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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7/16 18:57 2004/07/16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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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갱이들과 그들을 사랑한 보수파들

에릭 올터먼(Eric Alterman)

<더 네이션> 2001년 4월23일

 

 

미국의 칼럼니스트 에릭 올터먼이 쓴 글입니다. 언론재벌 루퍼트 머독 소유의 언론들이 어떻게 사주에 대해 침묵하는지를 보여주는 글입니다. 머독의 아들 제임스가 정치적 이념 때문이 아니라 단지 돈벌이를 위해서 중국을 옹호하는 발언을 한 것에 대해서, 다른 사람이 했다면 난리를 쳤을 <위클리 스탠더드>, <폭스 텔레비전>, <뉴욕포스트> 등 보수 언론들의 논객들은 침묵으로 일관했답니다. 사주에게 사족을 못쓰기는 한국 언론이나 미국 언론이나 비슷합니다. 이 글은 안티조선일보 사이트 '우리모두'의 '미국 뒤집어보기' 게시판에 덱스터라는 분이 번역해 올리신 것입니다. 이 게시판 관리자 저스트맨님께서 게재 허락을 받아 제공해주셨습니다.

 



이 글은 우리모두 사이트의 `미국 뒤집어보기' 토론방에 '덱스터'라는 아이디를 쓰는 분이 번역해 올린 겁니다. 토론방 운영자께서 번역자의 허락을 받아 보내주셨는데, 번역 일부를 제 구미에 맞게 고쳤습니다. 일종의 편집권 행사로 이해해주시길 ^-^. 아래는 덱스터님께서 이 글에 등장하는 언론에 대해 설명하신 부분입니다.

이 칼럼에서 미국의 여러 신문 잡지가 언급되는데요. 많이 알지는 못하지만 조금 설명을 드리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앨터먼(Alterman)이 언급하는 미국의 보수 언론으로 머독 일가 소유의 폭스 텔레비전 (Fox TV), 뉴욕포스트 (New York Post), 위클리 스탠더드 (Weekly Standard), 그리고 여타 보수지 월스트리트 저널 (Wall Street Journal), 더 뉴리퍼블릭 (The New Republic), 그리고 여러분이 잘 아시는 통일교 교주 문선명씨 소유의 워싱턴타임스 (Washington Time) 등을 들 수 있어요.

 

위클리 스탠더드는 주간조선 쯤으로 보시면 되고요. 지난번 미군 스파이 정찰기 충돌 사건이 있었을 때, 부시가 미안하다는 말을 중국측에 한 걸 가지고, "국가적 수모" ("national humiliation") 라고 혹평하여 미국의 보수적인 일반 언론들조차 혀를 내두르 게 만들 정도로 강경보수입니다. 북한에 인도주의적 입장으로 식량을 원조하는 걸 두고 나라 살림을 거덜내니 어쩌고 하고 김정일과의 정상회담에서 대통령이 말을 아끼는 걸 두고 적에게 아부한다는 둥 비판을 일삼는 한국의 일부 언론을 꼭 닮았죠.

 

더 뉴리퍼블릭의 경우 더 네이션과 비교할만한 전통을 가지고 있는 보수지 인데요, 더 네이션과 묘한 라이벌 관계여서 서로 자주 비판하지요. 원래 두 잡지 모두 진보적 성격으로 출발했는데 50-60년대 매카시 열풍과 월남전에 대한 입장에서 갈라지면서 더 뉴리퍼블릭은 완전히 보수우파로 나섰지요.


 

"이용해먹기 좋은 멍청이들" 이란 용어를 기억하는가? 냉전 시기에 공산주의라는 꿈같은 이상과 소련 스탈린주의라는 끔찍한 현실을 구분해 바라보지 못했던, 뜻은 좋았지만 어리석었던 좌파들 말이다. 그들은 (스탈린) 독재에 눈을 감았고, 그럼으로써 조 맥카시나 로이 콘과 같은 빨갱이 마녀사냥꾼들이 공산주의를 반대하는 사회주의자들과 자유주의자들을 한 데 묶어 스탈린식 빨갱이라고 색칠할 수 있도록 빌미를 제공하여 민주적 좌파들의 입지를 약화시켰다.

 

<스타 티브이>의 회장이자 최고 경영자이며, 루퍼트 머독의 거대 언론 제국의 후손이자 장래 상속자로 점쳐지는 스물여덟의 제임스 머독의 경우, 멍청이라는 용어는 상당히 관대한 것일지도 모른다. 중국이 미국의 스파이 비행기를 잡아 승무원들을 억류하기에 약간 앞서서, 대학 중퇴자인 이 사람은 로스엔젤레스 밀큰 연구소(Milken Institute) 모임에서 연설하면서 베이징의 공산 압제자들을 찬양하는 노래를 불러댔다. 그것도 모택동이 얼굴을 붉힐 정도로. 그는 세계 언론의 중국 인권 탄압 실상 보도를 비판했다. "오늘날 안정을 해치는 세력들은 중국 정부에 매우 대단히 위험하다"라고 주장하면서 말이다. 그는 홍콩의 용감한 민주주의 주창자들한테 "절대주의" 정부의 존재를 있는 사실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라는 훈수를 두었다. 그러고는 "중국의 성공을 내심 바라지 않는" "위험하고" "종말론적인" 파룬궁 종교운동측에 대한 박해에 거의 동의하는 것에 다를 바 없는 발언을 했다. (대략 150명의 파룬궁 지지자들이 경찰 구금 상태에서 이미 숨졌고 현재 만명이 수감중이다.)

 

"멍청이"라는 용어가 (그에게) 지나치게 관대한 이유는 이 젊은 머독이 자기 소유의 출판물들을 읽어보기만해도 그가 연모해 마지않는 독재자들의 진실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머독 소유 <위클리 스탠더드>의 논설위원들에 따르면,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크고 가장 강력한 독재 체제"이자 미국에 대한 군사적 위협이며, "'안정'에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면 독재를 정당화할 수 없는 공산주의자들은 필연적으로 끊임없이 '불안정'을 만들어내고는 그것을 진압해 버리는 식으로 행동하게 마련이다."

 

필자가 보수적인 머독 집단의 다양한 언론계 인사들에게 전화로 물어보았을 때, 그 말 잘하던 사람들 모두 아들 제임스 머독의 언급에 대해 입을 다물었다. <폭스 뉴스>쪽의 경우, 네트웍 분야 사장 로저 에일스(Roger Ailes), 토크쇼 진행자 토니 스노우(Tony Snow), 입심좋은 빌 오라일리(Bill O'Reilly) 모두의 반응을 얻을 수 없었다. 평소에 약간만 거슬려도 꽹과리를 있는 힘껏 울려대는 데 열을 올리는 <뉴욕포스트> 사설면 편집인 봅 맥마너스(Bob McManus) 뿐만 아니라 이 신문 편집장인 켄 챈들(Ken Chandle)은 할말을 잊은듯 일절 함구했다. <위클리 스탠더드>쪽의 경우, 편집인이자 출판인인 윌리엄 크리스톨(William Kristol), 편집장 프레드 반스(Fred Barnes), 그리고 수석 논설위원 크리스토퍼 캘드윌(Christopher Caldwell) 모두 너무 바빠 필자의 전화에 대한 답신 전화를 하지 못한 게 분명한 듯하다. 오피니언란 편집인 데이비드 텔(David Tell)은 친절하게도 필자가 위에서 인용한 부분이 실린 기사를 가르켜 주었지만 그 잡지의 소유자들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수석 편집인이자 베스트셀러 저자인 데이비드 브룩스(David Brooks)는 한껏 상냥했으나 아무 정보도 주지 않았다. "미안합니다. 컴퓨터에 문제가 좀 있어요. 처음에 저는 당신이 고용주의 아들에 대한 제 코멘트를 바란다고 생각했어요. 어떤 곡해가 있는 게 틀림없어요."

 

이 문제가 뉴스 코퍼레이션(News Corp.) 직원들에게 새로운 건 아니다. 루퍼트 머독은 이미 여러해동안 공산주의자의 동조자로 악명을 날려왔다. 중국에 대한 자신의 상당 규모의 투자를 지키려는 생각으로 그는 기꺼이 <영국방송협회>(BBC)를 자신의 위성방송망에서 축출하고, 중국 공산당 원로 정치계의 비위를 맞추려 중국에 우호적이지 않은 책의 출판을 취소하고, 읽기에도 괴로운 선전물을 출판하려고 수백만달러를 지불한 게 분명해졌다. [그렇지만, 데이비드 텔이 이 문제에 관한 한 <위클리 스탠더드>의 편집권 독립이 지켜진 거라 지적한 건 맞는 말이다.

 

마이클 킨슬리(Michael Kinsley)가 설명했듯, <슬레이트>(Slate) [마이크로소프트에서 만드는 잡지] 쪽이 "마이크로소프트를 미국 사회의 힘있는 기관이라는 점에 걸맞게 비판적으로 검증하리라"고 기다리는 건 진짜 어리석은 일이다. 마찬가지로, <위클리 스탠더드> 편집인들이 정직한 자유주의자들에게 달려들 때 써먹기 좋아하는 그런 야비한 수식어를 월급 주는 그들의 사주인 빨갱이 아첨꾼들에게 적용하리라 기대하는 것도 하나의 희망 사항에 다름 아니다. (로버트 노박(Robert Novak) 이름으로 <슬레이트>가 스톤(I. F. Stone)에게 그것도 사망한 뒤에 퍼부은 무시무시한 비방을 사과하기에 지금이 적기란 생각이 들기는 한다. 스톤은 그 잡지 편집인들이 태어나기도 전에 엄청난 개인적 피해를 감수하면서도 소련의 만행을 비판했고, 죽는 그 자리에서도 천안문 광장의 반정부 민주인사들을 지지한 사람이다.)

 

앤드류 설리번(Andrew Sullivan) 은 자신의 배니티 웹사이트에 올린 글에서, <위클리 스탠더드>가 머독 일가를 비판하지 않은 걸 두고 "사주를 비판할 능력이 있는냐야말로 모든 잡지의 편집권 독립을 시험하는 잣대가 된다"고 주장하며 궁시렁거렸다. 그 기준이라면 <더 네이션>이야말로 설리번이 가장 좋아하는 잡지가 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 사람이 만일 사주인 마티 프레츠(Marty Peretz)의 우습기까지 한 강박적 유태인의 이방인 혐오와 아랍인에 대한 인종차별을 비판하는 <뉴 리버블릭> 사설 하나라도 발견해 낸다면, 내가 그 양반에게 르 시르케 (Le Cirque)에서 저녁을 사리라.

 

물론, 문선명의 <워싱턴타임스> 기사에서 흔들리는 젊은이들을 먹이로 삼는 사교의 위험에 대한 글을 못찾는 건 당연한 거다. 심지어, 모회사인 파워풀 미디어(Powerful Media)가 최근 스티븐 빌(Steven Bill)과 맺은 거래와 똑같은 종류의 사건을 탈무드식으로 그때 그때 기사화하는 데 전문인 인사이드닷컴(Inside.com)도 그 거래를 한껏 탈무드식으로 다룬 데이비드 카(David Carr)의 기사를 내보내기 전에 경쟁사들이 그 뉴스를 흘리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는 쪽을 택했다. 사주에 관한 한 대부분의 언론 매체는 침묵을 금으로 여긴다.

 

문제는 <위클리 스탠더드> 편집진의 자기 방어적 위선에 있다기보다는 보수 진영의 움직임에 대해 그들이 그리는 전반적인 그림에 있다. 우파한테 있어서, 그들의 가장 관대한 후원자가 공공연히 공산 독재자인 동시에 자신들이 미국 국가안보의 가장 큰 위협으로 지목하는 정권을 지지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월스트리트 저널>은, 부편집인 툰커 배러대러전(Tunku Varadarajan)의 머독 일가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실음으로써 이점에 있어서는 용서를 받았다. 하지만 지난해의 버클리 일가나 베넷 일가 문제는 어떤가? 머독이 사실상 전체 포드호레츠(Podhoretz) 식구들에게 월급 봉투를 뿌린다는 사실이 지구상 어떤 다른 권력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그들의 입을 다물게 해온 것인가? 빨갱이 사냥의 대가들이 지금에 이르러 공산주의를 눈감아 주는가? 필요할 때에 제대로 된 우파 반공주의자 하나 찾는 게 왜 이다지도 힘들단 말인가?

 

* 글을 쓴 에릭 앨터먼은 <더 네이션>, <워스 매거진>(Worth Magazine), 엠에스엔비시닷컴 (MSNBC.com)에 칼럼을 쓰고 있으며 뉴스쿨 유니버시티의 세계정책연구소 수석연구원(senior fellow)으로 있습니다.

 

번역: 덱스터

2004/07/15 20:06 2004/07/15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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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스트리트저널>을 못믿을 20가지 이유

스티브 렌달, 짐 노레카스(Steve Rendall and Jim Naureckas)

'페어' 1995년 9월

 

 

미국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신문 <월스트리트저널>은 자본가들의 생각을 대변합니다. 투자가들이 길잡이로 생각하는 이 신문에서 사설면(의견면)은 절대 믿지말라는 것이 `페어'의 충고입니다.



1. 아니타 힐이 클래런스 토마스에게 성희롱을 당했다는 점을 실증하려고 거짓말탐지기 검사를 받자, 월스트리트저널은 91년 10월15일 "신뢰의 협곡"이라는 사설에서 "거짓말탐지기 검사는 신뢰할 수 없기 때문에 법원에서 증거로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8개월 뒤인 92년 6월9일 전직 국방장관 캐스퍼 와인버거(그는 이 신문 사설난에 종종 글을 쓰는 이다)가 이란-콘트라 사건 관련 위증죄로 기소되자, 이 신문은 거짓말탐지기 검사를 그의 무죄를 주장하는 근거로 내놨다. "와인버거씨는 거짓말탐지기 검사를 거쳤다"고.

 

2. 비시시아이(BCCI)은행의 퍼스트아메리칸은행 인수에 대한 조사를 거론하면서 월스트리트저널은 94년 10월28일 "미국의 관심은 한줌의 아랍 악당들이 어떻게 워싱턴시에서 가장 큰 은행을 지배하게 됐는가이다"라고 했다. 뻔뻔스러운 인종주의는 별개로 하더라도 -- 월스트리트저널이 어떤 상황에서건 "한줌의 유태인 악당"이라고 쓰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다 -- 이 은행 운영자는 아랍인들이 아니다. 설립자 아가 하산 아베디와 최고 경영인 스왈레 나크비는 파키스탄인이다. 이 은행에 빚을 갚지않은 최대 채무자인 고칼 가족은 인도인이다. 가장 큰 손해를 본 이는 아랍국인 아부다비의 지배자다.

 

외국 관련 사기

3. 이 신문의 사설면 부편집인 조지 멜론이 82년 2월19일 `맥닐/네러 뉴스아우어'에 나와, 엘살바도르의 엘모조테에서 생긴 민간인 학살에 대한 뉴욕타임스의 레이몬드 보너 기자의 보도를 월스트리트저널이 비난하는 이유를 밝혔다. 멜론은 보너가 "마르크스주의는 자연스럽다는 정치적 편향"이 있다는 식으로 넌지시 말했다. 증거를 대라고 하자, 멜론은 보너가 "게릴라운동에 대한 기사에서, 게릴라들과 함께 다니며 취재했다는 사실을 밝히지 않았다"고 말했다. 뉴스데이의 시드니 샨버그가 92년 10월27일 지적했듯, 보너는 4번의 연재 기사 각 회마다 자신이 반군들과 함께 다녔다는 것을 밝혔다. 첫회 제목은 "살바도르 반군과 함께 전투지대를 가다"이다.

 

4. 전에는 월스트리트저널의 사설면에 글을 썼고 요즘도 가끔 기고하는 쥬드 워니스키는, 뉴욕타임스 88년 4월12일치에 실린 편지에서 엘살바도르의 군인이며 정치가인 로베르토 도뷔송이 살인부대와 연루됐다고 볼만한 증거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기사를 "메카시적(McCarthyist)"이며 "최근 10년간 가장 성공적이라고 할만한 조작 선전"이라고 낙인찍었다. 도뷔송이 살인부대에 연루됐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것이다. 이 점은 레이건 정부의 내부 메모에서도 확인됐다. 81년 3월18일 중앙정보국이 당시 부통령인 조지 부시에게 제출한 보고서는 "도뷔송이 땅 부자들의 부하였으며 지난해에 좌익 또는 좌익 동조자 혐의가 있는 수천명을 죽인 우익 살인부대를 관장하는 인물이다"고 밝혔다. 85년 7월31일의 미국 외교부(국무부) 전통에는, 도뷔송이 엘살바도르 가톨릭 지도자인 오스카 로메로 대주교를 암살할 기회를 누가 "잡을까"를 결정하는 모임을 이끌었다고 밝혔다. (워싱턴포스트 94년 1월4일치)

 

5. 79년 11월8일치와 89년 6월30일치 월스트리트저널의 사설은 앙골라 게릴라인 조나스 사빔비를 "포르투갈에 맞서 싸운 노련한 군인"이라고 언급했고 88년 12월21일치 사설은 그가 이끄는 "유니타(UNITA) 반군이 23년동안 앙골라의 자유를 위해 투쟁했다"고 적었다. 그러나 포르투갈 군대가 진짜 반제국주의 세력에 맞서려고 사빔비를 고용했다는 것은, 78년 포르투갈 군사정부가 무너진 뒤 발견된 편지에서 이미 드러난 사실이다. (레이 등 공저, 더러운 일 2, 조슨과 마틴, 프론트라인 남아프리카)

 

6. 월스트리트저널은 최근 프랑스의 남태평양 핵실험을 막으려 한 환경단체 그린피스에 대해 폭력을 쓰라고 주문하는 듯한 인상을 줬다. 95년 7월12일치 사설은 "이성적이지 않은 요구의 싹을 틔우려고 하는 광신자들을 상대할 때는, 종종 힘을 사용하는 것 외에 대안이 없다"고 했다. 그러나 핵실험을 중단하라는 그린피스의 "이성적이지 못한 요구"에 모든 남태평양 섬나라 국가 지도자는 물론이고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일본의 "광신자" 총리들이 호응했다.

 

범죄와 처벌

7. 94년 2월11일치 범죄에 대한 사설에서 이 신문은 "강도들이 증거를 없애기 위해 사람들을 죽이는 것은 거의 일상적인 일이 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미국연방수사국 통계에 따르면, 92년 강도사건은 67만2480건이 있었고 강도와 연루된 살인은 2254건 뿐이었다. 100에 99.7번은 강도가 사람을 죽이지 않은 것이다.

 

8. 사설면에 실리는 "유명하고 인용할만한"이라는 컬럼은 92년 11월13일치에서 교사들이 지적하는 공립학교 문제를 40년대 경우("차례가 아닌데 발언하는 것, 껌씹는 것, 떠드는 것 등등")와 90년대 경우("살인, 강간, 강도 등등")로 나눠 대비시켰다. 이 신문은 전혀 상관없는 두가지 목록을 비교했다가 골탕을 먹은 것이다. 한 목록은 74~75년 학교 범죄에 대해 교장들에게 질문한 (답변한 것이 아니라) 목록이고, 다른 것은 43년에 꼽힌 학교에서 가장 흔한 골칫거리다. (이 잘못된 비교는 94년 3월6일치 뉴욕타임스 매거진에서 폭로됐다.) (92년 9월11일치 계간 의회연구자에 실린) 이 목록을 그대로 인용하면서 월스트리트저널은 실수를 하나 덧붙이기까지 했다. "근래"라는 시대를 80년에서 90년으로 바꿔놓은 것이다.

 

노상 강도들

9. 습지에 관한 연방규정을 어긴 혐의로 기소된 빌 엘런의 사면을 촉구하는 92년 11월18일과 93년 1월15일 사설에서 이 신문은 엘런이 단지 "이동하는 철새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 야생동물 보호소"를 설치했다고 주장했다. 또 그가 기소된 것은 "옛날에 땅 보전 담당 기관이 습지가 아니라고 판정"했으며 (나중에) "미국을 대표하는 사람이 습지라고 말한" 곳에 "진흙 두차 분량을" 버렸다는 점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 신문은 엘런이 "자신이 흙을 버릴 때는 존재하지도 않던 [1989년]의 기준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부당하게 기소됐다고 우겼다. 빌 엘런의 "야생동물 보호소"는 사실은 사냥용 시설이었다. 그이는 나중에 생긴 규정을 어겨 기소된 것이 아니라 72년에 만들어진 청정수질법을 다섯번이나 어겼기 때문에 기소된 것이다. 엘런은 명백한 습지 86에이커를 흙으로 묻은 혐의를 받았다. 매립한 땅 가운데는 작은 만도 포함된다. 이는 1898년에 제정된 `강과 항구법'을 위반한 것이다. (워싱턴포스트 93년 2월20일치) 엘런은 새 규정이 만들어진 89년보다 1년전인 88년에 이미 작업을 중단하라는 경고를 세차례나 받았다. 언론인 빌 지포드가 93년 11월치 월간 워싱턴에 쓴 것을 보면 "고소는 논쟁의 여지없는 습지에 대한 것에만 관련됐지만, 엘런이 흙으로 채우거나 형질을 변경시킨 면적은 1000에이커에 달한다. 습지에 대한 새로운 규정은 쟁점이 아니었다."

 

10. "멸종 동식물법을 어긴 것은 마이클 로로서는 최선의 행동일 것이다"라고 기업경쟁력연구소의 이케 수그가 93년 11월10일 이 신문 사설란에 실린 컬럼에 썼다. 컬럼의 제목은 "집을 잃고 쥐를 살리다"이다. 수그는 로가 93년 10월 캘리포니아 숲에서 불이 나자 보호동물인 스테픈캉가루쥐의 서식처 주변에 있는 "방화대를 치워" "자신의 집이 불에 타는 것을 막았다"고 썼다. 수그는 캉가루쥐 연구지역으로 지정된 7만7000에이커의 개인 땅 안에 있는 다른 29채의 집 주인들도 마찬가지로 법을 어겼더라면 집을 건졌을 거라고 주장하면서, "로의 이웃들은 법을 지키느라 자신들의 집을 잃고 말았다"고 한탄했다. 캉가루쥐가 사는 개인 땅에서 나무를 잘라내지 못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다람쥐의 사촌인) 이 동물은 땅밑에 살기 때문이다. 어찌됐든 미국 회계감사원은 집 주인들이 땅을 팠다면 집이 불타지 않았을지 조사했다. 감사원은 불이 시속 80마일의 강풍을 타고 고속도로 두곳과 운하 한곳을 뛰어넘어 번져갔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전체적으로 볼 때 지역 관리들과 화재 전문가들은 잡초를 없앴다고 해도 큰 차이가 없었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고 결론냈다. (94년 7월)

 

11. 월스트리트저널은 멸종 동식물법의 지나친 집행을 비난함으로써 또 한번 캉가루쥐를 공격했다. 남캘리포니아대학 법과 교수인 컬럼니스트 기디온 캐너는 ("법의 법칙", 95년 5월24일치) 남 캘리포니아 지역 농부인 투앙 밍린이 95년 2월 "다섯마리의 쥐 위로 쟁기질을 했다"는 이유로 체포됐다고 썼다. 캐너는 "린이 영어를 못한다"며 "연방정부가 멸종 동식물법에 대해 알리는 편지를 보냈다고 주장하지만 그가 이 법에 대해 알았는지는 의문이다"고 주장했다. 법률 전문지 레코더 95년 6월14일치를 보면 린이 체포된 것이 쟁기질 때문이 아니라 멸종 위기에 있는 동물 3종의 서식지를 파괴했기 때문이다. 팁튼 캉가루쥐, 새끼 여우, 표범 도마뱀이다. 레코더는, 린이 처음 편지를 받은 것은 92년 12월이었고, 체포되기 한주전에는 몇번이나 사람이 직접 경고장을 배달했다고 밝혔다. 배달한 사람은 수렵 관리인인데, 그는 린과 그의 아들, 농장 주임에게 땅을 경작하려면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말도 했다. 사실을 잘못 안 것은 그만 두더라도, 월스트리트저널이 법학 교수를 동원해 -- "법의 법칙"이라는 제목의 컬럼으로 -- 법에 대한 무지를 핑계로 내세운 것은 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원자탄급 허풍

12. 94년 8월29일 월스트리트저널은 스미소니언 박물관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미국이 떨어뜨린 원자탄을 주제로 한 전시회를 제안하자, 제안 문구를 거론하며 공격하고 나섰다. "에놀라 전시회의 작가가 가미가제 비행단을 표현하면서 드러낸 낭만주의는 특히 기이하다. 이 글은 슬픈 가락으로 `젊음, 인생과 함께 넘쳐나는 그들의 몸'이라고 표현했다."고 썼다. 이 문구는 전시회 기획자가 쓴 것이 아니다. 제안 문구에 분명하게 나와있듯이 가미가제 비행단의 일원으로 아직 살아있는 유기테루 수기야마가 쓴 것이다. 스미소니안 제안 문구는 "전시회 관람자들에게 가미가제의 자살 광란에 대한 통찰력을 제공하기 위해 포함시킨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많은 미국인은 이 자살 광란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고 밝혔다.

 

13. 월스트리트저널의 이날 사설은 이 인용문을 스미소니언 전시회 기획자가 일본에 대해 우호적인 "심리적 경향"을 나타낸 증거로 제시했다. 인용문은 이렇게 이어진다. "대부분 미국인에게 이 전쟁은 ... 복수전이었다. 대부분의 일본인에게는 서구 제국주의에 대항해 자신들의 독특한 문화를 지키려는 전쟁이었다." 다음은 일본에 우호적이라고는 전혀 볼 수 없는 스미소니언의 인용문 전문이다. 일본의 팽창주의가 독특한 점은 적나라한 공격과 극도의 잔인함이다. 37년 난징에서 저지른 수만명의 중국인 학살은 전세계를 놀라게 했다. 일본 군대의 잔학상 가운데는 민간인과 강제노동 동원자, 전쟁포로를 폭력적으로 대하고 사람을 생물학 실험 대상으로 삼은 것도 있다. 41년 12월 일본은 하와이 진주만 미군 기지를 공격했고 태평양의 다른 연합국 영토에 대한 충격적인 공격도 개시했다. 그래서 극도의 비참한 싸움이 벌어진 것이다. 대부분의 미국인들에게 이 전쟁은 독일, 이탈리아에 대항해 수행한 전쟁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었다. 대부분의 일본인들에게는 이 전쟁이 서구 제국주의에 대항해 자신들의 독특한 문화를 지키려는 전쟁이었다. 전쟁이 45년 막바지에 이르자, 두쪽 모두에게 이 싸움은 끝장을 볼 때까지 가야하는 것이 됐다.

 

14. 원자폭탄 사용을 옹호하기 위해 월스트리트저널의 94년 8월29일 사설은 미국에 대한 침공이 이뤄졌다면 "미국쪽 희생자가 100만명 이상 생겼을 거라는 게 모든 추정치의 일치된 견해다"라고 주장했다. "모든 추정치"? 연합참모총장에 제출한 45년 6월의 공식 보고서는 (부상자를 포함한) 전체 미국인 희생자를 13만2500에서 22만명으로 추정했다.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은 45년 6월 희생자가 11만명이라는 추정치도 너무 높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역사가들도 "100만명"이라는 수치에 근접한 문서를 제시할 수 없었다. (원자 과학자 게시판 86년 6-7월치, 외교사 93년 겨울치)

 

보도 비법

15. 93년 2월5일 월스트리트저널의 사설은 가정내 폭력에 대한 언론의 관심을 높이기 위한 `공정보도'(FAIR: 이글이 실린 엑스트라를 내는 언론보도 감시기구 : 번역자)의 노력을 공격하면서, 수퍼볼 결승전이 열리는 일요일에 가정내 폭력이 늘어난다는 `공정보도'의 보고서를 "너무 쉽게 믿어버리는 일군의 기자들이 마치 신성한 문서나 되는 양 취급했다"고 썼다. 사설은 유독 기자 한명을 칭찬했다. 폭력적인 경기와 가정내 폭력의 연관성을 부인한 기사를 93년 1월31일에 쓴 워싱턴포스트의 켄 링글이 그 기자다. 월스트리트저널의 사설은 "그이는 기자들이 분명히 선호하지 않는 보도 비법을 썼다. 정보제공자에게 전화해 사실인지 확인한 것이다"고 썼다. 사실 그는 1차 정보제공자인 `공정보도'의 중앙사무실에 사실 여부를 묻지 않았다. 만약 전화라도 했다면, 우리의 정보가 가정폭력 피난처에서 일하는 여성의 1차 보고와 "보도 비법'을 써서 매맞은 여인들을 인터뷰한 기자들이 쓴 기사에서 얻은 것이라고 말해줬을 것이다. `공정보도'에 속은 `너무 쉽게 믿어버리는 일군의 기자' 가운데 한명이라고 지목된 뉴욕타임스의 로버트 립사이트는 실제로 이보다 몇년전인 87년에도 수퍼볼과 가정내 폭력의 관계에 대해 보도한 적이 있다.(NBC 밤뉴스, 87년 1월18일) 기자는 의심을 품고 정보원을 확인해봐야 한다는 요지의 사설을 쓰면서 월스트리트저널의 논설위원은 `공정보도'에 전화해 워싱턴포스트의 기사에 대해 물어보지도 않았다. 만약 전화했다면, 홍보대행 업체 도비스키 어소시에이츠가 `공정보도'의 홍보를 맡고 있다는 또 다른 오보만큼은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 회사는 월스트리트저널 사설이 거론하기 전에는 우리가 알지도 못하던 업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이 점을 비롯해 사설의 잘못을 지적하는 편지를 실어달라는 `공정보도'의 요청을 거부했다.

 

경제적 넌센스

16. 이 신문의 논설위원 로버트 버틀리의 책, `기름진 7년'이라는 제목은 레이건 집권 시기가 카터 집권 시기와 비교해 월등하게 번영했다는 생각에서 나온 것이다. 버틀리는 80년대 경기침체기의 바닥인 82년과 회복기의 최고지점이었던 89년을 비교해서 "레이건 시대"의 성장률이 3.8%라고 계산했고 "카터 시대"는 성장의 최고지점이었던 73년과 바닥인 82년을 비교해 1.6%라고 계산했다. 이런 정직하지 못한 비교는 카터 집권시기에 발생하지도 않은 두번의 침체기를 카터 탓으로 돌리는 것이다. 반면에 레이건에게는 침체기를 떠넘기지 않았다. 카터 집권 시기에 대해서도 똑같은 방식으로 75년과 80년을 비교하면 경제성장률은 3.5%가 된다. 정직한 경제학자라면 비교할 때는 비슷한 주기를 비교해야 한다고 말할 것이다. 경기가 가장 좋았던 73년과 79년을 비교하면 성장률은 2.8%가 되고, 역시 가장 좋았던 79년과 89년을 비교하면 2.5%가 나온다. "기름진 7년"은 고작 이정도다.

 

17. 월스트리트저널은 81년 6월29일 금융산업 규제완화를 칭찬하면서 "이 해결책의 멋은 시장에 의존하고 연방정부의 주머니에 의존하지 않아서 비용이 많이 들지 않았다는 점에 있다"고 썼다. 연방정부의 주머니는 이 "비용이 많이 들지 않은" 해결책의 비용을 감당하느라고 1500억달러나 썼다.

 

18. 논설위원 로버트 버틀리는 미국에 "더 이상 가난뱅이는 없고 있다면 은둔자같은 이들이 조금 있다"고 주장했다.(워싱턴포스트 82년 7월11일치)

 

림보 커넥션

19. 월스트리트 저널에 사설을 쓰는 존 펀드는 러시 림보(Rush Limbaugh, 극우 성향의 라디오프로그램 진행자)의 첫번째 책 `당연히 그래야 하는 방식'을 대필했다. `공정보도'의 책 `전혀 그렇지 않은 방식'에 잘 나타나듯이, 이 책은 거칠다 싶을 정도로 엉터리다.

 

20. 공화당 전략가 윌리엄 크리스톨은 러시 림보를 "월스트리트저널 사설면의 거의 완벽한 방송판'이라고 언급했다.

 

번역: 신기섭

2004/07/15 20:00 2004/07/15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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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진보 진영의 글을 번역해 공개하는 걸 주 목적으로 하지만 요즘은 잡글이 더 많습니다. marish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