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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론에 대한 흥미있는 안내서

<자본의 두 얼굴> (부제: 이진경의 마르크스 재해석에 대한 반론)
(김동수 지음, 한얼미디어, 2005, 1만9800원)

 

정체를 알기 어려운 사실상 무명의 저자인 김동수라는 이가 이진경이라는 유명 작가의 <자본을 넘어선 자본>을 비판한 책을 내놨다고 했을 땐 그냥 '흥미롭군' 하고 넘어갔다. 그런데 그 책이 자그마치 590쪽에 달한다는 걸 알고는 놀랍기도 했지만 도저히 읽을 엄두를 낼 수 없었다. 품질이 보증 안되는 두꺼운 책을 읽는다는 건 너무 큰 모험이었다. 하지만 마르크스 문제에 관한 한 신뢰할만한 <진보평론> 2005년 여름호에 서평이 실린 걸 보고, 읽어도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시작해서 모두 읽는 데 한달이 걸렸다.

 

읽으면서 든 첫번째 생각은, 자본론에 대한 문외한인 내가 보기에 경이로운 책이라는 것이다. 나로선 이진경의 자본론 해석이 맞는지(게다가 난 그의 책을 읽지 않았다) 아니면 김동수의 해석이 맞는지 평가할 능력이 없다. 하지만 적어도 자본론에 대해 김동수가 얼마나 해박한지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더 놀라운 건, 이진경에 대한 집요하리만치 꼼꼼한 비판과 이 비판을 뒷받침하기 위한 방대한 인용이다. 그는 마르크스의 저작에 대한 해박함뿐 아니라 마르크스가 비판한 아담 스미스와 데이비드 리카도에 대한 이해의 폭과 깊이도 유감없이 보여준다. 또 인용의 범위 또한 다양하다. 이는 일러두기에 표시해놓은 58권의 인용 도서 목록만 봐도 알 수 있다. 마르크스와 헤겔은 물론이고 네그리, 알랭 바디유, 앨런 소칼, 헨리 조지, 박노자까지 다양한 국내외 학자들이 인용되고 있다.

 

이 책의 주장은, 이진경이 가치와 사용가치를 구별하지 못해서 마르크스와 <자본론>을 박제화시켜, '자본'의 장식물로 만들어 놓았다는 것이다. 저자는 또 이진경의 주장이 사실 들뢰즈의 주장의 복제품에 불과하다며 자본론을 넘어선 게 아니라 해체해서 마르크스가 그렇게 비판한 고전파 이전으로 돌아가버렸다고 주장한다. 이 주장의 진위는 알길 없다. 다만 이진경이 마르크스의 글들을 아주 편의적으로 인용하고, 때로는 완전히 반대의 뜻으로 인용하는 게 부지기수인 것만큼은 분명해 보인다.(김동수가 반박을 위해 제시하는 이진경의 인용문 앞뒤 부분과 인용문 맥락이 김동수의 창작이 아니라면 말이다.)

 

이 책을 통해서 우리가 꼭 알아야 할 게 있다면 아마 그건 가치와 사용가치일 것이다. 저자가 계속 강조하는 것도 바로 이 것이기 때문이다.

  • 가치: 상품에서 자연적인 속성을 제거하면, 노동생산물이라는 공통의 사회적 속성만이 남게 된다. 이 경우 노동은 구체적인 성질을 잃고, “추상적인 인간노동”으로 환원된다. 이제 노동생산물은 추상적 인간노동의 일정량, 또는 지출된 일정량의 노동력이 대상화(체현)된 “사회적 실체의 결정체”인데, 마르크스는 이를 가치라고 불렀다. 가치의 양은 노동시간에 의해 측정된다.(29쪽)
  • 사용가치: 마르크스에 의하면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켜 주는 물건”(자본론 1권 43쪽)의 유용한 성질이 그 물건을 사용가치로 만들어주는데, 어떤 물건이 상품이 될 수 있는 것은 그 물건 자체가 사용가치이기 때문이지, 거꾸로 상품이기 때문에 사용가치가 되는 것은 아니다. 또한 사용가치인 상품은 교환되는 물건이며, 다양한 종류의 다른 상품과 다양한 비율로 교환된다.(22쪽)
  • 가치와 사용가치: 사용가치를 창조하는 노동을 '구체적 유용노동'이라고 부르고, 가치를 창조하는 노동을 '추상적 인간노동'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상품의 이중성(사용가치와 가치의 통일)이 노동의 이중성(구체적 유용노동과 추상적 인간노동의 통일)으로 나타난 것이다.(32쪽)

 

내가 이해한 바를 요약하자면, 가치는 인간만이 창출할 수 있는 것이며 (공기나 물 같은 자연이 지닌 것은 사용가치다) 상품 생산에 투여된 인간노동으로 측정된다. 반면 사용가치는 물건 그 자체이고,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상품이 바로 사용가치다. 저자의 설명을 빌리자면, 교환을 전제로 한 자본주의 상품은 만드는 사람에게는 사용가치가 아니다. 사용가치 곧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켜 주는 물건이라면 자신이 소비하지 남에게 팔지 않을 것이다. 소비하고 남은 것만 팔 수도 있는데, 이렇게 남은 것 또한 그에게는 사용가치가 아니다. 이미 욕망이 충족되고 남은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 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이 상품이 자신에게 사용가치이기 때문에 산다.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켜 주지 못한다면 살 이유가 없다. 그러니 사용가치는 '추상적 인간노동의 일정량이 대상화된 것'인 가치와 전혀 다른 것이다.

 

이야기가 나온 김에 몇가지 개념에 대한 설명을 더 소개한다.

  • 잉여생산물과 잉여가치: 잉여노동의 결과물은 단순히 사용가치로서의 잉여생산물일 수도 있고, 잉여가치일 수도 있다. 전자는 부역의 형태로 잉여노동을 제공하는 중세에서는 간단히 관찰할 수도 있다. 여기서는 가치법칙을 적용할 필요가 없다. 신분적 강제가 조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본가는 자신의 창고에 쌓아두기 위해서가 아니라 판매를 위해 생산한다. 즉 그의 관심은 잉여생산물이 아니라 잉여가치이다. 이것의 존재와 발생방식에 대한 마르크스의 연구가 <자본론>으로 집대성된 것이다. 그런데 이진경은 잉여생산물과 잉여가치를 구별하지 않는다.(200쪽)
  • 잉여가치: 사실 노동의 대가가 온전하게 지불되는가 그렇지 않은가는 잉여가치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노동은 판매되지 않기 때문이다. 잉여가치는 노동의 대가라는 관념을 버릴 때만 이해할 수 있는 문제다. 마르크스는 노동의 대가라는 관념을 버리고 노동이 판매되는 것이 아니라 노동력이 판매되는 것임을, 자본가의 잉여가치는 노동력의 가치와 노동의 결과물의 차이에서 발생하는 것임을, 따라서 잉여가치는 등가교환의 기초 위에서 성립한 것임을 보여줌으로써 자본주의적 생산의 비밀을 해명하였다.(177쪽)
  • 절대적 잉여가치: (필요노동시간을 넘어설 때까지-인용하면서 덧붙임) 노동일의 단순한 연장에 의해 획득되는 잉여가치를 마르크스는 절대적 잉여가치라고 불렀다. 절대적 잉여가치는 자본의 본성을 드러내는 최초의, 단순한 표현으로, 증식에 대한 자본의 요구는 그 직접적인 형태에서는 언제나 노동일의 연장으로 나타난다.(216쪽)
  • 상대적 잉여가치: 노동력의 가치하락으로 인해, 따라서 필요노동시간의 감소에 의해 확보되는 잉여가치를 마르크스는 상대적 잉여가치라고 불렀다.(222쪽)
  • 특별잉여가치: 개별적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노동생산성의 향상 등에 의해 발생하는 잉여가치가 특별잉여가치이다. (생략) 따라서 총체로서의 자본이 상대적 잉여가치를 생산하기 위해 수행하는 일을 각각의 자본가들은 개별적으로 수행한다. 특별잉여가치는 상대적 잉여가치의 특수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특별잉여가치는 한 사업장에서는 노동생산성을 향상시키는 새로운 생산방식이 사회 전체의 일반적 방식으로 확산되고, 그 결과 싸게 생산된 개별생산물의 가치와 사회적 가치의 차이가 없어짐에 따라 소멸한다.(223쪽)

 

<진보평론> 서평자가 지적했듯이, 이 책의 의도는 이진경 비판이었지만 본 의도와 상관없이 자본론에 대한 훌륭한 안내서가 됐다. 이 책만으로도 <자본론>의 핵심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자본론>이 담고 있는 게, 오늘날 우리가 경제 현안을 판단하는 데 아주 유용하다는 것도 깨닫게 된다. 다만 웬만하면 이 책을 읽은 뒤에 <자본론>을 직접 읽음으로써 저자의 주장이 맞는지 확인하는 절차가 필요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덧붙이자면, 이런 책이 큰 관심거리가 안되는 우리 풍토가 안타깝다. 요즘 잘 나가는 유명 작가를 노골적으로 비판, 비난하는 데다가 <자본론>을 나름대로 파악해서 아주 쉽게 해설하고 있는 책인 데 말이다. 어떤 이유로건 관심거리 또는 논쟁거리가 되어야 마땅한 책이다.

2005/09/26 13:51 2005/09/26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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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없는 일본 사회

삶이 절망적이기는 일본도 마찬가지인가보다. 조직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삶을 위해 아르바이트만 한다는 이른바 '프리터'가 사실은 하루 8시간, 주 5일을 일한다고 한다. 말이 좋아 프리터지, 단순 저임 시간제 노동자다. 체인형 게임센터나 식당의 관리자는 하루에 기껏 3-5시간 정도밖에 잠잘 시간이 없다고 한다. 그러니 이런 일은 프리터말고는 아무도 하기 힘든 일이 됐다고 한다. 단지 돈의 문제가 아니라 희망을 잃어버린 일본인들, 인간 관계가 단절된 일본인들, 그들도 우리와 별로 다를 게 없이 고통속에 신음하고 있나보다.

 

노숙자(홈리스)는 '호프리스', 희망없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나니, 정말 그렇다고 절감합니다. 그들은 “내가 지금 조금 노력하면 나중에 어떻게 될까?”를 생각하지 않습니다. 미래를 볼 수 없는 겁니다. 누군가 “병원에 가서 몸을 회복한 뒤에 다시 한번 시도해보면 어떤가요?”라고 하면 이런 답이 돌아옵니다. “병원가면 뭐해요? 그 다음에 어떻게 되는데요? 몸이 조금 더 나아져도 밖에 나가면 일자리가 기다리고 있지도 않을거에요. 그러니 번잡스럽게 병원에 입원하러 왜 갑니까?”...

'삶의 가치'에 대한 이야기는 보통 종교로 귀결되곤 합니다. 그러나 내 느낌은, 문제가 단순히 경제 문제가 아니라 더 깊은 뿌리가 있다는 겁니다...

호프리스의 절반은 홈리스(노숙자)가 됩니다. 나머지 절반은 일본을 탈출해 해외 여행을 합니다. 수입면에서는 하늘과 땅 차이지만, 사실 그들이 그렇게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들을 연결하는 선이 있어야 합니다...

'버블 초과 고용 세대'의 의사소통 능력이 극도로 줄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학력 저하를 걱정하는 듯 한데, 저는 어른들이 놀랍게 한 데 뭉쳐서, 아이들만 지옥으로 빠져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간 관계가 약화하는 건 가정에서도 마찬가지 입니다. 요즘은 퇴직 연금을 받으면서 거리에 사는 나이든 노숙자들을 볼 수 있습니다. 법적으로는 퇴직 연금을 받으려면 등록된 주소가 있어야 합니다. 등록된 주소에 더는 살지 않으니 어떻게 해야하느냐고 묻거나 어떻게 하면 병원에서 치료를 받거나 외래 처치를 받을 수 있느냐고 묻습니다. 이런 경우처럼 경제 환경이 전부가 아닙니다. 인간 관계가 큰 요소입니다. 어느 날은, “아이가 쓸 방이 필요해져서 이젠 내 공간이라곤 남은 게 없어요”라고 하는 사람을 본 적 있습니다....

일하는 사람들 문제에 대해 거론하기 전에 지적할 것은, 요즘은 고교 졸업생 5명 가운데 1명만이 정규직 일자리를 구할 수 있는 지역들이 많다는 사실입니다...

맥도널드에서 손님에게 인사할 때 어느 각도로 고개를 숙여야 하는지 제 아무리 잘 습득해봐야, 할 수 있는 건 기껏 켄터키나 롯데리아로 옮겨가는 겁니다. 요즘 요리에 관한 만화책이나 텔레비전 드라마가 그렇게 인기있는 이유는, 솜씨가 느는 게 가시적으로 보이고 그 일로 사람들을 즐겁게 해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현상의 뒷면은, 자신이 사회에 유용하다는 걸 분명히 느끼고 알 수 있는 직업이 아주 드물다는 겁니다. 요리사나 카리스마 넘치는 미용사 같은 것들을 빼면 말입니다...

 

 

-- '희망이 없는 일본 사회에 내일이 있는가?', 가네코 마사루와 가네코 마사오미의 대담, <세카이> 710호, 2003년 2월호에서 인용.

2005/09/22 22:36 2005/09/22 2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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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학자가 본 '남한 정치 투쟁 상황'

아메리카 좌파 경제학자인 마틴 하트-랜즈버그가 지난 8월15일 먼슬리리뷰에서 운영하는 사이트 엠아르진(MR Zine)에 한국의 경제 상황에 대한 비교적 길지 않은 글을 썼는데, 이 글의 후속편으로 '남한: 정치 투쟁 상황'이라는 글을 얼마전에 다시 엠아르진을 통해 공개했습니다.

 

이 글은 우리로서는 지극히 평이한 수준의 글입니다. 하지만 외국 학자의 우리 상황 이해가 어느 수준인지 판단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한번쯤 읽어볼만 할 겁니다. 또 혹시라도 우리가 보지 못하는 측면이 담겨 있을 지도 모릅니다. 길지 않기에 번역해봤습니다.

 

동북아시아에 대한 글을 주로 쓰는 하트-랜즈버그는 우리에게 비교적 알려진 인물입니다. 3권의 책이 번역되어 나왔기 때문입니다. 한국 100년의 역사를 아메리카의 개입과 관련지어서 정리한 책인 <이제는 미국이 대답하라> (당대, 2000) 폴 버캣과 함께 쓴 논문을 모아놓은 <일본경제 들여다보기> (미토, 2005), 역시 버캣과 함께 쓴 것으로 중국의 경제체제가 사실상 자본주의라고 비판한 책인 <중국과 사회주의> (한울, 2005)가 국내에 출판된 책들입니다. 하트-랜즈버그는 얼마전에는 서울을 방문하기도 했습니다.


남한: 정치 투쟁 상황
(South Korea: The State of Political Struggle)
마틴 하트-랜즈버그(Martin Hart-Landsberg)

먼슬리리뷰진 2005년 9월5일 (원문 mrzine.monthlyreview.org/hartlandsberg150905.html)

 

외환 위기 이후 남한 경제의 경로는 일하는 이들에게는 재앙이었다. 그리고 남한 노동운동과 좌파운동은 진행중인 신자유주의적 구조 개편을 격퇴하기 위한 아주 힘든 투쟁을 벌이고 있다. 이 글에서는 이들 운동이 직면한 도전 몇가지를 논할 것이다. 이는 전세계 노동자와 활동가들도 점점 더 이와 비슷한 도전에 직면해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른 나라들의 투쟁에 대해 알고, 그로부터 교훈을 끌어내려고 하는 것이 우리의 집단적 지혜를 연마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이 점은 특히 남한의 경우가 더 그런데, 지당한 것이지만 남한 운동은 용기와 전투성으로 아주 유명하기 때문이다.

 

투쟁의 지형(Terrain of Struggle)

남한의 외환 위기 이후(1997-98년) 경제 구조 개편은 외국인 투자 및 수출에 대한 의존도를 아주 높였다. 남한 재벌들이 경제 위기로 약화된 정도인 데 반해, 중소기업은 최대 시련을 겪었다. 예를 들어 많은 재벌들은 외국 기업들과 연합을 형성했고 이는 영향력을 회복할 수 있게 해줬다. 남한 국내외 경제 지도자들이 최우선 순위로 삼은 것 한가지가 노동 운동 약화이다. 그들은 “노동시장 개혁”이 없다면 투자와 생산을 중국으로 옮겨가는 것 외에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경고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친 노동계 인사로 여겨졌음에도, 이런 요구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예를 들면, 정부는 기업들이 비정규직 노동자를 고용하는 걸 더 자유롭게 하는 법률을 통과시켰다. 비정규직 노동자 비율은 경제 위기 이전의 42%에서 현재 54%로 급격하게 늘었다. 그들의 임금은 정규직의 53%에 불과하다. 아주 실제적인 자본 이탈 위협과 함께 이런 조처들은 거대 제조업체들이 노동 비용을 줄이고 이윤을 높일 수 있게 해줬다. 하지만 기업의 이윤이 새로운 투자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 그 결과, 성장률은 낮은 수준에 머물고 이는 정부로 하여금 기업에 더 양보하도록 부추기는 요소로 작용한다. 이미 저임금과 불평등 및 빈곤 확대, 불안 심화로 고통받고 있는 노동자들은 어두운 미래를 직면하고 있다.

 

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KCTU)

한국의 주도적인 노조 총연맹인 민주노총은 (더 보수적인 노총이 하나 더 있다) 노동자의 이익을 지키려 애쓰고 있다. 민주노총은 임금인상과 노동조건 개선을 위한 파업을 촉구했다. 비정규직 노동자 사용 확대를 위한 새로운 법률안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를 조직했고, 날로 늘어나는 이주 노동자의 노조설립 권리와 그들에 대한 보호를 지지하며, 공공부문 노조의 완전한 권한 쟁취를 위해서 싸웠다. 최근에는 노동부 관련 모든 자문 위원회에서 탈퇴했다. 불행하게도 이런 노력은 제한적인 성공만을 거뒀다. 그리고 최근 노조 가입률이 11%까지 떨어지면서 정치적 비중도 줄고 있다. 노조 활동가들이 다음 단계를 놓고 논쟁을 벌이는 와중에 그들이 직면한 주요 쟁점이 두가지 있다. 민주노총 내부 조직 문제와 정치적 지향 문제다.

 

구조적 쟁점들:

노조 조합원들은 노동자들의 더 넓은 관심사로부터 날로 고립되고 있다. 이렇게 되는 주된 이유는 남한 노조가 기업별 노조라는 점이다. 그리고 노조조직률은 기업의 규모와 연관되어 있다. 노동자 1000명 이상의 거대 사업장들은 노조가 있는 전체 기업의 2.7%를 차지하는 반면, 이들 기업 노동자들이 전체 노조 조합원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61.2%에 달한다. 그래서 민주노총 조합원 대다수는 거대 제조업체 정규직 노동자들이다. 그래서 그들은 대부분의 노동자들에 비해 더 많은 임금과 더 나은 노동조건을 향유한다.

 

상대적으로 특권적인 지위에 있지만 민주노총 조합원들은 점점 더 적대적이 되어가는 노동 환경에 직면해 있다. 대기업들은 공격적으로 인력을 줄이고 있으며, 부분적으로는 하청을 통해 인력 감축을 달성하고 있다. 임금과 각종 혜택의 감축도 요구하고 있다. 민주노총 소속 노조들은 이런 행위에 저항하려 시도할 뿐 아니라 노동현장 내 권한 강화도 꾀하고 있다. 예를 들면 현대자동차 노조는 투자 결정에 참여할 권리를 요구하고 있다. 최근 이 노조는 성과급 분배에 발언권을 요구하면서 압박 수단으로 경고 파업을 선언했다. 기아차 노조는 이사회 참여와 인사위원회 노사 동수 구성을 요구하고 있다. 이런 것들이 중요한 투쟁들이긴 해도, 이들 노조가 개입하고 있는 쟁점들은 대부분의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중소기업 노동자들의 생존에 관련된 쟁점들과는 거리가 아주 먼 것들이다.

 

기업별 노조체제는 중소기업 노조 조직률을 높이려는 민주노총의 노력도 저해한다. 중소기업 노동자들은 활발한 조직화 활동 또는 노조 활동을 유지할 인적, 재정적 자원이 없다. 민주노총 자체도 이들을 도울 여력이 없다. 노총은 자원이 제한되어 있고 대기업 노조들은 자신들 소속 조합원의 이익과 직결되지 않는 활동을 위해 노조기금을 공유하기를 꺼린다.

 

이런 상황이 민주노총 내부에서 조직 개편의 필요성을 둘러싼 뜨거운 논쟁을 촉발했다. 많은 활동가들은 민주노총을 강화해 노총 차원의 노동교육 프로그램과 함께 조직화 활동을 후원하고 지원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들은 또 이 단계에 적합한 체제로서 산별 노조 구성을 요구한다. 다른 활동가들은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들은 현재 구조가 가장 민주적이고 노동자들의 필요와 이익에 가장 잘 반응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 논쟁은 어떻게 하면 노동계급 대표성과 활동을 가장 효율적으로 보장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포함한 노조 형식과 목표에 대한 중대한 문제들을 제기한다.

 

정치적 쟁점들:

다른 쟁점 하나는 반자본주의 운동 형성에 대한 민주노총의 자세다. 민주노총은 신자유주의 비판을 분명히 하고 있지만 남한 경제의 급진적 구조 개편 운동을 전개할 준비는 되어 있지 않다. 많은 면에서 이 점은 1990년대 초 노동 활동가들이 좌파 정치에 개입하지 않고 노조의 권한을 보호하는 데 초점을 두기로 한 결정의 결과다. 이 결정은, 좌파에 대한 정부의 무자비한 공격과 소련의 붕괴, 북한과 미국의 핵 문제를 둘러싼 긴장 고조라는 상황에 대응해서 내려졌다. 1995년 마침내 민주노총이 출범했다. 정부로부터 인정을 받은 것은 3년 뒤인 1998년이지만 말이다. 경제가 확대되는 동안엔, 민주노총이 조합원들의 생활조건과 노동조건 개선 압력을 넣을 수 있었고 이는 꽤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경제 위기 이후 정부와 기업에서 노조가 경제 회생에 위협이 된다고 주장하는 가운데, 조합원 문제에만 집중한 정책이 역효과를 낳았다.

 

많은 노동 활동가와 정치 활동가들은 민주노총이 노동자들의 이익을 효과적으로 방어하려 했으면 폭넓은 좌파 정치세력과 관계를 복원했어야 했다고 주장했다. 민주노총이 좌파 정당의 창출을 지원하길 원한 것이다. 다른 이들은 이 주장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들의 주장은, 이런 시도는 시기상조이고 자원과 활동을 노동운동에서 다른쪽으로 돌림으로써 민주노총 자체의 존립을 위협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여하튼, 상당수의 활동가들은 민중승리21을 구성해 1997년 대통령 선거에 후보를 내고 이듬해 지방선거에 여러 후보를 출마시킴으로써 일을 추진해 나갔다. 이에 대한 민주노총 지도부의 지원은 제한적이었고 득표도 많지 않았다. 2000년 민주노총의 더 큰 지원을 받는 가운데 더 많은 활동가 집단이 민주노동당을 창당했다. 2004년 4월 총선에서 10석을 확보함으로써 민주노동당은 상당한 승리를 얻었다. 이 승리는 또 다른 문제들을 제기했다.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의 적절한 관계는 무엇이며, 민주노총은 민주노동당의 정책 일반, 특히 노동 정책에 대해 어느 정도의 영향력을 끼치려고 해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그것이다.

 

민주노동당(DLP)

민주노동당은 자신들의 목표를 “민중이 완전히 참여하는 완전한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진보적인 정치적 힘”을 갖추고 확장하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민주노동당의 공약은 “사회주의의 원칙과 이상을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가운데 “국가 사회주의의 오류와 사회민주주의의 한계를 극복”하는 걸 추구한다고 선언한다.

 

선거에서 이 당이 거둔 성공의 상당 부분은 유권자가 후보와 정당에 각각 투표하도록 하는 방식으로 얼마전 선거제도를 개혁한 덕분이다. 국회의 경우, 299석 가운데 243석은 지역구에서 직접 투표로 결정되고 46석은 정당명부제에 의한 투표 결과로 배정한다. 민주노동당은 정당명부제 투표에서 13% 이상을 득표함으로써 8석을 확보했고 지역구에서는 2석을 얻었다. 두 주요 정당의 득표 차이가 적기 때문에, 민주노동당은 의석수 이상의 영향력을 발휘한다. 여론조사를 보면, 민주노동당이 2004년 총선 이후 15-20%의 지지율을 확보하면서 인기가 올라가고 있다.

 

민주노동당 의원들은 이제 국회내 논의에 직접 참여할 수 있다. 새로 확보한 의회 내 대표권이 중요하긴 해도 활동가들은 여전히 민주노동당이 새로 확보한 영향력을 가장 잘 활용하는 문제를 놓고 씨름하고 있다. 예를 들면 어떤 이들은, 민주노동당이 입법 발의와 개혁 관련 협상에 개입하는 걸 피하고 대중 운동의 목소리가 되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믿는다. 다른 이들은, 민주노동당이 진보적인 의제를 촉진할 수 있을 때는 노무현 대통령의 자유주의 성향 집권당과 함께 일해야 한다고 믿는다. 예컨대 민주노동당은 무상 교육과 보편적 의료보호를 최우선 과제로 설정했다. 그리고 민주노동당 지도부가 정부의 경제 정책을 한목소리로 비판하지만, 상당수는 노 대통령의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대북한 정책 결정을 지지한다.

 

민주노동당의 미래와 관련된 쟁점들:

민주노동당은 선거를 중요하게 보고 선거에서 힘을 강화하려고 시도해야 하나, 아니면 선거를 국회내 교두보를 유지하면서 정치 관련 논쟁을 날카롭게 하는 도구로 활용해야 하나? 현재 이 당은 당비를 납부하는 회원이 6만명이다. 구성으로 보면 45%는 산업 노동자들이고 35%는 사무직 노동자들이며 20%는 학생과 (소규모 농민 대표자들을 포함한) 기타 세력이다. 당은 내년까지 당원을 10만명 이상으로 확대하는 걸 목표로 삼고 있다. 민주노동당이 노동자들을 당원으로 확보하는 데 민주노총에 의존해야 하는가, 아니면 독자적인 접근 통로를 구축해야 하나? 특정 사회 계층에서 당원을 확충하는 데 우선순위를 두어야 하나?

 

국회내 지위 덕분에 민주노동당은 정책 연구소를 지원할 국고 보조를 받고 있다. 당 부설 진보정치연구소는 현재 전임 연구원 6명을 두고 있다. 연구소의 책임은 당이 “한국 사회의 진보에 기여할 사회, 정치, 경제 대안 모델을 제시하는” 걸 돕는 것이다. 이는 새로운 사회 질서로 이행하는 걸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와 관련된 흥미로운 문제를 제기한다. 현재 이 연구소는 (브라질에서 시행된 것과 같은) 주민참여 예산제도와 (아메리카에서 찾을 수 있는 것같은) 생활임금 조례 같은 대안적 사회 실험을 조사하고 있다. 이런 조사활동이 건설적인 정치 공약을 형성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반면 변화에 대한 개량주의적 시각을 강화할 위험도 있다.

 

위에서 주목한 과제와 문제들에 대한 단순한 답은 없다. 사실 이것들이 서로 얽혀있는 문제들이라는 특성은, 이 문제에 답하려 시도할 때는 전반적인 전략적 관점의 안내를 받아야 하되 이 전략적 관점은 대중적 투쟁에 계속 중요하게 참여하는 걸 통해서 형성하고 바꿔가야 한다는 걸 상기시킨다. 기대하건대, 한국의 경험이 우리 모두에게 유용한 지침을 제시하면 좋겠다.

 

마틴 하트-랜즈버그는 오레건주 포틀랜드에 있는 루이스 앤드 클라크 칼리지 경제학과 교수다. 그의 저서로는 (개발을 향한 질주 -남한내 경제 변화와 정치 투쟁) (한국어판: 이제는 미국이 대답하라, 도서출판 당대, 2000)가 있다. 공저로는 (폴 버킷과 함께 쓴) (한국어판: 중국과 사회주의, 한울, 2005)가 있다. (이밖에 하트-랜즈버그가 폴 버킷과 함께 쓴 논문 세편을 번역한 <일본경제 들여다보기> (미토, 2005)도 국내에 번역되어 나왔다.)

번역: 신기섭
2005/09/19 19:47 2005/09/19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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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진보 진영의 글을 번역해 공개하는 걸 주 목적으로 하지만 요즘은 잡글이 더 많습니다. marish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