 곁들여 문장의 생기를 더하면서 복잡한 진실을 일반 독자들이 이해할 수 있는 방법으로 전달해줬다. 대중들을 위해 글을 쓰려고 할 때, 그 대중이 어떤 대중인지를 명확히 해야함은 물론이다. 우루과이 작가 에두아르도 칼레아노는 대부분의 인민이 문맹인데 우리가 "인민"을 위해 글을 쓴다고 하는 게 도대체 뭐냐고 물었다. 북반구에는 공식적인 문맹이 훨씬 적지만, 그래도 굴드가 대상으로 삼은 독자는 고등 교육을 받은 이들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그들 역시 과학적인 사상 자체 보다는 합창 음악과 교회 건축에 대한 은유를 통해 훨씬 더 의미있는 내용을 전달받을 수 있는 불특정 독자이기는 마찬가지다.

 

스티브가 다룬 주제 대부분은 진화 과정과 진화의 산물의 복잡함과 다양함에 대해 엄밀히 설명하는 것들이었다. 그가 다룬 제재들이 아주 다양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밑에 일관되게 유지되는 주제가 있었다. 그건 생물 세계의 복잡함을 어떤 거대 일반 이론을 표현한 것으로 여길 수는 없으며, 각각의 것들을 밑바탕부터 따져서 각각을 인과관계의 다양한 물질적 경로에서 실현된 개별체로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정치적 삶 측면에서 보면 그는 좌파 운동 전반의 한 부분이었다. 그는 베트남전쟁 반대운동에 적극 참여했고, 대중을 위한 과학운동과 뉴욕마르크스주의학교 운동에도 적극적이었다. 그는 자신을 마르크스주의자로 여겼지만, 진화론과 마찬가지로 이 정체성이 뜻하는 것은 그렇게 확연하지 않았다. 오랜 세월동안 우리는 그와 동지 관계를 유지했지만, 우리가 그와 마르크스의 역사이론과 정치경제학을 논한 적은 없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에 충실함으로써 그는 대중적 지식인으로서의 명성과 합법성을 이용해 대중들이 마르크스의 분석의 유효성에 대해 더 생각할 기회를 제공하려 애썼다.

 

실제적 정치 투쟁 단계에서 그의 가장 중요한 활동은 창조론에 맞서 싸우고 사회생물학과 인종주의 같은 생물학적 결정론의 정당성을 부수는 작업이었다. 그는 아칸소주 의회에서 진화론자간 차이나 진화론에 풀리지 않은 문제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진화론이 삶을 이해하는 조직적 원리라는 사실이 훼손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전쟁과 인종주의, 남녀 성 차별, 기업주도의 자본주의를 정당화하는 인간 본성이 진화의 과정에서 생성됐다고 주장하는 사회생물학에 맞서는 독창적인 선언을 제기한 필자들 가운데 한명이 그였다. 그는 내내 사회생물학 이념을 공격했고 그것이 주장하는 유전학과 진화론적 뿌리가 얼마나 얇팍한 것인지 폭로했다. 그런데 그가 생물학적 결정론을 깨는 데 가장 결정적으로 공헌한 것은, 유명 과학자들의 인종주의와 거짓을 폭로한 `사람에 대한 오판(The Mismeasure of Man)'을 써서 널리 보급한 것이다. 여기서도 그는 다시 근본적인 것으로 돌아가는 것이 얼마나 가치있는 일인지 보여줬다.

 

2차 세계대전 이전의 미국, 영국, 유럽의 생물학자, 인류학자, 사회학자들이 표현한 계급적 편견과 인종주의를 명확히 보여주는데 만족하지 않은 그는, 북유럽인이 두뇌가 더 크고 정신도 우월하다고 그들이 주장하면서 근거로 삼은 자료들을 구체적으로 검토했다. 그 결과, 모든 사례에서 표본이 의도적으로 왜곡됐거나 자료를 잘못 제시했거나 심지어 없는 것을 만들어내기까지 하고 잘못된 결론을 도출했음을 밝혀냈다. 시릴 버트(Cyril Burt)가 제시한 지능지수에 대한 완벽하게 잘못된 통계는 이미 리오 캐민(Leo Kamin)이 폭로한 바 있지만, 이는 자칫 특이한 한가지 일탈 정도로 간과될 뻔했다. 일군의 저명 연구자들이 교묘한 자료 조작을 했음을 스티브 굴드가 밝혀냄으로써 버트의 잘못은 정도를 벗어난 것이 아니라 전형적인 것임이 분명해졌다. 이념적인 신념이 과학자들의 연구 방향과 결론에 무의식적으로 영향을 끼친다는 것에 폭넓은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 그러나 사회적 의제를 위해서 의도적으로 사기를 치는 것도 일반화될 수 있을까? 또 "객관적인" 과학의 기존 체제에 대해 이보다 더 래디컬한 공격을 상상할 수 있는가?

 

우리가 이런 (스티브 굴드에 대한) 기억을 전함에 있어서 래디컬해지는 것은 쉽지 않다. 왜냐하면 이는 다른 사람들 뿐 아니라 우리 자신에 대해서도 똑같이 주장과 행동의 밑바탕에 대한 끝없는 질문을 제기하는 것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심지어 스티브 굴드를 포함한 누구도 변함없이 래디컬할 수 있었다고 내세울 수는 없다. 그러나 래비 타폰(Rabbi Tarfon)이 썼듯이, "성공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는 아니지만, 우리 누구도 이를 위한 투쟁에서 벗어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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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르원틴과 리처드 레빈스는 40년 이상된 동지들이다. 그들은 `변증법적 생물학자' (하버드대 출판부, 1987)와 `이념 차원으로 본 생물학: 디엔에이의 독트린' (하퍼콜린스, 1992)를 함께 썼다. 로원틴은 하버드대 생물학과 연구교수이며 스티브 굴드과 함께 진화에 대한 공동 연구과정을 맡아 가르쳤다. 레빈스는 하버드대 공공보건대학의 인간생태 프로그램 책임자이다.

RICHARD C. LEWONTIN and RICHARD LEVINS have been colleagues and comrades for over forty years. They are the authors of The Dialectical Biologist (Harvard University Press, 1987), and Biology as Ideology: The Doctrine of DNA (HarperCollins, 1992). Lewontin is Research Professor in Biology at Harvard and taught a joint course in evolution with Steve Gould. Levins is the head of the Human Ecology program at the Harvard School of Public Health.

 

 

원문: www.monthlyreview.org/1102lewontin.htm

번역: 신기섭

2004/07/09 21:10 2004/07/09 21:10
2 댓글
  1. bs 2009/01/31 21:53

    mortality를 morality로 잘못 보신듯 하네요. 죽어가는 사람이 도덕성을 잃고 잃지않고가 뭐가 중요하겠습니까. 원문을 보니 "항상 그는 인간의 유한성을 의식하고 있었기에 적어도 그의 친구들에게는 죽음을 기꺼워한다는 인상을 주었다"는 뜻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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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marishin 2009/02/01 12:05

    그렇군요. mortality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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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Richard Levins... 먼 댓글 보내온 곳 2004/10/31 21:48

    * 이 글은 marishin님의 [진화생물학자 스티븐 굴드 - 래디컬하다는 건 무엇인가?] 에 대한 트랙백 입니다. 인터넷의 위력을 실감한다. 신영전 선생님께 처음 들었고 홍실이 선생님이 글에서 말한 R

  2. Subject: '진화'는 과연 '진보'일까? 먼 댓글 보내온 곳 2009/12/28 13:30

    많은 사람들이 진화를 ‘하등한’ 종에서 ‘고등한’ 종으로 ‘진보’하는 것으로 생각해 왔다. 그러나 상당수 생물 학자들 사이에서 진화는 그러한 ‘진보’가 아니라는 문제 제기가 이루어졌다. 이러한 문제 제기에 큰 공헌을 한 사람은 진화 생물학자 굴드Stephen Jay Gould이다. 굴드는 일부 과학자들이 진화를 '생명이 가진 해부학적 복잡성, 뇌신경 조직의 정교함, 행동 양식의 범위와 가소성이 증가하는 경향'이라고 정의한 것에 대해 인간 중심적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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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진보 진영의 글을 번역해 공개하는 걸 주 목적으로 하지만 요즘은 잡글이 더 많습니다. marish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