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이런 글은 대체 어떻게 읽어야할까?

“읽고 쓰기”라는 범주를 만든 것은 읽는다는 행위, 쓴다는 행위의 다양한 측면을 고민해보자는 취지다. 바로 아래 재능교육지부 투쟁 관련 입장서를 거론한 것도 이 때문이다. 저 글에는 너무나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1)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사실을 진술한 것인지(진술이 사실이냐 여부를 떠나서) 그리고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사실을 해석한 것인지, 2) 재능교육 투쟁 경과에 대한 길고 긴 한쪽의 진술에서 어떤 사실, 어떤 진실을 느끼고 찾아볼 수 있으며 어떤 대목은 의심하고 고민할지 등등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누구를 평가하고, 누가 옳은지 판단하는 건 각자의 몫이겠지만, 이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이다. 평가가 앞서고 판단이 앞서면 글을 제대로 읽을 수 없다. 그러면 글이 드러내거나 감추는 진실은 영영 알 수 없게 된다.

 

이런 맥락에서 아래 두개의 글을 감정과 판단을 배제하고(누구를 공격하는 행위, 누구를 탓하는 행위 따위는 일단 잊고) 글 속에서 냉정하게 인간사, 삶의 모습, 세상 돌아가는 양상을 읽어낼 수 있을까? 판단과 비판을 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라 (그건 각자 알아서 하되) 저 속에서 우리 자신의 추악한 모습을 찾아서 반성하거나, 아름다운 모습을 간파해서 음미할 수 있을까? 그래서 우리가 사는 세상의 진실에 한발짝 더 다가갈 수 있을까?

 

 

http://blog.jinbo.net/stepbystep/2

 

http://blog.jinbo.net/chan/110

2013/03/11 13:59 2013/03/11 13:59
댓글0 댓글
트랙백0 트랙백

재능교육지부 투쟁 관련 입장서 읽기

재능교육지부 투쟁관련 입장서(강종숙, 박경선, 유명자)

 

재능교육 노동자들이 그동안 얼마나 힘들게 싸웠는지 그 실상이 가장 먼저 고통스럽게 다가온다. 하지만 이 문제에 그치는 글이 아니다. 노조운동의 문제점, 그 주변 세력들의 문제점부터, “대체 우리가 왜 무엇 때문에 싸우는가”라는 질문까지 아주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글이다.

 

글 읽기는 한편으론 꼼꼼하고 세심하며 냉정한 자세로 문장과 용어, 논리를 따지는 작업이지만, 다른 한편으론 글의 결을 느끼고 글 사이 사이에 담겨 있는 현실을 간파하고 그 함의를 고민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이런 맥락에서 이 글은 “글 읽기”라기보다 “세상 읽기”용이라고 할 수 있다.

 

피하고 싶지만 피할 수 없는 현실을 대면하라고 요구하는 것, 글 읽기는 두려운 일이다.

 

덧붙힘: 밑에 혁사무당파라는 이름으로 올라온 두개의 덧글은 글읽기, 글쓰기 실패의 전형으로 평할 만하다. 별 근거도 없이 분노 조절이 잘 안되는 질병으로 진단해 부정적 평가를 덧씌우고, 이어서 전혀 다른 얘기를 서술하는 건 아주 나쁜 글쓰기 방식이다. 게다가 저 글은 사실 관계와 맥락의 파악이 잘 안된 채 일방을 비난함으로써 글읽기 실패를 잘 보여준다. 스스로 지우길 권고하며 3월11일 정오까지 지우지 않으면 “글읽고 쓰기” 분류에 부적절하다는 걸 고려해 다른 글의 댓글로 이동하겠다.

2013/03/08 11:49 2013/03/08 11:49
2 댓글
트랙백0 트랙백

논문 초록 읽기- 근육과 정치적 성향의 상관관계?

“읽고 쓰기” 범주를 만들어놓기는 했는데, 한달이 넘도록 어떤 글도 쓰지 못했다. << 우연을 길들이다 >> 영어 원문 전체를 구하게 된 탓이 가장 크다. 애초에는 1장만 원문과 번역문을 대조하려고 했는데, 전문이 생긴 김에 더 많이 대조해보려 작정하게 됐다. 독서 결과물을 내놓으려면 아직도 한참 더 걸리게 생겼다.

 

그렇다고 너무 오래 방치하는 건 민망하고 해서 오늘은 논문 초록 읽기에 대해 간단히 써보려 한다. 마침 흥미거리로는 그만인 연구 결과 하나가 어떤 언론 보도로 뒤늦게 화제가 되고 있어서, 이 연구의 초록을 예제로 삼아봤다.

 

-- “읽고 쓰기”와 논문 초록이 무슨 관계인가?

논문 초록은 1) 쓰기 측면에서는 길고 복잡한 내용을 간략하게 요약 정리하는 데 아주 좋은 연습거리이고 2) 읽기 측면에서는 ㄱ. 가설(그리고 전제), ㄴ. 가설 검증 방식 및 결과, ㄷ. 저자의 해석 부분을 찾아냄으로써 어떤 주장에 대한 판단을 내리는 연습을 하기에 아주 좋은 도구다.

 

-- 이번에 주목할 대목은 2번 읽기 측면이다.

모든 주장 글은 전제가 있다. 그리고 읽는 사람은 이 전제 아래서 글을 읽고 판단하고 해석해야 마땅하다. 전제가 파악되지 않으면 글 읽기가 제대로 안된 것이니, 글에 대해 논하지 않아야 한다. 전제가 파악되어 글에 대해 논할 때에는 이 전제를 넘어서는 범위는 피해야 한다. 이 범위를 넘어서면, 자신이 읽은 글과 무관한 이야기를 하는 꼴이 된다. (그리고 전제를 분명히 드러내지 않은 글은 잘못 쓴 글이거나, 의도적으로 혼란을 초래하려는 글이다.)

 

아래 초록에는 전제가 되는 가설, 이 가설을 검증해본 결과, 이 결과에 대한 저자의 해석이 모두 드러나 있다. 각자 읽고 판단해볼 예제로 제시한다.

(번역은 편의상 대충 넘어간 대목도 있으며,  오역이 있을 수 있다는 걸 감안하시라)

 

* ----- *

논문 제목: 선조들의 정치 논리(The Ancestral logic of politics)

저자: Michael Bang Petersen 외 4명

초록 원문: http://papers.ssrn.com/sol3/papers.cfm?abstract_id=1798773

(논문 전체를 내려받을 수 있다.)

 

진화 역사에서 상체의 힘은 전투 능력의 주요 요소였다. 동물간 투쟁에 관한 진화론적 모형은 전투 능력이 강한 쪽이 약한 쪽보다 자원을 쟁취하거나 지키는 데 더 적극적이리라 예측한다. 이를 현대에 적용해봤다.

 

아르헨티나, 덴마크, 미국에서 진행한 연구 결과, 상체 힘이 강한 이들이 자기한테 이로운 입장을 더 강하게 옹호했다. 곧 저소득층은 근육질일수록 분배를 더 지지했고 고소득층은 근육질일수록 분배를 더 반대했다.

 

현대 민주주의에서 개인의 상체 힘과 경제정책에 따른 이득은 무관하기에, 육체적 힘이 여전히 작용한다는 사실은 현대에도 정치적 의사결정이 (과거) 소집단에 맞춰 진화한 심리의 영향 아래 있음을 시사한다.

2013/02/19 11:07 2013/02/19 11:07
댓글0 댓글
트랙백0 트랙백

앞으로 뒤로

외국 진보 진영의 글을 번역해 공개하는 걸 주 목적으로 하지만 요즘은 잡글이 더 많습니다. marishin