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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학행위는 미국에 큰 희생을 부르는 군사 모험을 도발하기 위한 것일지도 모른다

로버트 피스크 (Robert Fisk)

제트네트(ZNet) 2001년 9월12일

 

 

 

 

난 오사마 빈 라덴(Osama bin Laden)이 미국에서 벌어진 참사 소식을 어떻게 접했을지 상상할 수 있다. 모두 합쳐 5시간동안 나는 수단과 아프카니스탄의 광활한 산속에서 그가 미국의 붕괴가 피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을 들어야 했다. 그와 그의 아프카니스탄 동지들이 (소련의) 적군 붕괴를 거든 직후의 일이다.

 

그는 방 구석에 앉아 위성 텔레비전 방송을 볼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이, 미시왁 막대기(mishwak stick)로 이를 닦으면서 말이다. 말하기 전에 잠시 생각하면서. 그는 말하기 전에 잠시 생각하는 것을 창피해하지 않는 몇 안되는 아랍인이다. 한번은 내게, 소말리아에서 자기 휘하의 사람들이 미국인들을 공격한 이야기를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는 리야드 미군기지에 폭탄을 던져서 사형당한 사우디아라비아인 두명을 개인적으로 안다고 털어놨다. 그가 어제 미국에서 벌어진 대량 학살의 배후인물일 수 있을까?

 

물론 이쯤에서 건강을 주의하라는 경고를 해야겠다. 만약 빈 라덴씨 소행이라고들 말하는 그 모든 일이 정말 그의 책임이 되려면, 그는 휘하에 군인 1만명을 둬야한다. 유혈 사태만 났다하면 요즘 가장 혐오하는 인물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는 이 세계의 버릇은 정말 우려스럽다. 이번처럼 중대한 일이 벌어지면, 그동안 지속적으로 미국을 위협해온 이들에게 눈을 돌리는 것은 새로운 정당성을 얻게 된다.

 

빈 라덴씨는 아프카스탄 전쟁 기간중에 일종의 종교적 경험을 했다. 러시아군의 포탄이 그의 발에 떨어졌고 그것이 폭발하기를 기다리는 단 몇초동안 그는 갑작스레 종교적인 평온감을 느꼈다고 했다. 미국인들이 바랄만한 일의 정반대로, 포탄은 폭발하지 않았다. 그는 입만 열면 미국이 걸프 지역에서 떠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미국은 이라크에 대한 봉쇄조처를 모두 중단해야 한다고도 주장한다. 또 이스라엘을 이용해 팔레스타인을 탄압하는 것도 중단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가 항상 하는 이야기다. 의심의 여지 없이, 또 중동의 복잡한 현실을 고려한 주저함도 없이 말이다. 그는 반제국주의 전쟁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종교전쟁을 하고 있다. 그가 아라비아를 지배했다면, 교수형이 지금보다 더 주는 것이 아니라 더 늘었을 것이고, 가혹한 처벌이 더 많으며 서구식 민주주의는 결코 없었을 것이다.

 

그를 지지하는 알제리아, 쿠웨이트, 이집트, 걸프지역 아랍인들은 메시아의 말씀을 듣는 사람에 대한 경외감으로 그의 텐트에 모였을 것이다. 나는 아프카니스탄 산악지대 캠프에서 어느날 밤 그 지지자들을 봤다. 그 날은 너무 추워서 자다가 깨어보니 내 머리칼에 얼음이 달려 있었다. 그들은 빈 라덴에게 아주 순종했는데, 그건 어린 아이들의 순종이 아니라 단호히 결심한 이들에서 볼 수 있는 그런 충성이었다. 그들이 듣는 말은 무서운 암시를 담고 있는 말이었다. 미군 목표물 뿐 아니라 미국 민간인도 그냥 두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그는 할 수 있는 한 자신의 약속을 이행하는 데 일말의 주저함도 없는 그런 사람이다. "깡패 국가"(rogue states)에 맞설 미사일 방어체제를 구축하지만 국내선 항공기로 미국의 경제, 군사력의 핵심을 공격하는 사람들은 막지 못하는 무서운 아이러니를 고맙게 생각할만한 사람이다.

 

하지만 나는 빈 라덴씨가 내 가방에 든 신문 뭉치를 꺼내 들던 날 밤도 기억한다. 텐트 구석에 앉아 지글지글 소리를 내며 타는 기름 램프 아래서 신문을 한 장, 한 장 차례대로 읽었다. 주변을 전혀 의식하지 않은 채, 이란 외무장관이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한 내용을 크게 읽기도 했다. 미국이 자신의 목에 500만달러의 현상금을 걸었다는 말을 듣고 웃던 이 사람이 정말 미국에 타격을 가한 사람일까? 빈 라덴씨를 "세계 테러"의 얼굴로 만든 이가 바로 미국이 아닐까? 그가 그렇게 막강하고 치명적일까?

 

만약, 우린 계속 이 만약이라는 말을 반복해야 하는데, 어제의 파괴 행위에 중동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면, 중동의 또 누가 세계의 유일 초강국에 엄밀하게 시간을 맞춘 공격을 강행할 수 있을까? 오합지졸인데다 부패한 팔레스타인 민족주의 단체들은 비행기 납치를 즐겨 시도했지만, 단 한건의 자살 폭탄를 시도할 능력도 없을 것같다. 하마스(Hamas)와 이슬람 지하드(Islamic Jihad)는 이번 공격을 할 능력도 돈도 없다. 아마도 1980년대에 레바논의 헤즈볼라(Hezbollah)가 순수한 저항 운동 조직이 되기 전에 헤즈볼라에 접근했던 오래된 위성 그룹들은 이번 일을 계획할 수는 있을 것이다. 1983년 미 해군에 대한 폭탄 공격은 정확성과 적확하고 세밀한 계획이 요구된 일이었다. 그러나 이 그룹들을 지원했던 이란은 그 이후 분명히 변화했고, 사라진 지 오래된 종교혁명 "수출" 야망보다는 내부 투쟁에 더 몰두하고 있다. 이라크는 완전히 파괴됐다. 이라크 정보기관들은 1991년 기습공격으로 자신들을 파괴시킨 나라에 대한 공격보다는 자국민을 고문하는 데 더 관심이 많다.

 

그래서 앞으로 몇일 동안 아프카니스탄 산악지대를 위성과 고공비행 첩보기들이 촬영할 것이고 빈 라덴씨의 오래된 훈련소와 새 훈련소가 펜타곤의 프로젝터에 표시될 것이다. 그러나 무엇을 위한 건가? 미국이 지난번 빈 라덴씨를 폭격하려고 했을 때 한 일은, 수단의 무고한 제약 공장과 아프카니스탄의 빈 라덴 지지자들을 파괴한 것이었다. 이번 일이 사우디아라비아의 갑부와 부시 대통령의 미국간의 전쟁이라면 다른 전쟁처럼 싸울 수는 없다. 실로, 큰 대가를 치르는 해외 군사 모험을 시도하지 않고 전쟁을 펼칠 수 있을까?

 

아니면 이것이야말로 빈 라덴씨가 무엇보다 원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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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피스크는 영국에서 태어났으며 1971년 언론계에 들어와 1976년부터 지금까지 여러 언론사의 중동 특파원을 하고 있는 중동 전문 기자입니다. 현재는 영국의 일간지 인디펜턴트의 중동 지역 특파원입니다.

 

원문: www.zmag.org/fiskcalam.htm

번역: 신기섭

2004/07/11 15:57 2004/07/11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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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벌어진 테러

로버트 피스크 (Robert Fisk)

<더 네이션> 2001년 10월1일

백명수(환경운동연합 시민환경연구소 연구원)님이 번역하신 글입니다.

 


 

 

일이 여기까지 이르렀다. 오스만제국의 멸망, 밸푸어선언(the Balfour declaration), 아라비아의 로렌스의 거짓말(Lawrence of Arabia's lies), 아랍 봉기, 이스라엘 국가의 건설, 4번에 걸친 아랍-이스라엘 전쟁 그리고 34년동안의 이스라엘의 야만적인 아랍영토 점령, 이 모든 중동의 현대사 전체는, 억압당하고 경멸받고 있는 민족을 대변한다고 자임하는 사람들이 불운한 민족의 사악함과 잔혹함으로 맞받아침으로써 단 몇시간 내에 지워졌다. 지난번 오클라호마에서 벌어진 야만 행위가 미국인의 소행임이 밝혀진 마당에, 이번 일에 대해 이렇게 증거도 없이 성급히 써내려 가는 것이 정당한지, 그리고 도덕적인가? 나는 이것이 두렵다. 미국은 전쟁 중에 있으며 내 판단이 잘못되지 않은 한 수 천명 혹은 그 이상이 이제 중동에서 죽을 차례다. 아마도 미국 또한 마찬가지 일 것이다. 우리 중 일부는 이미 "폭발이 올 것이다"고 경고했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악몽을 결코 상상도 못했다.

 

그리고는 바로, 오사마 빈 라덴(Osama bin Laden)이 떠오른다. 그의 돈과 신앙, 미국의 힘을 파괴시키겠다는 무서운 헌신이 생각난다. 나는 그의 바로 앞에 앉아서, 자신의 부하들이 아프가니스탄에 주둔한 소련 군대를 파괴하고 그래서 소련연방까지 파괴시키는 것을 어떻게 도왔는지 이야기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1998년 9월21일 내 글을 보라.) 그들의 무한한 자신감이, 미국에 전쟁을 선포하게 만들었다. 당분간 전세계는 이것이 민주주의 대 테러간의 전쟁임을 믿으라고 강요되겠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이 사태는, 1996년 팔레스타인 가정에 미국 미사일을 날리고, 미국 헬리콥터가 레바논 구급차에 미사일을 쏜 것에 대한 것이다. 또 미국의 포탄이 콰나(Qana)라는 마을에 날아간 것에 대한 일이며, 미국의 우방인 이스라엘의 돈을 받아 군복을 입은 레바논 민병대가 피난민 캠프에서 난도질하고 강간하고 살인을 저지른 일에 관한 것이다.

 

물론, 미국에서 벌어진 사건은 완전하고 믿을 수 없는 흉보임에 틀림없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수천명의 무고한 사람들의 학살을 축하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 절망의 상징일 뿐 아니라, 그들의 정치적 미성숙을 상징하는 것이다. 또 적군 이스라엘을 자신들이 무엇 때문에 고발했는지를 깨닫지 못했음을 상징하는 것이다. 자신들이 이스라엘의 부적절한 행동을 고발해왔음을 잊은 것이다. 여러 해 동안의 그 모든 수사를, 미국의 심장을 공격하고 "미국이라는 뱀"(the American snake)의 머리를 베어버리겠다는 그 모든 약속을 우리는 공허한 위협으로 간주했었다. 도대체 어떻게 퇴행적이고 보수적이며, 비민주적이고, 타락한 그룹의 정권이, 그리고 소규모의 폭력적인 조직들이 그러한 터무니없는 약속을 이행할 수 있겠는가? 이제 우리는 안다.

 

9월11일 괴멸 이후 몇시간안에, 나는 어제의 사건에 비하면 이제는 사고한 것에 불과한 미국과 그 동맹국에 대한 다른 엄청난 공격들을 기억하기 시작했다. 1983년 10월23일 베이루트에서 239명의 미군을 죽이고 58명의 프랑스 낙하산병을 죽인 자살폭파는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정교하게 이뤄지지 않았나?

 

미 해병대에 대한 폭탄 공격과 3마일 떨어진 곳의 프랑스에 대한 공격은 단지 7초 간격으로 이뤄졌다. 그리고는 사우디아라비아의 미군 기지에 대한 공격이 있었고, 지난해에는 아덴(Aden)에서 미군 전함 '유에스에스 콜'(USS Cole) 침몰 시도가 거의 성공할 뻔했었다. 게다가 우리는 중동의 새로운 무기에 대해 너무 싶게 놓치고 만다. 미국인뿐만 아니라 그 어떤 서방인들도 맞설 수 없는 무기, 곧 절망에 몰린 필사적인 자살폭탄이라는 무기를 말이다.

 

이 불바다 뒤에 놓여있는 역사적 잘못들과 부정을 모호하게 감추려는 부도덕한 시도가 피할 수 없이 나타날 것이다. 우리는 "어리석은(mindless) 테러리즘"에 대해 듣게 될 것이다. 3개의 위대한 종교가 탄생한 영토에서 미국이 얼마나 미움을 받고 있는지를 깨닫지 못한다면 이 "어리석은"이라는 말은 핵심적인 구절일 것이다.

 

아랍인들에게 수 천명의 무고한 죽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 보라. 제대로 된 사람이 보통 그렇듯이 그 사람도 그것은 말할 수 없는 범죄라고 반응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반문할 것이다. 우리는 왜 이라크에서 50만명 이상의 어린이들의 목숨을 파괴하는 봉쇄 조처에 대해서는 범죄라는 말을 쓰지 않았는지, 또 1982년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으로 1만7500명의 시민이 죽은 것에 대해 분노하지 않았는지 말이다. 그리고 지난해 9월에 중동이 포화에 휘말려 들어간 근본적인 이유 곧 이스라엘의 아랍 영토 점령, 팔레스타인을 몰아낸 것, 국가가 지원하는 폭격과 처형 등 이 모든 (과거의) 일들은, 지난 9월 11일 대량 학살의 이유를 보여주는 아주 작은 단서라도 되지 못한다면 그냥 묻혀버리고 말 것이다.

 

아니, 이스라엘은 비난받지 않았다. 사담 후세인과 다른 그로테스크한 독재자들이 이스라엘에 책임이 있다고 주장할 것이 분명하지만 말이다. 그러나 역사의 해로운 영향과 그 가운데 우리가 떠안아야 할 책임은 분명 자살 폭파범과 함께 역사의 그늘 속에 나란히 배치되어야 한다. 아마도 우리의 오스만제국 파괴와 함께, 우리의 약속 위반이 이러한 비극을 피할 수 없게 만들었다. 미국은 너무 오랫동안 이스라엘에 전쟁 자금을 지원해왔다. 너무 오랫동안이어서 그것은 비용이 아니라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말이다. 더 이상은 그렇지 않다. 하지만 물론 미국은 "세계 테러"에 반격을 하고 싶어할 것이다. 사실, 경멸적이며, 때때로 인종차별적인 의미를 담기도 하는 "테러리즘"이라는 말을 쓴다고 미국에 손가락질 할 이가 어디 있겠는가?

 

지금으로부터 18년 전, 나는 왜 그렇게 많은 회교도들이 서방을 미워하게 되었는지를 해명하는 텔레비전 시리즈를 만드는 작업에 참여한 적이 있다. 나는 지금 그 영상 속에 등장하는 회교도들을 기억한다. 미국이 만든 폭탄과 무기 때문에 가족들이 불타버린 이들을 말이다. 그들은 신이 아닌 그 누구도 그들을 도울 수 없는지 이야기했었다. 신앙 대 기술, 자살폭파범 대 핵무기, 우리는 이제 이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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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피스크는 영국에서 태어났으며 1971년 언론계에 들어와 1976년부터 지금까지 여러 언론사의 중동 특파원을 하고 있는 중동 전문 기자입니다. 현재는 영국의 일간지 인디펜턴트의 중동 지역 특파원입니다.

 

원문: www.thenation.com/doc.mhtml?i=20011001&s=fisk

번역: 백명수 (환경운동연합 시민환경연구소 연구원)

2004/07/11 15:55 2004/07/11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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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랄프 네이더를 지지한 이유

팀 로빈스(Tim Robbins)

더 네이션 2001년 8월6일

 

미국의 유명한 영화배우 팀 로빈스와 그의 부인이자 역시 배우인 수전 서랜던은 지난해 대선에서 녹색당 후보 랄프 네이더를 지지했답니다. 로빈스가 2001년 6월 `업톤 싱클레어 상'을 받는 자리에서 미국의 정치 현실, 민주당의 문제, 세계적인 반세계화 운동 등에 대해 발언한 것입니다. 양심적인 미국 지성인의 진솔한 이야기입니다. 왜 세계화가 문제인지를 쉬운 말로 풀어놓은 썩 괜찮은 글입니다.

 


 

 

나는 뭘 위해 투표했는가 (What I Voted For)

팀 로빈스(Tim Robbins)

 

6월 중순 (영화배우) 팀 로빈스는 로스앤젤레스에서 풀뿌리 조직을 지원하는 리버티힐 재단 (Liberty Hill Foundation)의 연례 저녁모임에서 연설했다. 그의 정치 참여적 영화와 운동에 대한 헌신을 인정해, 이 재단은 그에게 업톤 싱클레어(Upton Sinclair)상을 수여했다. 다음은 그의 발언을 편집한 것이다. -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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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전 뉴욕의 한 극장에서 흥분한 부부가 나에게 다가왔습니다. 그리고는 "이제 기쁘시겠군요"라고 말하더군요. 그들이 뭐라고 답할지 의아스러워하면서 "뭐 때문에요?"라고 말했죠. "당신의 네이더가 부시를 우리에게 안겨줬잖아요." 내가 랄프 네이더를 지지한 것이 마치 배반이요, 모독이요, 헌법을 희롱한 것과 같은 일이라고 생각하는 성난 자유주의자들의 공격을 받은 것이 물론 처음은 아닙니다. 선거를 앞두고 나와 수전 (서랜던)은 뉴욕타임스의 의견난에서 공격을 받았죠. 네이더 지지를 포기하라는 내용의 협박성 팩시밀리를 유력한 여성운동자에게서 받기도 했습니다. 선거 일주일전에는 할리우드의 유력한 브로커의 전화도 받았어요. 그는 네이더에게 전화해서 사퇴하도록 하라고 종용했습니다. 사퇴하면 자신이 녹색당에 10만달러를 기부하겠다고도 하더군요. 나는 우리가 전화한다고 흔들릴 사람이 아니라고 말해줬죠. 또 이건 개인적 영향력이나 거래를 위한 정치활동이 아니라고 했죠. 녹색당은 그런 기부금을 받지도 않을 거라고 덧붙였습니다. 선거가 끝난 뒤엔, 네이더를 지지한 사람들은 가난한 이들을 걱정하지 않는 최악의 리무진 자유주의자(limousine liberals)라고 비난하는 유명한 배우의 글도 읽었습니다.

 

네이더를 지지하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동료나 사업 관계자들이 우리에게 분명히 전달한 메시지는 네이더 지지의 대가를 치를 것이라는 점이었습니다. 그럴까요? 전 몰라요. 선거 뒤에 앞에서 말한 할리우드의 거물이 공개적으로 우리 아이 하나에게 훈계를 했습니다. 또 알게 뭡니까, 엄청난 파티에 우리가 초대받지 못했는지.

 

그래서 어쩌자는 거죠? 방어적으로 투표를 하다가 어느 순간 모든 공화당원들은 악마의 화신이라고 깨달은 사람들의 이런 반응을 충분히 이해는 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사람들이기도 하고요. 8년전에라면 저도 똑같이 나를 설득했을 겁니다. 그러나 그 사이에 내가 생각을 바꾸도록 만든 수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시애틀 시위 뒤에 친구들과 대화하고 나서, 또 워싱턴시에 수전과 함께 갔다온 뒤에, 국제통화기금-세계은행에 반대하는 활동가들과 대화하면서, 5번가의 갭 상점 앞에서 갭의 노동착취에 대한 전단을 뿌리던 13살짜리 어린이와 대화한 뒤로, 또 클린턴 집권기에 민주당이 꾸준히 우경화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저는 깨닫게 됐습니다. 이번에는 전략적으로 투표하는 대신 양심에 따라 투표해야겠다고요.

 

오늘 진정 중요한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새로운 운동이 대학에서, 유럽의 좌파 사이에서, 전세계 인권 단체들 사이에서 서서히 자리잡고 있습니다. 1999년 시애틀 시위, 2000년 워싱턴의 국제통화기금-세계은행 반대 시위, 또 기업들이 세계 경제정책과 환경정책을 결정하기 위해 모이는 곳이면 어디서든지 나타나는 시위는, 언론들이 묘사하는 것과 달리, 단지 일부 급진주의자와 무정부주의자들의 활동이 아닙니다. 이런 밀실의 결정이 지구의 미래를 위한 싸움의 최전방이라고 생각하는 학생, 환경보호운동가, 노조, 농민, 과학자, 기타 시민들의 광범한 연대가 태동하고 있습니다. 이 운동은 아직 초보단계지만, 18세기 노예제 폐지운동가들의 초창기 싸움처럼 도덕적으로 호소력있는 것입니다. 또 1850년대 초반 노동 현장의 안전을 위해 싸운 노동운동가들의 활동만큼 중요한 것입니다. 또 기업들이 우리 환경을 광범하게 파괴하고 있음을 미국 대중에게 처음 경고한 과학자들처럼 거부할 수 없는 것입니다. 두당 모두로부터 과도한 비난을 받고 있는 이 운동을 언론은 무시하고 비판했습니다. 이 운동 지지자들이 경찰 등 정부기구로부터 학대받고 체포되고 심지어 살해당하고 있는데도 말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강고함 때문에 우리는 결국 이 나라에서 노예제를 폐지하고, 최저임금제를 도입하고 사회보장을 갖추고 실업보험을 도입하고 환경에 대한 책임과 작업장 안전을 도모하는 법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이 모든 문제에서 진전이 있었지만, 지금 우리는 위험한 작업장과 노동착취 공장에서 이뤄지는 아동 노동과 노예노동이 재현되고 있음을 목격합니다. 또 미국에서 진보에 저항하던 때와 똑같은 기업 풍토 때문에 제3 세계에서 부도덕한 환경 파괴가 나타나고 있음도 목격하고 있습니다. 이윤과 경제성장을 위해 우리의 기업들은 세계경제에 접근해서는, 이 모든 문제를 1850년 수준으로 돌려놓는 방법을 찾아낸 겁니다. 북미자유무역협정,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 세계무역기구가 부여한 자유무역과 보호조처 덕분에 가능해졌고 더 대담해져서, 우리는 외국에서 이런 문제를 키우고 있습니다. 우리 경제가 호황을 누리고 있는 때에 이런 생각을 포용하는 것은 불편한 일입니다. 우리의 공식 언론들이 이에 대해 쓰지 않고 있는 것 또한 명백합니다. 그러나 거리에서 사람들이 소리치고 있고, 이 시위대의 주장은 반박할 수 없는 도덕적 무게를 지니고 있습니다. 랄프 네이더는 이런 문제에 대해 논하고 이 새 운동을 자신의 것으로 감싸 안을 수 있는 유일한 후보였습니다. 이 점이 수전과 내가 그에게 투표한 이유입니다.

 

지난해 선거는 우리를 중요한 교차점으로 몰고갔습니다. 치열한 접전은 이 나라에서 선거가 부패하고 조작됐으며 불법적으로 진행된다는 것을 폭로하는 돌을 들어올렸습니다. 실로, 지난해 가장 비현실적이고 우스운 순간은 피델 카스트로가 선거 감시단 파견을 제안했을 때입니다. 플로리다에서 벌어진 명백한 선거 부정은 차치하고라도, 인종 차별이 몇년동안 선거에서 나타났다는 것이 잠깐 주목받았습니다. 아프리카계 미국인 선거구에 장애물을 설치하는 것이든, 아니면 아프리카계 미국인 이름이 선거인 명부에서 사라진 것이든, 저소득층 선거구의 비효율적이고 구닥다리 투표기계든지, 또 아니면 대법원이 당파적 정치기구라는 점이 폭로된 것이든지, 모두 똑같은 모습을 보여줍니다. 미국의 힘있는 지배계급은 민주주의를 두려워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민주주의를 두려워하는 이들은 '악마' 공화당원이다라고 제가 말했을 만한 때가 있었죠. 그러나 2000년 대선과 우리가 네이더를 지지한 데 대한 반응들을 겪은 뒤에 제가 깨달은 슬픈 사실은, 여기에 민주당원도 포함시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민주주의만 두려워하는 것이 아닙니다. 절대 다수는 아닐지 몰라도 많은 민주당 엘리트들은 이상주의도 두려워합니다. 저는 당내 진보세력을 제지하고 내부 의견차이를 감내하지 않으며 지난 50년동안 가장 중요하고 영향력이 컸던 소비자운동가를 악마로 만들려고 하는 당에 대한 커다란 존경심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러나 놀랄 것 없습니다. 20세기 초에도 비슷한 반응이 있었으니까요. 같은 운동가 업톤 싱클레어가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에 나섰을 때 말입니다. 민주당의 힘있는 브로커들은 그를 고립시키려고 온갖 짓을 했습니다. 지지한다고 해도 마지 못한 것이었고, 어떤 이들은 심지어 공화당의 상대 후보 프랭크 메리엄을 지지했습니다. 언론은? 그들은 업톤을 악마로 만들었고 그를 반기업적이라고 했으며, 독선가라고 했습니다. 많이 들은 소리죠?

 

내가 만난 네이더 지지자 대부분은 진지했으며 자신들의 삶을 네이더 지지에 헌신한 이들이었습니다. 이들은 논란의 여지가 크고 어려운 쟁점을 둘러싼 투쟁의 한 가운데 있습니다. 그들의 정치 참여는 그들을 비판하는 것으로 마무리지은 이들보다 훨씬 더 존경받을 가치가 있습니다.

 

베트남 전쟁을 끝내기 위해 싸우고 여성의 권리를 위해 싸운 세대의 재판관적이고 거만한 태도는 실망스럽고 맥빠지게 하는 것이지만 이해할만은 하죠. 그러나 빌 클린턴이 그 세대가 줄 수 있는 최고라는 생각에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또 나는 자신들 주변의 새로운 운동의 중요성을 아직 인식하지 못한 그 세대의 진보세력들 속에 잠재적인 힘이 남아있다고 믿고 싶습니다. 부당한 전쟁에 저항한 베트남전쟁 시대의 아이들이 자기 보호, 곧 전쟁에서 목숨을 잃지 않으려는 것 이상의 문제에도 관심을 기울인다고 믿고 싶습니다. 또 성 문제가 노동착취 공장에서 현저히 작용하고 있으며 성 문제가 사람을 노예로 만드는 데 명백히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여성운동가들이 이 문제 또한 자신들의 쟁점으로 인식하고 재생산의 권리를 후보 검증의 유일한 기준으로 보는 것을 넘어서기 시작할 것이라고 믿고 싶습니다. 나는 또 더 높은 이상, 전세계와 관련된 이상이 우리 모두를 움직이게 할 것이라고 믿고 싶습니다.

 

제3의 정당 모색 시도를 시작하도록 도왔으며 기업의 인심좋은 부자 아저씨들의 기부금과 지구의 미래를 맞바꾸지 않을 젊은이들은 우리 시대 핵심 쟁점에 관해서 민주당과 공화당이 연합하고 있다고 믿습니다. 이 새 운동은 기존 정치에 대한 거부이며, 진보적인 진영의 반응을 고려할 때 무서운 암시를 담고 있는 것에 대한 거부인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부모 세대와 같아졌습니까? 우리가 기존세력인가요? 우리는 기존 현실입니까? 이상과 꿈을 지닌 이들을 냉소적으로 거부하고, 이상주의자들에게 이번 선거에서 당신들의 자리가 없다고 말하며, 전략적으로 투표하라고 주장하고, 우리의 꿈을 감당할 수 없다고 하며, 차악을 선택하라고 하는 현실말입니다. 극장에서 제가 만난 부부, 의견난의 칼럼니스트, 할리우드의 거물, 유명한 배우는 4년마다 자신들의 후보를 위해 북을 쳐대고, 선거에서 지면 우리의 문명이 종말을 고할 것처럼 상대 후보를 헐뜯습니다. 그들은 동성간 결혼을 거리낌없이 지지하는 후보에게는 표를 주지않을 동성애자 칼럼니스트이고, 공화당원이 차지한 백악관에서는 더 이상 하룻밤 묵으면서 몇사람에게만 영화를 상영하지 않을 거물이고, 자기가 속한 노조의 파업을 지지하기 위해 시위하러갈 방법도 못찾을 가난한 이들을 걱정한다고 고백하는 배우입니다.

 

나는 안락의자에 앉아있는 활동가를 존경하지 않습니다. 갭 상점 앞의 타협하지 않는 어린이를 존경합니다. 나는 그들의 이상과 열정과 전망을, 중도파가 되고 싶어하는 민주당의 통합을 위해, 사형을 지지하고 기업의 복지를 위해 사회복지를 파괴하는 민주당을 위해, 노동운동의 중심을 분열시키는 경제체제 구축을 돕는 민주당을 위해 양보할 준비가 안되어 있습니다.

 

민주당 상원의원 몫인 정치적 용기의 실현이 버몬트 출신 공화당원 몫이 되는 현실이 너무나 당혹스럽습니다. 아마도 이제 정치적 성향 때문에 사람을 악마로 만드는 일을 중단하고 자기 내면의 목소리를 따르기 위해 정치적 미래를 내던지는 의원의 모범을 따를 때인가 봅니다. 또 기존 정치를 거부하고 우리 풀뿌리들의 가슴을 따를 때인가 봅니다. 또 가능해보이지 않는 곳에서 연대를 이룰 때인가 봅니다.

 

이는 정의를 위한 긴 싸움입니다. 진정한 변화를 이루는 것은 풀뿌리 운동입니다. 어떤 풀뿌리 운동도 이상을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진정한 변화는 워싱턴의 칵테일 파티나 백악관 링컨 침실에서 일어나지 않습니다. 이는 힘들고 혼란스러우며 심한 동요가 요구됩니다. 노예제를 없애는 데는 100년이 걸렸고 어린이 노동착취를 없애고 최저임금을 쟁취하는 데도 100년이 걸렸습니다. 이 운동은 이제 막 시작됐습니다. 그러나 이 운동은 활력이 넘치고 사그라들지 않고 있습니다. 문이 우리에게 활짝 열려있습니다. 이는 넘기 두려운 문턱이지만 꼭 필요한 것입니다.

 

 

원문: www.thenation.com/doc.mhtml?i=20010806&s=robbins

번역: 신기섭

2004/07/11 15:24 2004/07/11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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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진보 진영의 글을 번역해 공개하는 걸 주 목적으로 하지만 요즘은 잡글이 더 많습니다. marish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