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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는 한가지 쟁점일 뿐이며, 진짜 쟁점은 자본의 힘이다

윌리엄 탭(William K. Tabb)

<먼슬리 리뷰> 1997년 6월호

원 제목 = Globalization is an issue, the power of capital is the issue.

 

이 글은 세계화는 100년전이 지금보다 더 진전됐었다는 것을 통계를 바탕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 자본이 세계화를 노동에 대한 착취를 강화하기 위한 정치적 도구로 쓰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세계화 가설은, 개별 국가경제간 경제적 관계의 본질이 최근 급격하게 바뀌었다는 것에서 시작한다. 개별 국가경제가 자국 독자적인 개발을 추진하다는 목소리를 낼 힘을 대부분 잃어버렸고, 개별 국가의 경제운용 전략이 완전히 무용지물이 됐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국제화는, 기술과 막강한 시장세력이 전세계 체제를 누구도 감히 변화시킬 수 없는 강력한 체제로 만드는 과정이다. 다국적 기업들과 세계은행이나 국제통화기금(지구의 친구들 인터뷰 참조 : 번역자 ) 같은 국제기구는 모든 나라에 획일성을 강요하고 있다. 이런 생각을 하면 급진적인 대안이 불가능하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마가렛 새처의 유명한 말처럼 "대안은 없다"는 것이다.

 

국제 경제의 중요성이 최근 몇십년동안 계속 커졌다는 것은 명백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을 볼 때, 수출이 국내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 60년 10% 이하에서 90년 20% 이상으로 배 이상 늘었다. 국제적인 은행들의 대출은 80년 경제협력기구 국내총생산의 4%에서 90년 44%로 크게 늘었다. 1조달러에 달하는 국제 외환시장의 하루 거래 규모에 비하면 각국 중앙은행들의 외환보유액은 새발의 피에 불과하다. 공장이 문을 닫아 직장을 잃을 것이라는 걱정은 노동자들에게 엄연한 현실이고, "세계화"는 모든 것을 설명하는 핑계가 됐다.

 

하지만 국제경제가 한 국가 수준의 각종 과정을 주변적인 요소로 전락시키고 있다는 관점에서 세상을 보기를 강요하는 '강한 세계화 테제'와, 한 국가의 정책과 정책시행에 중요한 의미를 두고 핵심을 경제세력이 아니라 정치에 두는 '완화된 관점', 이 둘 사이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두번째 관점은 현재의 변화를 장기적인 역사 전망에서 본다. 또 이 변화가 분명하기는 하지만 전례가 없는 것도 아니며 우리가 모르는 새로운 경제체제의 출현으로 이어져야 할 필연성이 있는 것으로 보지도 않는다.

 

중요한 것은 첫번째 시각이 신화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다. 이 신화는 패배주의라는 정치적 의미를 담고 있다. 또 복잡한 과정에 대한 올바른 분석을 근거로 한 것도 아니다.1) 그래서 세계화는 두단계로 나눠서 논의해야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 첫번째로 필요한 것은 좌파의 힘을 약화시키는 '강한 세계화 테제'에 대한 비판이다. 이 글의 목적도 바로 이 점이다. 두번째 단계는 현재의 국면에서 새로운 것이 과연 뭔지를 주의깊게 분석하는 일이다. 자본주의의 속성은 계속 변화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지금 나타나고 있는 변화, 발전의 본성에 주의를 기울이는 정치 전략이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가 먼저 다뤄야할 것은 냉혹한 세계경제 헤게모니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패배주의 문제다.

 

미국 노동운동 진영 대부분은 강한 세계화 테제를 받아들이고 있다. 이들은 제3세계로 빠져나가는 일자리 문제와 제3세계의 값싼 노동력이 미국노동자를 위협하고 있다는 점만 강조하고 있다. 자본은 가장 값싼 노동력을 찾아 세계를 떠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점은 아무리 잘봐줘도 지나친 단순화일 뿐이다. 이런 생각은 다국적 기업의 실제 투자양태를 오해하고 있다. 미국에 근거를 둔 다국적 기업의 해외 투자와 해외 생산량의 75%는 서유럽, 캐나다와 기타 선진국에 집중되어 있다. 그리고 이런 투자 대부분은 현지 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것이다.(제3국으로 수출하거나 미국으로 역수입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미국에서 자본이 떠나는 문제를 생각할 때 중요한 것은, 미국이 해외투자 역조국이라는 사실이다. 외국의 다국적 기업들이 미국에 투자해 미국노동자들을 고용하는 것이 반대의 경우보다 많다는 것이다. 미국의 대외수지가 엄청난 적자를 기록한 것은 빚을 얻어 외국 물건을 소비하는 미국의 행태에서 비롯됐다. 미국은 제3세계 수출품의 절반을 소비한다. 미국 기업들은 바로 이점 곧, 대중들이 국가복지와 미국 기업의 경쟁력을 혼동하고 있는 점을 이용하고 있다.

 

전세계 산업생산의 85%가 각 개별국가안에 있는 일반 기업들이 생산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다국적 기업들이 해외에서 생산하는 것 또한 중요한 요소이기는 하다. 이 비중이 15%나 되기 때문이다. 좌파 세력 대부분이 저임금을 찾아 제3세계로 공장을 이전하는 것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지만, 실제로 다국적 기업들은 저임금 생산기지를 기피하고 있다. 개발도상국에 투자를 꺼리는 것이다. 대략 세계 인구의 3분의 2는 외국인 투자와는 전혀 무관한 상태로 살고 있다. 격차가 계속 벌어지고 있는 것도 바로 세계인구 대부분이 주변부화하는 데 원인이 있다.2) 국제연합 자료에 따르면 70에서 100개 나라가 지난 80년보다 더 가난해졌다. 이른바 경제기적을 이룬 나라들의 경제가 반드시 지속적으로 국제경제에 편입되는 것도 아니다. 10여년전 경제개발 관련 잡지들은 너나할 것없이 신흥개도국 가운데 가장 성공적이라는 한국을 특집으로 다뤘다. 그러나 요즘 이들은 한국경제의 위험한 상황과 빚이 과다한 재벌들의 도산을 다루고 있다. 통제가 안되는 경쟁은 체질약화를 부르고 이는 종종 온세상 노동자들의 재앙으로 이어진다. 이 정도는 아니더라도 불확실성은 피할 길이 없다.

 

어떤 경우든, 직접 노동비용은 대부분 상품의 가격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인건비가 제조업자들에게 결정적인 요인이 되는 경우도 드물다. (물론 의류업이나 전자제품 조립처럼 인건비가 결정적인 산업도 있다.) 제조업의 일자리를 줄이는 핵심 요소는 기술 변화다. 미국 국내 제조업 총생산은 50년대의 5배가 됐다. 하지만 제조업 노동자수는 도리어 줄었다. 이것은 제조업의 해외 이전 때문이 아니라 거의 전적으로 노동을 대체하는 기술이 개발된 때문이다. 빠르게 성장하는 첨단산업에 노조가 없는 점이 전체 노동세력을 약화시킨다. 이런 식의 성장은 미국 경제의 불평등 심화의 원인이기도 하다.3)

 

장기전망

자본주의는 지금까지 언제나 범세계적인 체제였다. 물론 세계경제가 특정한 지역 노동자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방식은 계속 바뀌지만 말이다. 경제역사가들은 우리에게 이런 관점에서 현재를 보도록 주문한다. 세계 정치경제의 세계화가 100년이나 150년보다 더 심화한 것은 아니다. 공산당선언을 다시 읽어보면 이 점을 잘 알 수 있다.

부르조아는 세계시장 착취를 통해 모든 나라의 생산과 소비를 세계화(cosmopolitan)하고 있다... 옛날 문호를 개방하지 않고 자급자족하던 지역에서 이제는 모든 측면에서 상호연관과 국가간 상호 의존이 나타나고 있다. 한마디로, 부르조아는 자신의 모습대로 세상을 창조하고 있다.

 

이런 통합은 대륙간 바다밑 전신망이 세계시장을 서로 연결하고 증기선이 목선을 대체하기 이전에도 분명했다. 역사적 관점에서 볼 때 이런 기술혁신이 1세기 뒤에 등장한 항공기나 컨테이너 기술에 비하면 세계 생산양식의 변화에 끼친 영향이 훨씬 큰 데도 그렇다. 이런 장기적인 시각에서 볼 때 다음같은 결론을 낼 수 있다. "세계화 이론가들이 주장하는, 시시각각 변하는 정보를 공유하는 시장들이 서로 얽혀서 형성되는 세계 경제는 1970년대에 시작된 것이 아니라 1870년대에 이미 시작됐다."4) 컴퓨터단말기 단추만 누르면 엄청난 돈이 세계를 오고가는 시대라고 할지 모르지만, 경제사학자들은 지금보다 1차세계대전 전의 20세기 초가 자본흐름이 훨씬 자유로웠다고 말한다. 학자들이 1875년과 1975년을 비교 연구한 결과, 자유화는 한치도 진전되지 않았고 도리어 자본의 운동은 상대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봅 제빈(Bob Zevin)이 자료들을 검토한 뒤에 내린 결론은 이런 것이다. "국경간 주식거래와 외국인의 주식보유율은 실제로 현재보다 1차 대전 이전에 더 높았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의 금융시장에 대한 모든 기록을 보면, 당시 금융시장이 그 이전이나 이후 언제와 비교해도 훨씬 더 통합되어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5) 한 나라 안에서 소비되는 서비스(정부 부문 포함)의 중요성이 커지는 것과 함께, 무역거래를 할 수 없는 것이 전체 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세기 초부터 지금까지 계속 높아지고 있다.

 

다국적 제조업체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중반이며, 20세기 초반에는 완전히 자리를 잡았다. 두번의 세계대전과 대공황 때문에, 에릭 홉스봄(Eric Hobsbawm)이 20세기에 관한 자신의 짧은 책에서 표현했듯이, 경제 국제화 시대가 쇠퇴한 틈 사이로 국가경제 시대가 생겼다. 세계대전과 대공황에서 완전히 회복한 뒤에 나타난 것은, 새로운 출발이 아니라 그 전 추세(경제 세계화)로 돌아가는 현상이다. 자본흐름이 개발에 미치는 영향은 19세기말보다 지금이 훨씬 적다. 또 세상이 1세기전보다 더 세계화한 것은 결코 아니다. 물론 지금을 50년전과 비교하면 기본적인 것에서 차이가 나며, 오늘날 논의는 이 차이에 근거를 두고 있다. 전쟁과 대공황 이후 등장한 케인즈주의 복지국가 정치경제학이 오늘날 쇠퇴했고 그래서 우리는 케인즈경제학 이전의 시대로, 자유방임 이념의 헤게모니로 되돌아 가고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전후 국가주의 정치경제학

대공황과 세계대전은 시장체제를 불신하게 했고 국가계획 경제와 정부가 자원의 분배에서 주도권을 쥐는 체제를 받아들이게 했다. 중도좌파 사민주의 정권과 자유주의 정권이 지배하는 나라에서 노동연합이 지배적인 현상이었다. 자본이 노조와 정부의 경제안정 기능을 받아들이는 가운데 계급간 타협이 지배했던 것이다. 이는 유럽, 일본에서 전쟁복구라는 이름으로 자본을 축적하는 구조를 만든 동시에 미국이 세계적인 주도권을 쥘 수 있도록 유도했다. 마샬플랜과 군사동맹을 통해 미국은 "실제로 존재하는" 사회주의 국가와 프랑스, 이탈리아의 대중 공산주의 운동을 억제했다. 비자본주의 정권은 냉전시대의 군사대치속에 고립됐고 선진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노동세력에 대한 양보가 이뤄졌다. 독립을 쟁취한 옛 식민지에서는 부르조아 정권이 과거 식민통치자들이 누리던 지위를 확보하기 위해 민족주의를 이용했고, 민족주의적인 교묘한 수사와 사회주의적 개발에 대한 비뚤어진 강조를 통해 대중을 소외시켰다. 이런 사회주의적 개발에 대한 비뚤어진 강조는 현실적으로는 대중의 힘을 강화시킨 것이 아니라 일부 엘리트에게 힘을 실어주는 것이었다.

 

70년대 경제혼란기에 세계 경제성장이 둔화하자, 제3세계 엘리트들은 다국적 자본주의에 협력하는 것으로 살길을 모색했다. 사유화와 수출주도 경제개발이, 수입대체 정책과 민족주의, 협소한 내수 시장의 한계에 부닥친 각종 정책을 대신했다. 내수시장이라는 것도 극심한 빈부격차를 유발한 것 이상이 아니었다. 선진국에서도 전후 복구가 완료되고 시설과잉과 경쟁 격화가 나타나자, 저임금 전략이 소득증가와 정부의 지출확대로 시장을 형성하는 케인즈주의 전략을 대체하기 시작했다. 다국적 자본이 서로 상대방의 시장에 침투하고 생산개발비가 높아지고 제품수명이 짧아지면서 전세계적으로 시장에 대한 압력이 커지자, 세계화가 다시 고개를 쳐들었다.

 

중심이 한 국가 위주의 케인즈주의에서 세계적인 성격을 띤 신고전 경제학으로 옮겨가는 것은, 두 세계대전 사이에 자본에 가해졌던 규제의 밑바탕이 허물어지는 것을 뜻한다. 이런 규제는 자본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논리구조에서 보호하는 것으로 발전해왔다. 누구보다도 칼 폴라니(Karl Polanyi)와 조지 소로스가 지적했듯이, 진정한 자유방임 자본주의는 누구도 견딜 수 없는 불안정, 불안과 다름없다. 이 불안정은 결국 체제 재생산 능력을 갉아먹는다. 30년대 미국 경제를 안정시켰던 개혁은 지금 사면초가 상태다. 이 개혁은 사회보장, 은행과 증권시장 규제, 노동법(초과근무에 대해 1.5배의 임금을 지급하라는 규정 따위)와 독점규제법 등이다.

 

자유방임 이데올로기와 정책의 새로운 승리

사회 모든 영역에 대한 자본주의 논리의 공격은, 시민들을 자본주의 축적형태에 충성하도록 만드는 정부의 정당화 기능 가운데 상당 부분을 약화시킨다. 모든 것을 시장을 통해 처리하라는 (대학등록금을 정부가 보조하지 말고, 공적 보조를 폐지하고, 공공주택사업을 중단하고, 의료보호를 시장을 통해 공급하라는) 요구는, 많은 지지를 받고 있는 프로그램에 대한 공격을 뜻한다. 그러나 공공성이 있는 공간 개념과 개인주의적 가치에 대한 시장의 무자비한 공격을 피할 안식처를 연대차원에서 제공하는 것에 대해 공격할 때 갖는 시장주의자들의 자기확신은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것을 뜻한다. 미국이 서비스 공급의 주체를 연방정부에서 주 정부 또는 지방정부로 내려보내고, 한걸음 더 나아가 지불능력이 있는 개인만 이용할 수 있게 유료화하는 추세는 사회통합을 유지하는 최소한의 제한적인 연대의식마저 약화하고 있다. 이런 과정은 세계화와는 무관하다. 이는 노동에 대한 자분의 승리와 그에 따른 시민권의 손상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이다.

 

임금 상승이 물가 상승에 못미친 것이 30년동안이나 계속됐는데도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우두머리가 고용불안이 줄어들고 있어서 이제는 경제성장 속도를 늦춰야 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우리 시대 자본의 승리를 가장 명확하게 보여주는 것이다.6) 진실은 이것이 아니다. 미국 기업들은 지난 91년 이후 물가상승률을 고려해도 이윤이 50%나 늘었지만 직원을 해고하고 대신 새로 뽑는 일을 계속하고 있다. 진보적인 사회정책의 패배와 노조 힘의 약화는 미국 자본주의가 임금을 올리지 않고 실업률을 낮게 유지할 수 있도록 해준다. 상대적으로 일자리가 많아도, 새로운 일자리 대부분은 그전보다 임금이 적은 나쁜 것들이다. 해고된 뒤 새 일자리를 얻은 사람의 평균 수입은 14%나 줄었다.

 

93년에 미국 노동자의 27%는 최저생계비에 못미치는 임금을 받았다. 또 전체 노동자의 3분의 1을 약간 넘는 이들만이 고용주가 보조하는 의료보험 혜택을 보고 있다. 문제는 고도로 위장된 실업과 시간제 노동의 증가만이 아니다. 정규직 노동자 또한 생활에 충분한 임금을 받지 못한다는 사실 또한 문제인 것이다. 가난한 노동자는 더 일을 많이 하면서도 수준이하의 집에 살며, 의료보험 혜택을 보지 못하고 있다. 정규직 노동자의 20%는 퇴직금도 못받고 의료보험에도 가입하지 못한 상태다. 임시직과 시간제 노동이 빠르게 증가하는 것도 불안을 키우는 요소다. 한편, 기업 회장의 평균 수입은, 지난 60년에 공장노동자의 40배였지만 93년에는 149배가 됐다. 자녀가 있는 가정에 돌아가는 복지혜택은 지난 70년 3인 가족 최저생계비의 71% 수준이었는데, 92년에는 40%로 떨어졌고 지금은 더 줄었다. 94년 최저임금의 실질 가치는 지난 50년보다 낮아졌다. 미국의 시간당 실질임금도 지난 68년보다 94년이 낮다. 미국 가정 가운데 가장 잘사는 1%의 재산은 못사는 90%의 재산과 같은 액수다. 77년에서 89년 사이 가장 잘사는 1%는 세금을 뺀 전체 국가 소득의 60%를 차지했다.

 

광고업계의 거인인 사치 앤드 사치사는 최근 보고서에서 투자자들에게 "전통적인 대량소비-중산층 개념이 계속 허물어지고 있는 점"에 비추어 티파니/월마트의 전략을 따르라고 밝혔다. 줄어들고 있는 중산층을 목표로 하는 기업에 투자하지 말라는 이야기다. 가장 잘사는 1%의 수입이 전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지난 79년과 비교해 2배로 늘었지만, 이들의 세금부담 비율은 도리어 약간 줄었다. 비즈니스위크의 마이클 맨들은 이렇게 지적했다. "미국인들은 전에 없던 성장과 불확실성을 동시에 직면하고 있다."7) 주식시장의 호황은 상류층의 소비를 촉진하고 있다. 새로 판매되는 차의 절반 이상이 소득분포로 상위 20%에 속하는 이들이 사는 것이다. 계급분리는 모든 곳에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마르크스 경제학의 핵심이 갈수록 명백해지고 있지만, 공식 경제학은 케인즈이전 정통 자유주의 시대로 돌아가고 있다.

 

세계화가 아니라 자본주의다.

이런 맥락에서, 정부는 이런 추세를 막을 힘이 없다는 주장이야말로 자본의 강력한 무기다. "셰계화"가 정부를 약화시켰다는 생각은 정부가 자본을 규제할 기술적 능력이 여전하다는 점을 무시한다. 돈이 면세천국의 금융센터로 빠져나가는 것은 핵심 국가들이 이를 허용할 때만 가능한 것이다. 만약 미국이 자본이동에 대한 과세정보를 제공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은행들을 처벌하면, 세금천국에 있는 은행 대부분은 문을 닫을 것이다. 세금천국이 생길 수 있도록 규제완화를 주도한 나라들이 바로 선진국이며 특히 미국과 영국이다. 이것은 정치적인 선택이었지 기술적으로 어쩔 수 없어서 한 선택은 아니다.

 

미국은 노동자의 기본권을 주장하면서 임금을 올리고 노동조건을 개선할 수 있는 힘이 있다. (사실 이런 기본권을 약화시키기 위해 온갖 일을 한 것이 바로 미국이지만) 미국이 자유무역이라는 미명하에 기본권 약화 경쟁을 유발한 것은 정치적인 선택이다. 연대와 사회정의의 헤게모니 전망은 전혀 다른 규칙이 필요하다는 점을 제시한다. 힘을 세계화주의자들에게 넘겨준 것은 좌파의 이념적, 조직적 취약 때문이다. 미국 기업주들이 공장을 폐쇄하고 멕시코같은 나라로 옮기겠다고 일상적으로 협박하는 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말은 아니다. 그들은 계속 협박하고 있으며 이런 협박은 현재 미국의 노동규제 상황에서는 효과적이다. 그러나 문제는 원래 국제무역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런 무역이 이뤄지는 정치 환경에 있는 것이다.

 

로버트 블랙번은 그의 새책 '새 세계의 노예만들기'에서 1770년 영국 자본의 33%는 노예착취로 형성된 것이라는 사실을 밝혔다. 새로운 국제노동분업이라고 부를 수 있는 체제하에서 노예들이 쌀, 커피, 설탕 등 많은 유럽인들의 생활수준 유지에 필수적인 제품들을 생산했다. 흥미있는 것은 세계화가 얼마나 세상을 바꿔놨는가가 아니라 자본가 정신과 자본가의 활동이 끊임없이 이어진다는 점이다. 에릭 포너가 썼듯이, "제품을 실제로 생산하는 노동자의 권리는 아랑곳 안하고 소비자들의 욕구와 기업가의 이윤추구만 생각한다는 점에서 보면, 오늘날의 차이나타운 노동착취 공장과 어린이노동 착취를 일삼는 제3 공장이 제국주의 시대 노예제도와 하등 다를 것이 없다."9) 일하는 이들은 언제나 이런 요구에 저항했다. 20세기말의 저항은, 우리를 무력화하려는 "세계화"의 허수아비를 용납하지 않을 만큼은 될 것이다. 체제는 변함없고, 논리도 변함없다. 세계노동자들이 연대해야 할 필요성은 그 어느 때보다 크다. 지금은 이른바 "자유 시장"이라고 불리지만 실제로는 계급의 힘이라 할 수 있는 것의 기본 운동논리에 대한 비판을 그 어느 때보다 명확하게 할 때이다. 우리는 자본을 조절할 필요성을 제기하고, 경쟁력, 자유 시장, 세계화의 요구라고 주장하는 것 등 이념적 구조물에 노동자들을 희생시키는 것을 인정하는 대신 경제가 사람의 요구에 부응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주석>

1) Paul Hirst and Grahame Thompson, Globalization in Question: The International Economy and the Possibilities of Governance(Cambridge:Polity Press 1996).

 

2) See Hirst and Thompson p. 68.

 

3) 지난해 실질 임금 상승분의 20~25%는 첨단기술 업종에서 이뤄졌다. 컴퓨터 소프트웨어 통신 첨단기술판매와 수리업 미디어 각종 정보기술같은 산업이 경제성장을 이끌고 있다. 지난 3년동안 첨단산업분야는 국내총생산의 28%를 차지했는데, 자동차는 단지 4%, 건축은 14%에 불과하다. 게다가 기술전문직 노동자의 소비는 다른 경제분야의 성장을 이끄는 이중의 효과가 있다. Michael J. Mandel "The New Business Cycle," Business Week, 97년 3월31일치.

 

4) Hirst and Thompson, pp. 9~10.

 

5) Robert Zevin, "Our World Financial Market is More Open? If so, Why nad wiht What Effect?" Tariq Banuri nad Juliet B. Schor, ed., Financial Openness nad National Autonomy; Opportunity nad Constraints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1992) pp. 51-2.

 

6) 실제노 노동자들은 계속되는 기업의 소형화를 충분히 인식하고 있으며, 자신들이 일자리를 잃고 소득이 더 적은 다른 직업을 선택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을 우려하고 있다. 위시콘신 대학이 3개월마다 임의의 노동자들을 골라 "앞으로 12달 안에 직업을 잃을 확률이 얼마나 된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한다. 최근 조사에서는 평균 비율이 17.5%였다. 한해전에는 16%였다. Aaron Bernstein "Who Syas Job Anxiety is Easing?" Business Week, April 7, 1997 p. 38.

 

7) Michael J. Mandel "The High-Risk Society," Business Week, October 28, 1996 p. 86.

 

8) "NAFTA: A New Union-Busting Weapon?" Business Week, January 27, 1997, p.4.

 

9) Eric Foner "Plantation Profiteering," The Nation, March 31, 1997 p. 28.

 

번역: 신기섭

2004/07/18 19:19 2004/07/18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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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 진영을 위한 충고

리오 후버만(Leo Huberman)

<먼슬리 리뷰> 1956년 1월호

 

폴 스위지와 함께 먼슬리리뷰의 창간 주역인 후버만이 쓴 `뎁스의 방식'이라는 글의 한 대목입니다. 영향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적당히 타협하고 주장을 완화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듣는 사람이 많아지더라도, 우리가 하는 말이 값어치가 없어진다면 무슨 소용이 있냐"고 묻습니다. 처음의 정신을 지킬 때라야 진보에게는 희망이 있다는 그의 주장은 이 시대에 다시 새겨볼 중요한 지적입니다. (그동안 내 번역에 심각한 오역이 있었다. 글의 뒷부분 “황금의 법칙을 만들어 그를 위해 투쟁하는 세력을 이해할 자질을 젊은 세대들이 갖출 수 있도록...”이라고 번역했던 부분인데, 뒤늦게 바로 잡았다. 그리고 참고로 원문도 찾아 덧붙였다. 2009년 1월30일 수정.) )


 

좌파가 지금처럼 허약하고 산산조각난 현실에서도 우리가 (미국)정치에 중요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우리 자신을 속이는 것임을 아주 현실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의 프로그램을 약간 완화하고 약간은 수용하고 약간은 타협하면, 우리가 다시 힘을 얻을 것이라고 스스로를 속이는 것도 이제 중단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 그것은 파멸의 길이다. 우리의 말에 세상이 귀기울이게 되더라도 우리의 주장이 왜곡되거나 귀기울일 가치가 없게 변질되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

 

대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우리가 무엇을 지지하는지 정직하고 분명하게 말하자. 우리의 신념을 선언하고 가르치자. 어디에서든지. 많은 사람이 모인 곳에서든지, 소수의 사람 앞에서든지. 우리의 운동 규모가 적다고 걱정하지 말고, 운동의 질을 더 생각하자. 연구하자. 열심히 노력하자. 사회주의의 복음을 널리 전하는 투쟁을 벌이자. 황금의 지배를 추구하는 세력을 이해할 자질을, 그리고 또 황금률을 위해 투쟁하는 이들을 이해할 자질을, 젊은 세대가 갖출 수 있도록...

 

이것이 바로 우리의 책임이다. 모호한 태도를 취하지 않고, 일부를 잘라내 버리지도 않고, 겁을 내 피하지도 않으면서, 우리가 본 데로 이야기할 때 이 일을 가장 잘 수행할 수 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의 진실을, 전체 진실을 이야기하자.

 


We must quite realistically face the fact that with the Left as weak and pulverized as it is, we are deluding ourselves if we think we can exert any significant influence on American politics today. Nor should we continue to kid ourselves into thinking that we have only to water down our program a bit, accommodate here, and compromise there--and we will be a force again.

 

Not so. That is the road to our own extinction. For what do we gain if our voice is finally heard again--but the message it proclaims is garbled, or so modified as to be no longer worth hearing?

 

Let us, instead, do what we can do--speak out honestly and clearly for what we stand for. Let us proclaim--and teach--our socialist faith; anywhere and everywhere, to the many or to the few. Let us stop worrying about the size of our movement and think more of its quality. Let us study, let us work hard, let us carry on the struggle to spread the gospel of socialism, so the younger generation will be equipped to understand the forces that make for the rule of gold, and those that strive for the Golden Rule.

 

This responsibility is ours--and we can perform it best by calling the shots as we see them--without hedging, of trimming, of flinching. Let us tell the truth--the whole truth--about the world we live in.

 

'뎁스의 방식'이라는 글 전문을 보려면 여기로. 전체는 꽤 긴 글이다. (저 사이트에는 다섯 페이지로 나뉘어서 실려 있다.)

2004/07/18 19:10 2004/07/18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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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하는 세계 속 국가

리오 파니치(Leo Panitch)

<먼슬리 리뷰> 1998년 10월호

원 제목 =The State In A Changing World

 

리오 파니치 교수가 같은 제목의 세계은행 97년 보고서를 꼼꼼히 분석했습니다. 이 보고서에서 세계은행은 신자유주의의 한계를 극복하면서 세계화를 계속 추진하는 방편으로 사민주의적 색채를 조금 띄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본질은 변화가 없다는 것이 파니치 교수의 분석입니다. 그래서 세계화를 받아들이는 서구 사민주의자들을 강하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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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가지 핵심적인 발전이 우리 시대를 규정하고 있다. 하나는 대중 노동계급 중심의 공산당이나 사민주의당을 만들겠다는 사회주의적인 기획이 역사적인 실패를 겪은 것이다. 다른 하나는 일반적으로 자본의 "세계화"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 둘은 서로 상당히 연관된 것이다. 또 둘은 서로 분리해서 분석해야만 하는 나름의 운동 원리도 지니고 있다.

 

공산주의의 실패가 단지 전세계 자본주의의 힘 때문만은 아니다. 민주적인 권리가 보장되어야 사회주의가 숨 쉰다는 점을 공산당과 공산당 정권이 이해하지 못한 것도 실패의 원인이다. 언론결사의 자유가 없는 일당 독재 밑에서는 노동자들이 지배계급이 되는 방법을 배울 수 없다. 레닌이 제헌의회를 해산한 직후 로자 룩셈부르크가 그를 질책했듯이 말이다. 정치적 자유가 없다면 "수천가지 문제"에 부딪힐 때 혁명적 변화가 뒤따르는 "수천가지 해법"을 만들 수 없다.

 

사민주의는 반대의 실패를 보여준다. 자유민주주의의 조직 형태를 너무 존중한 나머지 "의회사회주의"를 만들어낸 것이다. 그런데 의회사회주의는 선거에서 이기는 방법을 익히는 과정에서 사회 변화의 동력을 잃었다. 일정한 기간동안 개혁된 자본주의를 관리할 수는 있었지만 사회를 변혁시킬 수는 없었다. 그리고는 곧 전망을 잃었고 점차 사회주의자다운 수사조차 버렸다. 20세기 말로 향하면서 우파가 국가관료주의와 사민주의를 성공적으로 결합시킴으로써, 막스 베버가 20세기 초에 지적한 것이 옳았음이 증명됐다. "결국, 지자체나 국가를 장악하는 것은 사민주의가 아니다. 국가가 당을 정복하게 된다"는 그의 지적 말이다.

 

사민주의에서 동력과 전망이 사라진 사실은 근대화와 제3의 길이라는 요즘의 "현학적 유행어" 뒤에 감춰졌다. 좌파가 세계화에 대해 정치적 도전을 시도할 능력을 갖춰야 할 때인 지금, 이런 용어들은 자본주의 세계화에 조응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없다. 이 능력은 세계화의 역사적 흐름을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그래서 구조적 저항 체계를 갖출 때 얻을 수 있다.

 

세계화의 뜻

세계화는 뭔가? 멋스러운 말이기는 한데 정말 뜻하는 것은 뭔가? 이 말에 얽힌 신화와 오해가 너무 많다. 이런 현상은 특정한 흐름을 너무 단순화하고 특정한 발전을 근거 없이 일반화하는 데서 나온다. 어찌됐든, 오늘날 세계화라고 불리는 것에 공통적인 5가지 차원이 있는 것은 사실이며 이는 중요하다. 이 가운데 세가지는 위기 상황이라는 성격을 보여주며, 두가지는 구조적이다. 긴급한 위기상황이라는 성격을 통해 볼 때, 세계화의 의미가 제대로 보인다.

 

(i)자본주의의 공간 확장. 이는 중국과 베트남이 자본주의로 전환한 점, 소련 및 동구권 공산정권이 무너진 것과 직접 관련된다. 중국과 베트남에서는 공산당 간부들이 새로운 부르주아로 탈바꿈하기 위한 기초를 다지고 있다.

 

(ii)신자유주의 시대를 규정하는 자본주의적 생각과 가치가 이념·문화적으로 지배하는 현상. 부르주아는 여기에 맞춰 "자신의 형상으로 세계를 만든다." 마르크스가 이 말을 쓴 150년 전 이래 한번도 비교된 적 없이 말이다.

 

(iii)최근 몇년의 국제적 계급형성 과정. 특히 자본가 계급의 초국가적 통합. 선두에 선 다국적 기업들의 소유주와 이사회의 소재지를 보면 알 수 있듯, 이 과정은 아직 그리 많이 진전되지 않은 상태다. 다음의 것들을 참조하면, 가장 강한 의미에서 세계화를 좀더 결정적이고 구조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iv)세계적으로 나타나는 자본 축적의 새로운 단계. 이는 전후 케인스적이고 브레튼우드적인 질서의 모순에서 시작됐는데, 외국 투자와 무역의 규모와 흐름, 속도가 급격하게 증가하는 게 특징이다. 국제 신용, 외환 유통, 투기, 선물시장, 개인이나 공공의 부채가 훨씬 더 급격한 속도로 형성되는 것도 함께 나타나는 현상이다.

 

(v)국가의 국제화.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이는 국민국가에서 도망치는 초국적 자본의 관점이 아니라 국가가 세계적인 범위의 자본 축적을 조장하고 돕는 일에 날이 갈수록 더 장단을 맞춘다는 점에서다.

 

이 각각의 차원은 주의 깊게 분석할 가치가 있다. 특히 네번째 차원이 그런데, 이 차원은 단지 새로운 단계의 자본의 힘만 단순히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계급 갈등과 인플레와 이윤의 하락에서 생겨난 것이다. 이런 현상은 이전의 "황금시대"가 끝났음을 알리는 것이다. 또 네번째 차원은 대량 실업과 대규모의 빈민화가 이뤄지는 지역뿐 아니라 투자와 무역의 중심지에서도 다시 나타나는 경제 위기의 공격을 받고 있다. 국가의 구실이 본질적으로 뭔지를 이해하려면 이 점을 필히 강조해야 한다.

 

세계화 과정이 새로운 우익의 이념적 보호 아래 출발해서 신고전주의 경제학의 개념적 시각에 따라 작동하고 있기 때문에, 세계화는 국내 및 국제 시장 두쪽에서 국가의 구실을 줄이는 모습으로 표현된다. 세계화 과정의 결과, 계급간 힘의 균형이 변하고 새로운 게임의 규칙이 생기면서 국가의 능동적인 구실은 모호해졌다. 어떤 의미에서 이런가? 먼저 국가 스스로가 계급 관계의 터이기 때문에, 자본의 국제화는 외국 자본이 특정한 지역에 뿌리박는 것만이 아니라 국가 속에 침투해 당사자로 자리잡는 것을 뜻한다. 둘째로, 국가는 시장과 사적 자산 및 계약에 필수적인 기반과 법적인 조건을 만들어가는 일을 계속한다. 셋째로, 국가는 자본 이동과 투자, 외환거래, 무역 등과 관련된 규정을 바꿔 세계적 축적이 가능하게 했다는 점에서 세계화의 실질적인 주창자다. 넷째, 이 과정에서 국가는 경제에서 손을 뺀 것이 아니라 경제와 국가의 관계를 재조정했으며 사회적 주체와 시장을 대표하고 규제하는 개별 정부기관과 이 기관의 구실을 정비했다. 마지막으로 다섯번째, 세계적인 자본 축적의 국제법적인 조건과 기반 구조가 형성되고 유지되는 것은 다름 아닌 국가간 관계를 통해서다. 이 관계란 국제적 합의나 조약, 국제기구를 관리하는 규칙 등을 통해 형성된다.

 

이것들이 자동적으로 작동한다고 이해하면 안된다. 전혀 그렇지 않다. 이는 모두 실험과 실패와 계약과 타협, 긴장과 모순을 통해 생긴다. 여기에 부수되는 긴장과 모순, 계급 투쟁은 국가의 한 지역에서 사라질 수는 있지만 꼭 다른 곳에서 새로운 형태로 다시 나타나게 마련이다. 그래서 우리는 부패와 정치적 매수가 급격하게 느는 걸 볼 수 있는데, 이는 개별 자본가들이 국제 경쟁에서 불확실성과 어려움을 겪게 되면서 그동안 자본 일반에 제공되던 지원금이나 금융 독점, 관세 보호를 특정 정치인을 통해 개별적으로 확보하려 하기 때문이다.

 

세계화의 모순 때문에 신자유주의 우파의 정치·이념적 지도력이 갈수록 허약해지고 있다. 이는 유럽연합 15개 국가 가운데 14개국에서 사회민주당이 정권을 잡은 점에서 잘 알 수 있다. 그러나 클린턴 대통령이 부시와 돌을 이기고도 취한 태도에서 이미 본 것처럼, (대부분의 영역에서 미국 민주당과 더 이상 정책 차별을 시도하지 않는) 유럽 사회민주당들이 모든 차원에서 세계화의 기반을 약화시키는 시도는 하지 않더라도 적어도 신자유주의에 순응하지 않으려 할 거라는 뜻은 아니다.

 

대처만큼 이념적 신념이 강하지도 않고 자본의 힘과 맞서거나 세계화의 대가를 책임지겠다는 생각도 없는 정치인들에게 가장 편리한 것은, 국제 금융시장과 채권 거래 세력이 "우리의 손을 묶어 버렸다"고 변명하는 것이라는 사실은 이미 증명됐다. <이코노미스트>가 95년 10월7일치의 "힘 없는 정부의 신화"라는 중요한 사설에서 지적했듯이, 이런 변명은 "세계적 통합이 이뤄졌어도 각국 정부는 그전에 지니고 있던 경제적 힘을 잃지 않았다"는 사실을 감춘다. "정부가 완화한 장벽이 다시 강화될 수 있고, 뜻만 있다면 정부가 실제로 할 수도 있다. 이를 국가주권이라고 부른다"고 주장하는 <이코노미스트>로서는 "두려운" 가능성이 여전히 있다. "세계적 통합이 중단돼 거꾸로 가는 것"을 막으려고, <이코노미스트>는 정치인들한테 정부가 자본가적 세계화를 지원할 책임이 있음을 공개적으로 선언하도록 요구한다. 또 "(국제무역과 금융의 장벽을 낮추는) 좋은 명분에 (우리의 손이 묶여버렸다는 식의) 나쁜 주장"을 내세우는 걸 중단하라고 요청한다.

 

1997년 세계은행 보고

세계화의 모순 속에서, 국가의 세계화에 대한 물질적·이념적 지원의 성격 변화가 쟁점이다. 세계화는 한계에 도달하지 않았을지 몰라도 신자유주의는 한계에 도달했다. 이것이 바로 세계은행의 1997년 세계개발보고서 <변화하는 세계 속 국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다. 이것은 세계은행의 중요한 개입이다. 세계화를 21세기까지 끌어가려는 전략적인 전망에 따라, 지난 1976년의 유명한 3자 위원회 보고서를 이 보고서로 바꾸려는 것이다. 이번 보고서의 주제는 지난번 보고서의 핵심 주제인 "과잉 정부"와 아주 대조적이다. 지난 보고서는 "최소한의 정부"(새 보고서는 이것이 각국에 너무 과한 조처를 유발했다고 암시했다)를 옹호했지만, 이제 세계은행은 시장을 보호하고 시장의 결함을 해결하는 데 정부의 구실이 크다는 주장을 옹호하고 있다. 이런 관점은 물론 지난 10년동안 사민주의적 지식인 계층이 흔히 외치던 주장의 메아리에 불과하다. 세계화의 사민주의화라고 할 수 있다.

 

세계은행이 전하는 핵심 주장은 "세계화가 안방에서 시작됐다"는 것이다.[12쪽] 세계은행은 정부를 필수적인 "동반자이며 촉매자, 육성자"로 볼뿐만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 "시장은 실효성 있는 재산권 없이는 발전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41쪽] 그래서 세계은행은 "정부 주도 개발"이 실패했다고 해서 "효과적인 정부가 없이는 개발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감춰져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이는 세계은행이 정부의 다음과 같은 긍정적인 구실을 인식하고 있다는 뜻이다. "정부는 시장의 실패를 고치기 위해 시장과 협력해 일하며 (그렇다고) 시장을 대신하지는 않는다.. 정부의 고유한 힘은 세금을 물리고 어떤 것을 금지시키고 처벌하며 참여를 요구할 수 있는 점이다. 정부가 세금을 물릴 수 있기 때문에 공공재 확보에 재정 지원을 할 수 있다. 금지하고 처벌하는 힘 덕분에 개인의 안전과 재산권을 보호할 수 있다. 또 참여를 요구할 수 있기 때문에 무임 승차를 최소화할 수 있다."[25쪽]

 

세계은행의 목표는 "관심을 국가와 시장에 대한 쓸데 없는 논쟁에서 더 근본적인 정부의 효율성 위기 문제"로 돌리는 것이다.[25쪽] 보고서는 효율성을 "시장의 활성화를 돕는" 일종의 공공 규칙과 공공 제도를 개발하는 차원에서 정의한다.[1쪽] 그러나 이는 정부의 입법 기능을 심각하게 고려하는 것 또한 포함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무역과 국경을 넘는 자본의 이동에 대한 규제 완화를 지지하지만, 이는 대부분의 국가에서 주변부화가 아닌 세계적 통합의 많은 선결 조건 가운데 하나에 불과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 보고서는 "무역 자유화가 확산되고 있지만, 93개 개도국 가운데 44개 국가에서 국내총생산 가운데 무역의 비중이 지난 80년 중반보다 90년대 중반에 도리어 줄었다"고 지적했다.[134쪽] 또 보고서는 특히 사하라 남부 아프리카 국가들의 비극을 지적하면서 이들을 "내부에서 붕괴하는 국가"로 봤다.

 

보고서는 선진 서구 자본주의 국가와 관련해서도, 현재의 사회보장 수준을 유지해야 한다는 생각이 15개 유럽연합 국가 모두에서 명백한 다수라는 여론조사 결과를 인용하고 있다.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얻기 위해 사회보장을 줄여야 한다는 의견은 12%에 불과했다. 보고서는 라틴아메리카와 아시아에 대해서도 미국의 반평등적이고 반복지국가적인 여론과 대비하면서 비슷하게 긍정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보고서는 미국의 경우를 예외적인 것으로 취급하고 있다.[111쪽]

 

이런 관점을, 특히 세계은행이 제시할 때는 신자유주의의 묘약 때문에 오랫동안 곤란을 겪은 이들이 상당히 열광하리라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세계화 비판자들은 열광을 잘 조절할 수 있을 것이다. 보고서는 국가가 더 국민에 가깝게 가야 하고 시민사회에 더 의존해야 하며 "사회적 이해관계 전체"를 반영해야 한다는 지적을 아끼지 않는다. 그러나 국가는 소화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베어 물지 말고 자신의 구실을 능력 범위 안에 한정해야 한다는 경고와 조언도 잊지 않는다. 무엇보다, 보고서는 특정한 개혁을 추진하는 것이 쟁점이 될 때는 자신들이 "기본"이라고 지칭하는 것과 정교하게 연결시킨다. "자유 무역, 자본시장, 투자 조직(또는 제도)을 유지하는 것은 경제 성장에 기본적인 것"[48쪽, 강조는 본문] 이라고 주장하면서 말이다.

 

이것이 뜻하는 바는, 보고서가 "안전한" 개혁 곧 자본주의적 세계화의 통합을 방해하는 것이 아니라 촉진하는 능력을 국가가 갖추는 개혁만 언급한다는 점이다. 보고서는 세계 통합 때문에 법인세와 개인의 재산세, 관세를 줄이고 대신 부가가치세 같은 소비세를 확대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합리화한다. 보고서는 외부의 위험에 직면한 개방 경제에 금융시장이 요구하는 재정적자 해소책도 승인해준다. 또 "선한 행위를 촉발하는 또 다른 자극제 (구실을 하는) 국제적인 조약의 규정, 관습"에 맞춰야 할 필요성을 내세우며 이런 조처를 더 강화하고 싶어한다.

 

보고서의 "좋은 정책을 위한 요리법(대안)"과 "나쁜 정책"에 대한 규정은 사실 엇비슷한 것 이상이다. 나쁜 정책은 "이익을 정치적으로 영향력 있는 이들"에게 준다. 예를 들면 “개인에게 예상하지 못한 세금을 비밀리에 부과하거나 경제적 이익을 비밀리에 분배하는" 거시경제 정책이 이런 것이다. 미시경제 정책으로는 "시장이 작동하는 데 제한을" 가하는 것을 꼽는다. 여기에는 "수입 제한"과 "지역독점 특혜"가 포함된다. 반면에 좋은 정책은 인플레이션을 제한하는 데 우선권을 두는 것이다. 세계은행은 인플레를 "고정시키는" 조처를 옹호한다. 중앙은행의 독립성 확보와 "인플레를 사회 평균치보다 더 반대하는 보수적인 이를 중앙은행 총재에 앉혀" 이것을 달성하라는 것이다. "과잉 확장된 국가"에서 후퇴할 수 있게 하는 요소는 "경쟁 시장에 헌신하고 시장의 운영에 걸림돌이 되는 것을 없애려는 의지"다.

 

도시의 병원이나 대학, 교통 분야처럼 정부의 사회간접자본과 사회사업 관련 지출이 집중되는 분야에 대해서조차, 보고서는 극빈층을 뺀 나머지는 스스로 비용을 부담하게 하고 시장이 작동하게 하면 충분히 수요를 채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진료는 (전적으로) 순수하게 사유재이다. ㅡ 정부가 비용을 부담하지 않으면 가장 가난한 이들을 뺀 모두는 스스로 알아서 할 것이다."[53쪽] 지역사회와 각 가정이 허리띠를 졸라매게 하면 더 적은 비용으로도 사회보장을 확대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개발도상국은 서구의 사회보장 수준을 감당할 수 없다는 점 또한 인정하기 때문에, 세계화의 사회적 측면에 대한 세계은행의 우려는 훨씬 더 희석된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 요리책이 신자유주의적 요리책과 뭐가 다른 건가? 다른 것이라면 시장자유화라는 목표를 정부가 사적인 시장을 유지할 관리 능력을 갖추는 것과 연결시킨 점뿐이다. 중요한 분야인 금융에서는 이것이 "통제에서 신중한 조절"로 전환하는 것으로 표현된다. 그래서 보고서가 "거의 보편적인... 금융시장과 금융 분배의 통제를 포기하는 것"을 승인하고 있지만, 또한 "자유화가 탈규제화와 똑같은 것은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금융 조절은 어느 때나 그랬듯 피할 수 없는 것이다. 단지 마음에 드는 쪽에 신용을 몰아주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이제는 목적이 금융체계의 건전성을 지키는 것으로 바뀌었을 뿐이다.[65쪽]

 

규제개혁에는 사유화가 따라야 한다. 보고서는 사유 영역뿐 아니라 공공 영역의 독점도 반대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사유화를 선호하며 특히 공공사업과 사회보험을 사유 영역에 "하청주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나 "성공적인" 사유화는 해고 수당을 넉넉히 줘서 "노동자들의 동의를 얻고", "매력적인 가격"으로 공공에 주식이나 증서를 제공함으로써 시민들의 동의를 얻을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또 "독점시장에서 힘의 남용이 생기기 않도록 확실히 억제하는 규제체계"를 개발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 보고서의 주요 관심사 가운데 하나는 ㅡ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최대 관심사는ㅡ 국가-자본 관계에 따르는 지역적 부패다. 이 보고서를 위해 세계은행은 69개국 3685개 기업을 조사해서 부패가 어느 정도인지와 이것이 투자에 끼치는 해악에 대해 알아봤다. 결과는 "심각하고 예측할 수 없는 부패"가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103쪽] 사법기관의 감시와 처벌을 강화하고 규정을 더 투명하게 만들며, 관리의 재량권을 줄이고 정부 입찰 과정에 경쟁을 도입하는 것 모두가 행정 개혁에 따라 진전된다. 물론 이 개혁은 언제나 "무역에 대한 통제를 낮추고 민간 산업 진입 장벽을 제거하고 경쟁을 촉진하는 방식으로 공기업을 민영화하는 것"과 연관되어야 한다.

 

보고서가 부패와 아주 밀접하게 연관된다고 밝혀낸 요소의 하나는 평균 제조업 임금에 비해 공무원의 임금이 줄어드는 것이다. 보고서는 해결책으로 공공부문 임금 구조의 긴축 완화를 제시했다. 인원을 줄이고 하위직 임금을 억제해 전체 공공부문 임금 예산은 규제하면서 고위 공직자에게는 임금을 더 주는 것이다. 상층부한테는 제 주머니 채우기를 그만둘 만한 물질적인 보상을 하는 것이다. 하위층에 대해 보고서는 "동기를 부여할 수 있는 돈이 아닌 보상 곧 (사회적) 인식, 평가, 특권, 포상, 여기에 덧붙여 적정한 임금과 능력 위주의 채용과 승진의 중요성"을 강조함으로써 "노동자의 헌신"을 확보하는 길을 모색한다.

 

세계화는 진정 "집안에서 시작되고 있다." 세계은행이 옹호하는 더 효율적인 정부를 위한 개혁은 정부 조직의 구조조정과 "재무장관과 중앙은행 총재, 국세청장을 포함한 요직에서" 시작되는 공무원의 책임감 정립에 의존한다. "집행 계통 확립으로 대부분 달성할 수 있는" 이런 기관의 구조조정은 극적인 예산 삭감과 세제 개혁, 가격 자유화, 규제 완화, 약간의 사유화, 그리고 무엇보다 "고립된 전문 고급관료가 주도하는 효율적인 거시경제적 관리체계 확립"을 목표로 이뤄진다. 그러나 완전히 효율적인 정부는 스스로를 이런 "일세대 개혁"에 한정하지 않고 점차로 입법, 사법, 공무원, 노조, 정당, 언론, 국가와 지방정부, 심지어는 사적 영역에 이어 관료 자체를 구조조정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 마지막에는 "규제 능력을 개선, 확장하는 데"까지 나아갈 것이리라. 이는 보고서가 "공공 영역의 중간 관리에 많이 의존하는 기구 조직의 개발"이라고 본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세계화를 지원하는 국제기구가 스스로의 기능을 국가를 넘어서거나 대체하는 것으로 보지 않고 특정한 국가 구조조정을 보장하는 것으로 본다는 점을 뜻한다. "자체 개혁의지가 없이 외부의 지원만으로는 얻을 것이 별로 없는"데도, 세계은행은 국제기구의 구실을 전문적 조언과 금융지원에서 더 나아가 "개혁을 되돌리기 어렵게 만들어서 각국이 외부에 의지하도록 유도하는 구조"를 구축하는 것이라고 계속 강조한다.[15쪽] 여기에는 국제 상업조약이나 외환조약이 포함된다. 이 조약을 통해 국가는 "스스로 규제하는 법규 곧 정책 내용을 특정하게 규정하는 동시에 정책을 되돌리려면 큰 대가를 치르게 하는 구조에 각국을 묶는 법규"에 따르게 된다.

 

결론: 그리기

자크 들로르(Jacques Delors)부터 토니 블레어까지 오늘날 사민주의 정치인들은 진보적인 사회 가치를 지키면서 세계화에 발맞출 수 있는 방안을 과제로 제기하고 있다. 자크 들로르 자신의 "사회 헌장"의 운명과 세계은행 보고서의 교훈은, 통화 단일화가 추진되는 유럽에서 좌파가 이 과제를 제기하는 것 자체가 잘못됐음을 보여준다. 국제조약의 노동권, 환경보호 관련 부속 합의서에 집착하는 것은 기껏해야 세계은행이 주창하는 두번째 순위의 정부개혁을 강화시켜줄 뿐이다. 당면한 우선 순위의 과제는 여전히 자본주의적 가치가 전세계 구석구석과 인간 생활의 모든 면에, 또 국가-사회 관계의 모든 차원에 침투하도록 조장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최소한의 국가'가 아니라 더 효율적인 자본주의 국가가 필요하다는 세계은행의 인식을, 갈수록 사민주의도 지지하고 있다. 사민주의는 전세계적인 경쟁을 언젠가 극복해야 할 족쇄라고 보는 대신 정부가 내세울 목표로 받아들이고 있다. 물론 사민주의는 아직 자유민주 제도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지만 더 폭넓은 민주적인 전망을 잃었다. 사회주의자들은 이 전망이 있었기 때문에, 경쟁 원칙 대신 협조 원칙에 따라 사회를 건설하는 데 이런 제도를 이용하도록 했다.

 

사민주의의 세계화 수용 정도가 계속 강해지면서, (지금 벌어지고 있듯이 동유럽의 과거 공산주의자들을 끌어들이는) 서유럽의 사회민주주의는 엄청난 실업 사태에도 아랑곳 않고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위한 사회복지 감축을 단행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게다가 직업훈련이라는 새로운 "화물 숭배" ("직업훈련을 시키면 일자리가 생길 거다")까지 퍼뜨리고 있다. 이것은 길거리의 노숙자 문제를 접근할 때, 자본주의 체제에 뭔가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는 시각에서 보지 않는 것이다. 대신 노숙자가 일자리를 찾을 수 있을 만큼 동기를 부여받지도 기술을 익히지도 못했고 사업가적 의식도 없다는 시각에서 보는 것과 같다. 도덕적으로 첫번째 시각에서 시작하지 않는 가치체계에는 사회주의적 요소란 거의 없다.

 

"성공"을 위해 수출 경쟁력에 더 의존하는 사민주의 경제전략에 대해서는 거론할 것이 거의 없다. 이런 전략은 필연적으로 뒤따르는 윤리적 딜레마 곧 성공적인 국가는 그렇지 못한 나라에 실업을 수출하는 꼴이라는 점을 무시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세계화에 잠재한 위기 또한 무시한다. 이 위기는 두가지 측면 곧 모든 이들이 수출을 늘리면서 수입은 억제하는 체계에 필연적으로 따르는 과잉생산 측면과 이런 체계의 자유 변동환율에 장단을 맞춰 이동하는 자본 때문에 생기는 금융 불안정 측면에서 발생한다.

 

지난 10여년동안 사민주의 지식인들은 동아시아 국가들을 예로 들면서 국가 기능의 최소화를 요구하는 신자유주의에 대항했다. 동아시아 국가는, 효율적인 시장을 만들려면 국가가 경제에 적극 개입해야 한다는 점을 증명했다고 이들은 주장했다. 이 과정에서 동아시아의 정부와 시장의 관계를 특징짓는 "정실 자본주의"적 성격은 말할 것도 없고, 계급적 성격조차 보통 감춰졌다. 세계은행 보고서도 동아시아 국가를 세계화에 "성공적으로" 통합한 전형으로 꼽았다. 이 지역에 심각한 금융위기라는 먹구름이 몰려들고 있는데도 이렇게 추켜세운 점은 이 보고서를 상당히 엉터리로 보이게 하는 것이다. 어찌됐든 보고서의 핵심ㅡ자유화를 위해서는 규제가 필수적이다는 주장ㅡ은 앞으로도 국제금융과 관련해 더 자주 거론될 것이다.

 

세계은행 보고서가 지난 7월 토론토에서 발표될 때 인디아의 민간단체를 통해 자수 생산을 하고 있는 여성들 비디오가 상영됐다. 이 비디오에서 여성 노동자 대표는 "여성이 단순히 생산자가 아니라 소유자, 관리자가 되는 상황"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당연히 발표회에서는 누구도 이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래전부터 존재하던 진정한 민주주의에 대한 이런 영감은 세계은행 보고서가 촉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오직 세계화의 모순을 밝혀서 이 시대에 침투해있는 자본의 힘에 도전하는 새로운 사회주의 세력이 등장할 때만 촉진될 것이다.

 

이것을 목표로 삼는 새로운 정당과 운동의 등장은, 세계화가 만들어내는 필연적인 충돌 때문에 충분히 가능하다. 이런 세력이 등장하면, 이들은 적어도 세계은행 보고서에서 몇장은 취하고 싶어할 것이다. 세계화의 대안을 만드는 것은 국내에서 꼭 시작되어야 한다는 인식과 관련된 부분만큼은 말이다. 물론 이런 세력들간의 국제적인 협조의 확대도 필요할 것이다. 각자 특정한 나라에 속하고 있지만 이런 운동이나 정당은 국경을 넘어 서로를 격려해야 할 것이다. 한 나라의 성공은 또 분명히 비슷한 운동 때문에 변화되는 다른 국가에 영향을 끼칠 것이다. 그런데 이런 운동은 자본의 움직임을 효과적으로 통제하기 위해 꼭 필요한 국가간 협력을 가능하게 한다. "사회에 장기적인 전망을 내놓고 국민들에게 구조조정의 즉각적인 고통에 집착하지 않고 더 멀리 보게 함으로써, 자국민들에게 다른 대안을 제시한"[14쪽] "앞을 내다보는 정치 지도자들" 곧 자본주의 세계화의 공헌자들에게 세계은행이 보내는 찬사도 눈여겨볼 가치가 있다. "사물의 운동방식에 대한 명확한 전망과 이 전망을 현실로 바꾸려는 전염성 있는 의지가 있는" [144쪽] 자본주의 정치지도자가 더 늘도록 만들고 싶어하는 세계은행에 대항해, 21세기의 새 세대 사회주의 정치지도자들을 육성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이들은 세계은행이 지적한 바로 그 자질과 능력을 갖춰야 하겠지만, 그러나 이런 능력을 세계은행이 목표로 삼는 것과 전혀 다른 구조개혁을 위해 사용하는 이들이어야 한다. 이 새로운 사회주의 정치지도자들의 목표는 정부를 자본주의세계화가 아니라 협력과 탈상품화, 민주주의의 촉진제로 변화시키는 것이어야 한다.

 

번역: 신기섭

2004/07/18 19:07 2004/07/18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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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진보 진영의 글을 번역해 공개하는 걸 주 목적으로 하지만 요즘은 잡글이 더 많습니다. marish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