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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와 전쟁'의 숨은 뜻

로이크 와캉(LOÏC WACQUANT)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1999년 4월

원 제목 = 미국이 '얄짤없음'을 수출하다. 형사 문제의 '상식'이 유럽에 도달하다.

 

범죄와(의) 전쟁의 숨은 뜻이라니? 설마 여기에까지 음모가 숨어있을까? 만약 이렇게 생각하신다면 당신도 아주 순진한 사람입니다. 이 글을 읽기 전의 저처럼 말입니다. 프랑스 사회학자가 쓴 이 글은 80년대부터 미국을 휩쓴 '범죄와(의) 전쟁'의 이념적 배경을 신자유주의라고 지적합니다. '바늘 도둑이 소 도둑된다'는 속설에 근거해,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의 사소한 비행을 결코 용납하지 않는 것이 다름아닌 이 전쟁의 본질입니다. 가난을 범죄시하는 이 '얄짤없음'(zero tolerance)은 필연적으로 저소득층에 대한 사회복지 축소와 연결되어 있음을, 이 글은 신자유주의 이론가들의 주장을 제시해서 보여줍니다. 이 얄짤없음을 미국이 유럽에 적극적으로 수출하고 있으며, 신자유주의와 함께 이제 전세계로 퍼지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도 '범죄와(의) 전쟁'은 낯선 것이 아니쟎습니까? 아마 제가 그동안 번역한 글 가운데 이 글처럼 오역이 많은 것도 없을 겁니다. 프랑스어 특유의 만연체를 그대로 '살린'(?) 영어 번역과 한달을 씨름했지만 여전히 번역이 엉터리 투성이입니다. 꼭 영어를 대조하면서 읽으세요.

 

 


 

미국이 얄짤없음을 수출하다 (US EXPORTS ZERO TOLERANCE)

-형사 문제의 `상식'이 유럽으로 유입되고 있다 (Penal 'common sense' comes to Europe)

로이크 와캉 씀(저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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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우연의 일치일까? 거대 산업, 금융 기업간 합병이 미국과 유럽을 휩쓸고 있고 정부는 이에 무관심한 것처럼 보여지는데, 정치 지도자들은 온통 범죄를 “거꾸러뜨리는“ 새로운 방안을 고안해 실행하는 데 경쟁을 벌이고 있다. 주류 언론은 “도시 폭력“이 사회 불안정이 일반화하면서 나타난다는 사실을 종종 잊은 채, 편견에 사로잡혀 폭력이 사회를 위협한다고 규정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대책으로 보통 제시되는 것의 상당수는 ('얄짤없음', 야간 통행금지, 범죄자 가족에 대한 사회보장 중지, 소수 계층에 대한 억압 강화) 미국의 모형에서 영감을 얻은 것들이다. 그리고 미국에서 그랬듯, 이런 대책들은 사회 통제의 확대로 이어지는 경향이 있다. 이 통제 확대는 투옥의 폭발적 증가와 얽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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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몇 년동안 도덕적 공황이 유럽 전체에서 분출됐는데, 그 범위나 해악성으로 볼 때 정부 정책의 방향을 바꾸고 장기적으로 이에 따른 사회구조 개편을 유도할 힘이 있다. 이것의 명백한 대상은 - 대중적 논쟁을 정도 이상으로 만들어 내는 경향이 있을 정도로 명백하지만 - “젊은이“의 비행과 “도시 폭력“, “과민한 이웃“들이라는 토양에서 자라나는 혼란이다. 여기에 주민들이 가장 큰 희생자인 동시에 범인인 “무례함“도 있다. 꼭 인용 부호를 써서 표현하도록 신신당부해야할 용어들이 너무 많다. 용어가 지칭하는 현상만큼이나 그 뜻이 모호하기 때문이다. 그 현상이란, '젊은이'에게 또는 어떤 특정 '이웃'과 특별히 관련된다고 증명되지 못한 것들이다. '도시'적인 것은 더하다. 하지만 이런 용어들은 자명한 듯하다. 정치인의 발언을 과장시키고, 일간지를 가득 채우며 텔레비전을 공습한다.

 

이런 개념들은 현실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했거나 현실에 이미 형성되어 있던 것이 아니었다. 이것은 용어의 성찬(화려함)의 한 부분이며, 범죄, 폭력, 정의, 불평등, 책임감과 관련돼 미국에서 수입한 개념이다. 범죄니 폭력이니 하는 것들은 유럽의 논의 속으로 스며들어서 이 논의의 틀과 핵심이 되어 버렸다. 또 이런 문제들이 모든 곳에 나타나고 특권을 얻을 수 있게 된 것은 이 것의 기원(미국) 덕분이다. (1) 이런 용어와 범죄, 폭력 같은 것들이 낯설지 않게 되면서, 이것이 겉으로는 이른바 `국가의 임무를 다시 규정하는 것'과 관련된 듯 하지만 사실은 거의 관계가 없는 이해 관계가 감춰진다. 한편 국가의 임무를 어떤 방향으로 다시 규정할 지에 대해서는, 경제 영역에서 물러나되 사회적 기능을 축소하고 형사상의 개입을 강화하고 확대하는 방향이 되어야 한다고 곳곳에서 주장하고 있다.

 

너무 오랫동안 부드럽고 느슨했던 아버지처럼, 유럽 복지 국가는 앞으로 “날렵해지고 중용을 지키며“ “덩치를 줄이고“ 무법적인 무리들을 심하게 대하는 식으로 변해야 할 의무를 지니게 될 것이다. 여기에는 “안전“을 공공 활동의 최대 우선 순위로 올려놓는 것이 뒤따른다. 여기서 말하는 안전이란 인생의 위험(직업, 사회, 의료, 교육 등의 위험)이 아니라 아주 좁은 물리적 의미로 엄격하게 제한된다. 이는 경제적 국가를 쇠퇴시키고 사회 국가를 축소하고 훼손하며 형사적 국가 기능을 확장하고 찬양하는 것을 뜻한다. 곧 시민의 “용기“와 정치적 “현대성“, 심지어 (제3의 길이라는 이름으로 팔리는) 진보적 대담함은 이제 사람들에게 법과 질서라는 완전히 낡아빠진 진부한 문구와 조처를 받아들이도록 요구한다.

 

우리는 공공 제도와 그 집행기관, 산만한 지지 여론의 긴 연결고리를 하나씩 하나씩 재구성해야 한다. 이 고리 덕분에, 가난을 범죄시하는 (그래서 불안정한 임금노동을 당연하게 만드는) 새로운 상식이 미국에서 자라나 전세계적으로 번지고 있다. 이 상식의 세계화는 다소간 변형되고 (가끔은 이를 선전하는 사람들조차) 오해한 형태를 띠는데, 개인주의와 상품화에 기반하되 '정의'라는 영역에서 이 두가지를 변환하고 대체하는 경제적, 사회적 이념이라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맨해튼, 새로운 형사적 이성의 도가니

(Manhattan, crucible of the new penal reason)

워싱턴과 뉴욕에서 시작된 광대한 유포망은 대서양을 넘어 영국에 뿌리를 내렸다. 또 여기서부터 통로와 모세혈관을 확장해 유럽대륙과 그 너머로 퍼진다. 이 움직임의 키를 잡고 있는 것은 “형사적 가혹함“을 이행하고 본을 보이도록 정식으로 위임받은 미국 정부기관들의 복합체다. 여기에는 연방법무부와 국무부(외무부)가 포함된다. (이 기관들은 외국에 있는 대사관을 통해 초강경 범죄억압정책을 다른나라에 전도하는데, 특히 마약에 대해 심하다) 또 경찰과 교도소와 연결된 준공공적인 협회와 특정직업협회도 포함된다. 물론 언론과 감옥시설 관련 업계 기업도 빼놓을 수 없다. (감옥 시설, 교도소 건강관리, 건축, 보안기술, 보험, 금융 등등 관련 사기업이 이런 기업이다.) (2)

 

그러나 다른 많은 분야가 그렇듯 이 분야에서도 민간이 “공공 정책“의 구상과 실행에 결정적인 구실을 한다. 실제로, 신보수주의 두뇌집단이 현저한 구실을 하는 점과 이를 뒤따르는 형벌 위주의 새로운 억견 (doxa; 철학용어로 허상을 가져다주는 감각적 인식이란 뜻임. 臆見 : 번역자)의 국제화를 보면, 정부의 사회 부문의 축소와 형사 관련 정부 기구의 전개가 이념적으로나 실질적으로 유기적 연관을 맺고 있다는 사실이 선명하게 나타난다.

 

실로, 이 두뇌집단과 재단들은 75년부터 85년까지 레이건과 새처(대처) 정권 아래서 경제, 사회 분야의 케인즈적 개념과 정책의 기반을 약화시키는 데 공을 들여 “진정한 자유주의“가 강림할 길을 닦았다. 이어 10년이 지난 지금 형사기구의 확립을 정당화하고 촉진하기 위해 고안된 개념과 원칙과 조처를 정치계와 언론계의 엘리트들에게 주입하는 통로 구실을 혼자 도맡아 지루하게 실천하고 있다. 어제는 자본의 특권과 노동의 이용을 위해 “작은 정부“를 지지하는 데 나섰고 즉각적으로 성공을 거뒀던 바로 그 정당, 정치인, 학자, 교수들이 오늘은 “ 정부“ 요구 목소리를 점점 높이고 있다. 극악한 사회적 결과를 감추고, 임노동의 규제완화와 사회 안전의 저하라는 사회적 밑바닥 공간에만 그 영향이 제한적으로 미치도록 하는 것이 이들의 의도다.

 

미국쪽에서는 (아메리칸 기업연구소, 카토연구소 헤리티지재단보다) 맨해튼 연구소가, 알렉시스 드 토크비유가 이미 “우리 대도시의 가장 천한 무리들“이라고 부른 이들이 부추긴 “혼란“을 억압하기 위한 논의와 정책을 대중화했다. (새처의 조언자) 앤서니 피셔와 (레이건 시절 중앙정보부장이었던) 윌리엄 케이시가 사회문제에 시장원리를 적용하기 위해 세운 이 연구소는 1984년 <잃어가는 기반>이라는 책을 내놨다. 찰스 머레이가 쓴 이 책을 복지국가에 대항하는 레이건의 십자군들이 “성경“으로 여겼다. 이 책은 자료를 잘못해석해 미국에서 가난이 늘어나는 것은 가난한 이들에 대한 과도한 지원 정책 탓임을 “보여줬다.“ 이들을 지원하는 건 나태함을 보상하는 것이며 하층계급의 도덕적 타락을 유발한다고 이 책은 주장한다. 특히 “도시의 폭력“을 포함한 모든 현대 사회 악의 근원이라는 “위법행위“를 부추긴다는 것이다.

 

맨해튼연구소는 곧 미국 신우파의 최고 “아이디어 공장“이라고 칭송받았다. 이 신우파는 자유시장, 개인의 책임, 가부장적 가치라는 3폭 병풍 주변에 뭉쳤다. 1990년대초 이 연구소는 “삶의 질“에 관한 회의를 주관했다. 이 회의의 핵심 주장은, `공적 공간의 신성함'은 도시 생활에서 없어서는 안되는 것이며, 반대로 가난한 계층이 즐기는 “무질서“는 범죄의 자연스런 온상이라는 것이다. 이 “토론“의 참가자들 가운데는 유명인이 된 뉴욕시의 검사인 루돌프 지울리아니가 끼어있다. 그는 이 회의 직전 시장 선거에서 흑인 민주당원 데이비드 딘킨스에게 졌고 이 회의의 주제를 93년 선거운동에 써먹으려던 참이었다. 특히 지울리아니는 이 토론에서 경찰과 범죄 정책에 대한 권고원칙을 끌어냈다. 이 원칙이라는 것은 뉴욕을 “얄짤없음'이라는 교리의 세계적인 전시장으로 만들만한 것이다. 그런데 이 교리는 법과 질서의 세력에게 사소한 범죄를 사냥하고 집없는 이들을 빼앗긴 이웃으로 내몰 백지수표를 준다.

 

1982년 제임스 Q 윌슨과 조지 켈링이 <애틀랜틱 먼슬리> 잡지에 실은 기사에서 정식화한 “깨진 유리창 이론“을 대중화한 것도 역시 맨해튼연구소다. “바늘 도둑이 소 도둑된다(달걀 도둑이 소 도둑된다)“는 항간의 격언에서 뽑아낸 이 이론이라는 것은 일상의 작은 무질서를 낱낱이 깨야만 도시범죄의 병리학이라는 큰 문제를 뿌리뽑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맨해튼연구소의 시민주도권센터가, 이 센터는 “도시 문제에 대한 창조적이고 자유시장적인 해결책을 연구하고 널리 알리는 것“이 목적인데, 조지 켈링과 캐서린 콜스의 책 <깨진 유리창 고치기: 우리 사회에서 질서를 회복하고 범죄를 줄이기> (3) 발간에 돈을 대고 홍보를 맡았다. 이 이론은 경험적으로 유효성이 증명되지 못했지만, 뉴욕 경찰서장 윌리엄 브래튼이 촉발한 경찰 업무 재편의 범죄학적 알리바이(핑곗거리: 번역자 주) 구실을 했다.

 

이 재편의 주된 목표는 주 유권자인 중산층과 상류층의 두려움을 완화시키기 위해 공공 공간(거리, 공원, 역, 버스, 지하철 등등)의 저소득층을 계속 괴롭히는 것이다. 이 목표를 위해 3가지 방법이 동원됐다. 경찰 인력과 장비를 크게 늘리고, 자치 행정구 책임자에게 일정한 목표를 주고 운영책임을 넘기며, 경찰 병력을 즉각적으로 상황에 따라 대처할 수 있게 해주는 컴퓨터 감시체계를 도입하는 것이 3가지다. 이 결과, 법집행의 융통성이 없어졌는데, 특히 사소한 불편에 대해 그렇게 됐다. 주정을 부리는 행위, 소란을 피우는 것, 구걸, 호객행위와 켈링의 표현대로 라면 “집없는 이들이 관련된 기타 반사회적 행위“ 등이 이런 것들이다.

 

국내외 언론은 물론 시 관료들도 이 새로운 정책 덕분에 최근 몇년동안 뉴욕시의 범죄율이 줄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두가지 명백한 사실은 무시했다. 첫째는 범죄율이 줄어 들기 시작한 것은 이 전술을 도입한 것보다 3년 앞선다는 사실과 이런 조처를 도입하지 않은 도시에서도 범죄율이 줄었다는 사실이다. 맨해튼연구소가 미국 동부지역의 고위 정치인, 언론인, 자선기관과 연구재단을 계몽시키기 위해 1998년 마련한 유명한 “점심 포럼“의 “강사“로 초청된 인물 가운데는 도시 경찰 문제의 “국제적인 자문위원“으로 격상된 윌리엄 브래튼이 포함됐다. 브래튼은 “범죄가 유행병같이 번지는 흐름을 뒤바꿨다“는 명성을 얻으면서 자신의 자서전으로 떼돈을 벌었다. 이 책은 “얄짤없음“이라는 새로운 사도신경을(신조를) 세계 방방곡곡에 설교하는 것이다.(4) 이 설교는 이를 더없이 반기고 스스로 이 신조의 유럽정복 기지가 된 영국에서 시작됐다.

 

런던, 거래의 중주이며 변신의 산실

(London, trading post and acclimatisation chamber)

영국쪽에서 아담스미스연구소, 정책연구센터, 경제문제연구소(IEA)가 합작해 경제와 사회 문제에 관한 신자유주의 사상을 퍼뜨렸다.(5) 물론 이들은 이에 앞서 미국에서 고안된 형사처벌 위주 정책을 퍼뜨리고 이런 정책을 존 메이저 정권이 도입하도록 만들었다. 이 정책은 나중에 토니 블레어 정권이 더욱 확장하고 강화했다. 예를 들면, (맨해튼연구소와 마찬가지로 프리드리히 폰 하이에크의 격조놓은 지원을 받아 앤서니 피셔가 설립한) 경제문제연구소는 1989년 하반기에 루퍼트 머독이 제창한 가운데 찰스 머레이의 “사상“ 에 관한 몇번의 모임을 주선하고 책을 출판했다. 머레이는 이 때를 영국에 복지예산을 극적으로 삭감하도록 호소하는 기회로 삼았다. 이를 통해 소외당하고 방탕하며 위험한 저소득층 곧 이른바 “하층민“(underclass)이 영국에서 나타나는 것을 막으려했다. 이 “하층민“은 1960년대 “가난과 맞서는 전쟁“의 하나로 이뤄진 사회 대책 완화를 틈타 미국도시를 “황폐화“한 세력이라는 비난을 받는 무리들의 사촌뻘이다.

 

곧 이어 이를 칭찬하는 기사가 영국 언론에서 쏟아져나오기 시작했다. 또 이를 뒤따라 머레이의 책이 줄줄이 나왔다. 머레이는 이 책들에서 “본질적으로 야만인인 젊은 흑인“에 대응하기 위해 “문명화를 촉진하는 결혼의 힘“을 중시할 필요성을 조명하고 있다. 당시 노동당에서 복지를 담당했고 지금은 블레어 정권의 복지개혁 담당 장관인 프랭크 필드의 헌장이 이와 나란히 나왔다. 이 헌장이란 독신 여성이 아이를 갖지 못하게 하고 남성들에게 바람을 피워 낳은 아이들에 대한 재정 책임을 지도록 하는 정책을 옹호하는 것이다.(6) 이쯤에서 미국 우파 가운데 가장 반동적인 세력과 스스로 전위적이라고 주장하는 유럽의 “신좌파“간에 형성된 강한 공감대를 확인할 수 있다. 이 공감대란 “가치가 없는 저소득층“은 정부의 (철의) 손의 관리를 받아야하며 그들의 행동을 공개적으로 비난하고 행정적으로 규제하며 형사적으로 제재해서 교정해야 한다는 생각을 중심으로 형성된 것이다.

 

1994년 머레이가 다시 공격에 나섰을 때, “하층민“이라는 개념은 영국정부의 정책 용어속에 이미 굳건히 자리잡은 뒤였고 1989년에 머레이가 한 암울한 예측이 맞았다고 청중들을 믿게 하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그 예측이란, “불법“과 “의존“과 범죄가 알비옹(영국의 옛 이름)의 새로운 빈민들 사이에서 함께 증가했으며 이 3가지는 서구 문명을 일시에 사멸시킬 위협 요소라는 것이다.(7) 1995년에는 그의 이념적 동지인 로렌스 미드의 차례가 왔다. 뉴욕대학의 신보수주의 정치학자인 미드는 영국에 와서, 정부가 저소득층에 대한 물질적 지원을 당장 끊는다면 정부가 저소득층에게 (표준 저임) 노동이라는 요구를 지움으로써 도덕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된다고 설명했다. 이 것은 토니 블레어에게 종교적 규범이 된 “시민의 의무“의 주제가 돼, 정부의 지원에 “의존하는“ 개인에게 사회 및 노동법의 예외적인 조건으로 임금노동을 강요하는 제도를 정당화하는 데 쓰였다. 이 제도는 미국에서 1996년에 도입됐고 영국에는 3년 뒤에 나타났다.(8)

 

가난한 이들에게 행동지침을 강요하는 가부장적 국가는 형벌 국가가 될 수밖에 없다. 1997년 경제문제연구소(IAE는 IEA의 잘못인듯: 번역자)가 찰스 머레이를 다시 불러들였다. 이번에는 정치 관료와 엄선된 언론인들을 청중으로 삼아, “교도소내 노동“이라는 개념을 내놓고 이 교정활동이 신중하게 고려된 사회를 위한 이로운 투자라고 선전했다.(9) 머레이가 이 연구소를 방문한 몇달 뒤 연구소는 전 뉴욕시 경찰청장 윌리엄 브래튼을 초청해 심포지엄이라고 치장된 언론인 대상 콘퍼런스를 열어 “얄짤없음“이라는 개념을 선전하게 했다. 이 모임에는 영국 고위 경찰관료들도 참여했다. 얄짤없음은 사실상 미국과 마찬가지로 영국에서도 나타난 빈곤의 범죄시에 따른 구속 남발 현상의 필수적인 보완책이다. (영국의 죄수는 단 4년만에 50%나 늘었고, 미국은 15년동안 3배로 늘었다.) 이 모임에서 사람들은 “영국과 미국 경찰이 공감대를 확대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공감대란 “형사상 행위와 쓰레기 버리기, 악습, 낙서, 파괴행위같은 준형사상 행위가 더 심각한 범죄로 발전하지 못하게 단호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모임은 <얄짤없음: 자유사회의 치안 유지>라는 책의 출판으로 이어졌다. 이 책의 제목은 이런 사고방식의 정치철학을 요약하는 것이다. “자유“는 세금과 고용에 대한 (신)자유주의적이고 비간섭주의적인 “상층“을 뜻하며 노동계급의 공적 행위와 관련된 모든 것에 대해서는 개입하고 융통성없는 “하층“을 뜻한다. 이는 한편으로는 널리 퍼진 저고용상태와 불안정한 노동, 다른 한편으로는 사회보호체계의 축소와 공공 서비스의 빈곤에 얽매인 것이다. 토니 블레어 정부의 전문가들과 각료들에게 널리 퍼진 이런 관념은 범죄와 무질서에 관한 1998년의 법률에 곧바로 반영되었다. 이 법은 2차 대전이후 청소년 비행에 대한 가장 억압적인 법이다. 이런 조처의 목표가 모호해지는 것을 피하기 위해 영국 총리는 다음과 같은 솔직한 말로 “얄짤없음“에 대한 지지를 정당화했다. “사소한 범죄를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고 선언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기본 법칙은 그래, 거리의 노숙자들을 용납하지 않는 것이 옳아라고 말하는 것입니다.“(10)

 

미국의 신보수 두뇌집단이 퍼뜨린 이런 생각과 조처가 바로 영국에서 유럽 전체로 퍼져나갔다. 그래서 요즘 유럽 관료들이 “보안“에 대해 의견을 제시할 때는 “미국산“ 슬로건 몇마디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자국에 대한 자긍심 때문에 “프랑스어, 스페인어 또는 독일어 등등“으로 표현하기는 하지만, 그 슬로건이란 이런 것들이다. “얄짤없음“, 통행금지, “청소년 폭력“에 대한 신랄한 비난, 사소한 마약 범죄자를 표적으로 삼기, 연소자와 성인의 법적 경계를 허물기, 상습 청소년 비행자 구속, 법률 관련 서비스의 사유화 등등.

 

수입업자들과 협력자들

(Importers and collaborators)

“존중할 가치가 없는“ 빈민에 대한 사회의 도덕적 패권주의를 재 확인하고 (준)프롤레타리아를 새로운 노동시장의 규칙에 굴복시키기 위해 미국에서 꾸며낸 이 “법과 질서“라는 주제가 외국으로 잘 팔려나가는 것은 수입하는 나라의 정부기관이 동의했기 때문이다. 이 동의는 다양한 형태를 띠는데, 토니 블레어가 강경외교론에 몰두하는 것부터 리오넬 조스팽이 창피스럽게 이를 받아들이면서도 어설프게 이를 부인하는 태도를 보인 것까지 여러가지다.

 

그래서 새로운 형벌주의적 에토스를 확산하는 이 초국가적 기획의 주동자들에 유럽국가의 지도자와 관료들도 포함시켜야 한다. 이들은 (“자유“) 시장과 이에 필수적인 작은 (사회) 정부의 이익에 귀의한 뒤에 질서를 “회복한다“는 사명을 추종하는 이들이다. 정부가 공장을 유치하고 일자리를 창출하기를 포기한 바로 그 지점에 정부는 대신 경찰서를 세울 것이다. 아마 나중에 교도소를 지을 것을 기대하면서. 경찰과 형사기관의 확장은 노동세계의 거부를 감시함으로써 일자리를 창출하는 데 기여할 수도 있을 것이다.: 늦어도 1999년말까지는 프랑스의 `예민한 이웃들'에게 달려갈 2만명의 “보조 보안 관료“와 1만5천명의 “지방 조정관“들은 조스팽 정부가 약속한 “청소년 일자리“의 10%는 족히 될 것이다.

 

경찰과 감옥에 의지하는 선진 신자유주의 사회의 확대된 임무에 맞춰진 단호하게 공격적인 처벌이라는 미국식 도구를 수입한 나라들은 이런 도구를 단순히 받아들이는 데 만족하지 않는다. 이들은 종종 이런 도구를 자신들의 주도권을 위해 빌려 쓰되, 언제나 자신들의 필요와 국가 전통에 맞춰 변형시킨다. 이 변형이 대서양 너머에서 최근 몇년동안 크게 늘어난 “연구 사업“의 목적이다.

 

구스타브 드 보몽과 알렉시 드 토크비유가 1831년 봄 “감화소(교도소) 체계의 고전적인 땅“으로 여행을 떠난 자취를 따라, 유럽의 선출직 관리들과 고위 공무원, 형벌학자들은 주기적으로 뉴욕, 로스앤젤레스, 휴스턴으로 순례를 떠나고 있다. 이들의 목적은 “미국식 규칙의 신비를 꿰뚤어보는 것“이며 이들의 기대는 자신들의 고국에서도 내부 작동의 “감춰진 원천“을 깨워 활성화 하는 것이다.(11) 그래서 사설 교도산업 분야에서 세계를 이끄는 미국이라는 교정기업의 후한 재정지원을 받은 이 임무 덕분에, 내무위원회 우두머리 에드워드 가디너 경이 사설 교도소의 미덕을 발견하고 영국에서 감옥의 이윤화 흐름을 이끌 수 있었다. 그는 나중에 떠오르는 황금시장인 교도사업에서 경쟁하는 주요 기업 가운데 한 곳에 이사진으로 참여했다. 영국에서 사설 교도소에 수감된 사람은 1993년 200명에서 1998년 약 4000여명으로 급격하게 늘었다.

 

유럽에서 이 새로운 형벌 관련 상식을 확산시킨 또 다른 매체는 “사전에 고려된“ 공식 보고서이다. 정치인들은 사이비 과학의 옷을 입고 정한 결정을 이 보고서를 이용해 감춘다. 그런데 이 사이비 과학은 그때 그때의 정치-언론적 문제에 가장 장단을 잘 맞추는 연구자들이 “주문에 따라“ 잘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작업은 유사한 환경에서 나온 보고서에 의존하고, “모범“ 또는 객관화를 위한 “비교“ 대상으로 꼽힌 사회의 유사한 기준에 맞춰진다. 그래서 한 나라 정부는 자기논리 강화의 순환과정을 거치면서, 주변국 정부의 상식에서 자기 논리를 보장하는 보증서를 찾아낸다.

 

예를 들어보자. 프랑스 총리 조스팽이 사회당 대표인 크리스틴 라제르제와 장피에르 발뒤크에게 맡긴 연구사업의 공식보고서에 부록으로 포함된 주석 <청소년비행에 대한 대응>을 보면 모두들 깜짝 놀란다. 이 주석은 주미 프랑스대사관의 사회문제 보좌관 위베르 마르텡이 쓴 것인데, 마르텡은 미국 주요도시에서 청소년 통행금지제를 도입한 것을 찬양하고 있다.(12) 이 공무원은 미국 전국 주요도시 시장 협회가 낸 의심스런 조사결과를 앵무새처럼 반복하고 있다. 이 조사는 범죄와 치안에 대한 언론의 “전시장“에서 확고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경찰의 비밀장치를 옹호하는 것이 목적이다.

 

이 프랑스 관리는 그래서 스스로 통행금지가 “최근의 청소년비행 감소에 기여했다“고 “느끼는“ 미국 시장들의 대변자를 자처했다. 실제로는, 이런 조처가 비행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측정할 수 없으며, 단지 시공간속에 배치시킨 것에 불과하다. 통행금지는 인력 면에서나 자원면에서 굉장히 부담스러운 것이다. 아무 법도 어기지 않은 젊은이들을 한해에 수만명씩 잡고 이에 대한 업무처리를 하며 이동시키며 결국은 가둬야 하기 때문이다. 위베르가 지적했듯 “지역사회의 공감대“를 형성한다는 목표와는 동떨어진 채 법정에서 이 통행금지 조처의 차별적 시행과 억압 행위에 대해 열심히 항변해야 한다. 이런 조처는 인종차별을 하는 이웃들에 둘러싸인 흑인과 라틴계 젊은이들을 범죄자로 만드는 데 기여할 뿐인데도 말이다.(13) 여기서 우리는 범죄를 유발하며 자유를 파괴하는 효과를 빼고는 아무 효과도 없으며 언론의 음모를 빼면 정당화도 결여된 경찰의 이 조처가 스스로를 어떻게 일반화하는 지 볼 수 있다. 또 각국이 감시와 학대 기술을 도입하기 위한 핑계거리가 되는 다른 나라의 “성공“을 얼마나 바라는 지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기술은 어디서나 실패하지만 이것이 널리 퍼졌다는 바로 그 점 때문에 마치 유효한 것처럼 여겨진다.

 

신자유주의 사고의 학문적 거래

(Academic pidgin of neo-liberal thought)

우선 사회 불안과 그것의 결과를 처벌하는 데로 모아지는 조처와 그 조처의 용어와 이론을 국내외에 씨뿌리고 뜸들이는(임신하는) 작업이 있다. 물론 이 작업은 미국의 두뇌집단과 관료와 언론의 동조자들이 맡는다. 그 뒤에는 이것을 부분적으로 또는 전체적으로, 의식적으로 또는 무의식적으로 빌려 쓰는 절차가 나타난다. 이와 함께 각각의 도입 국가의 독특한 문화적 언어와 국가전통에 맞춰 적용시키는 필수적인 작업도 나타난다. 세번째 작업은 이 작업을 두배로 늘리고, 신자유주의적 이해의 범주를 통해 이동시키는 것이다. 이 이동은 지금 엄청난 홍수와 같이 한꺼번에 뉴욕시에서 런던으로, 그리고 다시 파리, 브뤼셀, 베를린, 바르셀로나로 이어진다. 이 작업은 학문의 형태를 뒤집어 쓰는 것 곧 “학문화“다.

 

이 작업은 실제적인 형태 또는 가장된 형태의 학문적 교환과 개입, 출판물을 통해 이뤄진다. 이런 학문적 활동이라는 것은 지적 “밀수꾼“들이 정치학적 거래의 일종으로 범주를 다시 정식화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작업은 “현실에 밀접하게 뿌리박고“ 싶어하는 정부 관료와 언론인들을 낚는 데 충분할 정도로 견고하다. (관료와 언론인의 이런 욕망은 사회세계에 대한 공인된 전망에 의해 나타난다.) 그러나 또한 이들을 자기 나라의 고유한 배경에 강하게 집착하게 하기로 악명높은 각국의 고유 특성이라는 범주를 충분히 배제할 수 있을 만큼 추상적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런 개념들은 모두가 만날 수 있는 의미론적 공통의 장소가 되고 있다. 직업과 조직, 국적, 심지어는 정치적 관계의 경계를 넘어, 신자유주의 사회가 기대하는 자신의 모습을 선진적이라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이들이 만나는 장소인 것이다.

 

미국주의자 소피 보디장드로의 책 <도시들이 위험에 직면하다: 미국 빈민가에서 프랑스의 교외주택지까지>에서 이것의 놀라운 예를 찾아볼 수 있다.(14) 이것은 잘못된 주제에 대한 잘못된 연구의 모범적인 표본이다. 이 잘못된 연구란 정치-언론의 요즘 상식이 미리 만들어둔 잘못된 주제를 고스란히 물려받아, 주간지 기사, 여론조사, 공식 출판물에서 자료를 조각조각 모아 검증하고, 다시 (말 그대로) 죄인이 된 이웃들을 주마간산격으로 방문함으로써 정식으로 “증명됐다.“ 제목 그 자체가 문제가 되고 있는 새 정부의 억견(doxa)에 대한 일종의 규정적인 개요다: 이 것은 피할 수 없고 시급하며 유익하다고 스스로 주장하는 새로운 경찰과 형사상 엄격함에 대해 생각할 때 예의상 필요한 어떤 것을 보여준다. 이 책 머리의 한 구절을 인용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도시 폭력 현상이 냉혹하게 늘어나서 모든 전문가들이 혼란에 빠졌다. 우리가 “전면적인 탄압“을 선택해야 하나, 아니면 예방에 집중해야 하나, 그것도 아니면 중간을 찾아야 하나? 현상과 싸워야 하나 아니면 폭력과 비행의 깊은 원인과 싸워야 하나? 대중 여론조사에 따르면...“

 

여기, 우리는 편의적으로 한 곳에 모였다. 다름 아닌 사이비 정치과학의 요소들이 가득한 곳에. 이 요소들을 정부 부처의 기술관료들과 주요 일간지의 “코멘트와 분석“면이 게걸스럽게 흡수했다: 출발점은 이런 것들이다. 확립되지 않았고 저자도 인정하듯 전문가들 (어느 전문가인지는 언급이 없지만) 사이에서도 합의가 안된 사실 (곧 “냉엄한 증가“); 용어를 쓰는 사람이 자기에 맞게 써먹을 수 있는 관료적으로 이해한 범주 (곧 “도시 폭력“); 이것을 만들어낸 기관들의 활동을 평가하는 것 이상이 아닌 여론조사; 그리고 (억압 또는 방지라는) 관료의 개입 논리에 응대하는 잘못된 대안들. 그런데 질문이 형성되는 방식에 따라 이미 해결됐는데도, 연구자들은 이런 대안들을 내놓는다.

 

이 구절 뒤의 모든 것 곧 프랑스에 대한 미국의 진부한 생각과 미국에 대한 프랑스의 진부한 생각의 목록은 저자에게 “중간의 길“을 제시할 수 있게 한다. 이 길이란 (국가의) 이성 곧 현 사회주의 정부가 프랑스의 재앙을 피하려면 필요하다며 옹호하는 형사처벌 추세와 호응한다. 이 책의 뒷표지는 이렇게 열변을 토한다. “아주 긴급한 문제이다: 이웃 전체를 `회복시킴'으로써 우리는 중간 계급이 극단적인 정치적 해결책으로 빠져드는 것을 막으려하고 있다“ (이 극단적 해결책이란 국민전선을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한마디 더 붙여야 한다: 일자리를 만들어 회복시키는 것이 아니라 경찰관을 투입해 회복시킨다고.

 

미국과 프랑스의 국가적인 예감을 이중으로 조명함으로써, 이 미국주의자는 (인종적 지배의 도구라기보다는) 버려진 지역인 게토에 대한 미국식 신화를 공공주택이 집중되어있는 프랑스의 이웃에 고정하는 동시에, 뉴욕시와 시카고의 빈민지역을 프랑스 정부가 만들어낸 “민감한 이웃“에 강제로 맞춰 넣었다. 그래서 우리는 왔다갔다 양쪽으로 흔들리는 추를 분석이랍시고 제시하는 것을 보게된다. 이 분석에서 미국은 조직적인 비교의 요소가 아니라 미리 주의를 주기는 했지만 못된 아이를 혼내주는 귀신으로, 흉내낼 모형으로 이용된다. 그런데 조직적으로 비교하면 “도시 폭력“의 “냉엄한 증가“라는 주장은 단순히 사회문제를 보안 (곧 “법과 질서“)의 용어로 다시 정의할 수 있게 해주는 정치-언론적 주제일 뿐이라는 것이 당장 드러난다.(15) “수렴“이라는 유령을 치켜세움으로써 미국은 우리 사회에는 전혀 없는 게토라는 공포를 끌어내는 도구가 됐다. 또 “모든 이웃“을 경찰의 손에 넘겨주는 것을 정당화하기에 좋은 토론을 극적으로 만드는 도구도 됐다. 그리고 민중 주도권을 억제하는 토크비유의 방식을 받아들이는 것만 남았다. 이 방식을 받아들이는 것은 미국식 지역사회의 공공질서 집행 기술을 프랑스에 수입하는 것을 정당화하기 위해서다.

 

유럽에서 요즘 번성하고 있는 것은 미국에서 온 새로운 형사 문제의 상식이다. 이 상식은 사소한 비행에 대한 억제를 강화하고 처벌을 강화하면서 청소년비행을 다양하게 처리할 여지를 줄인다. 또 “위험한“ 것으로 여기는 지역과 주민을 특별히 목표로 삼고 교도소 경영 규제를 완화하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은 경제와 사회 문제에 관한 신자유주의적 상식과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다. 그런데 이 신자유주의적 상식이란 정치적 또는 시민사회적인 고려를 배치함으로써 완성되고 매워지는 것이다. 이 고려란 경제적 논법을 확장하고 개인의 책임 - 집단적인 무책임의 뒷면- 에 대한 요구를 확대하고 시장이 효율적이라는 도그마를 범죄와 처벌의 영역까지 확대하는 것이 목적이다.

 

“워싱턴의 여론(컨센서스)“라는 표현은 일련의 “구조조정“ 조처를 지칭하는 데 일반적으로 쓰인다. 이 구조조정은 세계 금융지배자들이 채무국에 국제지원의 조건으로 부과하는 것이며 (러시아와 아시아에서 최근 명백하게 드러났듯이 재앙에 가까운 결과를 냈지만), 지난 20년동안 전세계 선진 자본주의 국가 모두에서 승리한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이 부과하는 것이다.(16) 이 개념을 확장해 이런 정책의 사회논리적 귀결인 사회 불안과 사회의 주변화에 대한 형벌 위주의 대처를 그 안에 포섭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그리고 프랑스의 사회주의 정부가 1980년대에 시장에 대한 복종의 국제적인 규범을 만드는 데 축의 구실을 한 것과 똑같이, 오늘날 조스팽 정부는 선진 사회의 가난을 경찰력과 감옥을 통해 관리하는 방식을 당연한 것으로 만드는 작업의 전략적 위치를 스스로 선택했다. “좌파에서“ 후퇴해 나오는 것을 통해서.

 

 

저자 소개: 캘리포니아 대학 버클리분교 사회학과 교수이며, 프랑스 대학 유럽 사회학센터 교수임.

영어로 번역:타리크 워레 (Translated by Tarik Ware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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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1) 지구화, 유연성, 다문화주의, 공동사회주의(communitarianism), 빈민굴 또는 하층민, 그리고 이 것의 “포스트모더니즘적“ 사촌: 곧 동질성, 소수계층, 민족, 분열 등 어디서 왔는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전세계로 번진 물신적 용어로 가득찬 새로운 '불가타 성서'(4세기 라틴어로 번역된 성서: 번역자)의 문화적 확산의 사회적 조건과 메커니즘에 대해서는, 피에르 부르디외와 로이크 와캉, “제국주의적 이성의 교활함에 대해“, <이론, 문화, 사회> 1999 41-57쪽을 보라.

On the social conditions and mechanisms of cultural diffusion of this new planetary vulgate, whose fetish-terms, seemingly shot up out of nowhere, are nowadays everywhere - globalisation, flexibility, multiculturalism, communitarianism, ghetto or underclass, and their “postmodern“ cousins: identity, minority, ethnicity, fragmentation, etc. - see Pierre Bourdieu and Loïc Wacquant, “On the Cunning of Imperialist Reason“, Theory, Culture, Society 16:1, February 1999, pp. 41-57.

 

(2) 돈지거, “두려움, 정치학 그리고 감옥산업 복합체“, <범죄에 대한 진짜 전쟁>, 베이식 북스, 뉴욕, 1996, 63-98쪽을 보라.

See Donziger, “Fear, Politics, and the Prison-Industrial Complex“, in The Real War on Crime, Basic Books, New York, 1996, pp. 63-98.

 

(3) 켈링과 콜스, <깨진 창문 고치기: 우리 사회의 질서를 회복하고 범죄를 줄이기>, 프리프레스, 뉴욕, 1996.

Kelling and Coles, Fixing Broken Windows: Restoring Order and Reducing Crime in Our Communities, The Free Press, New York, 1996.

 

(4) 노블러와 브래튼, <되돌리기: 미국의 최고 경찰이 범죄의 확산 기세를 뒤바꾼 법>, 랜덤하우스, 뉴욕, 1998.

Knobler and Bratton, Turnaround: How America“s Top Cop Reversed the Crime Epidemic, Random House, New York, 1998.

 

(5) 키스 닉슨, <시장의 전도사들>, 행동하는 자유이성 에디션, 파리, 1998. 정치노선의 반대 편에서 비슷한 구실을 하는 디모스가 최근 이들에 합류했다.

Keith Dixon, Les Évangélistes du marché, Éditions Liber-Raisons d'agir, Paris, 1998. They have recently been joined by Demos, who plays a similar role from “across“ the political line.

 

(6) 찰스 머레이, <떠오르는 영국의 최하층민>, 경제문제연구소, 런던, 1990.

Charles Murray, The Emerging British Underclass, Institute of Economic Affairs, London, 1990.

 

(7) 경제문제연구소, <찰스 머레이와 최하층민: 확대되는 논쟁>, 경제문제연구소, 런던, 1995.

Institute of Economic Affairs, Charles Murray and the Underclass: The Developing Debate, IEA, London, 1995.

 

(8) 알랜 디콘(편), <복지에서 노동으로: 미국의 교훈>, 경제문제연구소, 런던, 1997. 로이크 와캉, “클린턴이 빈곤을 개혁할 때“,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1996년 9월도 보라.

Alan Deacon (ed.), From Welfare to Work: Lessons from America, IEA, London, 1997. See also Loïc Wacquant, “Quand M. Clinton 'réforme' la pauvreté“, Le Monde diplomatique, September 1996.

 

(9) 찰스 머레이(편), <감옥이 효과가 있나?>, 경제문제연구소, 런던, 1997, 26쪽.

Charles Murray (ed.), Does Prison Work?, IEA, London, 1997, p. 26.

 

(10) 노먼 데니스 외, <얄짤없음: 자유사회의 치안유지>, 경제문제연구소, 런던, 1997. <가디언> 1997년 4월10일치에 실린 토니 블레어의 선언도 보라. 킬 대학 범죄학 교수 리차드 스파크스가 이 주제에 대한 귀중한 정보를 제공했다.

Norman Dennis et al., Zero Tolerance: Policing a Free Society, IEA, London, 1997. See Tony Blair's declaration in the Guardian, 10 April 1997. Richard Sparks, Professor of Criminology at Keele University, has provided invaluable information on this subject.

 

(11) 인용부호안의 표현은 보몽과 토크비유가 쓴 것이다. “미국의 주 교도소 체계와 프랑스의 이 체계 응용“, 알렉스 드 토크비유, <전집>, 갈리마르, 파리, 1984, 4호, 11쪽.

The expressions in quotation marks are those of Beaumont and Tocqueville, “The Penitentiary System in the United States and its Application in France,“ in Alexis de Tocqueville, Oeuvres complètes, Gallimard, Paris, 1984, vol. IV, p. 11.

 

(12) 라제르제와 J.-P. 발뒤크, <소수의 비행에 대한 대응>, 프랑스의 문서, 파리, 1998, 433-436쪽.

C. Lazerges and J.-P. Balduyck, Réponses à la délinquance des mineurs, La documentation française, Paris, 1998, pp. 433-436.

 

(13) 예를 들면, 뢰플과 레이놀즈, “미국 주요도시의 통행금지와 비행“, <범죄와 비행>, 41:3, 1995년 6월, 347-363쪽.

E.g., Ruefle and Reynolds, “Curfews and Delinquency in Major American Cities“, Crime and Delinquency, 41:3, July 1995, pp. 347-363.

 

(14) 소피 보디장드로, <사회 불안에 직면한 도시들>, 파리,바야르 에디션, 1998. “방리유(Banlieue)“는 대체로 도심(inner city)에 해당하는 말이다.

Sophie Body-Gendrot, Les Villes face à l“insécurité, Paris, Bayard Éditions, 1998. “Banlieue“ is roughly equivalent to inner city.

 

(15) 캐서린 베케트의 예민한 분석인 <범죄의 댓가를 치르도록 하기: 현재 미국 정치의 법과 질서>, 옥스포드대학 프레스, 옥스포드, 1997을 보라.

See the incisive study of Katherine Beckett, Making Crime Pay: Law and Order in Contemporary American Politics, Oxford University Press, Oxford, 1997.

 

(16) 이브 드잘레이와 브라이언트 가스, “ '워싱턴 컨센서스':신자유주의 헤게모니 사회학에 대한 기여“, <사회과학 연구 행동>, 121-122호, 1998년 3월.

Yves Dezalay and Bryant Garth, “Le 'Washington consensus': contribution à une sociologie de l“hégémonie du néolibéralisme“, Actes de la recherche en sciences sociales, no. 121-122, March 1998.

 

 

---------- 오역이 많을 겁니다. 꼭 영문본을 참고하시길.

번역: 신기섭

2004/07/11 17:16 2004/07/11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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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마 빈 라덴은 누구인가?

미첼 초수도브스키(Michel Chossudovsky)

오타와대학 경제학과 교수 지구화 연구센터

(Centre for Research on Globalisation (CRG))

 

2001년 9월12일 globalresearch.ca에 올려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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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무역센터와 펜타곤에 테러 공격이 발생한 지 단 몇시간만에 부시 행정부는 증거도 없이 "오사마 빈 라덴과 그의 알카에다 조직이 주요 용의자"라고 결론냈다. 중앙정보국의 조지 티네트(George Tenet) 국장은 빈 라덴이 "경고를 거의 안하거나 아예 안하면서 연쇄 공격"을 계획할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밝혔다. 외무장관 콜린 파월(Colin Powell)은 이 공격을 "전쟁 행위"라고 불렀고, 부시 대통령은 전국을 대상으로 한 저녁 텔레비전 연설에서 "이번 일을 저지른 테러리스트와 그들을 보호해주는 이들을 구분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인했다. 전직 중앙정보국장 제임스 울시(James Woolsey)는 "국가 차원의 후원"을 지목하면서 하나 또는 그 이상의 외국 정부가 공모했을 수 있다고 암시했다. 전직 국가안보보좌관 로렌스 이글버거(Lawrence Eagleburger)는 "우리가 이런 공격을 당하면 우리가 엄청난 힘을 갖고 있으며 엄청난 보복을 한다는 사실을 보여줄 것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반면 공식 발언을 앵무새처럼 되뇌는 서방 언론의 주술문은 중동의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징벌 행위(punitive actions)"의 개시를 승인했다. 뉴욕타임스에 쓴 윌리엄 사피어(William Saffire)의 글은 "우리가 공격자들의 기지와 캠프를 합당하게 확정했을 때는 그곳을 분쇄해야 한다. 부차적인 피해의 위험을 최소화하되 인정하면서 말이다. 또 테러를 수용하는 국가들을 공개적으로 또는 은밀히 흔들어 놓아야 한다"고 되어있다.

 

이 글은 오사마 빈 라덴의 역사와 냉전시기 이슬람 "지하드(성전, Jihad)"와 미국 외교정책 형성의 상관관계 및 그 여파에 대해 약술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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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과 워싱턴에 대한 테러 공격의 핵심 용의자이며, 아프리카 지역 미국 대사관 폭탄 공격 때문에 연방수사국이 "국제 테러리스트"라고 이름 붙여준 사우디 아라비아 출신의 오사마 빈 라덴은, 소련과 아프간 전쟁기간 중에 "역설적으로도 미국 중앙정보국의 후원 아래 소련 침략자들에 맞서 싸우도록" 불려 나왔다. [1]

 

1979년 소련이 친공산 정부인 바브라크 카말(Babrak Kamal) 정부를 지원하기 위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 것에 대응해 "중앙정보국 사상 최대 규모의 비밀 공작"이 벌어졌다. [2]

아프간의 성전(지하드)을 소련에 대항하는 전체 무슬림 국가가 참여하는 전세계적 전쟁으로 만들고 싶어한 중앙정보국과 파키스탄의 정보기관 아이에스아이(ISI, 인터 서비시스 인텔리전스)가 적극적으로 부추기는 가운데 40개 나라에서 3만5천명의 이슬람 급진주의자들이 1982년부터 1992년까지 아프가니스탄 전투에 참여했다. 수만명은 또 파키스탄의 마드라사(madrasahs, 이슬람교 대학)에 유학을 왔다. 결국 10만명 이상의 외국 이슬람 급진주의자들이 아프간 성전의 영향을 직접 받은 것이다. [3]

 

이슬람의 "성전"은 미국과 사우디 아라비아가 후원했으며 그 자금의 상당 부분은 황금 초승달 지역(the Golden Crescent) 마약 거래를 통해 확보한 것이었다.

1985년 3월, 레이건 대통령은 국가안보 결정 명령(National Security Decision Directive) 166호에 서명했다... 이는 점차 늘고 있는 무자헤딘에 대한 비밀 군사지원을 승인하는 것이었으며 비밀 아프간 전쟁의 새로운 목표가 정해졌음을 명백히 보여주는 것이다. 그 목표란 비밀 공작을 통해 아프간에서 소련군이 패배하게 만들고 소련의 철수를 부추기는 것이다. 미국의 새로운 비밀 지원은 군수 물자를 크게 늘리는 것에서 시작됐다. 군수 물자 공급은 1987년에 연간 6만5천톤에 달할 때까지 꾸준히 늘어났다... 파키스탄 라왈핀디(Rawalpindi) 근처 간선도로변에 있는 파키스탄 정보기관 아이에스아이의 비밀 본부로 향하는 중앙정보국과 국방부의 전문가들의 "끊임없는 행렬"도 진행됐다. 거기서 중앙정보국 전문가들은 파키스탄 정보기관원들과 만나 아프간 반군의 작전 수립을 도왔다. [4]

 

중앙정보국은 파키스탄의 군 정보기관 아이에스아이를 이용해서 무자헤딘을 교육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 결과 중앙정보국이 후원하는 게릴라 훈련은 이슬람의 가르침과 합쳐졌다.

주제는 이슬람교가 완벽한 사회-정치적 이념이며 성스런 이슬람이 무신론자인 소련 군대에 의해 침해당했으며, 아프가니스탄의 이슬람교도들은 모스크바가 지원하는 좌파 정권을 타도함으로써 독립을 다시 외쳐야 한다는 것이었다. [5]

 

 

파키스탄 정보기관 (Pakistan's Intelligence Apparatus)

파키스탄 정보기관 아이에스아이는 "중개자"로 이용됐다. 미국 중앙정보국의 "성전" 비밀 지원은 파키스탄 아이에스아이를 통해 간접적으로 이뤄졌다. 중앙정보국은 직접 통로를 통해 무자헤딘을 지원하지 않은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이 비밀 공작이 "성공"하기 위해 워싱턴은 소련 파괴라는 "지하드"의 궁극의 목표가 드러나지 않게 조심했다.

 

중앙정보국의 밀턴 비어드먼(Milton Beardman)의 말로 표현하면 "우리는 아랍인들을 훈련시키지 않았다." 카이로의 알아람 전략연구센터(the Al-aram Center for Strategic Studies)의 아브델 모남 사이달리(Abdel Monam Saidali)에 따르면, 빈 라덴과 "아프간 아랍인들"은 "중앙정보국이 허용한 고도의 세련된 훈련"을 받았다. [6]

 

비어드먼은 이 점에 대해서 오사마 빈 라덴이 워싱턴을 위해서 하고 있는 임무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고 확인해줬다. (비어드먼이 인용한) 빈 라덴의 말로 표현하면 "나와 내 형제들 누구도 미국의 지원을 보여주는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다." [7]

 

민족주의와 종교적 열정으로 무장한 이슬람 전사들은 그들이 미국을 위해서 소련과 싸우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했다. 정보기관의 고위층에서는 접촉이 있었지만, 현장의 이슬람 반군 지도자들은 워싱턴이나 중앙정보국과 전혀 접촉하지 않았다.

 

중앙정보국의 후원과 대규모의 미국 군사지원으로 파키스탄 정보기관 아이에스아이는 "정부기관 모든 곳에서 막강한 힘을 발휘하는 수평적인 구조"를 만들어 냈다. [8] 이 기관은 15만명에 달하는 군인, 정보부원, 관료, 비밀 공작원, 정보제공자들로 구성된 스태프를 갖췄다. [9]

 

한편 중앙정보국의 공작은 지아 울 하크(Zia Ul Haq) 장군이 이끄는 파키스탄 군사정권 또한 강화시켰다.

중앙정보국과 아이에스아이의 관계는 지아가 부토를 축출하고 군사정권을 세운 이후 더욱 긴밀해졌다... 아프간 전쟁 기간 내내 파키스탄은 심지어 미국보다도 더 강한 반 소련 성향을 띄었다. 소련군이 1980년 아프간을 침공한 직후 지아는 소련의 중앙아시아 지역을 동요시키기 위해 아이에스아이의 우두머리를 파견했다. 중앙정보국은 1984년 10월에 이 계획에 동의했다... '중앙정보국은 파키스탄보다 훨씬 조심스러웠다.' 파키스탄과 미국은 뒤에서는 군사활동 확대가 최선이라는 데 합의했으면서도 표면적으로는 협상을 내거는 위장술을 폈다. [10]

 

 

황금 초승달 마약 삼각지대 (The Golden Crescent Drug Triangle)

중앙 아시아의 마약 거래 역사는 중앙정보국의 비밀 공작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소련-아프간 전쟁 이전에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의 아편 생산은 그 지역내 소규모 시장으로 향했다. 헤로인은 생산되지 않았다. [11] 이 점에 대해, 알프레드 맥코이(Alfred McCoy)의 연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확인했다. 중앙정보국이 아프간에 대한 맹공격을 벌이기 시작한 지 2년 안에 "파키스탄과 아프간 국경지역은 세계 최대의 헤로인 생산지역이 돼 미국내 수요의 60%를 공급했다. 파키스탄에서 헤로인 중독자는 1979년 사실상 전무했으며... 1985년에 120만명에 달했다. 그 어느 나라보다 급격하게 증가한 것이다." [12]

중앙정보국 요원들이 다시 이 헤로인 무역을 통제했다. 무자헤딘 게릴라들이 아프간쪽 국경 지역을 장악했을 때 농민들에게 혁명 세금 차원에서 아편을 재배하도록 명령했다. 국경 넘어 파키스탄쪽에서 아프간 지도자들과 지역 조직들은 파키스탄 정보기관의 보호 아래 수백개의 헤로인 제조 공장을 운영했다. 이 완전 개방된 마약거래 기간동안 이슬라마바드 주재 미국 마약청은 주요 마약사범 체포에 앞장서지 않았다... 미국 관리들은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미국의 마약 정책은 소련 영향권에 대항한 전쟁에 종속되어 있다"며 아프간 동맹국들의 헤로인 거래 혐의 조사를 거부했다. 1995년 전직 중앙정보국 아프간 담당 책임자 찰스 코건(Charles Cogan)은 중앙정보국이 냉전을 위해 마약 전쟁을 희생했음을 인정했다. '우리의 주요 임무는 소련에 가능한 한 최대의 피해를 주는 것이었다. 우리는 마약거래를 조사할 자원도 시간도 정말 없었다. 나는 이 점에 대해 사과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모든 상황은 예기치 않은 부산물이 있게 마련이다... 마약이라는 부산물이 있었다, 맞다. 그러나 주 목표는 달성됐다. 소련이 아프간을 떠난 것이다.' [13]

 

 

냉전의 흔적을 좇아서 (In the Wake of the Cold War)

냉전의 흔적을 좇아보면 중앙 아시아 지역은 단지 광대한 원유 매장량 때문에만 전략적 요충이 아니다. 기업이나 금융기관, 정보기관, 조직 폭력단에게는 수십억 달러의 자금을 의미하는 세계 아편의 4분의 3을 생산하는 지역이기도 하다. 황금 초승달 지역의 연간 마약 거래 규모 (1천억에서 2천억 달러 규모)는 국제연합이 5천억 달러로 추정하는 전세계 마약류 거래의 3분의 1에 달한다. [14]

 

소련 붕괴와 함께 마약 생산이 다시 급격하게 늘었다. 국제연합 추산으로는 구 소련 연방내 무장 반란이 시작된 때인 1998년에서 1999년 사이 아프가니스탄의 아편 생산량은 4600톤으로 사상 최고치에 달했다. [15] 구 소련의 조직 폭력단과 연합한 강력한 기업 집단들이 헤로인 통로를 전략적으로 장악하려고 서로 경쟁하고 있다.

 

파키스탄 정보기관 아이에스아이의 광범한 군 정보 네트워크는 냉전이 끝난 뒤에도 해체되지 않았다. 중앙정보국은 여전히 파키스탄 발 이슬람 "지하드"를 지원했다. 새로운 비밀 공작이 중앙 아시아, 코카서스, 발칸 지역에서 시작됐다. 파키스탄의 군, 정보 기관들은 본질적으로 "소련 해체와 중앙 아시아 지역 6개 무슬림 공화국 건설의 촉매제 구실을 했다." [16]

 

한편, 사우디 아라비아의 와하비(Wahhabi)파 선교사들은 세속 국가 기구를 잠식하면서 러시아 연방은 물론 이들 무슬림 공화국에서도 자리를 잡았다. 반미 이념을 갖고 있기는 했지만 이슬람 근본주의는 구 소련내 워싱턴의 전략적 이해에 크게 기여했다. 1989년 소련군의 철수 이후에도 아프간 내전은 약화되지 않았다. 탈레반은 파키스탄 데오반디스(Deobandis)와 그들의 정당인 자미아트 울 울레마 에 이슬람(Jamiat-ul-Ulema-e-Islam, JUI)의 지지를 받았다. 1993년 제이유아이는 베나지르 부토(Benazzir Bhutto) 총리의 연정에 참여했다. 제이유아이와 군부, 군 정보기관의 끈이 형성됐다. 1995년 카불의 헤즈브 이 이슬라미 헥트마티아르(Hezb-I-Islami Hektmatyar) 정권이 무너지자 탈레반은 강경 이슬람 정부를 출범시키고, "제이유아이 파벌에게 아프간 내부 훈련소의 통제권을 넘겼다..." [17]

 

사우디 아라비아의 와하비 운동의 지지를 얻은 제이유아이는 발칸 지역과 구 소련 지역에서 싸울 자원자들을 모집하는 데 핵심 임무를 맡았다.

 

제인 디펜스 위클리(Jane Defense Weekly)는 이에 대해 "탈레반의 인력과 장비의 절반은 정보기관 지배를 받는 파키스탄에서 보낸 것"이라고 확인했다. [18]

 

사실, 소련의 철수 이후 아프간 내전을 벌인 두쪽 모두 계속 파키스탄 아이에스아이를 통해 비밀 지원을 받은 것 같다. [19]

 

다른 말로 하자면, 미국 중앙정보국의 통제를 받는 파키스탄 군 정보기관 아이에스아이의 후원을 등에 업은 탈레반 이슬람 정권은 미국의 지정학적 이해에 주로 봉사한 것이다. 황금 초승달 지역 마약 거래는 (1990년대초에 등장한) 보스니아 무슬림 군대와 코소보 해방군을 지원하는 데 쓰였다. 마지막 몇달 동안 무자헤딘 용병이 마세도니아를 침공한 코소보 해방군 테러리스트들에 섞여 싸웠다는 증거가 있다.

 

의심의 여지도 없이, 이것은 왜 미국이 노골적인 여성 인권 침해, 소녀들의 교육 금지, 정부기관내 여성의 해고, "샤리아 처벌법"의 시행 등을 포함한 탈레반의 폭력적 통치에 눈을 감았는지를 설명해준다. [20]

 

 

체첸 전쟁 (The War in Chechnya)

체첸과 관련해서 주요 반군 지도자인 샤밀 바사예프(Shamil Basayev)와 알 카탑(Al Khattab)은 중앙정보국이 지원하는 아프간 및 파키스탄 캠프에서 훈련을 받았다. 미국 의회의 테러리즘과 비재래식 전쟁에 대한 특별팀 팀장인 요세프 보단스키(Yossef Bodansky)에 따르면 체첸 전쟁은 1996년 소말리아의 모가디슈에서 열린 히즈브알라(HizbAllah) 국제 비밀 정상회담 중에 계획됐다. [21] 이 회담에는 오사마 빈 라덴과 이란 및 파키스탄 아이에스아이의 고위 정보기관 관리들이 참석했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파키스탄 아이에스아이의 체첸 사태 개입은 "무기와 전문적 기술을 제공하는 차원을 넘는 것이었다. 파키스탄 정보기관과 이 기관의 급진 이슬람 대리인들은 실제로 전쟁을 지휘했다." [22]

 

러시아의 주요 송유관은 체첸과 다게스탄(Dagestan)을 지난다. 워싱턴이 형식적으로 이슬람 테러리즘을 비난하긴 했지만, 체첸 전쟁의 간접적인 수혜자는 카스피해 유역의 석유 자원과 송유관 통제권을 놓고 경쟁하는 앵글로섹슨 계열의 석유 메이저들이다.

 

(각각 샤밀 바사예프와 에미르 카탑이 이끄는) 두개의 핵심 체첸 반군들은 3만5천여명으로 추정되며, 직접 체첸 반군을 조직하고 훈련시키기까지 한 파키스탄 정보기관 아이에스아이의 지원을 받았다.

[1994년에] 파키스탄 아이에스아이는 바사예프와 그의 신뢰받는 부관들이 아프가니스탄 코스트(Khost) 지역의 아미르 무아위아(Amir Muawia) 캠프에서 집중적인 이슬람 교화와 게릴라 전쟁 훈련을 받게 해줬다. 이 캠프는 1980년대 초반 미국 중앙정보국과 아이에스아이가 설치했으며 유명한 아프간 군사지도자인 굴부딘 헤크마티아르(Gulbuddin Hekmatyar)가 운영했다. 1994년 7월 이 캠프에서 교육을 마친 바사예프는 파키스탄의 마르카즈 이 다와르(Markaz-i-Dawar) 캠프로 옮겨 고급 게릴라 전술 교육을 받았다. 파키스탄에서 바사야프는 파키스탄 최고위급 군 장성과 정보기관 관계자를 만났다. 국방장관인 아프탑 샤흐반 미라니(Aftab Shahban Mirani) 장군, 내무 장관 나세룰라 바바르(Naserullah Babar) 장군, 아이에스아이의 이슬람 진영 지원 담당 지부장 자베드 아슈라프(Javed Ashraf) 장군 등이 그들이다. (이들은 현재 모두 은퇴했다) 고위급 관계는 바사예프에게 아주 유용했다. [23]

 

 

훈련과 교화를 받은 이후 바사예프는 1995년 첫번째 체첸전쟁에서 러시아 연방 군대에 대한 습격을 이끄는 임무를 맡았다. 그의 조직은 알바니아 조직 폭력배, 코소보 해방군은 물론이고 모스크바의 조직폭력배와도 광범한 유대관계를 맺었다. 1997~98년 러시아 연방 보안 서비스(FSB)에 따르면 "체첸 반군 지도자들은 코소보에서 땅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위장을 위해 유고슬라비아에 부동산 업체로 등록한 몇몇 기업을 통해서." [24]

 

바사예프의 조직은 수많은 부정 행위에도 개입해왔다. 여기엔 마약거래, 불법 도청, 러시아 송유관 파괴, 납치, 매춘, 위조 달러 거래, 핵물질 밀매 등이 포함된다.(마피아가 알바니아의 붕괴된 피라미드 판매조직과 관련된 것을 참고하라) [25] 광범한 마약 자금 세탁과 함께, 다양한 불법 활동으로 얻은 수익금이 용병 모집과 무기 구입을 위해 흘러 들어갔다.

 

아프간에서 교육을 받는 동안 샤밀 바사예프는 사우디 아라비아 출신 노병인 무자히딘 사령관 "알 카탑(Al Khattab)"과 줄이 닿았다. 알 카탑은 자원해서 아프간 전쟁에 참여한 인물이다. 바사예프가 그로즈니로 돌아간 지 채 몇달이 안됐을 때 (1995년 초) 카탑은 무자헤딘 전사들을 훈련시킬 군 부대를 체첸에 구축하기 위해 초청됐다. 영국방송공사에 따르면 카탑이 체첸에 자리잡은 것은, "체첸에 자금을 공급하는 모스크와 갑부 개인들이 재정을 책임지는 전투적 종교단체인 사우디 아라비아의 (국제) 이슬람 구제 조직(Islamic Relief Organisation)의 주선을 통해서 였다." [26]

 

 

마치는 말 (Concluding Remarks)

냉전 시대 이후 워싱턴은 오사마 빈 라덴을 세계 최고의 테러리스트로 지목하고 연방수사국의 "최우선 수배자 명단"에 올려놓은 동시에 의식적으로 그를 지원했다.

 

무자헤딘이 발칸 지역과 구 소련에서 미국을 위한 전쟁을 벌이느라고 바쁜 와중에, 미국내 경찰 조직인 연방수사국은 소련-아프간 전쟁 이후 비밀 공작을 통해 국제 테러리스트들을 지원한 중앙정보국과 별개로 움직이면서 국내에서 테러와 전쟁을 벌이고 있다.

 

지독하게 역설적으로, 부시 행정부가 "미국에 대한 위협"이라고 지목한 이슬람 지하드가 세계무역센터와 국방부에 대한 테러 공격의 혐의를 받고 있는 와중에, 바로 그 조직이 발칸과 구 소련에서 미군과 정보기관의 핵심적인 도구로 이용되고 있다.

 

뉴욕과 워싱턴의 테러 공격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진실이 활짝 드러남으로써, 부시 행정부가 북대서양조약기구 동맹국들과 함께 인류의 미래를 위협하는 군사 모험을 강행하지 못하게 해야할 것이다.

 

주석

  • [1] Hugh Davies, International: `Informers' point the finger at bin Laden; Washington on alert for suicide bombers, The Daily Telegraph, London, 24 August 1998. 휴그 데이비스, 국제 뉴스: '정보제공자들은' 빈 라덴을 지목한다. 워싱턴이 자살 폭탄으로 초긴장에 돌입, 데일리 텔레그라프, 런던, 1998년 8월24일
  • [2] See Fred Halliday, "The Un-great game: the Country that lost the Cold War, Afghanistan, New Republic, 25 March 1996) 프레드 할리데이, "위대하지 않은 게임: 냉전을 잃어버린 나라, 아프가니스탄, 뉴리퍼블릭, 1996년 3월25일을 보라.
  • [3] Ahmed Rashid, The Taliban: Exporting Extremism, Foreign Affairs, November-December 1999. 아메드 라쉬드, 탈레반: 극단주의를 수출함, 포린 어페어스, 1999년 11-12월호.
  • [4] Steve Coll, Washington Post, July 19, 1992. 스티브 콜, 워싱턴포스트, 1992년 7월19일.
  • [5] Dilip Hiro, Fallout from the Afghan Jihad, Inter Press Services, 21 November 1995. 딜립 히로, 아프간 지하드의 부산물, 인터 프레스 서비시스, 1995년 11월21일.
  • [6] Weekend Sunday (NPR); Eric Weiner, Ted Clark; 16 August 1998. 주말 일요일(NPR); 에릭 와이너, 테드 클라크, 1998년 8월16일.
  • [7] 같은 자료(Ibid)
  • [8] Dipankar Banerjee; Possible Connection of ISI With Drug Industry, India Abroad, 2 December 1994. 디판커 바네르제; 아이에스아이와 마약산업의 연계 가능성, 인디아 어브로드, 1994년 12월2일.
  • [9]같은 책 (Ibid)
  • [10] See Diego Cordovez and Selig Harrison, Out of Afghanistan: The Inside Story of the Soviet Withdrawal, Oxford university Press, New York, 1995. See also the review of Cordovez and Harrison in International Press Services, 22 August 1995. 디에고 코르도베즈와 셀리그 해리슨, 아프간에서 나옴: 소련 철수의 내막, 옥스퍼드대학 출판부, 뉴욕, 1995를 보라. 또 코르도베즈와 해리슨이 인터내셔널 프레스 서비시스 1995년 8월22일치에 쓴 평론도 보라.
  • [11] Alfred McCoy, Drug fallout: the CIA's Forty Year Complicity in the Narcotics Trade. The Progressive; 1 August 1997. 알프레드 맥코이, 마약 부산물: 미국 중앙정보국의 마약거래 연루 50년, 더 프로그레시브, 1997년 8월1일.
  • [12]같은 책 (Ibid)
  • [13]같은 책 (Ibid)
  • [14] Douglas Keh, Drug Money in a changing World, Technical document no 4, 1998, Vienna UNDCP, p. 4. See also Report of the International Narcotics Control Board for 1999, E/INCB/1999/1 United Nations Publication, Vienna 1999, p 49-51, And Richard Lapper, UN Fears Growth of Heroin Trade, Financial Times, 24 February 2000. 더글러스 케, 변화하는 세상의 마약 자금, 기술 문서 4호, 1998 빈 UNDCP, 4쪽. 국제 마약 통제회의의 1999년 보고서, E/INCB/1999/1, 국제연합 출판부, 빈 1999, 49~51쪽, 리차드 래퍼, 국제연합이 헤로인 무역 증가에 대해 우려하다, 파이낸셜 타임스, 2000년 2월24일도 보라.
  • [15] Report of the International Narcotics Control Board, op cit, p 49-51, see also Richard Lapper, op. cit. 국제 마약 통제회의의 보고서, 49~51쪽, 리차드 래퍼의 같은 책도 보라.
  • [16] International Press Services, 22 August 1995. 국제 프레스 서비시스, 1995년 8월22일
  • [17] Ahmed Rashid, The Taliban: Exporting Extremism, Foreign Affairs, November- December, 1999, p. 22. 아메드 라쉬드, 탈레반: 극단주의를 수출함, 포린 어페어스, 1999년 11-12월호, 22쪽.
  • [18] Quoted in the Christian Science Monitor, 3 September 1998 크리스찬 사이언스 모니터, 1998년 9월3일에서 인용.
  • [19] Tim McGirk, Kabul learns to live with its bearded conquerors, The Independent, London, 6 November 1996. 팀 맥거크, 카불이 수염기른 정복자와 공생하는 법을 익히다, 디 인디펜던트, 런던, 1996년 11월6일.
  • [20] See K. Subrahmanyam, Pakistan is Pursuing Asian Goals, India Abroad, 3 November 1995. 케이 수브라흐마니암, 파키스탄이 아시아 내부 목표를 추구하다, 인디아 어브로드, 1995년 11월3일을 보라.
  • [21] Levon Sevunts, Who's calling the shots?: Chechen conflict finds Islamic roots in Afghanistan and Pakistan, 23 The Gazette, Montreal, 26 October 1999. 레본 세번츠, 누가 지휘하는가?: 체첸 분쟁은 이슬람의 뿌리를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에서 찾는다, 23 더 가제트, 몬트리올, 1999년 10월26일.
  • [22] 같은 책(Ibid)
  • [23] 같은 책 (Ibid)
  • [24] See Vitaly Romanov and Viktor Yadukha, Chechen Front Moves To Kosovo Segodnia, Moscow, 23 Feb 2000. 비탈리 로마노프와 빅토르 야두크하, 체첸 전선이 코소보 세고드니아로 이동하다, 모스크바, 2000년 2월23일을 보라.
  • [25] The European, 13 February 1997, See also Itar-Tass, 4-5 January 2000. 더 유러피언, 1997년 2월13일, 이타르타스 통신, 200년 1월 4~5일도 보라.
  • [26] BBC, 29 September 1999. 영국방송협회, 1999년 9월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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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 미첼 초수도브스키, 몬트리올, 2001년 9월. 모든 권리 보유. 이 글을 비상업적인 커뮤니티 인터넷 사이트에 게재하는 것을 허용함. 단 출처와 출처의 인터넷 주소를 밝히고, 이 글에 손을 대지 않으며 저작권 표시를 해야 함. 이 글을 출판하거나 상업적인 인터넷 사이트에 올리는 등 다른 형태의 출판은 저자의 허락을 받아야함.

 

번역: 신기섭

2004/07/11 16:32 2004/07/11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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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격 이후... 테러 대항 전쟁

(After the Attack ... The War on Terrorism)

편집진(by The Editors)

<먼슬리 리뷰> 2001년 11월호, 53권 6호


 

 

지난 9월11일 뉴욕의 세계무역센터와 워싱턴시의 펜타곤에 대한 테러공격에 대해 우리가 직접적으로 할 수 있는 말은 거의 없다. 단지 전적으로 비인간적이며 어떤 의미에서건 옹호할 수 없으며 깊은 조의를 오래도록 표하게 만드는 폭력행위가 있었다는 말만 할 수 있다. 이런 테러리즘은 이 세상에서 제거되어야 한다. 어려움은 이를 과연 어떻게 제거할 것인가에 있다. 테러리즘은 테러에 대한 맞폭력을 만들어내며, 미국은 오래동안 이 죽음의 게임에서 한쪽 편이 되어왔다. 희생자이기보다는 가해자인 경우가 많았다.

 

10월7일 아프가니스탄에 군사 공격을 개시함으로 이미 시작된, 테러에 대한 세계 대전이라는 형식의 보복 전략은 앞으로 몇달, 몇년동안 이 비극을 더욱 심화시킬 것이 분명하다. 이런 연유로, 미국 군국주의와 제국주의의 실체를 조명하는 것은 어느 때보다 더 중요하다. 그와 함께 군국주의와 제국주의가 자국민의 감시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선전 선동의 기능도 조명해야 한다.

 

군국주의와 미국 자본주의 (Militarism and U.S. Capitalism)

미국이 현대의 로마라고 할 만큼 전 지구 차원의 제국이라는 점은 수정처럼 분명하다. 적어도 1940년대 이후 미국은 세계 최대의 군사, 경제, 정치적 힘을 유지하는 한편 심지어 확장하려고 투쟁을 벌여왔다. 오늘날 미국은 전세계 군사비의 3분의 1을 쓰고 있다. 또한 주도적인 국제 무기상이다. 또 2차 세계대전 이후 지금까지 그 어느 나라보다 많은 지역에서 더 많은 이들에게 죽음과 파괴를 비처럼 퍼부어 댔다.

 

다음의 것들을 한번 보라. 미국은, 중앙정보국이 이끈 무수한 반군 진압 작전을 빼고도 1945년 이후 지금까지 70번이나 해외에서 군사작전을 펼쳤다. 중동과 이슬람 지역에서만 지난 20년 동안 미군은 이런 일들을 했다.

 

* 1981년 리비아 제트기 격추

* 1982년 다국적 군 소속으로 시나이반도에 군 병력과 장비를 보냄

* 1982년 레바논에 해군 파병

* 1983년 리비아를 직접 활동 대상으로 한 조기경보기를 이집트에 파견

* 1984년 페르시아만에서 이란 전투기 격추를 돕기 위해 사우디 아라비아에 조기경보기 지원

* 1986년 리비아에 미사일을 발사해 폭격

* 1989년 리비아 전투기 격추

* 이란-이라크 전쟁중에 쿠웨이트의 유조선 호위

* 1991년 이라크와 걸프전 벌임

* 90년대에 수를 셀 수 없을 정도로 이라크를 폭격하고 미사일로 공격

* 1992년 (이라크를 목표로) 쿠웨이트에서 군사작전 실시

* 1992년 소말리아에서 군사작전 수행

* 1998년 수단의 몇 안되는 의약품 공장 가운데 하나를 미사일로 공격해 파괴

* 1998년 아프가니스탄에 있는 오사마 빈 라덴을 향해서 다탄두 순항미사일을 60대 발사

* 2001년 아프가니스탄에서 전쟁 시작 주1

 

걸프전쟁 중에 10만여명의 이라크 민간인이 살해됐고 이 전쟁 이후 미국의 경제 제재로 50만명 가까운 아이들이 숨졌다. 이스라엘의 영토 확장 야망을 통제하기 거부하고 이스라엘에 매년 수십억달러의 군사 지원을 함으로써 미국은 팔레스타인 인민들에 대한 테러 전쟁의 주요 참여자로 자처했다.

 

무엇이 이런 제국주의적 공격을 설명하는가? 우리가 이 지면에서 수없이 거론했듯이 미국 자본주의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자신의 제국주의적 이해를 뒷받침하고 경제를 부양하기 위해 거대한 군사비 지출에 의존하게 됐다. 이런 면에서 보면, 소련의 붕괴에 따른 냉전의 종식은 미국 지배계급에게는 긍정적인 결과 뿐 아니라 부정적인 결과도 가져왔다. 한해 수천억 달러에 달하는 막대한 군사비 지출을 "악마의 제국"(evil empire)이 사라진 뒤에 어떻게 정당화 하겠는가? 이것과 긴밀히 연결된 것이 경쟁 관계인 자본주의 국가들의 미국 경제력에 대한 도전이 점차로 거세지고 있다는 점이다. 냉전 시기에 이 나라들은 광범한 냉전 동맹이라는 환경에서 전반적으로 미국의 목적에 종속되어 있었다.

 

소련 붕괴 이후 지금까지 미국 지배계급은 그래서 제국주의적 구도를 합리화 할 냉전의 대체물을 찾아왔다. 다양한 대안이 제시됐다. 테러리즘에 대한 전쟁, 이른바 "깡패 국가"에 대항한 싸움, "문명의 충돌"(사무엘 헌팅톤이 제시한 이슬람과 중국 대 서방), 전세계 마약밀매에 대한 전쟁, 인도주의적 개입. 이 모든 것은 크게 만족스럽지 않았지만, 군사비 지출이 냉전 이후 급격하게 주는 것을 막는 데는 충분했다. 다행히, 신이 보낸 선물이 1990년 사담 후세인의 쿠웨이트 침공이라는 모습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싱겁게 거둔 승리는 너무나 완벽하고 너무나 압도적이어서, 후세인은 더 이상 미국의 전세계적인 군사 행동을 정당화 하는 데 필요한 그럴듯한 위협으로 작용하지 못하게 됐다. 콜린 파월 장군은 1991년 이 문제를 이렇게 말했다. "깊이 고민해 보라. 악마가 부족하다. 악당이 부족하다." 주2

 

미국 권력층이 이를 해결할 수 없는 딜레마로 봤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으로부터 몇주 전에만 해도 (소련과 맺은 탄도탄 요격미사일 협정을 폐기하고) 대 미사일 방공시스템을 구축함으로써 군사비 지출을 대폭 확대하자는 부시 대통령의 제안은 의회에서 심한 반대에 직면할 듯 해 보였다. 물론 공화당과 민주당 모두 그동안 군사비 지출 확대를 꾸준히 지지해온 것으로 봐서, 부시가 제시한 계획의 대부분은 의심할 것도 없이 마지막에 관철될 것으로 여겨지긴 했어도 말이다.

 

세계무역센터와 국방부에 대한 테러 공격은 이제 이 모두를 바꿔 버렸다. 미국은 새천년의 첫번째 전쟁이라고 추켜세워진 것을 위해 만반의 채비를 하고 있다. 경제 침체와 불확실성의 증가로 어려움을 겪던 월스트리트에 진정으로 좋은 뉴스 한가지는, 미국의 군사비 지출이 사실상 하룻밤 사이에 치솟았고 가까운 장래에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그래서 군수품 업체의 주가가 치솟고 있다.

 

테러 공격의 충격과 두려움이 엄습했지만, 미국 지배 계급은 금새 이를 냉전 시대에 버금가는 새로운 전세계적 군사 성전의 기회로 삼았다. 그래서 한치의 지체도 없이 전쟁의 불길을 부추겼다. 군국주의적 대응은 세계무역센터 북쪽 건물이 무너지기도 전에 이미 돌처럼 굳건히 결정됐다. 2001년 9월20일 전국 대상 연설에서 부시 대통령은 오사마 빈 라덴과 그의 테러 조직이 이번 공격을 했다고 내비쳤고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정부에 대해서도 자신들의 적을 보호해주면 공격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위협했다. 그러나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부시는 "60개 이상의 나라에 수천명의 테러리스트들이 있다... 이 나라들은 이제 결정을 해야한다. 우리 편에 설지, 테러리스트 편에 설지를. 오늘부터 테러리즘을 보호하거나 지지하는 어떤 나라도 미국에 적대적인 정권으로 취급될 것이다."라고 선언했다. 미국은 극적인 군사 공격과 비밀 공작도 배제하지 않는 "언제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장기간의 작전"에 들어갔다. 지상군이 투입될 예정이었으며, 희생이 예상됐다. 미국은 "필요한 모든 전쟁 무기"를 적들에게 사용할 것이었다. (이 발언은 의도적으로 핵무기 사용도 배제하지 않았다.) 부시는 "신은 중립적이지 않다"고 주장함으로써, 범죄자에 대한 성스런 보복이라는 친숙한 기독교적 개념을 환기시켰다.

 

그러나 이 발언 뒤에는 여전히 더 무서운 현실이 자리잡고 있다. 의회는 단 한명 (캘리포니아 출신의 바바라 리 의원)의 반대 속에 부시에게 잘못 정의된 전쟁을 치를 권한과 더불어 적 자체를 정의할 권한을 부여했다. 그런데 적은 이미 전세계 범위에서 제기되고 있었다. 전쟁을 벌일 것임을 부시와 그의 행정부는 분명히 했고, 전쟁은 많은 나라에서 벌어질 것이었다. 이 전쟁은 (테러리스트를 찾는 어려운 일보다는 목표를 찾기 쉬운) 나라 전체를 상대로 하는 수준까지 확장될 것이었다. 하지만 미국 대중은 여전히 오사마 빈 라덴과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이외의 누가 추가로 적이 될지, 또는 미군이 아프가니스탄에 이어 어느 나라를 칠지 전혀 모르고 있다. 그래서 부시의 발언은, 특정한 지리적 경계나 무기 사용에 대한 도덕적 견제, 미국이 상대할 적의 숫자나 유형에 대한 제한도 없는 일련의 군사 개입에 근거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 행동의 첫번째는, 내각 수준의 국내안보국을 창설하는 것을 포함해 연방 정부의 국내 보안 문제 개입 권한을 크게 강화하는 계획이다.

 

미국 지배계급이 쟁점 몇가지에서 의견 차이를 보일 가능성이 있다. 군국화 정도, 이번 전쟁에서 목표로 삼을 나라 숫자, 미국 시민의 자유 침해 정도 등에서 말이다. 아마도 미국의 우방국가에서 군국주의를 누그러뜨리라는 압력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정도의 문제일 뿐이다. 미국의 권력 엘리트는 미국 군사력의 전세계적 확장과 전세계에 걸친 강력한 보복을 강하게 지지하는 것이 분명하다. 미국이 힘을 전세계에 걸쳐 제국주의적으로 투여함으로써 만들어내는 "치명적인 잠재력을 지닌 제국주의 국면'이라고, 이스트반 메스자로스(István Mészáros)가 그의 책 `사회주의와 야만'에서 부른 그 상황을 전세계가 실제로 직면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제국의 선전 (The Propaganda of Empire)

성인의 보편적인 선거권이라는 제약이 있는 자본주의 사회의 핵심 긴장 관계는 형식상 평등주의적인 정치와 불평등한 경제를 어떻게 조화시키느냐다. 권력을 쥔 이들이 관심을 기울이는 문제는 아주 오래된 것인데, 그것은 소수 부자들이 누리는 특권을 가난한 다수에게서 어떻게 계속 박탈하느냐다. 민주주의에선 체제 위기 때에만 폭력이 해결책이 될 수 있다. 더 일반적으로는 해결책이 이념이나 선전선동에서 나와야 한다. 요점은 대중을 비정치화하거나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지 못하게 속이는 것이다.

 

민주적인 자본주의 사회가 주요한 제국일 때는 문제가 더욱 커진다. 대중들이 제국의 비용을 감당하도록 설득해야 한다. 비록 혜택을 정확히 지목하기 어렵더라도 말이다. 피할 수 없는 전쟁을 맞게 될 때는, 대중에게 싸움에 나서 제국을 위해 목숨을 버리겠다는 확신을 심어줘야 한다. 민주주의의 조건이 있는 상황에선, 제국주의의 목적과 본성에 대해 솔직하고 정직해서는 이런 목표의 달성에 도움이 안된다. 그래서 영국에서는 제국이 인자한 "백인 남성의 짐"(white man's burden)으로 정당화됐고, 미국에선 제국은 존재하지도 않는다. "우리"는 단지 전세계적인 자유와 민주주의와 정의라는 대의를 지킬 뿐이라는 것이다.

 

미국에서 국제 전쟁과 제국에 대한 대중적 지지를 얻기 어렵다는 것은 이미 증명됐다. 19세기말 이후 미국 정부는 여러번에 걸쳐 시민들에게 전쟁에 나설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득하려고 애썼다. 제1차 세계대전,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걸프전쟁의 경우 정부는 대중들의 적당한 분노를 촉발하려고 세련된 선전 활동을 벌였다. 당시에 권력층은 전쟁 목표에 대한 지지를 얻기 위해서라면 정부가 거짓말을 할 필요도 있다는 것을 충분히 납득했다. 이 점은 그 이후 역사적 조사에서도 검증된 것이다. 이 모든 경우에서 언론은 군국주의와 제국의 최고 선전 기관임이 증명됐다.

 

이런 정황은 9월11일 이후 언론 보도를 이해하는 데 필요하다. 역사적 기록은 권력에 봉사하는 거짓말과 절반의 진실이 봇물 터지듯 등장할 것임을 예상하게 한다. 이는 바로 우리가 겪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정부의 통제에서 벗어난 것을 자축하기 좋아하는 미국의 뉴스 매체들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군국주의와 제국주의의 노골적인 선전기관이 됐다.

 

이 선전 공세의 범위를 파악하는 한가지 방법은 진정으로 독립된 자유 언론이 존재하는 민주 사회라면 9월11일 사건 같은 것에 어떻게 반응할지를 따지는 것이다. 위기의 순간에 민주적인 언론 체계라면 당면한 문제 각각에 대한 정확한 사실을 제시해야 한다. 또 권력층과 권력을 장악하려는 자들을 의심해 봐야 한다. 또 위기 대응책을 폭넓게 논의할 바탕을 제시해야 한다. 시민들이 문제를 파악하고 가능한 최선책을 결정할 수 있도록 역사적 배경과 정황을 보여주는 것도 포함해서 말이다. 모든 매체가 이렇게 할 필요는 없지만, 개별 매체로 구성되는 전체 언론 체계는 더 많은 사람들이 이런 정보를 얻을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그런 자유 언론은 대법관 휴고 블랙(Hugo Black)이 한번 언급했듯이 "지배자가 아니라 지배당하는 이들에게 봉사"할 것이다.

 

이번 공격이 너무나 갑작스럽고 잔인했다는 점을 인정하더라도, 자유, 독립언론에게 기대할만한 이런 반응은 9월11일 이후 몇주 동안 미국 언론 전체에서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이와 반대로, 언론에 나타난 마니교적인 그림(the Manichean picture)은 이러했다. 인자하고 민주적이며 평화를 사랑하는 국가가 자국의 자유와 풍요로운 삶을 시기한 미치광이 악마 테러리스트의 무자비한 공격을 받았다. 미국은 군 병력과 비밀 조직을 즉각적으로 늘려야 한다. 또 살아있는 범인을 확보해 조사해야 한다. 그리고는 전세계의 테러리스트라는 암을 뿌리뽑고 파괴하기 위해 장기전을 준비해야 한다. 논리상 국내외 모두가 범위 안에 들어가는 미국의 정당한 보복 행위를 돕지 않는 이들을 범죄자들의 공범으로 여긴다. 또 그들도 당연히 범죄자들과 같은 운명에 처하게 될 것이다.

 

이런 총체적 왜곡 보도의 이유는 음모이론을 훨씬 넘는 것이며, 우리나라 주요 언론매체를 아주 소수의 아주 크고 힘있는 이익 추구 기업들이 지배하고 있다는 점과 함께 미국의 직업적 언론의 관행이 지닌 약점을 보여준다.

 

직업적 언론이 등장한 것은 대략 100년전인데, 독점 언론 소유주들이 믿을만한 "비당파적인"(non-partisan) 언론을 제공함으로써 자신들의 사업을 보호하려고 직업적 언론의 등장을 부추겼다. 직업적 언론은 당파성이라는 오점을 피하기 위해 공식적이거나 신임을 받는 취재원을 기사의 바탕으로 삼았다. 기자들은 권력층이 하는 말과 그들의 논쟁거리를 기사로 썼다. 그래서 기사가 권력층에 편향되는 경향을 띄었다. 기자가 엘리트들이 하는 말과 그들의 논쟁을 보도하면 직업적 기자가 된다. 공식적인 논란의 범위를 벗어나서 다른 전망을 제시하거나 엘리트들이 선호하기 않는 문제를 제기하면 더 이상 직업적 기자가 아니다. 대부분의 언론인들은 공식적인 취재원의 속기사가 되는 것을 자신들의 주요 임무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이것이 민주주의로선 문제가 된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다.

 

공식 취재원에 대한 의존과 함께, 전문가들 또한 정책을 설명하고 논하는 데서 중요한 요소이다. 특히 이번 일처럼 복합적인 사건의 경우 더 그렇다. 전문가들은 정보를 권력층에 의존할 뿐 아니라 거의 전적으로 권력층이 규정한 이들이며, 그들에게 부여된 주요 목적은 권력층의 여론을 표현하는 것이다. 9월11일 이후 "전문가"들의 분석 범위는 군과 정보기관 내부자와 지지자들에 한정됐는데, 그들로서는 군사적인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 명백하게 자신들에게 이롭다는 점이 거의 인식되지 못했으며 비판적으로 검토되지도 않았다. 무엇이 적절한 대응인가를 놓고 민주당과 공화당 사이에 논쟁이 붙지 않았기 때문에, 군사적 접근법이 유일한 대안으로 제시됐다. 자긍심이 있는 언론인의 입에서 가장 먼저 나와야하는 명백한 질문은 이 범위를 넘어서는 것이다. 어떤 근거로 이미 많은 예산을 쓰면서도 9월의 공격을 막지 못한 군과 중앙정보국에 수백억달러를 더 주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믿어야 하는가?

 

앞으로 몇주, 몇달 동안 엘리트 계층 내부에서 논쟁의 범위가 확대될 가능성은 있다. 중동과 전 세계에서 미국의 장기 목표를 달성하는 데 비생산적임이 드러나게 될 군국주의와 주전론의 질주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는 "자유주의"와 "국제주의"적인 태도를 일부가 취하게 될 것이다. 이런 방식을 선택하는 이들은 어쩔 수 없이 다음과 같은 주장을 펼 것이다. 미국은 누구도 맞서지 못할 강력한 군사력 뿐 아니라 훨씬 더 세련된 평화적 조처를 통해서 잠재적인 적들의 "가슴과 마음"을 사로잡아야 한다고 말이다. 그러나 근본적인 쟁점은 분명히 금기로 남을 것이다. 힘의 궁극적인 원천인 군의 구실에 대해선 의문이 제기되지 않을 것이다. 미국이 세상에서 아주 독특하게 인자한 세력이라는 개념도 반박 당하지 않을 것이다. 미국이, 그리고 이스라엘 같은 나라를 대리인으로 삼지 않는다면 오직 미국만이 자신이 원하면 언제든지 다른 나라를 침공할 권리가 있다는 전제 또한 논쟁거리가 되지 않을 것이다. 미국의 군사 행동이 국제법을 어기는 것임이 거의 확실한데, 이에 대한 우려는 원칙에 입각해 제기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나라들에게 입법자로 인식됨으로써 얻는 미국의 이익을 해친다는 단 한가지 이유 때문에 제기될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1960년대와 1970년대 미국의 베트남 침공 보도를 상기해야 한다. 1965년 미국이 본격적으로 지상군을 투입해 침공했을 때부터 1967년말 또는 1968년초까지 언론 보도는 전쟁 선전의 "큰 거짓말"을 보여주는 고전적인 사례이다. 전쟁은 좋은 것이며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 꼭 필요했다. 전쟁에 반대하는 이들은 하찮게 여겨졌고 소외당했으며 왜곡됐고 무시당했다. 1968년에 언론보도는 반전에 대해 좀더 관대해졌다. 이런 분위기는 전쟁에 대한 대중들의 반대 여론이 커진 점을 어느 정도 반영한 것이지만, 이보다 더 영향을 끼친 것은 당시 미국 권력층 사이의 분열이었다. 뉴욕 월가와 워싱턴 정가의 일부가, 장래의 이익에 비해 전쟁 비용이 너무 크다고 인식하고 발을 빼는 쪽을 지지한 것이다. 언론보도는 여전히 엘리트들의 의견에 한정되어 있었다. 미국은 여전히 자신이 원하는 나라를 침공할 "007"식의 권리가 있었다. 유일한 논쟁거리는 베트남 침공이 이 힘을 적절히 쓴 것이냐 아니냐였다. 베트남을 침공한 미국의 바로 이런 생각이 도덕적으로 잘못된 것이라는 생각은 여전히 금기였다. 여론조사 결과 이런 생각이 일반 대중들 사이에서 드물지 않다는 것이 드러났는데도 말이다.

 

제도권 언론의 또 다른 결함은 정황 설명을 저주라도 되는 양 피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이런 경향이 생긴 것은, 사건의 의미 있는 정황과 배경을 적절하게 제공하게 되면 언론인의 견해가 특정한 편으로 규정되고, 직업적 언론이 피하려고 결심한 자유롭고 개방된 토론의 여지가 생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동 문제처럼 가장 많이 보도되는 사건에 대해서조차 미국인들은 자주 보도되지 않는 다른 사안과 마찬가지로 무지하다. 언론은 사건에 대한 이해와 충분한 정보에 바탕을 둔 행동을 유발하기보다는 혼란과 냉소, 무관심을 만들어낸다. 특정 사건에 대한 보도는 서로 관련이 없는 단편적인 사실들의 나열이 되는 경향이 있고, 이는 무기력을 유발하기엔 최적의 처방이다. 직업적 언론이 그렇게 상황 설명에 인색한 것은, 엘리트들의 전제를 충실히 따르게 하는 데 도움이 된다.

 

9월11일 이후 언론이 정황 설명을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어떤 기준으로 볼 때도 놀라운 것이다. 오사마 빈 라덴과 그의 테러조직에 대한 상세한 보도가 많았고,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공격의 성패와 관련된 요소들에 대한 심층 보도도 많았지만, 다른 면에서는 찬장이 빈약하기 그지없었다. 다음의 것들을 생각해보라. 거의 틀림없이 세계에서 가장 앞장서는 테러 세력인 미국의 구실에 대한 보도는 통제당했다. 예컨대 1998년, 국제사면위원회는 한 보고서를 내놨다. 이 보고서는 미국이 그 어떤 나라나 조직 못지 않게 전세계의 잔인한 인권 침해에 책임이 있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 그 인권 침해에는 고문과 테러의 후원과 국가 폭력도 포함된다. 주3 사우디 아라비아와 쿠웨이트의 부패한 정권 지지와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격 지지 및 자금 지원의 끔찍한 기록은 미국내 거주자 대부분의 시야 밖에 있다. 오사마 빈 라덴에 대한 적절한 정보 곧 그가 아프가니스탄에서 소련에 맞서 온갖 수단을 동원에 싸울 때 파키스탄을 통해 미국 중앙정보국의 지원을 받았다는 사실조차도 거의 거론되지 않았고 전혀 주목받지 못했다. "온건한 국가"와 "이슬람 극단주의자"로 나누는 극단적인 단순화는 논외로 하더라도, 이슬람교와 아랍 세계의 본성이 이질적인 것들의 혼합이라는 사실을 언론을 통해 어렴풋이라도 알 수 있었던 미국인은 거의 없다.

 

직업적 규범 이외에도 미국 언론 기업들은 미 제국이 자연스러운 것인 양 만드는 데 협조하는 제도권의 환경 안에 존재한다. 이런 거대 기업들은 신자유주의적 지구화와 (미국 이외 지역에서 이들 기업의 매출이 급격히 늘고 있다) 미국이 세계 초강대국의 지위를 유지하는 덕을 직접적으로 보는 수혜자들이다. 실제로 미국 정부는 무역 및 지적 재산권 협상이 벌어질 때 지구적 규모의 언론 기업들을 앞장서서 대변한다. 이런 기업들이, 미국의 군사력과 자본주의가 결코 인자한 세력이 아닌 이 실제 세계에 대한 이해를 제공하는 건 이론적으론 가능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일이다.

 

요약하자면, 정부, 군부, 언론기업은, 지구상 최대의 군사 세력이 제한 없이 수행할 테러에 맞선 전쟁의 필요성, 불가피성, 미덕을 팔아먹는 데 함께 열중하고 있다. 그들은 대중의 지지를 얻어야 하지만, 무기를 내려놓게 만드는 단순한 진실을 말할 여유는 없다. 대부분의 미국인은 자신들의 지속적인 명예에 걸맞게 그런 군국주의적인 대응을 신용하지 않는다. 그래서 선전이 필요한 것이다.

 

미국의 군국주의와 제국주의에 반대하고 무시무시한 환경에서 평화를 촉진하려고 하는 이들에게 길은 분명하다. 우리는 군국주의적 거짓말을 폭로하고 전쟁을 되돌릴 수 있는 폭넓은 연대를 구축해야 한다. 우리가 주춤거리고 워싱턴의 장군들을 멈추지 못한다면, 인류가 치러야할 대가가 날로 더해질 것임을 역사는 보여준다. 그 대가의 대부분은 가장 가난하며 가장 착취당하는 지역의 무고한 사람들이 피를 흘리는 것이다.

 

* 엘런 콜리어 (Ellen C. Collier), 미국 군사력의 해외 사용 사례, 1798-1993, 의회 연구조사 서비스, 의회 도서관, CRS 이슈 브리프, 1993년 10월7일 - http://www.fas.org/man/crs/crs_931007.htm. 의회 연구조사 서비스는 1945년부터 1993년까지 미군의 해외 파병 사례 66건을 기록하고 있다. (1798년에서 1993년까지는 모두 245건이다) 이 기록은 지난 8년동안 수정되어서 현재는 1945년 이후 지금까지 모두 70건 이상이 됐다. (See Ellen C. Collier, Instances of Use of United States Forces Abroad, 1798-1993, Congressional Research Service, Library of Congress, CRS Issue Brief, October 7, 1993 - available online at http://www.fas.org/man/crs/crs_931007.htm. The Congressional Research Service lists sixty six instances of the employment of U.S. military forces abroad over the period 1945-1993 (245 over the period 1798-1993). This list has be updated for the last eight years, bringing the total since 1945 to over seventy.) 본문으로 돌아가기

* 토론토 스타 1991년 4월9일치에서 인용. 데이비드 깁스, "워싱턴의 새로운 개입주의", 먼슬리 리뷰, 53권(2001년 9월), 15-37쪽도 보라. (Quoted in Toronto Star, April 9, 1991. See also David N. Gibbs, "Washington's New Interventionism," Monthly Review, 53 (September 2001), 15-37.) 본문으로 돌아가기

* 국제사면위원회, 미국: 모두를 위한 권리 (런던: 국제사면위원회, 1998), 특히 7장과 8장을 보라. http://web.amnesty.org (Amnesty International,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Rights for All (London: Amnesty International, 1998), see especially chapters 7 and 8. Available online at http://web.amnesty.org) 본문으로 돌아가기

 

원문: www.monthlyreview.org/1101edit.htm

번역: 신기섭

2004/07/11 16:10 2004/07/11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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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진보 진영의 글을 번역해 공개하는 걸 주 목적으로 하지만 요즘은 잡글이 더 많습니다. marish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